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00화 (100/300)

#100화

‘최대한 천각과 멀어져야 한다.’

주호는 신검을 다잡으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청혈도제 사마천과 본격적인 싸움이 일어난다면 필연적으로 그 주위가 초토화될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주변을 신경 쓰며 싸울 수는 없는 노릇. 다행인 것이라면 그를 제외하곤 다 고만고만한 수준의 고수들이었다.

무림맹의 인원과 학관의 교관을 합한 것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전력이리라 보였기에 관건은 사마천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가능한 이쪽을 쫓아오게 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상대 역시 호락호락하지는 않은바.

‘그렇다면.’

파아아앗-!

주호는 손속에 여유를 두지 않았다.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청룡기(靑龍氣)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고, 이내 땅을 박차고 나갔다.

“……!”

눈 깜짝할 사이 자신에게로 쇄도해오는 그의 모습에 사마천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지금 상황에서 전력을 다해 선제공격을 가해올 줄은 예상치 못한바. 그렇기에 한 박자 반응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몇 개나 되는 건물의 벽을 부수며 천각의 가장자리까지 밀려난 사마천은 이내 헛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화끈하기는.”

그 역시 주호의 속내를 모르지 않는바. 주위에 있는 이들이 휘말리지 않기 위해 초장부터 여력을 아끼지 않은 것이리라.

투두둑.

몸에 묻은 잔해들을 털어낸 사마천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얕보여도 한참이나 얕보였군. 이 청혈도제를 상대하면서 그런 여유를 보일 수 있다니.”

“원한다면 한쪽 손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

부서진 벽을 넘어 다시 사마천의 앞까지 다가온 주호는 도발하듯 오른손으로 검을 흔들었다.

그러자 사마천은 그 말에 기가 찬 듯 웃음을 토해내며 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좋다. 피차 서로가 서로의 목을 노리는바. 내 쪽도 굳이 번잡스럽게 인질을 잡거나 그따위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타닷-!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라 천각을 둘러싸는 담벼락에 내려앉은 사마천은 언월도의 끝을 까딱이며 밖을 가리켰다.

“나오너라. 내 본 단에 청룡의 수급을 취해 돌아가겠노라 호언장담을 했으니 오늘은 결착을 보아야겠다.”

“눈물 나게 고맙군. 감사의 표시로 네 시신은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지.”

주호로선 기꺼운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훌쩍 뛰어올라 천각을 벗어났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적혈마검의 존재였다.

상태창으로 보이는 정보에는 그가 천각 내에 존재하지 않다고 나와 있었지만, 자신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기습을 가해올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 아까 다른 계획이 있다니 그쪽으로?’

어찌 되었건 눈앞의 청혈도제 사마천을 쓰러뜨려야 해결되는 문제였다.

탁.

천각을 나온 둘은 그와 멀리 떨어진 산맥 앞에 멈춰 섰다.

수풀이 우거지고 울긋불긋한 초목이 무성한 것이, 시간대만 빼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상황.

“더는 끼어들 잡음이 없겠지.”

붕붕붕붕-.

사마천은 손안에서 제 언월도를 회전시켰다.

예사롭지 않은 속도로 돌아가던 언월도는, 이내 그의 의지에 따라 벼락같이 허공을 가르며 내질러왔다.

쐐애애액-!

처음 만났을 때는 진심이 아니었는지 이전보다 더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쿵-!

역수로 쥔 청룡신검으로 언월도를 쳐내자 둘이 딛고 선 바닥이 주저앉았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아. 하지만……!”

사마천은 언월도를 등 뒤로 끌어당겼다. 그러곤 폭발적인 속도와 함께 허공이 핏빛 강기에 의해 시뻘겋게 물들 정도로 격렬히 그것을 휘둘렀다.

“풍뢰참(風雷斬)!”

쉬아아아악-!

마치 이무기가 몸부림치듯 사방으로 굵은 선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 안에 휘말린 모든 것이 조각나버려 원형을 잃어버렸으니.

“흡-!”

심상치 않은 위력을 내포한 초식의 발현에 주호는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두 팔을 교차했다.

그극, 그그극-.

사마천의 강기가 그의 몸을 휩쓸 때마다 철판이 긁히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

이윽고 그 여파가 모두 가라앉았을 때, 주호는 짧게 한숨을 토해내며 팔을 내렸다.

“어떤가. 제법 쓸만한 초식이지?”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사마천은 히죽 웃어 보였다.

“풍뢰참이라.”

주호는 저릿저릿한 팔의 감각을 떨쳐내며 검을 다잡았다.

그의 말대로 위력적인 초식이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 주변은 초토화된바. 조금 전의 그 무성했던 산림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쪽도 보답해야겠지.”

주호가 검을 높게 들자 심상치 않은 기류가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친다. 곧 시퍼런 기운이 유형화되어 전신을 감쌌고, 하늘 위로 뻗은 신검을 휘감으며 천지의 개벽이 시작됨을 알려왔다.

“현검(絃劍).”

청룡검식(靑龍劍式)

현검(絃劍), 흐름의 검

쿠구구구궁-.

막대한 압력이 사방을 짓누른다. 하지만 사마천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주호를 향해 소리쳤다.

“이미 한 번 보여준 초식이 다시 통하리라 생각하느냐!”

이전의 싸움에서 현검을 파훼했던 역천(逆天)의 초식이 다시금 그의 언월도의 끝을 따라 그려지기 시작했다.

“뭐, 그러리라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이전에 한번 보았던 초식이 펼쳐지자, 주호는 씩 미소를 지으며 제 검에 서린 기세를 그러모았다.

“멸천(滅天).”

청룡신공(靑龍神功)

멸천(滅天).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초식 중 가장 강한 위력을 지닌 최강의 검이 펼쳐졌으니.

사마천 역시 황급히 초식을 바꾸려 했지만, 끌어모은 기운이 너무나 막대했기에 내상을 입을 우려가 있어 그대로 공격을 이어나가는 판단을 내렸다.

쿠우우우웅-!

역천과 멸천의 묘리를 품은 초식이 서로를 향해 거칠게 부딪쳤다.

둘 다 순리를 역행해 극대화된 위력만을 끌어내기 위한 초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황폐해진 대지가 다시 한번 그 여파에 휘말렸고, 그 일대는 눈 부신 빛에 휩싸이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대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진동이 사방을 휩쓸었고, 폭발의 여파로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는 싸움이 절정에 달했음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하늘 높이까지 뿌옇게 뒤덮었다.

“…큭.”

주호와 사마천은 서로의 공격을 상쇄하지 못해 구멍의 양옆으로 처박힌 상태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입에서 신음이 토해져 나온다. 여력을 남기지 않은 채 전력을 담아 공격했기에 일순간 탈력감에 빠진 것이었다.

“후우…….”

자리에서 일어난 주호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주변을 뒤덮은 먼지가 흩어지며 처참한 참상을 보여주었다.

“…인정하지. 이제껏 강호에 나와 이 청혈도제를 이렇게까지 진심이 되게 한 것은 자네가 처음이라고.”

그와 비슷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사마천은 짙은 미소를 지으며 제 언월도를 움켜쥐었다.

그 시커먼 눈동자 안에는 아직 투기가 넘실거렸으니, 전의가 사그라지지 않은 그 모습에 주호 역시 검을 다잡았다.

피유웅-!

그와 동시에 천각 쪽에서 새빨간 신호탄이 쏘아진다. 신호탄은 하늘 높이 떠올랐고, 이내 붉은 선을 기다랗게 그려내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

사마천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신호였지만, 그것을 본 주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적색 신호탄은 천우희가 후기지수를 모두 무사히 구해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주호는 지금껏 무거웠던 마음 한구석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싸움에 거리낄 것이 사라졌다. 조급함이 사라지자 몸은 가벼워졌고, 보이는 시야는 더더욱 넓어졌다.

“…네 쪽의 신호인가.”

주호의 입가에 서린 미소를 본 사마천이 날카로운 눈으로 말했다.

하지만 주호의 기분은 이미 유쾌해진바. 그렇기에 사마천에게 검 끝을 겨누며 말했다.

“만일 이곳에 온 것이 너 혼자라면, 네놈은 오늘 이곳을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하하.”

그 말에 사마천은 웃음을 토해냈다. 그러곤 다시 흉흉한 눈빛과 함께 제 언월도를 붙잡았으니.

“말했지 않은가. 이건 우리 계획의 일부일 뿐이라고. 그리고…….”

파아앗-!

언월도가 일점을 꿰뚫었다.

자루의 끝자락을 잡은 것으로 이전보다 더 긴 거리를 격하고 찔러왔기에 주호는 살짝 반응이 늦었고, 뺨에 한줄기 상흔을 남기고 말았다.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 다른 이의 손을 빌릴 필요가 있겠는가.”

사마천은 어깨를 으쓱하며 언월도를 회수했다.

주르륵.

핏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호는 유쾌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으니.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청룡신공(八成)에 도달했습니다.]

[청룡검식 후반부가 해금됩니다.]

.

.

.

[경지가 상승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수많은 알람은 자신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넘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조금 전의 싸움 때문인가.’

주호는 그간 자신의 무공이 정체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수련을 열심히 해도 상태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무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막혔던 둑이 터지듯 깨달음이 밀려들었고, 온몸의 세포가 환희에 차 그 변화에 기뻐하고 있었다.

더욱이, 가장 고무적인 일은 그간 경지가 부족해 사용할 수 없었던 청룡검식의 후반 초식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철컥.

주호는 천천히 신검을 제 몸의 중심으로 끌어당겼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이전과 달리 이제 그 주위를 감싸는 기세는 대해(大海)의 그것처럼 무겁고 차분하기 그지없었으니.

“만검(萬劍).”

청룡검식(靑龍劍式)

만검(萬劍), 경계의 검

단번에 절반가량의 내공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때문에 몸이 조금 비틀거렸지만, 신검은 올곧은 형태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흡-!”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위기감을 느낀 사마천은 제 전력을 폭발시켰다.

쿠우우웅-!

핏빛 강기가 다시 허공을 빼곡하게 뒤덮었고,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뒤덮어 갔다.

하지만 그 핏빛 혈류는 어느 경계를 기점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

단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조금씩 그 끝에서부터 강기가 스러져 가기 시작했으니.

“합-!”

사마천은 당황한 표정으로 미친 듯이 언월도를 휘둘렀다.

찌르고 베어내고 꿰뚫고 깎아내고. 할 수 있는 모든 초식을 펼쳐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는 순식간에 그를 덮쳐왔다.

파각.

경계의 끝에 언월도가 걸리자, 그 위를 휘감고 있는 강기가 무색하게 실금이 퍼져나갔다.

이윽고 그것은 사마천 본인의 몸까지 덮어버렸으니.

“이게 무슨……?”

그의 두 눈에 불신의 빛이 서렸다.

무형지기 따위가 아니었다.

마음이 일어난다면 베지 못할 것이 없는, 심즉살(心卽殺)의 경지였으니.

툭, 투둑.

사마천의 얼굴 위로 수십 갈래의 시커먼 선이 그어졌다.

애석하게도 그는 실금이 퍼진 제 언월도보다 먼저 한계에 다다랐으니.

투두두둑.

인간이었던 피륙은, 그저 수백 조각의 고기 조각이 되는 것으로 비참한 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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