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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61화 (61/300)

#61화

“본인은 천마신교 흑영수라대 대주 남진이다.”

“……!”

자신을 천마신교의 소속이라 소개한 사내의 발언에 남궁세가 무인들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동요가 일어났다.

천마신교가 어디인가.

멀리는 비동혈사부터 근래엔 지부 습격 작전까지 그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을 지닌 곳이었다.

“이 개새끼들이 감히…….”

천마신교라는 이름에 남궁진영은 이를 갈며 검을 들었다.

‘또 정보가 새어 나갔다?’

이번 안휘행의 경로는 최소 각 조직의 부단주 급이 아니라면 모르는 이야기였다.

작전에 참여하지 않는 섬뢰단원 쪽은 아예 배제했고, 참여한 이들 역시 경로를 모를 터.

하지만 이만한 인원을 준비해놓은 것이라면 이미 옛적에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진득한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던 사이, 그들과는 조금 다른 감정을 지닌 채 마인들을 지켜보던 이가 한 명 있었다.

‘기억에 없는 얼굴인데.’

위천강은 가늘어진 눈으로 남진을 바라보았다.

신교의 모든 이를 알고 있지 않았지만, 대주 급의 인사면 교의 핵심적인 중추였다.

특히나 요인의 암살이나 납치를 주로 하는 흑영마살대의 대주라면 그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사칭을? 어째서?’

위천강이 교를 나온 지 반년 정도가 지났다. 아무리 신교가 약육강식의 순리를 따른다곤 하나 대주 급의 위치가 휙휙 바뀌진 않았다.

혹시 바뀌었더라고 해도 단주급이라면 자신의 얼굴 정도는 알고 있을 터.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원래의 흑영마살대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강자군.’

남진은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지만, 그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마치 거센 폭풍과도 같았다.

천마신교란 이름에 분노한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마치 칼날과도 같은 기세가 그들 위로 짓누르고 있었으니.

“얌전히 투항하도록. 그렇다면 죽이지는 않으마.”

“인질이 목적인가.”

남사일은 등 뒤로 시선을 돌렸다.

이곳엔 여러 명문의 후기지수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이 마인의 손에 넘어갔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자명한바.

“아무리 마교라곤 하지만, 정도 무림이 무섭지도 않은 것이냐.”

남사일이 짐짓 날카로운 기세로 말했다.

하지만 남진은 여전히 권태로운 표정으로 목을 한 바퀴 돌릴 뿐이었다.

“시간을 끌려 해도 헛수작이다. 네놈들의 그 동아줄은 이곳과 반대되는 곳에서 터트린 신호탄에 이끌려서 불나방처럼 사라질 테니.”

“…….”

남궁세가의 지원군마저 오지 않을 것이란 말에 남사일은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손을 애써 무시했다.

그러곤 다시 검을 다잡은 채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찌 악랄한 마인을 믿고 투항할 수 있을까.”

“뭐,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 더 말해보았자 입만 아플 뿐이니 이만 끝내지.”

스스스-

남진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져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살수인가.”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은 그 신기에 남사일은 굳은 얼굴로 말하며 검을 들었다.

상대의 기척을 파악하기 위해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웠고, 그 주위로 자신의 권역을 다졌다.

사람이 어찌 완벽하게 자신의 존재를 지울 수 있을까. 아무리 은밀한 살수라 하더라도 공격하는 순간에는 살기가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자, 어디서 올 것이냐.’

남사일은 언제라도 반응할 수 있게 제 검에 팽팽한 내력을 실었다.

조금이라도 기척이 느껴진다면, 그의 검은 가차 없이 상대를 도륙할 참이었다.

쉬이이이익-.

그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은밀한 살기에 남사일의 검이 벼락같이 휘둘러졌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반사신경이었지만, 동시에 다른 방향에서도 복수의 파공성이 쇄도했다.

‘이미 예상한바.’

남사일은 당황하지 않았다. 크게 걸음을 내디뎌 원래 휘둘러가던 힘을 흘리곤 물이 흐르는 듯한 연계로 검의 궤도를 바꿨다.

따다당-!

유려한 검 놀림과 함께 몇 자루의 암기가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그 모습을 본 남진은 어둠 속에서 가볍게 감탄을 흘렸다.

“과연, 화산이 자랑하는 고수라고 할 만하군.”

쐐애애액-!

남사일은 말소리가 들려온 근원지로 눈부신 일섬을 내질렀다.

하지만 검 끝은 애꿎은 허공만 갈랐을 뿐, 그럼에도 아쉬워하지 않고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다음에는 목을 베어주지.”

“능력이 된다면, 하수.”

파바바밧-!

남진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암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수가 많아 남사일은 피하려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등 뒤에 있는 일행이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파아아앗-!

눈부신 빛이 그의 검에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생겨난 검기의 벽이 날아오던 암기를 모두 쳐냈고, 역으로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마인들을 공격했다.

“으아아악!”

“피해라!”

일순간 전열이 무너지며 포위 한쪽에 균열이 생겼다. 남사일이 참고 기다리던 노림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어차피 정면 싸움으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활로를 연다면 그곳으로 비집고 들어가 탈출하면 될 터.

“길을 유지해라!”

남궁진영 역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섬뢰단의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몸을 날렸지만, 그것 역시 상대의 노림수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헉!”

지척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예기에 남사일은 일순간 헛바람을 내뱉으며 황급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날카로운 검 끝은 이미 그의 몸에 따라붙은바. 어떻게든 허공에서 자세를 비틀어봤지만, 예정된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서걱.

“…큭.”

옆구리를 부여잡은 남사일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덕에 땅을 구르는 수치는 면했으나, 새하얀 장삼 위로 붉은 꽃이 순식간에 번져나갔으니.

“장로님!”

선우연은 그저 애타는 얼굴로 안타까움이 담긴 외침밖에 내뱉지 못했다.

뚝, 뚝…….

남진의 검 끝에서 떨어진 피가 풀 위로 응어리졌다.

그는 여전히 권태로움이 가득한 눈이었다. 마치 만사가 귀찮은 사람처럼 검을 까딱거린 채 그들에게 말했다.

“귀찮아지니 이제 쓸데없는 반항은 하지 말도록.”

일행 중 최고수인 남사일이 당한 이상 상황은 크게 기울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정신을 놓지 않았으니.

“아직 주교관님이 있다! 조금만 더 버텨!”

위천강의 외침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호라면 눈앞의 위기를 능히 물리칠 수 있으리라 모두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다시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숫자는 천마신교 측이 많았으나 무공은 남궁세가 측이 더 우세했다.

팽팽할 정도의 접전.

한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남진은 신경질적인 얼굴로 다시금 검을 쥐었다.

“이깟 놈들을 처리하는데 애먹다니.”

“물러나!”

다시금 남진이 나서자, 혈도를 점해 상처를 막은 남사일과 섬뢰단을 지휘하고 있던 남궁진영이 힘을 합쳤다.

하지만 조금 전의 싸움이 우스울 정도로 순식간에 궁지에 몰렸고 모두의 얼굴에 절망스러운 기색이 깃들었다.

“아쉽지만 포섭은 포기해야 할 것 같군. 이만 죽어라.”

상처가 벌어진 충격에 검을 놓친 남사일의 앞으로 남진은 검을 가져갔다.

금방이라도 목을 베어낼 것 같은 모습에 선우연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그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마인들의 숫자는 너무 많았고, 그들은 근처조차 도달하지 못했다.

쉬이이익-!

그 순간 한 줄기 파공성이 허공을 갈랐고, 자신을 노리는 무언가에 남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물러났다.

“…윽?”

동시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역풍이 불었다.

녹영이 우거진 숲속에서부터 진득한 피 내음이 풍겨 나왔고, 이내 공터 위를 자욱하게 뒤덮었다.

이곳에 자리한 대부분이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농밀한 피 냄새에 대부분이 인상을 찌푸렸다. 더러는 헛구역질까지 하며 뒤로 물러났을 정도였으니.

“…이건.”

남진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숲 안에서부터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일순간 이곳의 싸움을 멈추기에 충분할 정도로 흉포한 것이었다.

저벅.

조용한 걸음 소리가 침묵 가운데 울려 퍼졌다. 그 직후 희미한 달빛 아래 피를 잔뜩 뒤집어쓴 주호가 천천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

그의 손엔 막 숨이 끊어진 마인 한 명이 들려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의 파악을 끝낸 주호는 곧 그것을 마인 무리에 내던졌다.

“물러나!”

시체에 막중한 내력이 담겨 있음을 깨달은 남진이 앞으로 나서며 검을 휘둘렀다

피륙은 힘없이 반으로 갈라졌고 잘려 나간 부위에서 뿜어진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웅웅.

검을 타고 들어오는 반동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아 어쭙잖게 그것을 받아내려 했다면 온몸이 짓뭉개져 죽었을 터.

“…보고엔 분명 절정 언저리라고 했는데 말이지.”

주호를 바라보는 남진의 뺨엔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조금 전까지의 권태로운 모습은 어디 갔는지, 그의 눈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쉭.

가벼운 미풍과 동시에 주호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쇄도하는 그 살기에 남진은 있는 힘껏 내력을 끌어올렸다.

캉-!

눈부신 불꽃이 허공에 피어올랐다.

직후 초절정을 뛰어넘은 두 고수의 공방이 벌어졌고, 한순간이라 할 수 있을 찰나 동안 수십 합의 손속이 서로를 향해 오갔다.

“잘 보아두거라. 저것이 벽을 넘어선 초고수의 신위이니.”

남사일은 부상당해 창백한 얼굴로 서 있는 와중에서도, 후기지수에게 조언해주었다.

싸움은 그리 길지 않았다.

찰나 수십 번의 빛이 점멸하고, 두 개의 신형은 각기 다른 곳에 떨어져 내렸다.

“…쯧.”

다만, 둘의 모습만은 판이했다.

전과 다름없는 주호의 모습과는 달리, 남진의 몸 곳곳에 새겨진 자상에선 붉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와 그의 옷을 적시고 있었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눈에 보일 정도로 명백한 힘의 격차에 검을 든 남진의 손이 잘게 떨렸다.

‘잘못하다간 죽는 건 내가 되겠군.’

분명 주호의 무위는 많이 쳐줘야 절정의 완숙이라 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기세는 분명 자신을 웃돌고 있었다.

“뭘 그리 걱정하는가.”

주춤하는 남진의 얼굴을 본 주호는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투항해라. 그렇다면 배후를 캐낼 때까지는 그 비루먹은 목숨만은 연명하게 해주지.

***

“가주님, 신호탄이 터졌습니다.”

야심한 밤.

거처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고 있던 남궁한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수하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신호탄?”

“예, 그것도 적색입니다.”

적색은 가문의 직계만 사용할 수 있는 신호탄이었다. 그것이 터졌다는 소리에 남궁한의 얼굴이 굳었다.

현재 직계 대부분은 세가에 머무는 상태. 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으드득.

그의 손안에 있던 술잔이 흔적도 없이 으스러져 가루가 되었다.

남궁한은 곧바로 벽에 걸려 있던 검을 챙기며 밖으로 나섰다.

“준비는?”

“현재 섬뢰단 전부가 출격할 준비를 끝내놓았습니다.

다만, 복수의 방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신호탄을 쏘아 올려 정확한 위치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목을 속이려 하는 것인가.”

“아마 그럴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차의 이동 경로로 역산하고 있으니 곧 특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궁한이 분노에 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한 발자국마다 땅이 깊게 파이며 그 위에 족적을 새겼다.

“감히 연이를 노리다니.”

시국이 혼란스러워 이번 여정의 호위를 예정된 것보다 세 배로 늘렸다.

마음 같아선 섬뢰단 전부를 보내고 싶었으나, 가문의 정예 조직인 만큼 맡은 임무가 많았다.

더욱이 저쪽 일행 중 매화선풍검 남사일이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놓았던바. 설마 절정의 고수로 이름을 날리는 그가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길까.

하루거리까지 들어오면 이쪽에서 마중을 나가기로 약조까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직전에 습격이 일어났으니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 가능성까지 고려해보아야 했다.

“섬뢰단 출진.”

팔십여 명의 섬뢰단원들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세가를 나선다. 무리의 제일 앞, 남궁한은 귀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가자꾸나. 제 주제를 모르는 승냥이들을 찢어 죽이러.”

그날의 달은 짧았지만, 밤은 그 어느 때보다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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