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02화 (102/300)

#102화

회의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간 것은 서로 사전에 상의해둔 것이었다.

맹에 있는 승냥이 같은 이들이 이번 일로 인해 어떻게든 이득을 취하려 회의를 지연시킬 것은 자명한바.

그렇기에 확실한 화두를 던져 도리어 그들이 방해하지 못하게 휘어잡고자 계획한 일이었다.

“덕분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수월하게 진행했네.”

“뭐, 그들도 돌아가서 제 문파에 할 이야깃거리는 생겼을 겁니다. 어찌 되었든 맹에서 확실한 입장을 취한 것이니.”

맹주와 장로들은 대외적으로 협력하면서 또 견제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나백진을 비롯한 일부 이들과는 이미 옛적부터 물밑에서 협력하던 관계인바. 덕분에 크게 잡음이 나지 않으면서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그나저나 소문이 사실입니까. 맹주님의 사제께서 큰 활약을 했다는 것이.”

“나도 들었네. 들리는 말로는 이제 고작 스물여섯의 나이로 절정의 경지를 뛰어넘었다고 하더군.”

청허자의 말에 나백진 역시 호기심을 표해온다. 그것에 단철량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 제 녀석이 뛰어난 것이지.”

“그런데 왜 교관입니까? 맹으로 불러들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낸들 알겠나. 저 스스로 선택한 것을.”

“…그렇다면 아직 공식적인 소속은 없다는 것이지요.”

단철량의 말에 청허자와 나백진이 두 눈을 빛낸다. 하지만 그 옆에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궁한이 헛기침을 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큼, 행여나 눈독 들이지 말게나. 내 이미 옛적부터 연이의 배필로 점찍어두었으니.”

“아니, 검제께서 그리 말씀하실 정도입니까?”

남궁한의 말에 나백진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얼마나 괜찮은 청년이기에 제 딸에 대한 애정이 지나칠 정도로 깊은 그가 저리 말해올 정도란 말인가.

“뭐, 그 이야기는 차차 하는 것으로 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은 단철량이 화제를 바꿨다. 회의는 끝났지만, 아직 남아 있는 안건은 많은바. 그렇기에 이들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

“예의 그 혈천신교에 관한 이야기이네.”

“그들이 마교를 움직였다, 이 말씀이십니까?”

단철량은 남궁한의 도움을 받아 이미 옛적에 청허자와 나백진에게 혈천신교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처음 그 둘은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넓은 강호에 신비 조직이 한둘이겠나.

하지만 혈천신교처럼 강대고 광활한 힘을 가진 세력이 있다는 것은 쉬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단철량은 그간 자신이 조사한 정보들을 증거로 보이며 끊임없이 그들을 설득했고, 끝내 신뢰를 얻으며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맹은 마교가 왜 하필 이 시기에 우릴 공격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네. 군사가 다방면에서 접근하며 분석해보았지만, 그들에게 있어 실질적인 이득이 되는 요소 또한 찾을 수 없었지.”

두 학관의 사상자가 적게는 수십, 많게는 일백 언저리에 달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그리 큰 피해는 아닌바. 마교 정도의 거대 세력이 고작 이 정도의 타격을 입히기 위해 그런 손실을 감수했다고 보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컸다.

“혹은 저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나도 그 가능성이 크다고 보네.”

“사도맹과의 이야기는 어떤가. 슬슬 답변이 올 시기라고 생각되는데.”

남궁한은 한 줄기 기대를 담아 철대환에게 물었다.

혈천신교의 수작일 가능성이 크지만, 일단 마교가 직접적으로 움직인 사건이었다.

중원 무림에 있어 마교의 발호는 중대한 사안. 보통 이럴 경우에 무림맹과 사도맹은 손을 잡고 공동 전선을 펼쳤다.

완벽하게 아군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중원에서 마교를 몰아낼 때까지는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물론 눈앞의 이득 때문에 뒤통수를 일도 간혹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때마다 마교에 의해 큰 피해를 보았기에 이제는 가급 적 서로 화평을 맺는 것이 그간의 관례였다.

하지만 단철량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확답을 주지 않더군. 그쪽도 지금 내부적으로 매우 곤란한 모양이야.”

“하긴 그렇겠군요. 소문에 의하면 파벌 싸움이 절정에 달했다고 했으니.”

무림맹은 정도 무림의 수호라는 대의 아래 모인 연합체였다.

확실한 명분이 있었고, 협의라는 풍조를 지향했다.

하지만 사도맹은 그와 반대로 철저한 이익단체인바.

대략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도맹주의 압도적인 무력으로 그 기강을 휘어잡았지만, 지금 그는 모종의 이유로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태였다.

그 아들이 부맹주의 직분으로 맹을 지휘하고 있다곤 하나, 예전과 비교해 손색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 때문에 자신들을 사도칠패라 칭하는 일곱 세력이 득세하여 제힘을 부풀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근래에는 노골적으로 제 세력을 부풀리며 칠패 출신의 고수들로 맹의 요직을 꿰차는 중이었으니.

부맹주 쪽은 내부가 혼란한 와중 바깥일에 신경 쓰기 어려울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아직 시간은 있네.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면 될 것이야.”

굳은 의지가 담겨 있는 단철량의 말에 나머지 역시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마교의 습격 이후 사흘이 지났다.

진행 중이던 교류 대회는 당연히 중지되었다.

무대가 되는 천각의 곳곳이 크게 파괴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할뿐더러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

그중 대부분은 학관을 지키던 무사들이었지만, 교관과 후기지수의 수도 적지 않았다.

어차피 하반기 일정은 교류 대회에 이목이 쏠려 있던바. 그렇기에 이후에 휴관 날짜까지 모든 행사를 공식적으로 중지하고 피해를 수습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였다.

강의도 취소되었기에 대부분은 학관을 떠나 고향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학관 내부는 곧 순식간에 한산해졌다.

남은 이들은 수련동에 틀어박혀 제 무공을 가다듬었고, 더러는 예정에 없던 휴식을 즐기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선 평상시보다 더 바쁜 구역이 있었으니.

“약재가 부족하다! 목록을 적어줄 테니 빨리 가서 사와!”

“뭐? 염증이 생겼다고? 그걸 왜 이제 말해!”

학관의 병동은 부상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교류 대회를 비롯해 학관이 습격당한 일로 많은 사상자가 나온바.

목숨을 잃은 이는 수십에 그쳤지만, 부상자는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았다.

그렇기에 학관의 의원과 그 밑에서 가르침을 받는 수련생들은 밤낮의 구분 없이 내내 뛰어다니며 환자들을 돌보았다.

교류 대회에 참가한 주호 휘하의 후기지수들은 대부분 둘째 날에 퇴원 판정을 받았다.

다만, 천후는 혈룡을 상대하느라 내상과 외상 모두 심했기에 앞으로 몇 주는 더 침상에 누워있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주호 역시 청혈도제와의 싸움 직후엔 자잘한 상처와 내상이 있었지만, 제 밑의 후기지수들과 마찬가지로 둘째 날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흘째가 되는 지금은 학관의 일정이 모두 중지되어 여유가 생긴 틈을 타 연무장에서 제 성취를 관조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우웅-.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는 그의 전신으로 푸른빛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그러곤 천천히 밑에서부터 위로 순환을 반복하더니 이내 백회로 모여들어 각각 다른 색의 원을 그려내었다.

청적흑백황(靑赤黑白黃).

흔히 오기조원(五氣朝元)이라 불리는 경지로, 그 성취가 극한에 달했을 때 보이는 현상이었으니.

그것들은 곧 다시 희뿌연 기운으로 변해 주호의 백회로 모여들었다.

“…후.”

운기조식을 끝내자 주호의 두 눈은 이전보다 더 깊어져 있었다.

[상태창]

이름: 주호

별호: 월영사신

직업: 정천학관 일반교관

나이: 스물여섯

소속: 정천학관, 사신문

경지: 초절정(七/十)

무공: 청룡신공(八成)

잠재력: -

팔성에 달한 청룡신공을 보자 절로 기분이 좋았다.

다만, 청룡검식의 후반 초식은 조금 더 연구가 필요로 해 보였다.

당장 만검(萬劍)만 하더라도 지닌 내공의 절반 가까이가 필요로 하지 않은가.

그가 무황의 비동 안에서 온갖 영약을 섭취해 비슷한 경지의 다른 고수들보다 내공의 양이 월등하단 것을 감안한다면 정말로 무지막지한 소모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개선의 여지가 있었다.

“오할, 아니 육할은 더 아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초식의 숙련도나, 내기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에 지금보다 더 익숙해진다면 비약적으로 소모되는 내공의 양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주호의 시선이 제 경지를 향했다.

초절정의 경지도 어느덧 완숙을 지나 七에 올라 있었으니.

이제 세 단계만 더 성장한다면, 흔히 세간에서 탈각(脫殼)이라 부르는 신화경(神化境)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단 노인이나 검제와 같은 경지라.’

지금만 해도 몇 년 전까진 감히 바라지도 못하는 상승의 경지였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인지, 그러한 상상을 하자 자연스럽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강호에 기인이사는 수없이 많았다.

당장 구파일방이나 세가 연합을 대표하는 고수, 그리고 혈천신교의 사흉수나 칠혈성이 자신과 비슷한 경지였으니.

이다음엔 그보다 더 강한 고수가 등장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이전에 더더욱 높은 경지에 올라야 했다.

그 이후 가볍게 몸을 푸는 것으로 수련을 마친 주호는 매무새를 가다듬고 병동으로 향했다.

아직 그 안은 인산인해를 이루는바. 사람들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병상에 누워있는 담우양의 모습이 보였다.

“담형, 몸은 좀 괜찮습니까.”

“왔는가. 나야 괜찮네. 뭐 그리 심한 상처도 아닌데 계속 누워있으라고 하니.”

담우양은 마교의 고수들과 싸우는 중 다리를 깊게 베였다.

당장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주요 근육을 다치는 바람에 한동안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못내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저희 업무도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당분간은 푹 쉬시며 상처를 돌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쩝. 교류 대회가 끝나면 술이나 진탕 마시고 싶었거늘.”

“전부 회복하면 언제든 대작해드리지요.”

“내 그 말 꼭 기억해두겠네.”

담우양과의 만남을 마친 주호는 병동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일반 교관과 관생이 머무르는 외원과 달리 내원은 각각 구분된 공간으로 소수를 위해 준비된 시설이었다.

똑똑-.

곧 병실의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그것에 천천히 안으로 들어간 주호는 마찬가지로 병상에 누워있는 파리한 안색의 남사일을 볼 수 있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내상이 심하다고는 들었습니다.”

“내상이고 뭐고 좀이 쑤셔 죽겠네. 병상에 묶여 있는 것은 내 체질이 아니어서 답답하기 그지없군.”

매화선풍검 남사일은 학관에 닥쳐온 습격 때에 다수의 마두를 쓰러뜨리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제일 처음 이변을 느낀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더라면 피해가 지금보다 곱절은 더 컸으리라는 것이 정론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싸움을 연이어 한 탓에 작지 않은 내상을 입은바.

족히 한 달은 넘게 정양해야 했지만, 정작 그 본인은 답답하다며 투덜거려왔다.

“그래도 교관님 덕분에 학관 측의 피해가 적어서 다행입니다.”

“뭐, 그러는 자네도 한바탕 요란하게 일을 벌였더군. 내 이곳에 누워있음에도 들려오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네. 강호에 신성이 나타났다느니, 뭐니 하면서 다들 들뜬 기세로 이야기해오더군.”

“…….”

그 말에 주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청혈도제 사마천과의 싸움은 큰 화제로 대두되었다.

더욱이 그 당시에 지켜보고 있던 것은 두 학관의 교관과 후기지수뿐만 아니라 무림맹에서 지원을 나온 고수들까지 있었으니, 그 증언은 생생하게 세간으로 퍼져나갔고 이내 큰 반향을 몰고 왔다.

사적으로는 학관 내의 관생을 보내 자신에게 연락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공적으로 서신을 보내 감사를 표함과 더불어 은근한 권유를 해오는 이들이 수십이었다.

“뭐, 낭중지추가 아니겠는가. 사실 자네 실력을 생각한다면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나중에 유명해진다고 해서 날 잊지 말게나.”

“제가 설마 그러겠습니까.”

“그래, 그러면 이야기 좀 해보게나. 그 푸른 가면을 쓴 고수가…….”

남사일이 눈을 빛내며 그때의 일을 물을 찰나, 문가로 새로운 기척이 나타났다.

“…선우연?”

“아, 교관님도 계셨군요.”

문안을 온 것인지 목함을 들고 있는 선우연이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더냐. 아까 아침에 와놓고. 번거롭게 굴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저희 스승님과 사숙께서 서신을 보내오셔서 말입니다.”

“서신?.”

“예. 이걸로 상처를 다스리시고 부디 이번에는 돌아와 달라고…….”

선우연은 목함과 서신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남사일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것들을 건네받았고, 이내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허어.”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 쓰여 있던 것인지 그는 신음을 흘렸다.

주호는 조심스레 몸을 돌렸다.

외인(外人)의 몸으로 다른 문파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바.

그렇기에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남사일이 불쑥 손을 뻗어와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자네, 나와 함께 화산에 가주지 않겠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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