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그나저나, 그 정보는 틀림없겠지?”
“물론. 내 직접 사문에 연락을 취해 확인했다.”
낮은 목소리로 물어오는 당천유의 말에 선우연은 확실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학관의 관계나 대회의 내용은 충분히 중요한 정보였지만, 뒤따르는 보상 역시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명예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화를 탐내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정말로 자소단이라니.”
대회의 규모도 크고 참여하는 수준도 높았으니 범상치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설마 화산의 최고 영약이라 일컬어지는 자소단이 보상으로 나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자소단(紫霄丹).
화산 제일의 영약으로, 화산의 무공을 익힌 이들에게는 최고의 신단이요,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십 년은 더 넘는 내공을 얻게 해주는 영약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은 당천유는 두 눈에 불꽃을 피워 올렸다.
‘반드시 우승한다.’
처음엔 그다지 대회의 뜻을 두지 않았다.
선발 대회 때처럼 적당히 순위를 얻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자소단 같은 영약은 앞으로의 계획에 있어 천금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당장 그 값어치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본연의 쓰임새보단 다른 것과 교환 조건으로 내세울 때 사용하기에도 뛰어난 패였다.
물론 보상으로는 자소단 하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못하지만 제법 이름이 알려진 영약, 그리고 명검 보검 반열 측에 드는 병장기와 각종 혜택이 이번 교류 대회의 보상으로 나오리라는 소문이 꽤 신빙성을 띠고 있었다.
“…확실히 중원 제일을 다투는 두 곳이라 할 수 있군. 다른 곳들은 어지간해서는 감히 견주지 못할 수준이야.”
철대환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 말엔 위천강 역시 동감이었다. 천마신교 내부에도 이곳과 같이 무학관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신교라는 이름 아래 뭉친 단일 세력. 정천이나 천무나 졸업을 하게 되면 그 관계성이 옅어지기 마련이었다.
그것을 감수하고 그런 고절한 영약을 상품으로 내건다는 것은 이들의 저력을 어렴풋이 느끼게 해주는 요소였다.
“…반드시.”
다시 모두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와중, 서찰을 움켜쥔 당천유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
오직 짧게 숨을 토해낸 악비산만이 모르는 척 그것에서 시선을 돌렸을 뿐이었다.
***
사흘 뒤 하남의 근교.
도시를 벗어나 굽이굽이 이어진 산맥으로 들어가기 전, 사람의 발길이 끊긴 외진 부지에는 기다란 벽으로 둘러싸인 심상치 않은 규모의 건물이 자리했다.
정천학관보다는 그 크기가 작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장원 몇 개를 합친 것보다 더 넓은 길이를 자랑했다.
진면목은 지상으로 드러난 부분이 아니라 지하 쪽에 있긴 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탄이 나올 만한 것이었다.
“왔는가.”
주호를 비롯한 교관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먼저 자리하고 있던 팽대환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이 부지에 건설된 건물 전체가 교류 대회를 진행할 무대로, 그 설립에는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사용되었다.
공사는 세세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무리된바.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대회를 위한 준비였다.
“…외관의 준비는 어느 정도 끝난 듯싶군요.”
담우양은 주위를 둘러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미 몇 번이고 이곳에 들러 진행 과정을 파악한 바가 있었다.
곧 있을 교류 대회에는 여러 종목으로 시험이 진행되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오늘 이곳에 온 것도 바로 그것의 마무리를 하기 위함이었으니.
“거의 이십 년 전부터 기획되던 일이네. 첫 시작을 목전에 둔 만큼 다들 꼼꼼히 살펴야 할 것이야.”
팽대환은 아련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나이가 올해로 마흔이었다.
즉, 이곳은 그가 정천학관에 입관할 때부터 준비를 시작했던 시설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그리 순탄하진 않다고 들었다. 초기엔 몇 번이고 중지되고, 계획이 무산되고, 복잡한 사정으로 일정이 지연되기까지 했었으니.
하지만 드디어 올해 그 결실을 거두는 것이 목전에 다가와 있었다.
“자, 그럼 한 시진 이후에 다시 이곳에서 모이는 것으로 하세.”
팽대환의 지시에 교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어여 가세. 한 시진이면 조금 빡빡하겠군.”
“저희는 지하 쪽입니까. 그쪽의 부지가 더 넓으니 시간이 꽤 걸리겠군요.”
주호와 담우양은 서류를 들고 지하로 가는 길목으로 향했다.
지하엔 간이 호수, 늪, 심지어 섬으로 된 지형까지 형성되어 있다.
처음 그것들을 보았을 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손으로 그런 것들을 지하에 만들어낼 수 있다니.
하지만 곧 지겨울 정도로 보며 관리하게 되자 이제는 그 풍경이 도리어 익숙해졌다.
“그래도 이번 교류 대회만 넘기면 다시 휴관 시기가 아닌가. 조금만 더 고생하세.”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학관은 다시 휴식에 들어간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다가왔으니 많은 이들이 학관을 떠나 제각기 고향을 찾아 돌아갈 터.
교류 대회는 어떻게 보면 그간의 성취를 확인하는 유종의 미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쪽은 별문제 없이 끝났습니다. 그쪽은 어떻습니까?”
“이쪽은 보수해야 할 부분이 보이는군. 돌아가면 보고를 올려야겠어.”
한 시진도 채 되지 않아 맡은 구역의 점검이 끝났다.
슬슬 집결 시간이 되었기에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상쾌한 바람이 그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산새의 경관이 보기 좋군. 옛사람들이 제법 터를 잘 잡은 것 같으이.”
“그러게나 말입니다.”
담우양의 말에 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정에 이르렀던 여름의 기세가 눈에 띄게 꺾였다.
푸르던 초목은 어느덧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했으니, 그 사이로 노랗고 붉은, 울긋불긋한 빛이 보이며 다시금 시간이 지나리라는 것을 고해왔다.
“자네.”
다른 교관들과 합류해 집결지로 돌아갈 찰나, 자신을 부르는 듯한 익숙한 목소리에 주호는 발걸음을 멈춰 섰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천무학관 측의 교관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정천 학관이 그러한 것처럼 천무 학관 측도 교류 행사를 위해 교관들이 파견되어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관생 쪽은 완전히 과열된 분위기로 서로를 향해 대항 의식을 표출하고 있었으나, 교관 쪽은 자중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렇기에 서로 존중하며 간간이 마주치더라도 눈짓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 고작. 그런 상황에서 주호를 부를 법한 인물은 한정되어 있었다.
“오랜만이군, 자네.”
악진명.
산동악가 출신의 고수이자, 천무학관의 수석교관인 그가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반년만입니다. 강녕하셨습니까.”
“강녕은 무슨. 피차 아는 사인데 시답지 않은 인사는 집어치우게나.”
악진명은 씩 웃으며 손을 저었다.
이전에도 느꼈듯 팽대환보다 더 명문 세가 출신의 인사답지 않은 성격이었다.
“…….”
담우양을 비롯한 다른 정천 학관의 교관이 어찌할 바를 모를 찰나, 악진명은 가벼운 걸음걸이로 다가와 주호 앞에 섰다.
“자네는 좋아 보이는군. 이쪽에서도 활약은 간간이 듣고 있네. 그래서, 이번엔 어떤가. 내가 예전에 했던 제안의 다섯 배는 더 좋은 대우는 해줄 수 있거늘.”
시선이 많은 곳이었다.
악진명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농을 던지는 것이리라.
‘다만, 이 상황을 이용하고 싶은 것이겠지.’
주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제안은 자신에게 하되 이쪽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이 주변에는 다른 교관이 많았다.
즉, 작금의 이야기가 퍼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 애초에 천무학관에서 큰돈을 들여 정천학관 쪽의 교관을 영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상황이다.
거기에 수석교관에 있는 악진명의 말이 퍼지게 된다면 그것에 혹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었다.
“말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윽고 그는 팽대환의 뒤쪽에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풍운검 강무석은 그에게 살짝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해왔다.
저번 패배 이후 정진을 거듭한 듯 이전보다 한층 더 깊어진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강무석 역시 주호를 살폈으나, 이내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이젠 가늠조차 되지 않는구나.’
서로 간의 격차가 아득해졌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는 무거워진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제 기세를 가다듬었다.
“그런가, 아쉽기 짝이 없군.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 언질을 주게. 내 자네라면 크게 환영하지.”
서로 간에 감상이 오고 간 것을 깨달은 악진명은 가는 미소와 함께 말해왔다.
그 역시 한 명의 무인인 만큼 주호의 기세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풍운강호는 무공의 강함만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바. 그렇기에 제 수염을 쓰다듬으며 천무 학관의 이름을 꺼냈다.
“이미 파다하게 퍼져 들었겠지만, 올해 본 학관의 신입 관생들은 황금세대라 명명될 정도로 그 성취가 훌륭하기 짝이 없네.”
“그렇습니까.”
“그러니 초장부터 탈락하기 싫다면 잘 준비해야 할 것이야.”
그 말에 천무학관의 교관들이 은연중 의기양양한 기세를 풍겼다.
정천 학관 쪽의 교관들은 내심 반발이 일었지만, 그렇다고 배분 명성 모든 것이 밀리는 악진명 앞에서 대놓고 그것을 표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다들 아무리 주호라 하더라도 이전과 같이 형식적인 대답을 하리라 생각했으나, 그의 말이 내뱉어짐과 함께 모두 서서히 입을 벌렸다.
“그나마 다행인 이야기군요. 열심히 준비한 대회인데 이쪽과 너무 격차가 나서 금세 끝나버리면 김이 새니 말입니다.”
주호는 거리낄 것 없이 그 말을 받아쳤다.
애초에 이쪽의 상관도 아닌데다 꿀릴 것이 없었으니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 자네…….”
담우양을 비롯한 근처의 교관들이 뜨악한 얼굴로 주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천무 학관 측의 교관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악진명인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 정천이라 불릴 만하지. 부디 그 호언장담만큼이나 교류 대회가 잘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네.”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자신감을 내비치는 일곱 제자의 면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기에 주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
그러던 중 그의 시선이 저 뒤쪽으로 향했다.
악진명과 대화를 하던 중 묘한 기운에 이끌린 것이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악진명은 옳다구나 하는 표정으로 손짓했다.
“눈썰미가 좋군. 얼마 전에 이쪽에 교관으로 합류한 고수네. 들어는 보았겠지. 사천의 환영검(幻影劍)을.”
“…환영검?!”
그 이름에 경악을 토해낸 것은 옆에 있던 담우양 쪽이었다.
같은 사천의 출신으로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인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부족하나마 환영검이라 불리는 소연신이라 합니다. 얼마 전에 천무학관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사천에서 유명한 절정의 검객이네. 저번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행적이 묘연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늘, 설마 천무학관에 입관했을 줄이야.”
“…….”
주호는 담우양의 말도, 소연신의 담담한 인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그저 상태창에 두 눈을 고정한 채 애써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호라 합니다.”
“그 이름은 익히 들었습니다. 정천에 속해 있는 교관 중 아직 이립도 되지 않았는데, 우위를 논하는 고수가 있다고 말이죠.”
소연신은 짐짓 공손한 태도로 그 말을 받았다.
다른 이들은 나이나 명성이나 모두 주호보다 위임에도 보이는 그 겸양에 감탄했다.
하지만 주호만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
[상태창]
-새로운 인물의 정보를 불러옵니다.
이름: 진무혼
별호: 적혈마검
직업: 혈천신교 칠혈성(七血星)
나이: 마흔다섯
소속: 혈천신교
무공: 적류십이검
경지: 초절정(五/十)
호감도: 下下
환영검 소연신?
웃기지도 않는 촌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