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당가의 신동(神童)이 있었다.
독의 귀재라 불렸으며, 열 살 남짓한 나이가 되었을 때의 그 성취는 역대 그 나이대의 누구보다 뛰어난 수준이라고 칭송받았다.
어지간한 당가의 고수보다 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력 역시 하해와 같이 깊었다.
신동은 하늘이 높은 줄 몰랐다.
머리가 굵어졌을 땐 가문의 온 기대를 한몸에 받는 자신의 위치를 깨달아 한껏 그 재능에 취했다.
그런 신동에겐 한 살 밑의 동생이 있었다.
제 오라버니만큼의 재목은 아니었으나, 같은 핏줄을 물려받은 수재로 또래보다 훨씬 뛰어난 성취를 보였다.
더욱이 눈앞에 커다란 목표가 있으니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언젠가 오라버니를 따라잡아 그에 버금가는 독공의 고수가 될 것이라며 호언장담까지 했다.
신동은 그런 동생의 모습이 어여뻤다. 그렇기에 더욱 솔선하는 모습이 되고자 더 열심히 수련했고, 마침내 열두 살의 나이에 새로운 무형지독을 만들어냈다.
완전한 무색(無色)이며 완전한 무취(無臭)였다.
무형지독의 경지에 끝이 있다면, 그것에 한없이 가까운 형태였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 신동의 인생은 크게 망가졌다.
발단은 오라버니를 존경하는 동생의 호기심이었다.
신동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동생은 무형지독을 건드리고 말았다.
오라버니가 했으니 자신 역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발로였다.
하지만 그것은 수재 따위의 재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동의 무형지독은 그녀에게 있어 불가해(不可解)의 존재였다.
제 수준을 넘는 것을 탐하려 했던 대가는 녹록치 않았고, 순식간에 그것에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신동이 만들어낸 무형지독의 시작은 발끝에서부터 이루어졌다.
분명 살도 뼈도 피도 그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발가락이 굳기 시작하더니, 이내 다리 전체가 석화가 이루어진 것처럼 꼼짝하나 할 수 없게 되었다.
동력(動力)의 상실 이후엔 감각 쪽이었다.
제일 먼저 촉각이 사라졌다.
신경이 죽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봄의 그 옅은 한 줄기 바람조차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터전을 잡은 독기는 곧 본격적인 움직임을 개시했다.
순리에 따라 순환하던 피의 움직임을 멈추고, 근육을 경련시키며, 제 위치를 지키던 장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제일 마지막엔 시력이 상실되고, 귀가 먹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미 독성이 백회까지 침범했다는 것이니, 더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천당가였다.
온갖 독과 약의 모태이며, 그것을 절정으로 다루는 고수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들로서도 독성을 일시적으로 억누르는 것이 할 수는 최선이었던바.
희대의 천재가 만들어낸 무형지독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 새로운 독의 연구는 해독제의 개발도 병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그 무형지독은 신동으로서도 겨우 완성 시킨 결과물. 이다음에 해독제를 개발할 찰나 그의 동생이 중독되어버린 것이었다.
신동은 좌절하기보단 해독제의 개발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독을 만들어냈을 리 없었다.
모든 물질엔 그와 반대되는 것이 존재하며, 어떠한 극독일지라도 그 법칙에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일 년, 이 년, 그리고 팔 년.
수백, 아니 수천 번에 이르는 연구가 모두 실패했다.
그렇기에 가까스로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곳에선 불가능하다.』
그의 사문인 사천당가 이외에 가장 많은 사람과 정보가 모이는 곳.
그렇기에 신동은 정천학관으로 향했다.
입관 시험에서 독은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고, 제가 만든 독 하나조차 해독하지 못했는데 독을 다룬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다행히 그는 암기를 다루는 것에서도 제법 재능이 있었던바.
겉으로는 태연한 생활을 보냈다.
옛적부터 친우인 악비산을 따라 주호란 교관의 밑으로 들어가고, 원하지도 않는 수련을 강제로 했으며, 혼자라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갖가지 경험을 겪었다.
동생이 무형지독에 중독된 이후부터 이때까지, 처음으로 웃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은 항상 무거웠다.
그렇기에 낮에는 정상적으로 동문과 어울리며 학관 생활을 보냈고, 밤에는 거의 날을 새다시피 하며 독의 연구에 매달렸다.
다행인 것은 정천학관의 자료가 예상외로 방대했다는 것이었다.
사천당가에서 접할 수 없었던 것들을 찾을 수 있었고, 당가의 출신이 아닌 다른 독공의 고수들에게 여러 조언도 받았다.
문제는 동생의 상태가 악화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목 바로 아래까지 무형지독의 독성이 치솟아 오른바.
조급해진 마음에 잠을 거의 자지 않으며 연구에 매달렸다.
학관 생활 중간에 수련을 등한시하고, 강의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교류 대회의 상품으로 나온 자소단이나 다른 영약들에 집착한 것, 그리고 화산행을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영약이라 불리는 것들은 매물이 거의 없어 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바.
두 달여 간의 시간을 대가로 매화단을 손에 넣는다면 나름대로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당가의 출신인 당가혜가 가져온 서신에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무형지독의 독성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두 눈은 반쯤 실명되었고, 귀는 이미 먹어버린 후란다. 이제는 대라신선이와도 손쓸 도리가 없다. 무형지독을 만든 장본인이기에 더더욱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실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미 옛적에 독성에 사로잡혀 미쳤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테니.
당천유는 자신의 재능이 절망스러웠다.
조금만 더 미천했더라면, 겸손했더라면, 무형지독 같은 빌어먹을 것을 만들지 않았을 텐데.
벌컥벌컥.
그는 독하디 독한 화주를 몇 병이고 병째로 들이마셨다.
가문을 나오며 반드시 해독제를 만들어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이제는 동생을 볼 낯이 없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이대로 술에 절어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웠다. 끝내 당천유는 동생의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그 옆에서 동행할 생각에 이르렀다.
탁.
빈 술병을 내려놓은 그가 다시 새로운 병을 찾아 헤맬 때, 누군가가 그 손목을 움켜쥐었다.
“…….”
당천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술기운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시야가 흔들렸지만, 그 너머에 앉아 있는 이가 누군지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오늘은, 오늘만은 내버려 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당천유는 애원하듯 주호에게 말했다.
꼴불견인 모습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닥쳐온 현실의 냉혹함은 도저히 맨정신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주호는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당천유의 손목을 잡으며 새파란 광망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들었다. 동생이 네가 만든 독에 중독되었다지.”
“…….”
당천유는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먼 친척 누이 되는 당가혜가 또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 것이리라.
방계의 출신으로 자신을 향해 매번 깍듯이 도련님이라 불러오긴 했지만, 옛적부터 가까운 사이였기에 자주 걱정하는 말을 해오곤 했었다.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말리지 마십시오.”
감히 단언하건대, 이 땅에 자신보다 독을 더 잘 다루는 고수는 있어도, 독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자는 없었다.
이쪽에서 손을 쓸 수 없는 이상, 이제는 정말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포기할 것이냐.”
체념이 가득한 마음으로 고개를 떨군 당천유의 몸이 그 말에 움찔 떨렸다.
꽈드득.
당천유는 손이 새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사용했다.
그 자신이 직접 수백 가지의 독에 중독되고 해독되는 과정도 겪어봤다.
하지만 무형지독 만큼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방향을 잃은 분노는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그렇기에 그는 기함을 토해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면!”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다만, 가슴에 쌓여 있던 응어리가 역류하며 그의 입으로 토해져 나왔을 뿐이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십 년! 무려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당가의 유례없는 기재라 불리는 제가! 제 인생의 절반 가까이 그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가주나 다른 고수들은 엄두도 내지 못해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왔는데, 이제 뭘 더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폭포수처럼 말을 전부 쏟아낸 그는 거칠게 숨을 헐떡거렸다.
종래엔 서 있기도 힘든 것인지 뒤에 있던 의자에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으며 무릎 위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분노 뒤에 찾아온 것은 깊은 회한이었다.
탁자 위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답답한 현실에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러웠고 신동이라 불리며 치켜세워졌지만, 정작 중요할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도와주마.”
“…예?”
그렇기에 그 나지막하게 내뱉어진 한마디의 말에 당천유는 입을 벌렸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준다는 것인가. 이 지경까지 와서 입에 발린 소리는 필요 없었다. 오히려 화만 돋을 뿐이었으니.
하지만 주호가 그렇게 말하자 괜스레 마음 한구석으로 한 줄기 기대감이 피어올랐지만, 이내 그 희망을 부정했다.
이미 깊은 내공을 지닌 고수들이 몇이나 당가에 방문했다.
해독이 안 된다면 내공으로 태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으나,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절그럭.
그런 당천유의 부정적인 생각을 읽은 것일까. 주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사천당가의 표식이 새겨진 작은 병이었다.
내용물은 비혈산(匕血酸)이라 불리는 극독으로, 대상의 피를 태워 고통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극독이었다.
“네 누이에게 잠시 빌렸다. 당가에서 손에 꼽히는 극독이라지. 한 방울이라도 체내에 들어가는 순간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핏.
주호는 망설임 없는 손길로 제 왼쪽 손목에 상처를 내었다.
그러자 살 거죽이 찢어지고 그 사이로 새빨간 선혈이 흘러내렸다.
“지금 대체 뭐 하시는 겁…….”
알 수 없는 영문에 당천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주호는 그보다 먼저 병의 마개를 열어 제 상처 위로 비혈산을 부었다.
치이이이익-!
비혈산은 피와 닿자마자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새하얀 연기가 그 위로 피어오르고, 비혈산의 독성은 순식간에 찢어진 상처의 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독한 화주를 몇 병이나 들이마신 당천유는 일순간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기에 몇 번이고 두 눈을 끔뻑거리며 그것을 바라본 직후,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기대고 있던 탁자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 지금 대체 뭐하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