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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99화 (99/300)

#99화

“빌어, 먹을…….”

한쪽 팔이 잘린 채로 발악하던 진사휘는 끝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쓰러졌다.

후기지수들을 애먹게 하던 혈룡조차 천우희의 열 합을 버텨내기 힘들었던바.

그녀와 함께 지하로 내려온 주작단원들이 역시 압도적인 무위를 보이며 남아 있던 적을 쓸어버렸다.

“하…….”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에 긴장이 풀린 선우연을 비롯한 후기지수들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차 관문인 미로를 통과한 후 시간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건만, 며칠을 이곳에서 보낸 듯 기력이 모두 소진되어 있었다.

“부상자들을 중심적으로 돌본다. 시신은 한쪽에만 모아둬. 그 수습은 학관 측에서 할 테니까.”

천우희의 지시에 따라 주작단은 장내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먼저 시신을 모아둠과 동시에 부상자를 치료하고 혹시 숨어 있을 적의 존재와 아직 안쪽에 있던 교관과 후기지수의 수색에 나섰다.

얼추 그것이 마무리되었을 찰나, 천우희는 아직 자리에 엎어져 있던 천후에게 다가갔다.

“어이, 제자야. 몸은 좀 괜찮으냐.”

“…염라가 그러더군요. 스승님의 성정이 워낙 드센 탓에 후환이 두려워 아직 데려오기 꺼려진다고 말입니다.”

“이 녀석.”

천우희는 아까와 같이 천후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으윽! 저 아직 환자입니다!”

“난 너를 그렇게 나약한 몸으로 키운 적이 없다.”

선우연을 비롯한 다른 후기지수들은 묘한 얼굴로 그 어울리지 않는 사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니, 오히려 어울리지 않기에 그 반대로 어울려 보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저 친구, 저런 면모도 있군.”

“스승님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나저나 외모만 보아선 우리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

그들의 시선을 깨달은 천후의 얼굴이 붉어졌다.

“큼.”

못내 눈치가 보이는지 작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스승의 손을 슬그머니 밀어내었다.

“녀석.”

그 속내를 짐작한 천우희는 조금 더 제자를 놀려줄까 하다가 이내 손을 거두며 미소를 지었다.

“…저.”

남궁연은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며 천우희에게로 다가갔다.

단순히 주호의 지인으로만 생각했지 천후의 스승일 줄은 몰랐기에 조금 당혹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남궁 소저.”

천우희는 그런 남궁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원하게 대답해왔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어요.”

“뭘요. 제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셔서 그렇죠.”

짐짓 정중한 태도였다.

동기의 스승에게 그런 예의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남궁연은 두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천공자의 스승님이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말씀 편히 해주세요.”

“그래? 그럼 나야 좋지.”

천우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런 예의에 연연하지 않는바. 서로 간에 마음이 상하지 않을 정도만 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저, 그러면 제가 뭐라 불러드리면…….”

“언니?”

그 말에 뒤에 있던 천후는 사레가 들린 듯 몇 번이고 기침을 내뱉는다. 그러곤 양심이 있는 것이냐는 얼굴로 제 스승을 바라보며 말해왔다.

“스승님, 이제 조금 있으면 춘추가 이립이 되시지…….”

딱-.

천우희가 손가락을 튕기자 한 줄기 지풍이 허공을 갈랐다. 그것은 곧 천후의 이마를 강타했고, 이내 그는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지게 되었다.

“아플 테니까 무리하지 말고 누워 있어. …그리고 호칭은 언니로 충분하니까 부담 갖지 마.”

“…아, 네.”

가볍게 날린 지풍만 해도 자신보다 훨씬 경지가 높은 고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바닥에 뻗어 있는 천후와 같이 미간에 지풍을 맞기 싫었기에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력 있는데.”

“얼마 후 이립이라는 건, 아직 이십 대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강호에 저런 여걸이 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는데.”

뒤쪽에 있던 후기지수들은 서로 쑥덕거리며 귓속말을 나눴다.

“……?”

그 가운데 철대환은 무언가 기시감을 느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리송한 무언가가 목에 걸려 나오질 않고 있었으니. 곧 천우희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그는 잊었던 사실을 떠올리곤 두 눈을 크게 떴다.

“저, 저 사람일세.”

“저 사람? 무얼 말하는 건가.”

“일전에 내가 봤다고 하지 않았던가. 교관님께서 밤늦게 어느 여성분과 주점에서 계신 것을”

“…그런.”

그 말에 위천강은 한탄을 내뱉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남궁연의 마음을 빼앗았으면서, 또 저런 미인과 긴말한 사이라니.

“…불공평한 세상이네.”

위천강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남성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으니, 그저 한숨만 푹 내쉴 따름이었다.

“주교관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남궁연은 후기지수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볍게 흘려넘기며 제일 신경 쓰이던 것을 물었다.

만약 이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제일 먼저 자신들을 도우러 올 사람이 주호라 생각했다.

천우희 쪽은 아예 생각지도 않은 차에 갑작스럽게 그녀가 나타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위쪽도 습격을 받아서 싸우는 중이야. 그 때문에 내가 대신 내려온 거지.”

“전황은 어떤가요?”

제 옷자락을 쥐며 말해오는 남궁연의 모습에 천우희는 작게 미소 지었다.

‘정작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닐 텐데.’

주호의 안위가 걱정되는 것이리라. 그가 아무리 고수라 할지라도 세상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법이니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 사람은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가요.”

속내가 들켰다는 사실에 남궁연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단주님, 정리가 끝났습니다.”

곧 남은 적과 생존자의 수색을 끝낸 주작단원이 와서 보고를 올렸다. 그것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천우희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제자의 몸을 수하에게 넘겨주며 후기지수들에게 말했다.

“올라갑시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만은 없으니.”

“따르겠습니다.”

선우연의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우희의 말대로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어서 올라가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그들은 곧 건너왔던 목교(木橋)를 넘어 다시 이차 관문인 미로 안쪽으로 되돌아갔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원래 그곳을 지키고 있어야 할 교관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상태라는 것이었다.

“…….”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지 간간이 적들과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후기지수들의 시신도 있었다.

더러는 아는 얼굴을 발견했는지 눈물을 흘리며 그 앞에 멈춰 서기도 했다.

쿵, 쿠웅.

“이건.”

지상으로 올라갈수록 심해지는 진동에 선우연이 고개를 들었다.

마치 벽력탄이 터지는 것 같은 규모의 진동이었다. 그렇기에 걱정을 안고 밖으로 나왔으나, 그 주위의 모습은 생각 외로 멀쩡했다.

“…너희들!”

지하 입구 앞에서 서성이던 담우양은 곧 그 안에서 올라오는 이들을 보곤 달려왔다.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그 자신도 상처투성이지만, 후기지수들의 상태를 돌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일단락되었으니 저희는 다른 곳을 지원하러 가보겠습니다.”

“…정말 고맙소. 그대들의 도움에 학관을 대신해 감사를 표하는 바요.”

천우희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담우양은 그녀에게 포권을 지어 보였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천우희는 곧 주작단과 함께 자리를 이탈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부상자가 많구나. 다들 저곳에 모여 있으니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다.”

담우양은 지하에서 올라온 이들을 비교적 멀쩡한 건물로 이끌었다.

“지하에 있던 이들이 돌아왔소이다!”

“오오-!”

담우양의 말에 안쪽에 있던 이들의 화색이 돋았다.

“…이쪽도 치열했나 보군요.”

장내의 풍경을 본 선우연이 침중한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대부분 부상자가 아닌 이가 없었다. 저마다 상처를 가득 안고 있었고, 더러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 것으로 보이는 이도 있었다.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인 것이지. 여력이 없어 지하로 내려가지 못했는데, 다행히 천단주 쪽에서 지원을 와줘서 다행이었다.”

“…주교관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남궁연은 내부를 샅샅이 둘러보았으나 주호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묻자 담우양은 입술을 깨물며 밖을 가리켰다.

“그 친구는 마교의 고수를 천각 밖으로 유인해내었다네. 정말로 큰 공을 세웠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여기의 절반도 살아남기 힘들었겠지.”

담우양은 조금 전의 상황을 되새기며 몸서리를 쳤다.

천각 곳곳에 큰 폭발이 연이어 터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이 자신들을 습격했다.

그 대부분은 어떻게든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푸른 가면을 쓴 고수가 문제였다.

그의 손에 들린 언월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무림맹과 학관 측의 고수들이 속절없이 쓸려나갔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역시 저마다 굵직굵직한 명성을 지닌 고수였지만, 감히 그 앞을 막아설 순 없었다.

그렇기에 전황이 기우는가 싶었지만, 돌연 앞으로 나서는 이가 있었다.

“주호! 위험하네!”

푸른 가면의 고수를 막아선 주호의 모습에 담우양은 애타게 소리를 쳤다.

그가 출중한 고수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너무 무모한 일로 보였다.

“오늘은 끝을 보아야지?”

청혈도제 사마천은 언월도를 옆구리에 낀 채 씩 웃었다.

언월도의 날 위로 방금 베어낸 무림맹 고수들의 피가 진득하게 묻어있어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침중한 기색으로 그것을 바라본 주호는 천천히 제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네놈들이 일을 벌이리라는 것은 전부 예상했다. 대기하고 있던 무림맹과 본문의 고수들이 곧 너희를 몰아낼 것이다.”

“그런 것 치고는 피해가 큰 것 같은데. 뭐,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리고…….”

휘릭.

언월도가 거칠게 허공을 찢으며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주호는 가볍게 왼손을 휘두름으로 그것을 와해시켰고, 사마천은 가늘어진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전부 예상했다고?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이 또한 우리 계획의 일부일 뿐이니. 네놈들은 이제껏 그랬듯이 항상 뒤처지기만 할 뿐이야.”

쉬이이익-!

핏빛 강기에 휩싸인 언월도가 다시금 거칠게 허공을 찢어발겼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진다. 그 무지막지한 기세에 뒤쪽에 있던 이들은 감히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물러날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주호는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검을 들어 올렸다.

파아아앗-!

눈부신 푸른빛이 그 위로 피어오른다. 그것이 절정에 달했을 때, 주호는 제 검을 그어 내렸다.

베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그 푸른빛은 주변을 뒤덮으며 쏟아지는 핏빛 해일을 베어냈으니.

“전보다 혀가 길군. 네놈의 장기는 언월도가 아니라 세 치의 혀인가?”

그 가운데서 오롯이 선 주호는 싸늘한 조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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