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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60화 (60/300)

#60화

그믐달이 중천에 떠올라 밤이 깊었음을 알렸다.

불씨를 피워 올리던 모닥불은 밤이슬에 젖어 희미한 온기의 잔재마저 빼앗겨버렸고, 사방은 고요에 잠겨 있었다.

주호를 비롯한 후기지수들은 전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남사일과 남궁세가의 무인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숙면했고, 불침번을 맡은 섬뢰단의 무인 여섯만이 둘씩 짝지어 제 위치를 지켰다.

“하암.”

무인 중 한 명이 기다란 하품을 내뱉는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동료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입이 찢어지겠군.”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자리에 들지 못한단 말일세. 외부에 나설 때마다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내 심정을 아는가?”

“내가 알 필요는 없지 않은가. 조금만 더 참게나. 늦어도 사흘 뒷면 세가에 도착할 참이니.”

“이번에 돌아가면 며칠은 푹 쉬어야겠네. 몸이 찌뿌둥한 것이 영 예전 같지 않아.”

“이제 막 이립이 되었으면서 무슨 예전 타령을 하는가.”

섬뢰단의 무인들은 제자리에 서서 하염없이 잡담을 나누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아무 일도 없던 데다 이미 자신들의 영역인 안휘로 들어온 상태였다.

설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마음이 살짝 풀어져 있었고, 그 작은 간격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하암.”

이어진 두 번째 하품.

그가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려 눈을 비빌 찰나, 여느 때처럼 핀잔을 날리는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네, 아무리 그래도 졸고 있는 건 아니…….”

고지식한 동료에게 한 방 먹여줄 건수가 생겼다며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지만, 돌아온 것은 지척에 이를 때까지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던 낯선 손길이었다.

텁.

“……!”

순식간에 뒤를 점하는 누군가에 그의 두 눈이 커진다. 황급히 무어라 소리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우악스러운 손길이 무인의 입을 덮었다.

서걱.

동시에 무광의 날붙이가 피륙을 베어냈다.

섬뢰단의 무인은 힘껏 몸부림쳐보지만, 이미 그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는 치사량을 웃도는 수준.

결국,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고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 동료의 옆에 나란히 눕혀졌다.

“…….”

검에 묻은 핏줄기를 털어낸 괴한이 허공에 손짓한다. 그러자 수십 개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

“……?”

한창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주호는 자신의 감각을 건드리는 낯선 이질감에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잠들기 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저 멀리 호위를 서고 있는 남궁세가 무인들의 움직임만이 선명하게 느껴졌을 따름이었지만, 그의 감각은 짙게 깔린 어둠 위로 서린 공기가 심상치 않았음을 경고해왔다.

‘기분 탓, 은 아닌 것 같군.’

[다수의 기척을 감지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푸른 글귀와 함께 주호의 시야가 일변한다. 저 멀리 곳곳에서 표시되는 시뻘건 점들에 주호는 제 옆에 풀어놓았던 청룡신검을 움켜쥐었다.

“…이건.”

익숙한 기시감에 그의 두뇌는 재빠르게 돌아갔고, 이내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습격인가.’

마교일지, 사흉수일지 알 수 없지만, 사방에 찍힌 점들은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 죽었다.’

곧 그들은 경계선의 지척까지 접근했고, 저 멀리서 느껴지던 섬뢰단 무인의 기척이 사라졌다.

습격자들이 어설픈 산적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바. 주호는 굳은 얼굴로 몸을 일으키곤 근처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위천강을 깨웠다.

“…어으, 교관님?”

입가에 침까지 흘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위천강이 기지개를 피며 눈을 뜬다.

아직 날이 어두운데 왜 자신을 깨웠냐는 그 표정에 주호는 입술을 씹었다.

‘마교가 아닐 가능성이 큰가. 그렇다면…….’

사흉수(四凶獸).

그 불길한 글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모두를 은밀히 깨워라.”

“…습격입니까.”

“평범한 이들이 아니다. 경계를 서고 있던 섬뢰단의 무인 둘이 순식간에 당했으니.”

그 말에 위천강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다른 이들을 깨우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한두 명씩 정신을 차리는 것을 확인한 주호는 실시간으로 가까워지는 적들과의 거리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나 혼자라면 전부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까지 지키면서 싸우기엔 자리가 좋지 않군.’

그들은 숲의 중앙에 있는 공터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엔 나무나 수풀같이 몸을 숨길 수 있는 지형지물도 많은 상태. 이 자리에서 싸웠다간 큰 피해가 예상됐다.

‘그렇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습격을 알렸으니 뒤는 남사일이나 남궁진영이 이들을 지휘해줄 터.

타다다닥.

누군가 봤다면 절로 감탄했을 경신법으로 나무를 박차고 올라간 주호는 그대로 자신들에게 쇄도하던 적들에게 달려나갔다.

‘오는가.’

어둠 속을 달려오던 시뻘건 점들이 가시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나무 위에서 기척을 숨기고 있던 주호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릉.

조금의 마찰음도 없이 청룡신검이 매끄럽게 뽑혀 나왔다.

막 습격자들이 자신의 밑을 지나갈 때, 주호는 은밀히 몸을 날려 그들의 후미에 붙었다. 그리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제일 뒤에 있던 이의 몸에 검을 박아넣었다.

“……!”

행여나 신음을 흘릴까, 검의 끝은 단번에 급소를 향했고 시뻘건 피가 검날을 타고 흘러내려 푸른 초목을 물들였다.

주호는 숨이 끊어진 시신을 그 자리에 누인 뒤, 재차 적들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두 자리에 달하는 목숨을 베어냈을 때, 주호는 앞서 달려가던 적들의 기척이 곳곳에 멈춰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빨리도 눈치채는군.”

후미에서 인원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이쪽을 향해 몸을 돌려왔다.

습격자들은 더는 당해주지 않겠다는 것인지 주호가 이죽거림을 내뱉음과 동시에 어둠에 몸을 맡긴 채 쇄도해왔다.

서걱-.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일류를 웃도는 고수였다.

거기에 더 까다로운 것은 어둠을 틈타 공격해오는 그들의 움직임이 더없이 날카로웠다는 것이었다.

‘살수들인가.’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는 것이 꼭 살수의 모습과도 같았다.

하지만 주호의 두 눈엔 그들의 위치가 확연하게 표시되고 있는바. 그렇기에 반 각도 채 되지 않아 그 앞에 서 있던 적들은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후.”

비릿한 피 내음이 진득하게 자리한 가운데 주호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깊게 숨을 내뱉었다.

‘이 정도였으면 경계할 필요도 없었겠군.’

괜한 지레짐작으로 심력만 낭비했다며 그는 찌뿌둥한 어깨를 돌렸다.

그러곤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쇠와 쇠가 부딪히는 마찰음, 거친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는 목소리가 어둠의 끝에서 흩어졌다.

‘더 있었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적이 일행을 습격한 듯싶었다. 입술을 깨문 그는 황급히 땅을 박차려 했지만, 다시금 어둠 곳곳을 채운 시뻘건 점들에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쯧.”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검들에 선우연은 혀를 차며 몸을 내뺐다.

곤히 잠을 자고 있던 그들은 위천강의 다급한 목소리에 영문도 모른 채 자리에서 일어났고,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곧 들이닥친 적들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뒤로 천천히 물러나라! 마차를 중심으로 원진을 유지한다!”

단숨에 두 명의 적을 베어낸 남사일이 힘껏 소리쳤다.

적들의 야습을 알아차린 덕분에 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기에 일행의 피해는 비교적 가벼웠다.

몇 명만이 가벼운 상처를 입은 정도고 바닥에 쓰러진 것은 전부 습격자들의 사체였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감히!”

남궁진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를 지경이었다.

감히 남궁세가의 지역인 안휘에서 대놓고 자신들을 습격하다니.

관련된 이는 모두 붙잡아 사지를 찢어발길 것이라며 두 눈에 불을 켜고 검을 휘둘렀다.

‘대체 어디 세력인지.’

반면 남사일은 차분한 얼굴로 적들을 주시했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복장이었다. 잠행에나 입을 법한 검은 피풍의에 얼굴 전체를 감싸는 복면까지.

개개인의 무공은 섬뢰단원들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검 하나하나가 급소를 노리는 것이 꼭 살수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노리는 것은, 뻔한가.’

그들의 일행에는 요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후기지수가 여러 명이나 있었다.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진 모종의 세력이 탐내는 것은 당연한 상황.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대로 저들도 그 자신이 이곳에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터였다.

“흡!”

남사일의 검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가지처럼 유려한 움직임을 보였다.

곧 청아한 매화 향이 장내를 뒤덮었고 수 명의 괴한들이 피를 뿌리며 이승에서의 삶을 끝냈다.

‘아직까진 버틸만한가.’

적들을 베어내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일행을 살폈다.

상대의 숫자는 자신들의 두 배를 넘어섰지만, 이쪽은 한 명 한 명의 수준이 뛰어난 만큼 분전해주고 있었다.

“지원은 언제쯤 올 것 같은가?”

“거리가 거리니 아무리 빨라도 한 시진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사일의 물음에 남궁기가 힘차게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적들의 습격이 시작되는 순간 그들은 남궁세가에 구원을 요청하는 신호탄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 남궁세가와 얼마간의 거리가 있는 위치. 다른 설사 다른 지부에서 신호탄을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당장 지원을 보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한 시진이라…….”

잠시간의 대치 상황이 이루어졌기에 남사일은 최대한 머리를 냉정하게 유지하며 곰곰이 생각을 가다듬었다.

‘적들의 전력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저쪽의 증원이 더 빠르거나 감당할 수 없는 고수가 나타난다면…….’

“호, 그 친구는 어디 있는가?”

이 중 가장 큰 전력이 되는 것은 당연히 주호였지만, 그는 습격이 시작되기 직전에 모습을 감추었다.

남사일의 물음에 위천강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숲을 가리켰다.

“습격이 있을 거라며 다른 사람을 깨우라는 말과 동시에 숲 안쪽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안쪽에도 적들이 있다는 건가.”

그 정도 되는 고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안쪽에 있는 적들의 무공이 강하던가, 숫자가 많던가 둘 중 하나였다.

‘부디 둘 다는 아니길 바라야지.’

어떻게 해서든 시간만 끌면 되는 상황. 그렇기에 그는 일행의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기세를 끌어올렸다.

“본인은 화산의 장로, 남사일이다! 어디서 온 놈들이냐!”

상대의 목적이 명백한 이상 대화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굳이 사문과 이름을 밝힌 것은 습격자들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괴한들 사이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매화선풍검 남사일.”

괴한은 제 얼굴에 뒤집어쓴 복면을 벗었다.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시뻘건 빛과 함께 권태로운 기운이 깃들어 있는 두 눈을 마주하자니 모골이 송연한 느낌이 들었다.

‘위험하다.’

남사일은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의 기세를 읽을 수 없었다.

사내가 최소 동수거나 그보다 윗줄의 고수라는 것. 하지만 눈에 보이는 외모는 많이 쳐주어도 이립의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저런 사내가…….’

그가 긴장한 얼굴로 검을 다잡았을 때, 사내는 씩 웃으며 말했다.

“포섭 목록에 있는 이름이군.”

“…포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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