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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96화 (96/300)

#96화

미로의 출구 지역.

주호는 높이 솟은 벽 위에 걸터앉아 미로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고수라 할지라도 벽 너머로 이곳 전부를 살피는 것은 불가능할 터이지만, 그는 상태창의 기능으로 미로 내부를 움직이는 관생들의 위치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보게-!”

“담형.”

다른 구역을 맡고 있던 담우양이 그에게 다가왔다. 벌써 교대 시간이 된 건가 싶어 주호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자, 담우양은 흥미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아이들은 어쩌고 있는가?”

“움직임을 보니 슬슬 나갈 생각인가 봅니다.”

선우연을 비롯한 후기지수들이 두 번째 관문인 미로로 들어온 지 이틀 차가 되었다.

그들은 이미 첫날에 다른 조와 싸워 이겨 깃발 두 개를 획득했다. 그것으로 다음 관문으로 향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지만, 어째서인지 곧바로 출구를 찾지 않은 채 이 내부를 배회했다.

“설마 다른 조를 찾아 나설 줄이야.”

“사냥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 뭔가.”

“사냥이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요.”

깃발을 두 개까지만 얻으라는 제한은 없었다.

그들은 여기서 상대를 전부 떨어뜨릴 결심을 한 것인지 집요하게 다른 조를 찾아 나섰다.

만약 같은 정천 학관 소속을 만난다면 곱게 보내줬지만, 천무 학관의 후기지수와 마주쳤을 땐 예외 없이 매서운 기세로 공격해 그들이 지닌 깃발을 빼앗고 무력화시켰다.

그렇게 뺏은 깃발이 하루 반 동안 무려 열 개에 달했으니. 교류 대회에 참가한 천무 학관의 인원 절반이 그들 손에 탈락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전 관문의 탈락자까지 합한다면 이제 천무 학관 측의 남은 조는 일곱이었으니.

하지만 그들은 이미 미로를 빠져나가 다음 관문으로 향했다.

저쪽 역시 이제 남은 이들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미로를 빠져나갈 출구를 찾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어, 저기 교대가 오는군.”

반대편에서 교관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담우양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그 둘은 지하에서의 임무가 끝나 지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미로의 다음 장소는 인공섬이었다. 주호와 담우양은 인공섬 다음의 관문을 맡았기에 그것을 준비해야 했다.

“특이점은 없습니다. 미로 안에는 세 조가 남았고, 모두 통과 자격을 얻었으니 머지않아 출구로 올 듯합니다.”

“수고했네. 나중에 위에서 보지.”

간략한 인수인계 후 주호는 담우양과 함께 지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아무래도 이제 천무 학관 측의 후기지수는 없는 듯싶네.”

방금 마주친 정천 학관의 후기지수들을 보내준 당천유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미로 안에 들어온 지 벌써 이틀 차. 그들은 첫날에 이미 두 개 조를 쓰러뜨려 관문의 통과 자격을 획득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왕 온 것 전부 떨어뜨릴까? 천무 학관 쪽만.”

발단은 악비산의 제안이었다.

이대로 넘어가기엔 조금 심심한 감이 있기도 했던바. 천무 학관 쪽의 후기지수들이 기고만장해있는 모습이 별로 보기 좋지 않아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차피 이다음에도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들 조금의 지체는 괜찮다고 판단했고, 그 즉시부터 천무 학관 사냥에 나섰다.

하지만 하루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이제 미로 안에서 천무 학관 측 후기지수의 모습은 머리카락 한 올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쉽군. 담화운 그 친구는 꼭 내 손으로 탈락시키고 싶었거늘.”

선우연은 진심으로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소기의 성과가 아닌가. 혹시 모르네. 가산점이 있을 줄은.”

철대환은 손에 쥔 열한 개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가산점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으나, 이 정도의 성과를 올렸으니 성적에 반영될 터. 그렇다면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저쪽인가 보군. 서두르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꽤 지체되었으니.”

그들은 머지않아 출구에 도달했다. 그 앞을 지키고 선 교관에게 깃발을 내밀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왔다.

“정천 학관 일조. 깃발 열한 개 모두 확인했다.”

“곧바로 다음 관문을 향해 갈 수 있는 겁니까.”

선우연의 물음에 교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출구를 열어주었다. 그들은 잠자코 그 너머로 걸음을 내디뎠고, 앞으로 쭉 펼쳐진 외길을 걸어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나온 후, 주위에 일행 말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당천유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았는가. 그 천무 학관 교관의 얼굴이 언짢아지는걸.”

“그럴 수밖에. 여기서 상당수의 관생이 탈락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겠지.”

다른 이들 역시 함께 웃어왔다.

자신들에겐 재미있는 이야기였지만, 같은 천무 학관 소속인 그들에게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리라.

곧 외길이 끝났다.

사방이 탁 트인 널찍한 공간이 드러났을 때, 제일 먼저 앞에 걸어가고 있던 남궁연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발걸음을 멈췄다.

“…와.”

나지막한 감탄이 그녀의 입에서 토해져 나왔다. 그러자 그 뒤를 따르던 위천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시오?”

하지만 그 역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는 두 눈을 크게 떴을 따름이니.

“이건, 제법…….”

뒤이어 그것을 본 다른 후기지수들 또한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지하인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은 호수가 그 앞에 자리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어지간한 마을보다 더 큰 크기의 인공섬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군.”

“그러게나 말이야.”

당천유의 말에 선우연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로선 그저 막대한 재화와 시간, 그리고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었다는 것만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신교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지. 하지만 경치는 이쪽이 더 좋군.’

위천강은 턱을 쓰다듬으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그의 본향인 천마신교에도 인공섬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감정이 없는 살인 병기를 길러내기 위한 지옥도인바. 이곳처럼 지상낙원의 분위기로 펼쳐진 정갈한 풍경이 아니었다.

“일단 섬으로 들어가지.”

육지에서부터 인공섬까지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목교(木橋)가 설치되어 있다.

다른 이들은 한참 전에 건너갔는지 그 주위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곧 그들은 목교 위로 걸음을 내디뎠다.

마치 신선들이 사는 도원향에 온 것 같은 기분에 들떠있을 찰나, 선우연은 호수 표면을 바라보며 감탄을 흘렸다.

“수류(水流)까지 구현해놓은 것인가. 정말로 강 위를 걷고 있는 것 같군.”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 말이네. 한두 해 쓰고 버릴 시설이 아니니 제법 공을 들인 것이겠지.”

“나는 제대로 된 음식이나 좀 준비되어 있었으면 좋겠군.”

악비산은 당천유의 말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태도로 배를 움켜쥐었다.

미로 안쪽에 준비된 음식은 전부 육포나 벽곡단 같은 마른 음식이었다.

애초에 식성이 좋은 그로서는 안타까운 일인바. 그렇기에 기름진 고기 생각이 물씬 날 수밖에 없었다.

“……?”

목교를 지나 일행 중 제일 먼저 섬에 발을 내디딘 천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조용하군.”

분명 자신들보다 더 먼저 간 이들이 있을 텐데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규모가 크다고 해도 수십의 인원이니 어느 정도 소란이 들려와야 하거늘, 싸늘히 내려앉은 적막에 그는 미간을 모았다.

“뭐, 안에서 다들 쉬고 있나 보지. 우리도 어서 서두르세.”

위천강이 깊이 생각할 것이 있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그 직후 진한 혈향(血香)이 안쪽에서부터 훅하고 풍겨와 그들 사이를 휩쓸었다.

“…….”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그 피 냄새가 이다음에 있을 관문과 관련이 있는 걸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다고 보기에 안쪽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설마 그들이 움직인 건…….”

나지막하게 뱉어진 선우연의 말에 다들 주호가 말한 혈천신교라는 암중 세력에 생각이 미쳤다.

이전까지는 교류 대회의 관문을 돌파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잠시 생각을 놓쳤던바. 고인 침을 꿀꺽 삼킨 당천유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안쪽에 교관들이 있지 않겠나. 먼저 그들을 찾아 합류한다면…….”

타다다닥-!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육지에서 수십에 달하는 인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학관의 복장도 아니었다.

더욱이, 교류 대회의 관계자라면 복면을 쓰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더욱이 너머로부터 느껴지는 농밀한 살기에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 미로를 나오기 전까지 출구에 교관님이 계셨다. 그렇다는 건 안쪽 역시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라는 것이겠지. 일단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 좋겠군.”

일행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차, 천후가 먼저 제안을 꺼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자각한 그들은 곧 퍼뜩 정신을 차렸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따랐다.

곧 천후를 선두로 한 후기지수들은 섬의 가장자리를 둘러싼 숲을 지나 그 가운데 있는 커다란 건물로 향했다.

높다란 벽이 안쪽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다. 문제는 안쪽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으니.

“정문은 너무 위험해. 일단 후문을 찾아 살피는 것으로 하지.”

“알겠네.”

천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벽을 따라 기척을 숨긴 채 나아갔고, 머지않아 안쪽으로 향하는 쪽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나.’

근처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천후는 먼저 안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앞서 말했듯 최우선의 목표는 다른 생존자들과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일단 안전지역을 확보하고자 가장 가까운 전각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

돌연 천후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뒤쪽을 따르던 이들에게 기척을 숨기라 손짓했다.

‘안쪽에 누군가 있다.’

스르륵-.

홍령도를 감싼 천이 풀리며 흘러내렸다.

이 앞에서부턴 한 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의 일행은 혈천신교와의 싸움에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상대의 전력을 확인하지도 못한 상황이었으니 단 한 번의 실수로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었다.

스윽-.

천후는 세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킨 후, 엄지로 자신을 찍었다.

안쪽에 있는 세 명을 자신이 처리하겠다는 신호였다.

“…….”

은밀히 그 옆으로 다가온 위천강이 문고리를 움켜잡았다. 그러곤 신호에 따라 그것을 활짝 열었고, 거의 동시라고 할 수 있을 찰나에 천후가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쐐애애액-!

붉은 도기를 머금은 홍령도가 세차게 휘둘러진다. 단숨에 치명타를 가해 숨을 끊으려 하는 것이었지만, 그 공격은 상대에게 닿기 직전에 멈춰 세워졌다.

“히, 히익-!”

담화운, 그리고 그와 같은 조였던 천무 학관의 후기지수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억눌린 비명을 내질렀다.

“…화운?”

문밖에서 긴장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선우연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으니.

“자, 자네!”

담화운은 죽다 살아난 표정으로 거의 기다시피 방 밖으로 나와 선우연에게 매달렸다.

잠시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듯싶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곤 그 주위에 있던 이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빠, 빨리 들어와 몸을 숨기게! 그들이 이 근처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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