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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101화 (101/300)

#101화

같은 시각, 하남성 외곽에 있는 혈천신교의 지부의 장원.

사신문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되어버린 그 가운데, 내부를 서성이는 한 사내가 있었다.

“…….”

적혈마검 진무혼은 두 눈을 감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약속한 시각이 지났음에도 이곳으로 오기로 했던 청혈도제 사마천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쯧.”

어젯밤, 청룡과 결판을 내겠다며 조금의 말미만 달라고 고집을 부리던 녀석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그 빌어먹을 투쟁심을 꺾을 수가 없었기에 그는 끝내 한 시진의 시간을 허락했다.

늦든 빠르든 청룡과 결착을 내고 이곳을 향해 출발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신호가 왔을 터.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인 것을 보니 일신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멍청한 녀석.”

자박.

진무혼은 바닥에 널브러진 뭔지 모를 잔해들을 밟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청혈도제가 합류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갔다.

하남에 있는 지부의 정보를 흘린 것도, 마교를 움직여 각 학관과 교류 대회의 무대인 천각을 기습한 것도, 그리고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까지.

무림맹을 비롯한 여러 세력은 모두 자신들의 손바닥에 놀아났을 따름이었다.

‘청룡의 존재가 걸리지만, 지금 단계에서 그리 신경 쓸 이는 아니다.’

사신수니 청룡이니 해봤자 고작 한 명일 따름이다. 무위 역시 제법이었지만, 신교 내에 널린 것이 초절정의 고수였다.

더욱이 전의가 충만한 청혈도제가 그곳으로 향했으니 그 역시 무사하진 못할 터. 어떤 식으로든 결착이 났으리라 생각되었다.

“…….”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장원의 밖으로 나온 진무혼은 고개를 들었다.

칠혈성(七血星) 중 청혈도제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혈성(血星).

그리고 그 휘하 삼백의 고수가 장원의 입구에 도열해 있었으니.

“때가 되었다.”

진무혼은 자신을 바라보는 수백 쌍의 눈동자를 보며 엄숙히 선포했다.

“오늘 우리는 사도맹을 수중에 넣는 것으로 대계(大計)의 단초를 마련할 것이니.”

모든 것은, 애초에 계획한 대로 돌아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

“…끄응.”

청혈도제 사마천을 쓰러뜨린 직후, 주호 역시 탈진해버렸다.

청룡신공의 성취가 상승함과 더불어 사마천을 쓰러뜨린 것까진 좋았으나, 그 고양감에 취한 것이 문제였다.

앞뒤 가리지 않고 사용한 청룡검식의 후반 초식은 막대한 내력을 잡아먹은바. 그 여파는 직전까지 사마천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주호가 감당하기에 살짝 벅찬 것이었다.

“…과연, 괜히 청룡신공의 성취가 상승할 때까지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둔 이유가 있었군.”

같은 청룡검식인 현검을 비롯한 전반부의 초식 역시 청룡검법과 비교하자면 몇 배나 되는 내공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후반부의 초식들은 저마다 그것의 배를 뛰어넘었으니, 사용함에 있어서 조금 더 신중함을 기해야 할 것 같았다.

투둑.

“……?”

싸움의 여파로 무너져 내린 지형 한가운데 쓰러져 있던 주호는, 저 위쪽으로 비치는 몇 개의 인영에 시선을 돌렸다.

눈에 신경을 집중하니 곧 익숙한 얼굴이 보인바. 정천 학관의 동료 교관들과 남궁연을 비롯한 후기지수들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기력이 다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고개만 들고 있을 찰나, 앞서 다가오던 후기지수들이 그를 발견하고 목청껏 외쳤다.

“교관님!”

남궁연과 선우연이 먼저 구멍 안으로 몸을 날렸다. 다른 이들이 그 뒤를 따라왔고 이내 구멍 한가운데 널브러진 주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다친 이는?”

“천공자를 제외하곤 다들 그리 심하지 않아요. 그마저도 천언니에게 맞아서 그런 거니.”

“…맞아?”

그 말에 주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쓴웃음을 흘렸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대충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들의 행색을 보니 지하 역시 적잖이 치열했던 상황인바. 감격스러운 사제 간의 재회에 쑥스러움을 숨기기 위해 둘러댄 것이 분명했다.

“…허어.”

진무혁은 처참한 주위의 풍경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교류 대회 가운데 마인들이 습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제 휘하의 주작단과 함께 이곳으로 향했다.

피해가 없었지만, 다행히 때를 맞출 수 있었고 교관과 후기지수들에 합세해 마인들을 전부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산맥의 반대편에서는 차원이 다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어찌 사람의 몸으로 이러한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공전절후라 할 수 있는 싸움이었다.

푸른 벼락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강기가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그 광경은 어릴 적 들었던 영웅담을 재현해낸 것 같지 않았던가.

일순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싸움이 끝난 직후 학관 측의 인물들과 함께 그 근원지로 발걸음을 옮기니, 눈앞에서 펼쳐진 모든 것이 생생한 사실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네 괜찮은가-!”

뒤따라온 담우양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다.

주호가 비범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이 정도 경지에 오른 고수이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난리가 나겠군.’

이 싸움의 목격자는 적어도 수십이 넘었다.

거기에 지원을 온 무림맹의 고수들까지 있으니 주호에 관한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갈 터.

“어떻게, 살아는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우 기력을 회복한 주호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온다. 그것에 쓴웃음을 지은 담우양은 다행이라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서 돌아가세. 다들 기다리고 있네.”

***

사흘 후 무림맹 본단 대회랑.

맹의 핵심 인사들이 무림의 주요 화제로 떠오른 중요한 안건들에 대해 회의를 하는 장소였다.

평소라면 점잖은 형태로 이야기가 오갈 테지만, 현재는 마교의 갑작스러운 습격이 있었던 직후이기에 안팎으로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다.

더욱이 이번 일로 사상자가 적지 않았다.

교관들이야 대부분 어디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이었으니 괜찮았지만, 관생 쪽은 중소 문파에라도 소속된 이들이 다수였다.

특히 교류회 쪽은 구파일방이나 세가 연합 같은 유력 문파의 구성원들이 많았으니 대회랑의 분위기는 험악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흘러갔다.

“전쟁, 전쟁을 대비해야 합니다! 이건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허어. 그렇게 속단할 정도로 가벼운 사안이 아니오. 괜히 우리가 움직였다간 저들을 자극할 수도 있는 법이지 않소.”

“먼저 칼을 빼 든 것이 누군데! 당장 맹의 밖을 가보시오! 이번 일로 마교에 사상자가 나온 문파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모르오?!”

맡은 직책과 직분이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성과 비난이 서로를 오간다. 하지만 그 제일 상석에 앉은 단철량은 입을 열지 않은 채 침중한 기색으로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누가 마교의 습격이 있을 거라고 예상이라도 했소? 맹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소이까.”

“지금 그 말 그대로 밖에 나가서 진을 치고 있는 이들에게 해보시게. 내 그럼 자네 말을 인정하지.”

“그래도 생각보다 피해가 적어서 다행이오. 교관 쪽은 제법 죽었다만, 그래도 후기지수들은 사망한 이들은 적잖소. 마교의 습격치고는 잘 막아낸 것인데 뭐 그리 불만이 많은지”

“거, 말씀 좀 가려서 하시오. 매일 술을 끼고 사니 뇌가 녹아버리기라도 한 것이오?”

“뭐라고? 지금 말 다 했소?”

종래엔 이곳이 맹의 중진들이 모이는 회랑인지, 아니면 동네 시장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소란스러워졌으니.

“…….”

교류 대회의 내빈으로 하남에 와 있던 남궁한은 세가를 대표해 회의에 참석한 상태였다.

이번 일의 수습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하는 자리인 만큼 제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으나, 회의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그 역시 단철량과 마찬가지로 회의가 시작한 뒤부터 단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들이 열을 내며 자신의 말을 토해내는 것은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으니.

위기는 동시에 기회인바. 어떻게든 이때를 살려 조금이라도 자신의 입지를 세우며 제 문파에 대한 이익과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놓으려는 발악이었다.

“…맹주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장내의 소란스럽던 분위기는 그 한마디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

“어찌 생각하느냐는 말이오.”

공동파의 장로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목소리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정말로 날 선 분노가 서려 있는바.

이번 마교의 습격으로 교류 대회에 참가했던 제자를 잃었기에 다른 이들과는 발언의 무게가 달랐다.

“…나 역시 이번 일에 대해서는 깊은 책임을 통감하는 바이네.”

그렇기에 단철량 역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바.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

“제자가-!”

쿵-!

공동파의 장로는 울분에 찬 표정으로 단철량의 말을 자르며 힘껏 탁자를 내리찍었다.

내공까지 실려 있었는지 그 위에 금이 가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내 제자가 죽었단 말이오.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다가 또 이런저런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지게 되면, 어느 세월에 원한을 갚겠소?”

장로는 벌게진 눈으로 단철량을 바라보았다.

곧 제 울분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푹 숙이며 흐느끼기 시작했으니. 보다 못한 옆자리의 장로가 어깨를 두드리며 조용한 말로 그를 위로했다.

“맹주께선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종남의 장로, 나백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화루의 일부터 시작해서 이번 학관의 습격까지, 마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미 피해를 본 상황에서 탁상공론으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잖습니까.”

작금의 회의 행태를 꼬집는 직설적인 말에 지금까지 신나게 떠들던 다른 이들이 무안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흘렸다.

하지만 나백진은 그런 그들의 행동은 무시한 채 오로지 단철량만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그 말대로군. 사안의 중요성이 워낙 급박한바. 그러는 만큼 다들 협조해주길 부탁하겠네.”

단철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사가 나와 앞으로의 방향성에 간략히 설명해나갔다.

그 이후부터는 한치의 잡음 없이 회의가 진행되었다.

마교에 대비하는 경계 체계의 재구축부터, 각 문파끼리의 긴밀한 공조 등등.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안건부터 미뤄두었던 일들까지 회의의 화두로 떠올랐다.

“…….”

그렇게 모든 회의가 끝난 후, 단철량은 홀로 제 집무실에 되돌아왔다.

적막한 한가운데서 창을 열어놓은 채 그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없이 사색에 잠겼다.

회의에 심력을 쏟은 건 맞으나, 그리 지치진 않았다. 다만, 제자의 죽음에 울분을 토해내며 흐느끼는 공동파 장로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똑똑-.

머지않아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분명 공식적인 일정에는 없던 방문이었다. 하지만 짧은 사색에서 깨어난 단철량은 자연스러운 태도로 손수 문을 열어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들어오게.”

그의 인도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남궁 세가의 가주 남궁한과, 무당의 장로 청허자, 그리고 조금 전의 회의에서 단철량을 향해 매섭게 말을 쏘아붙였던 나백진이었다.

“아까는 매서운 기세더군. 덕분에 다른 이들이 찍소리도 하지 못했어.”

“놀리시는 겁니까. 다 아시는 분께서.”

그 말에 나백진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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