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93화 (93/300)

#93화

정천무 교류 대회의 첫날.

천각(天角)이라 이름 붙은 대회장 가운데 이백 명의 후기지수가 도열해 있었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양옆, 그리고 객석으로 수많은 문파의 관계자가 자리해 있었다.

대회라고 하지만, 엄연한 무림의 행사. 그렇기에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지만, 후기지수들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설렘과 긴장이 피어올라 있었다.

“…더불어 자리를 빛내주신 맹주님과 남궁세가주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개회사를 맡은 정천학관의 관주인 설우진의 말에 후기지수들은 단상 한쪽에서 가벼이 손을 흔드는 두 노인을 바라보았다.

무림맹주 검선(劍仙) 단철량

남궁세가주 검제(劍帝) 남궁한

당대 무림의 거두라 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닌가. 그렇기에 모두의 두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선망의 빛이 가득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수많은 인사가 행사에 참여했다.

“…….”

다른 교관들과 같이 한쪽에 나란히 자리한 주호는 말없이 그들의 상태창을 살피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각 문파의 중진이나 수장급의 신상을 볼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호기심을 충족함과 더불어 간자를 색출하기 위해 연신 두 눈동자를 놀렸다.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상태창에 표시된 정보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었다.

대게 중소 문파의 인원들은 소문보다 경지가 낮았다.

일류를, 절정을 넘어선 고수라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한참 미치지 못한 이들이 다수였으니.

그와 반대로 소위 명문이라 알려진 문파의 인원들은 오히려 알려진 것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루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그것보다도…….’

주호의 두 눈이 가늘게 뜨였다.

인파에 섞여든 혈천신교의 무리가 적지 않았다.

제법 규모가 있는 중소 문파의 수행인 측에는 꼭 한 명씩 섞여 있었고, 구파일방이나 세가 연합의 명문에도 간혹가다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많았던 것은 예상했던 대로 행사의 수발을 드는 수행인이었으니.

주호는 그 인원을 전부 머릿속에 새겼다.

행사가 끝난 이후 단철량에게 그 명단을 넘겨 미리 상의해놓은 것처럼 때를 맞추어 일시에 제압할 예정이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두 학관의 영광스러운 첫 교류 대회가 시작함을 알립니다.”

설우진의 개회사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대회가 시작했다고 해서 곧바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인사가 모인 자리니 처음은 연회의 형식으로 진행되는바. 곧 대회의 수행인 무리가 음식과 술을 들고나오자 후기지수들은 환호를 터트렸다.

“…그렇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저들이 알까.”

담우양의 말에 주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분위기에 취해 흥겹게 연회를 즐길수록 그 직후에 다가올 대회의 시련은 고되게 되어 있었다.

첫 번째 시련은 예선을 겸하는 임기응변의 장.

양측 학관에 선발된 이백에 들었다는 것은 교류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획득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한바. 그렇기에 대회 측에서 자체적으로 재차 인원을 선별하기로 했다.

“…음. 독을 탄 건 아닌 것 같은데.”

당천유는 미심쩍은 얼굴로 차려진 음식을 살폈다.

그는 주호가 한 말을 최대한 이행하는 중이었다.

교류 대회는 나름대로 격식이 있는 행사. 그런 와중 아무리 개회식이라고 해서 이런 가벼운 분위기로 연회를 시켜줄 리 없었다.

“뭘 그리 신중히 살피는가. 그냥 먹게나.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거늘.”

“설마 여기에까지 무언가 수작을 부려오겠는가?”

옆에 앉은 악비산과 위천강은 이미 신나게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기인한 행동이었으니.

그들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던 대부분이 연회를 즐기며 그 분위기에 취해있는 와중이었다.

“…그렇다면야.”

당천유는 슬그머니 음식을 집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새벽부터 공복으로 천각에 와있던 차라 제법 허기가 졌다.

아직 의심스럽기 매한가지지만, 천무학관 측의 후기지수들 역시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는 슬그머니 경계를 풀었다.

“참, 천무 학관 측의 이야기는 들었는가? 저들은 우리와 달리 모든 조가 다섯 명씩 짝을 지었다고 하던데.”

“사전에 알려줬던 것이겠지. 이쪽은 소문으로만 나돌던 이야기였거늘.”

선우연의 말에 당천유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천무 학관의 후기지수들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은 대부분 흘러나온 소문들로만 대회의 정보를 접했다. 하지만 저들은 시작부터 조의 인원을 명확하게 구분한 것을 보니 어느 정도 내부에서 정보가 풀린 것이 확실해 보였다.

“뭐, 그렇다 하여도 이 일곱이라면 괜찮을 듯싶은데.”

금세 술을 한 병 모두 비워낸 위천강이 미소를 지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천후부터 철대환까지.

설사 이변이 일어나 정천 학관의 후기지수가 대거 탈락한다고 하여도, 이 자리에 있는 일곱만은 어렵지 않게 그 끝까지 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확실히. 황금세대니, 뭐니 했지만, 전부 약해 보이는데. 부디 비무 대회 때 상대할 만한 이가 있었으면 좋겠군.”

자신감에 차있는 악비산의 말에 모두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정은 비무 대회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하에서 진행된다고 했었죠? 제법 커다란 규모라 했는데, 어떻게 돼 있을지 궁금하네요.”

“일전에 교관님들 이야기를 훔쳐 들은 바로는 제법 본격적인 시설이라 합니다. 심지어 무슨 인공 섬까지 만들어져 있다던데.”

“인공섬?”

당천유의 말에 천후가 흥미를 보였다.

그의 취미는 이런 기관진식에 있는바. 이미 주호에게 귀띔을 받은 적이 있기에 적잖은 흥미를 품고 있었다.

“내가 듣기로는 이 안에서 한 번 더 예선을 치른다고 하던데, 확실한지는 모르겠군.”

“예선을 또 치른다고?”

“아마 한 번 더 옥석을 가려내려는 것이겠지.”

철대환의 말에 선우연이 혀를 내둘렀다.

이백 명을 선발했으면 되었지 또 무슨 번거로운 짓이냐는 표정이었다.

“뭐, 우리는 탈락할 일이 없으니…….”

괜찮지 않냐며 말을 이으려던 찰나, 당천유는 제 발에 닿는 무언가의 감촉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탁자 밑으로 고개를 내려 발 쪽을 바라보니 주먹만 한 크기의 구체가 굴러와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으니. 빼곡히 자리한 후기지수들의 다리 사이로 족히 수십 개는 될 법한 구체가 사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씹.”

그리고 당천유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네, 왜 그런가. 갑자기 왜…….”

옆에 있던 선우연이 갑작스레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의 행동에 당황을 표했다.

다른 이들 역시 왜 그러냐는 듯 시선을 보내자, 당천유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교류 대회의 예선은 진즉 시작했었네.”

“…그게 무슨 소리인……?”

퓌시시식-!

탁자 밑에 자리한 수십 개의 구체로부터 자욱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순식간에 장내를 뒤덮었고, 곧 연회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윽!”

후기지수 중에도 고수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천후를 비롯한 그 일행이 그러했고, 그 이외에도 적지 않은 숫자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반응하며 움직였으나 그 결과는 모두 같았다.

‘…내공이.’

선우연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음식을 먹을 때만 해도 멀쩡하던 내공이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이미 늦었네. 이원화된 독이야. 둘이 내부에서 합쳐지면 효과가 발휘되는 종류니.”

당천유는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당가의 출신으로 고작 이런 독을 눈치채지 못하다니.

아니, 그 이외에도 알아챌 기회는 많았다.

연회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행사에 참여한 내빈들이 조금씩 자리를 비우지 않았는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를 때는 이미 인사 대부분이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

곧 이백에 달하는 후기지수가 술에 취한 것처럼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전부가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었으니.

산공독에 중독되지도, 연기에 취해 의식을 잃지도 않은 이들이 더러 있었다.

“…천후, 남궁연. 둘 다 가산점이다.”

주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기지수 무리 가운데 멀쩡히 서 있던 둘을 바라보았다.

“가산점입니까.”

“출발이 좋네요.”

천후가 익힌 주작신공은 체내에 들어온 이질적인 것들을 태우는 데에 최적화된 내가기공이었다.

당연히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 않았고, 이번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호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남궁연 쪽이었다.

음식과 술, 그리고 연기를 이용한 독은 후기지수들의 실력으로는 피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렇기에 두 학관을 통틀어 천후 한 명 정도나 통과할 줄 알았지만, 천무 학관까지 합해 모두 셋에 달하는 인원이 그것을 견뎌내었다.

“운이 좋았어요.”

남궁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운이 좋았을 따름이었다. 내빈으로 참여한 이 중 그녀의 아버지가 있지 않았는가.

연회를 즐기고 있을 찰나, 저 멀리서 은밀히 장내를 빠져나가는 아버지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찰나 한쪽 눈을 찡긋해왔으니 무언가 기시감을 느끼고 이전부터 미리 대비를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내공을 금제해야 한다.”

“그렇습니까.”

천후는 알겠다며 대답했고, 남궁연 역시 고개를 끄덕여왔다.

파바바밧-!

주호가 손가락을 튕기자 몇 줄기 지풍이 쏘아진다. 그것들은 천후와 남궁연의 몸을 두드렸고, 이내 그 둘은 의식을 잃으며 허물어졌다.

“이쪽은 확인 끝났소이다.”

“이쪽도 마찬가지요.”

곧 투입된 교관들이 장내의 모든 후기지수가 의식을 잃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면 지하까지 옮겨야 하는가.”

“열 명이 두 명씩 열 번씩만 오가면 되겠군요.”

주호의 대답에 담우양은 언제 그것을 다하냐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제일 먼저 천후와 남궁연의 신형을 옆구리에 들쳐 맨 주호는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근처의 교관 중 혈천신교의 간자는 없었다.

그것은 즉, 예상대로 첫날부터 과감히 일을 벌이려는 것은 아니라는 소릴 터.

‘그녀가 돌아오기까지 사흘 남짓인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내놓았다.

단철량의 지시를 받은 고수들이 천각을 은밀히 지켰고, 무림맹의 타격대는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항시 대기 상태에 있었다.

더욱이 사신문에서 온 고수들도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

천후와 남궁연을 옮기던 와중, 주호는 소연신을 연기하고 있는 진무혼과 마주쳤다.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그 손에 들린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천 학관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군요. 저희 쪽은 고작 한 명인데.”

“운이 좋았을 따름입니다.”

주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 말에 화답하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주호의 신형이 점점 멀어진다. 그때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진무혼의 얼굴은 싸늘함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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