소설리스트

검신귀환-105화 (105/300)

#105화

비명을 지르듯 외치는 목소리에 주점 안의 이목이 그들에게 쏠렸다.

하지만 당천유의 신경은 오롯이 주호의 손목에 쏠려있었다.

비혈산은 악독하기로 손에 꼽히는 극독이다.

이름 그대로 혈액을 타고 퍼지는 특성이 있어 독성이 온몸에 치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해독, 해독을…….’

그는 황급히 품을 뒤졌다.

더욱이 보통의 하독 방법은 음식에 타거나 연기 같은 간접 매개를 통해 체내에 흡수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주호가 한 것처럼 손목에 상처를 내고 혈관에 직접 독을 주입한다면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갈 터.

아무리 그가 높은 경지의 고수라고는 하지만, 신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독 앞에선 장사가 없었다.

“빨리, 빨리 이걸……!”

당천유는 겨우 찾아낸 중화제를 꺼내 주호에게 내밀었다.

조금이라도 지체될 것 같으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 입에 쑤셔 넣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였으니.

중화제는 해독제가 아니었다.

독성이 퍼지는 것을 잠깐 억누르는 것으로, 그 틈을 타 빨리 학관의 병동으로 달려가 해독의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주호는 그의 다급한 태도와는 달리 너무나도 느긋한 모습이었다.

비혈산이 담긴 병의 마개를 다시 봉인했고, 이내 제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잘 살펴보아라.”

그 말에 당천유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고수는 대게 독을 무시하는 법이었다.

자신의 내공이라면 충분히 해독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대부분 그 자만이 목숨을 앗아갔다.

그 역시 같은 맥락이라 생각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음에도 저런 여유로운 태도는 무엇인가.

그렇기에 주호의 손목을 붙잡으며 강제로라도 중화제를 먹이려 할 찰나 비혈산이 파고들었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이, 건.”

비혈산에 물든 피는 시커멓게 변한다. 실제로 주호의 상처에 닿자마자 그 주위에 흘러나와있던 피는 거뭇거뭇하게 물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그 주위에 고여 있는 것은 선명할 정도로 새빨간 피였다.

“…대체 무슨 조화지?”

그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결과였다.

내공이 깊은 고수들은 체내에 들어온 독을 한곳으로 모아 태우곤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완벽하게 독에서 빗겨나가기 힘들뿐더러 어느 정도 후유증을 감수하고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주호는 그러한 것을 한 적이 없었다.

더욱이 독을 태우면 필연적으로 그 찌꺼기가 남기 마련. 보통은 손끝으로 몰거나 침과 함께 뱉어내었지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마치 독이 사라진 것 같은…….’

그런 당천유의 혼란스러운 얼굴에 주호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독을 상대함에 있어 해독(解毒)만이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정화(淨化)가 더 효과적일 수 있으니.”

“…정화, 말입니까?”

주호는 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웅웅-.

가벼운 공명음과 함께 그의 눈동자에 깃든 것과 비슷한 푸른 귀화가 피어올랐으니.

“아…….”

당천유는 그것이 더없이 순수한 기운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떠냐. 이 정도라면 제법 설득력 있는 이야기일 텐데.”

그 무형지독이라는 것을 완벽히 몰아내지는 못해도 소기의 성과는 거둘 수 있으리라.

그리한다면 다른 방도를 찾을 때까지 시간을 조금 더 벌 수 있을 터.

“…….”

당천유는 주호의 팔목을 붙잡은 채로 움직임을 멈췄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무형지독과 비혈산은 태양과 모닥불만큼 궤가 달랐다.

저 정순한 불꽃이 무형지독에도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건만, 당천유는 가슴 한가운데에 슬며시 드는 기대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정말로.”

그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고독한 싸움이었다. 감히 그 누가 자신의 고충을 알아줄 수 있을까.

“정말로 절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희미한 불씨에 어깨를 떨고, 입술을 깨물면서도 흐느끼듯 말을 내뱉었다.

“손이 닿는 데까지 어떻게든 온 힘을 다하마.”

그 말에 당천유는 고개를 푹 숙였다.

툭, 투둑.

탁자 위로 다시금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다만, 그 안에는 아까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

당천유와 주호가 연무장을 떠난 뒤, 그곳엔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음.”

이전까지 몸을 풀고 있던 선우연이 머리를 긁적이며 검을 내렸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이렇게 된 탓에 수련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자네, 뭔가 알고 있는가?”

슬쩍 고개를 돌리니 악비산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둘은 학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막역한 사이였지 않은가. 그렇기 무언가 알고 있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흠.”

그 말에 위천강의 눈에 흥미가 스쳤다.

사천당가는 세가 연합에서도 독보적으로 폐쇄적인 면모를 보였다.

다른 곳과 달리 사천당가에는 간자를 심지 못했기에 그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는바.

그렇기에 악비산의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섣불리 말하기엔 곤란한 일이다. 당가 내부의 일이니.”

“그런가.”

선우연은 깔끔히 물러났다.

그도 화산파의 소속인 만큼 사문 안의 이야기가 밖에 나도는 것이 꺼려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 걱정되는군. 그런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

선우연의 말에 철대환이나 위천강 역시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중 대화의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단연 위천강과 당천유였다.

한 명이라도 모종의 일로 자리를 비우면 그 순간으로 이야기가 뚝 끊기곤 하는 일이 잦았을 정도로 그 둘이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방금 보였던 그 태도는 목숨이 달린 위기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난 여기까지 하겠네. 미안하군.”

악비산 역시 창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 수련의 끝을 고했다.

주섬주섬 제 물건들을 정리하고 곧바로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사라진 당천유를 쫓아갈 모양인 듯싶었다.

“이렇게 된 것 다 같이 가는 것이 어떻겠나. 무슨 고민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보단 여럿이 낫겠지.”

선우연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막을 알고 있던 악비산은 입을 열어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이들이 당천유의 뒤를 따라가는 것까지 간섭하기에는 너무 오지랖을 부리는 감이 있었다.

“가죠.”

남궁연까지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연무장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당천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학관 내에서 주호는 이미 유명인사가 된바. 그렇기에 중간중간 마주치는 이들에게 그의 행적을 묻고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이었다.

“…….”

그리고 지금 그들은 주점의 밖에서 만난 당가혜에게 자초지종을 들음과 더불어, 주점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인가.”

선우연은 침중한 얼굴로 신음을 토했다.

제 동생이 그리되었으니 어찌나 심려가 컸을까.

“그러니 천유가 수련을 등한시해도 강하게 말할 수가 없었네. 녀석의 간절함은 십 년 가까이 옆에서 지켜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악비산은 쓰디쓴 것을 먹은 사람처럼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곤경에 처한 친우를 도와주고 싶었으나, 창을 휘두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뭘 해주겠나.

간혹 힘들어할 때마다 밤늦게까지 같이 술을 마셔주는 것이 전부였다.

“…….”

선우연은 입을 닫은 채 생각에 잠겼다.

안에서 들려온 대화대로라면 주호에게 무언가 방법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남사일과 더불어 화산으로 가야 하는 예정이 잡혀있던바.

그렇기에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도 사천으로 가세.”

“사천? 화산행은 어떻게 하는가.”

“애초에 남장로님께선 이번 화산행을 기꺼워하지 않으셨다. 본산에서 서신이 내려와서 그런 것이지. 사정을 설명해 드린다면 분명 이해해주실 것이야.”

여차하면 이쪽으로 따라붙을 수도 있었다.

서신에는 이번에 화산으로 돌아오지 않을 시 직접 잡으러 온다고 적혀 있었지만, 어차피 그것은 남사일이 감당해야 할 일.

선우연으로서는 신경을 쓸 바가 아니었다.

“비록 독에 관련된 것은 도와주기 힘드나, 그래도 혼자 가는 것보단 더 기운이 나지 않겠나.”

“일리 있군.”

“동감하네.”

위천강과 철대환 역시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왔다. 악비산은 애초에 당천유와 함께할 생각이었으니 고려할 것도 없었다.

“…부디 교관님께서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였으면 좋겠네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궁연도 살짝 붉어진 눈시울로 훌쩍이며 함께 하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다 끝났나?”

“……!”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그들의 몸이 움찔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주점 안에 있던 주호가 그들의 뒤를 잡은 것이었다.

“…자네들.”

설상가상으로 당천유 역시 문가로 나아왔으니.

“…….”

그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은 듯 애써 눈을 비비며 평정을 찾으려 했으나, 눈가는 이미 시뻘겋게 부어오른 상태였다.

“…우리도 함께 가겠네.”

이왕 이렇게 된 것 선우연은 당천유의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나가 말문을 텄다.

“우리가 만나게 된 지 아직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밀도는 몇 배에 이른다고 생각하네. 친우가 힘들어하는데, 그저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자네들.”

악비산도 위천강도 철대환도 남궁연도 모두 같은 표정이었다.

당천유는 마음이 동했는지 살짝 울컥한 듯했지만, 어렵게 그것을 삼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별말을. 그나저나 상황이 급하다고 했지. 화산행에 관해선 남장로님께 곧바로 사정을 설명할 테니, 내일이라도 당장 출발하세나.”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천으로 가는 길은 화산까지의 여정과 비슷하게 걸리는바. 후기지수들은 사천행의 준비를 하기 위해 각자 숙소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면.”

선우연 역시 남사일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려 했다.

말은 할 수 있는 것처럼 당당히 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눈에 닥치니 가슴이 살짝 먹먹해진바.

여차하면 오체투지를 하며 잘못을 빌 생각으로 한숨을 내쉴 찰나, 주호가 그 옆으로 다가왔다.

“남교관님께는 내가 말하겠다. 넌 옆에서 거들도록.”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부담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주호는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으니.

“우리가 저 일 때문에 사천으로 간다고 하면 교관님께서는 오히려 이쪽으로 붙으실 것 같은데.”

“…그건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 말에 선우연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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