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참, 교관님. 곧 천무학관이랑 교류회 형식으로 행사를 연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가볍게 손뼉을 친 선우연이 경직된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황급히 화제를 바꿨다.
정천학관과 천무학관의 합동 행사가 있을 예정이라는 것은 이미 물밑에서 은밀히 도는 이야기였다.
소문이 빠른 이들은 이미 그 개요를 전해 들었을 정도였고, 그렇지 못한 자들도 하나둘 입을 모아 어떤 행사인지에 대해 말하기 바빴다.
장내에 있던 후기지수 모두 기대를 담은 눈빛으로 주호를 바라보았다.
“…뭐, 곧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것이다. 반년간의 학관 생활을 보냈으니 이번 교류회에서 그것을 보이자는 취지지. 그리고 굳이 분류하자면 행사가 아니라 대회 쪽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대회라, 비무 대회 같은 겁니까?”
그 말에 신이 난 악비산이 두 눈을 반짝거리며 물어왔다.
“물론 비무 대회도 있지만, 그것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강호를 헤쳐나갈 수 없는 것처럼 이번 대회에서도 여러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평가할 예정이지.”
지혜, 안목, 감각, 본능, 대처.
먼저 갖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여러 시련을 겪게 할 것이다.
첫째로 그것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실패했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성공했다면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끔 대회의 구조를 구상했다.
그 모든 것이 대회에 참가하는 후기지수들의 밑거름이 될 것이리라 주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소문대로 저희 일 년 차만 출전하는 겁니까?”
“그래. 올해는 그렇게 시범적인 성격을 띤다. 만약 결과가 좋다면 내년에는 좀 더 규모를 늘려서 본격적으로 진행하겠지.”
“호오.”
주호의 말에 다들 감탄을 내뱉으며 흥미를 보였다.
그러던 차, 옆에 있던 위천강이 은근슬쩍 다가오며 두 손을 비볐다.
“저희한테만 귀띔해주시면 안 됩니까? 그러면 교관님도 좋은 평가를 받아 좋은 일이잖습니까.”
제법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주호 밑에서 가르침을 사사 받는 이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그 역시 세간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될 터.
하지만 주호는 어림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답했다.
“글쎄. 그건 힘들 것 같군. 누가 말했다시피 나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지라 표현에 인색하니 말이야.”
“…윽.”
위천강은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맞받아쳐 돌아온 꼴이 아닌가.
다른 이들은 한심스럽다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면서 열띤 토론을 이어나갔다.
“교류회라.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 같군요. 왜, 그 친구들 열등감이 엄청 심하지 않습니까. 자기들이 중원제일학관이 될 거라느니 뭐니 하면서.”
“명목만 그렇다는 것이지. 요컨대 다 때려눕히면 되는 문제 아닌가.”
당천유의 말에 악비산이 씩 웃으며 답했다.
실제로 그들의 말처럼 두 학관 사이에는 엄청난 알력 다툼이 그러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양측 학관의 교관들은 잦은 만남을 이어나갔다.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상황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있었을 정도였다.
‘교관들도 그러할진대 관생들은 얼마나 심할까.’
주호 역시 짧게 한숨을 내쉬던 사이, 선우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갑자기 생각난 일인데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두 학관의 합동 연회에서 신입 교관의 우열을 가리는 비무가 있었다고 하네.”
“비무?”
그 말에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관생은 물론 교관의 수준 역시 학관의 위상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던가.
자신에게로 쏠리는 시선에 선우연은 슬쩍 주호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교관님께서 천무학관측 교관인 풍운검 강무석을 꺾었다고 했는데…….”
“벌써 반년도 지난 이야기군.”
주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남사일에게 들은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할 찰나, 장내에 있던 모두가 그것을 화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풍운검 강무석이라. 들어본 적이 있네. 분명 하북 쪽에서 유명한 고수지.”
“하북이흉과 오백초를 나눈 끝에 쓰러뜨린 뒤로 유명해졌지. 나도 건너건너 들은 적 있는 이름이네.”
“그래도 교관님에겐 미치지 못하겠군.”
“그러게나 말이야. 거센 폭풍이면 몰라도, 바람에 움직이는 구름 정도야 뭐…….”
그들은 이미 몇 차례나 주호의 무공을 견식한 경험이 있었다.
단 한 번의 패배도, 단 한 번의 밀림도 없었으니. 강호의 어지간한 고수보다 주호가 더 강하다는 사실쯤이야 잘 알고 있었다.
‘분명 머지않아서 크게 유명해지시겠지.’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
주호는 입을 닫은 채 이야기를 나누는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말은 그럭저럭 합격이라 했지만, 다들 훌륭히 성장해주고 있었다.
이들이라면 정천학관의, 아니 천무학관을 합쳐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수준일 터.
하지만 자만과 만용은 항상 경계해야 하는 적이었다. 그랬기에 주호는 생각과는 반대되는 말을 입에 담았다.
“끝으로, 각자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듣자 하니 천무학관 역시 이번 신입생의 수준이 뛰어나다고 한다. 마음 놓고 있다간 언제 따라잡힐지 모르는 일이지.”
자신들을 스스로 황금세대라는 거창한 이름으로까지 칭하지 않는가.
그러는 만큼 어느 정도 수준은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물론 이들에겐 안 되겠지만.’
이들과 마주한다면, 그 황금이 표면에 도금된 것에 불가하리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될 것이리라, 주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
며칠 뒤, 학관 게시판에 하나의 공고가 내걸렸다.
「정천무 연합 교류 대회 개최」
주호가 말한 것처럼 정천학관과 천무학관이 손을 잡고, 교류회라는 형식으로 대회를 개최했다.
참가 자격은 두 학관의 신입생.
그리고 희망자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일백 명을 선발해 참가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교류 대회의 개최 소식에 학관은 떠들썩해졌다.
그간 물밑에서 나돌던 여러 소문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각자 이름을 알릴 기회가 왔노라며 갈고 닦았던 무공을 뽐낼 순간을 노렸다.
“설마 이 중에 탈락하는 이는 없겠지?”
때는 점심, 주호 밑에 가르침을 사사받으며 가까워진 그들은 함께 식사하는 중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당천유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 걱정이나 하세. 요새는 이전 같지 않아. 교관님도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오실 정도였지 않은가.”
“윽, 그건…….”
악비산의 핀잔에 당천유는 몸을 움찔했다.
자신이 말해놓고 본전도 챙기지 못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그들 일곱은 학관 내에서도 주목받는 모임이었다.
출신은 다양했지만, 주호라는 대분모에 묶여 마치 한곳의 소속처럼 같이 움직이지 않는가.
“…….”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남궁연이나 천후마저도 그 구석에서 조용히 자리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참, 합격자 중에서도 순위를 매긴다고 하네. 상위 등수는 소정의 보상도 있다니 말이야.”
“…등수?”
선우연의 말에 악비산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자신이 예상하기로 이곳에 있는 일곱 명 모두가 나란히 일등부터 칠등까지 차지할 공산이 컸다.
그중 일등으로 유력한 것은 묵묵히 식사하는 중인 천후였다.
모두의 시선이 은연중에 자신을 향한 것을 느낀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소.”
“그래, 다해야지.”
악비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입관 수석의 명예는 남궁연에게 밀려났지만, 그건 여러 복합적인 평가가 뒤섞인 것이 아니었던가.
이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부류는 자신의 특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순수한 무공을 겨루는 것이라면 한 번 노려봄 직한 목표라 생각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같은 생각을 품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사흘 뒤.
육백 명의 신입생 중 단 백 명을 선발하기 위한 대회가 개최되었다.
장소는 학관 내에 있는 복합 비무장으로, 입관 시험을 치렀던 장소와 같은 곳이었다.
수많은 비무대가 한 공간에 마련되어 있고, 두 명이 그 위에 올라 서로 무공을 겨루는 방식이었다.
입관 시험 때와 다른 것이라면 관생과 관생의 대련이라는 점이었다.
학관 내부에서도 선발 대회는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유력 세가와 그 외의 실력 차이가 큰 만큼 백 명의 선발자는 얼추 예상할 수 있었지만, 누가 과연 일등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쳤다.
“아무래도 소신룡 아니겠는가. 신룡을 제외하곤 당대 화산의 제일 기재이거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아쉽게 입관 수석은 놓쳤지만, 그건 무공 실력 이외에도 여타 다른 요소가 포함되어서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순수 무공으로만 따지자면 올해 신입 기수에서 소신룡만한 이가 없잖은가.”
대다수가 선우연을 꼽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화산과 더불어, 소신룡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있지 않은가.
암암리에 성행하는 도박에서 역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며 신입생 중 가장 낮은 배당을 자랑했으니.
“아니,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네. 일전에 합동 수업에서 남궁 소저의 검을 견식할 기회가 한 번 있었지. 그녀의 검은 마치 스스로 생명과 의지를 지닌 듯했다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고, 마치 자유로운 한 마리의 새처럼 허공을 한껏 노닐었지. 나는 남궁 소저의 무공이 결코 소신룡에 못하리라 생각하지 않네.”
또 적지 않은 수가 남궁연을 지지했다. 그녀 역시 도박에서 선우연을 뒤따라 우승 후보의 두 번째 순위로 꼽힐 정도로 배당이 낮았다.
그 이외에는 악가의 악비산, 당가의 당천유 등등 여러 이름이 거론되었고, 각자 서로 다른 예상을 품으며 우승자를 점치었으니.
“…그렇다는데?”
슬쩍 자신을 돌아보는 당천유의 물음에 선우연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다.”
예전이었다면 모두가 그렇게 말해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신이 난 기분이었으리라.
하지만 이 반년 동안 주호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
무엇이 신룡이고, 무엇이 화산이라는 것인가.
당장 같은 후기지수 사이에서도 뚜렷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감을 잡기 시작하며 그럴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천후나 남궁연과는 달리, 아직 자신은 주호의 공격을 버텨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끝까지 해보아야지.”
선우연은 선명한 의지를 품은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포기하는 건 자신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설사 지금은 부족하고 뒤떨어져 추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끝까지 발버둥을 쳐 반드시 앞지르리라.
이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과의 맹세. 선우연은 제 허리춤에 달린 검을 강하게 움켜쥐며 다시 한번 결연한 각오를 품었다.
“그나저나 자네 걱정이나 하게. 요새 조금 무공이 퇴보한 것 같던데.”
“윽.”
선우연의 핀잔에 당천유는 어깨를 움찔했다.
“뭐, 무얼 하는 지는 자네 자유지만, 친우 된 도리로서 아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근래 이때까지 함께하던 수련도 빈번하게 빼먹고,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여나 들어간다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며 독 때문에 위험하다고 만류를 하니.
“교관님이 자넬 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던데, 조심하게.”
“…조언 감사히 받지.”
그 말에 당천유는 한숨을 내쉬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