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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79화 (79/300)

#79화

개관을 하루 앞둔 학관은 돌아온 관생들로 붐볐다.

다들 오랜 해후를 풀었고, 내일부터 있을 교육을 준비하거나 마지막 남은 휴일을 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은 교관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주호를 비롯한 사급 교관들 역시 한자리에 모여 술잔을 나누고 있는 와중이었다.

“오랜만의 고향은 어떠셨습니까.”

“좋았지. 왜 진작 가지 않았는가 싶네. 그깟 무공이 무엇이라고.”

담우양은 몇 년 만에 고향인 섬서에 내려갔다 왔다.

그 공백은 주호가 비동에 갇혀 있었던 것보다 훨씬 길은바. 상승 경지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뛰어넘기 위해 강호를 떠돌던 세월이었다.

“이보게, 그 이야기 좀 자세히 풀어보게. 혼담은 어떻게 되었다고 했었지?”

“혼담?”

다른 교관의 말에 주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말에 담우양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내뱉은 동료의 입술을 손으로 찰싹 때렸다.

“이 경망스러운 주둥아리 같으니. 그건 내 실언이라 하지 않았는가. 자네도 함구해주겠다고 해놓고선.”

“그때 취해있어서 잘 모르겠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하지만 동료 교관은 히죽 웃으며 연신 물어올 뿐. 주호 역시 호기심을 드러내며 바라봤기에 담우양은 한숨을 내쉬며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야기인지라…….”

“좋지 않습니까. 안정된 직장도 있겠다, 담형의 나이면 이미 차고도 남았지요.”

“나는 평생 검과 함께하기로 맹세했다네.”

“혼인했다고 검을 놓으란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듯한 말이었지만, 담우양은 주호가 자신을 놀리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쓴웃음을 지으며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을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자네 쪽의 이야기도 좀 털어놓게나. 얼마 전의 소란도 소란이지만, 나는 남궁세가 쪽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네.”

“그러고 보니 후기지수들과 안휘에 다녀왔다지. 남궁세가는 어떠하던가.”

담우양에 말에 다른 이들이 동조하며 눈을 빛내왔다.

남궁세가는 천하제일세가라 칭해질 만큼 명성이 높았다.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그만큼 모두의 관심이 컸다.

“…남궁의 규모는 상상 그 이상의 규모였습니다. 그 자체만으로 학관과 견줄만하더군요.”

“가주는? 남궁세가의 가주는 만나보았지?”

“예. 감히 올려다보기 힘들 정도의 고수였습니다. 마주하는 순간 전신이 저릿해질 정도더군요. 과연 검제(劍帝)라 칭해지는 고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오오-.

그 말에 다들 감탄을 내뱉었다.

검제라는 이름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더욱이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 검을 사용했으니 그 의미는 더더욱 컸다.

그들은 각자 남궁세가를 화제로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윽고 술이 몇 병이나 비워졌을 때, 담우양은 문득 생각이 났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나저나 청화루가 마교의 끄나풀이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그러게나 말이야. 나도 그곳에 자주 다녔는데 말일세.”

“자네, 혹시 이상한 이야기는 흘리지 않았겠지? 마교의 끄나풀이었으니 손님들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했을 것이 아닌가.”

“예끼, 이 사람아. 내가 그럴 틈이 어디 있었겠는가? 술 먹느라 바빴거늘.”

그 말에 모두가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던 중 담우양은 목소리를 낮춘 채 주호를 바라보며 슬쩍 물었다.

“몸은 괜찮은가. 꽤 다쳤다고 들었네만.”

“그리 큰 상처는 아닙니다. 당분간 무리하는 건 자제해야겠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겁니다.”

주호는 오른쪽 어깨를 매만졌다.

상처 자체를 보자면 이전 궁기와의 일전에서 입었던 것이 더 심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상태창의 변화와 천우희의 간호, 그리고 충분한 휴식 덕분에 빠르게 회복할 수 있던바. 지금은 학관의 하반기 일정을 코앞에 두고 있던 터라 마음 놓고 쉴 여유는 없었다.

“실전의 이해 수업은 무리겠군. 내 남교관님께 같이 말하러 가주겠네.”

“괜찮습니다. 이미 그에 대한 것도 생각해두었으니. 더욱이 제자들이 워낙 배움에 있어 열렬한 태도를 보이니 쉴 수는 없는 노릇이죠.”

주호는 작게 미소 지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성장을 확인하는 방법은 꼭 자신과의 대련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

하반기 일정이 시작되자 학관은 강의를 듣기 위해 움직이는 관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주호가 맡은 강의는 이전과 같이 실전의 이해와 재화 관리, 두 과목이었다.

실전의 이해는 일 년에 거쳐 진행되는 강의다 보니 전반기와 변동이 없었지만, 재화 관리 쪽은 교양 과목이기에 학기마다 새로운 이들로 구성이 바뀌었다.

그것뿐이라면 별문제는 없었으나, 문제는 그 인원 안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네와 안면이 있다고 들었네만, 사전에 서로 이야기된 것인가?”

“…….”

벽진양은 살짝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재화 관리 쪽은 교양 과목임과 더불어 비중이 그리 크지 않기에 비인기 과목이었다.

교양 과목을 들을 바엔 차라리 무공 수업 하나를 더 듣는 것이 이득이기에 대부분이 그것을 따르는바. 그렇기에 자리에 앉아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던 남궁연의 모습에 주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더욱이 일 년 차의 관생은 교양 과목을 수강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굳이 자신을 쫓아서 이곳에 온 것이 분명했다.

“…….”

그 사실을 증명하듯 주호가 슬쩍 시선을 보내자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냐며 맞받아쳐 올 뿐이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나. 그녀가 있으니 분위기도 더 사는 것 같군.”

확실히 남궁연의 출연에 원래는 조용하고 칙칙한 분위기일 터인 강의의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함께 자리한 관생들은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평소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강의에 임했고, 어떻게든 멋진 모습을 보이려 했다.

물론 남궁연의 시선은 오직 한 명에만 향해 있을 따름이었다.

“교관님, 이쪽을 잘 모르겠는데요.”

“교관님, 혹시 이 부분을 다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재화 관리 강의 역시 전체적인 부분은 금적산이 설명하고, 나머지 세세한 부분들은 그 밑의 교관들이 학생을 나누어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평소라면 막힘없이 진행되었을 터인 강의는 계속된 남궁연의 질문에 번번이 가로막히고 말았다.

“…….”

주호가 슬며시 인상을 쓰며 시선을 보내자 그녀는 천연덕스러운 태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스운 것은 다른 관생들의 반응이었다. 강의의 진행이 방해받아 화날 법도 했지만, 그들의 시선은 남궁연이 아니라 질투의 빛을 띠며 모조리 주호에게로 향했다.

“잠깐 좀 보지.”

그렇게 잠시 휴식 시간이 되었고, 주호는 남궁연을 호출했다. 그녀는 기껍다는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고, 이내 둘은 인적이 드문 곳에 마주하게 되었다.

“무슨 용건이신가요?”

“무슨 용건이냐니.”

주호는 잘도 그런 뻔뻔한 말을 내뱉는다는 표정으로 말을 내뱉는다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남궁연의 태도는 이전과 같이 천연덕스러울 뿐이었다.

“무엇을 배울지 선택하는 건 관생의 자유잖아요.”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뻔뻔하기 그지없는 그 태도에 주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

남궁연의 움직임이 주춤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닌지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았지만, 이내 두 눈을 또렷이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알아요, 지금 제 행동이 눈에 거슬리시겠죠.”

“그러면.”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뭐?”

그 물음에 주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도 제 자유가 있어요. 교관님의 강의를 수강하고, …또, 교관님을 좋아할 자유도 말이에요.”

끝에선 말하기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녀는 기어코 자신의 의지를 표명했다.

마치 한 떨기 수선화가 피어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주호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자니,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천 소저와는 한여름 밤의 관계라면서요. 그사이에 관계가 바뀌신 건 아닐 거 아니에요.”

“그렇… 긴 하다만.”

주호는 남궁연의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 보이던 그 모습과는 딴판이 아닌가.

남궁세가에 있을 때도 이렇게 속내를 내보인 적이 없었기에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그러자 그 표정에서 감정을 읽은 듯 남궁연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이젠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거든요.”

그 결연한 눈빛에 주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오후가 되었다.

초여름에 접어든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었을 때, 빈 연무장 안으로 들어오는 몇 명의 인원이 있었다.

“여기도 오랜만이군.”

선두에 선 선우연이 연무장을 훑어보았다.

달포 전까지 그들이 격렬하게 가르침을 받던 이 공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깔끔하기 그지없다.

뒤따라서 오던 후기지수들 역시 오랜만에 발을 내디딘 연무장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가볍게 몸이나 풀까.”

장창을 짊어진 악비산이 그 끝을 휘둘러 거센 풍압을 일으킨다. 옆에 선 당천유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거리를 벌리고, 위천강과 선우진이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천형, 못 보던 사이 조금 수척해진 것 같소.”

“…일이 바빴소.”

그간 잠자코 있던 철대환이 의아한 듯 묻자, 살짝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천후가 괜찮다며 손을 들었다.

그는 오늘 새벽까지 사신문의 임무 지원을 다녀왔다.

사실 며칠 밤낮을 지새워도 문제없었으나, 근래 여러모로 일이 많아 정신적으로 피로한 것이 클 따름이었다.

“…….”

그렇기에 몸을 푸는 다른 후기지수들과는 달리 그는 벽에 기대어 잠시 숨을 돌리며 제 동기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보단 훨씬 진보했군.’

가볍게 기수식을 펼치는 것이었지만, 이전과 사뭇 다른 기세였다.

그들 각자의 재능과 노력이 뛰어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주호의 교육이 확실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터였다.

“그나저나 교관님은 청화루 때의 부상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강의하셔도 괜찮으실지 모르겠군.”

“그렇지 않아도 내가 약을 지어 올렸네. 괜찮으셨더라면 받지 않으셨을 텐데, 흔쾌히 받으신 걸로 보아 아직 회복 중이신 것 같더군.”

당천유는 며칠 전 주호를 찾아갔었다.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다친 것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감사를 전하고 점수도 딸 겸 약을 지어 간 것이었다.

“이 친구 보기보단 여우같은 면모가 있었군. 홀로 그렇게 점수를 따다니.”

“점수를 따다니. 난 그저 감사를 전하려 한 것이네.”

위천강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하자 당천유는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피했다.

“허어, 처음엔 교관님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것 같더니 생각을 고쳐먹었군?”

친우인 악비산마저도 창을 휘두르던 것을 멈춘 채 씩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조용히 검을 휘두르던 남궁연조차 피식 미소를 지을 뿐이었으니. 하지만 그녀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검을 멈춘 채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면 또 한동안 힘 조절하기 힘들다면서 사정없이 찍어 눌러오시려나요.”

“…….”

장내의 웃음이 뚝 그친다. 그 말에 웃을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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