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49화 (49/300)

#49화

“나중에 비무 한 번 해보오!”

“잘생겼소!”

사신문의 사람은 유쾌했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이 그에게 소리쳐왔다.

하나같이 호감이 담겨 있는 목소리에 주호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들 자네에게 관심이 많다네.”

“그래도 이런 열렬한 환영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격한 환영에 주호는 어색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손을 꼭 잡고 따라가는 주예향 역시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제 오라버니에게 슬쩍 얼굴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오라버니가 무엇을 하셨기에 저들이 이리 환영해주나요?”

“대단한 일을 했지. 끊어진 줄 알았던 명맥을 삼백 년 만에 부활시켜줬으니까.”

“……?”

옆에 있던 천우희가 간단하게 설명해주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는 동생이었기에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주호는 주예향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천천히 알려주마.”

못해도 열흘간은 이곳에 머무를 예정이었다.

그녀에게 가르칠 무공도 찾아야 하니 어느 정도 사정을 알려주는 것이 좋을 터.

주예향 역시 사신문이 강호의 신비 문파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잔뜩 기대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오랜 여정에 지쳤을 테니 하루 정도는 여독을 풀게나. 시간이 급하지 않으니 본격적인 이야기는 내일 나누도록 하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환영식이 끝나자 잔뜩 몰려 있던 사신문의 사람들이 제 각자 왔던 곳으로 흩어졌다.

주호 일행은 하월벽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건 숫제 도시 하나를 산 위에 올려놓은 모양새로군.’

저 멀리 끝까지 보이는 것을 가늠하자면 사신문은 작은 성에 비견될 만한 크기를 가진 듯했다.

다른 한쪽엔 커다란 경작지가 있었고, 그 가장자리를 관통하는 강까지 흘렀다.

그야말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천혜의 요새가 아닌가.

입구만 틀어막는다면 능히 천의 병력으로 만의 적들을 막아낼 수 있을 터.

과연 무림의 긴 역사와 같이 내려온다는 신비 문파다웠다.

거리의 안쪽으로 이동하니 마주치는 인물마다 모두 주호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주호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화답했고,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주예향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역시 오라버니네요.”

“무엇이 말이냐.”

“인기가 많으시다고요.”

“저 얼굴에 인기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잖아?”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출가하시기 전부터 동네에 있는 소녀들의 방심은 전부 오라버니를 향해 있었으니까요.”

“호오? 그건 자세히 듣고 싶네.”

주호는 훤칠한 외모 덕분에 어릴 적부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직 아이였을 주예향조차 느끼고 있었으니 그것이 어느 정도일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옛날 일이다.”

주호는 과거의 일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두 여성은 가늘어진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

적당히 사신문 내부의 구경을 마친 그들은 각자 배정된 숙소에서 짐을 풀었다.

천우희야 애초에 자신의 거처가 있었고, 주호와 주예향만이 따로 방을 받았다.

“넓군.”

대대로 청룡의 객이 묵는 곳이라고 했다.

혼자 묶기엔 조금 커다란 방이었지만, 곳곳에 서려 있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홀로 그 적막 속에서 방안을 거닐자니, 묘한 흥취마저 일어나는 듯했다.

쿵 쿵 쿵.

“음?”

저녁 식사까지 잠시 쉬라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벌써 준비가 됐나 싶어 창밖을 바라보았으나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다.

그렇기에 장지문을 열자 낯선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 앞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진짜다.”

“진짜 청룡이 있어!”

주예향보다 족히 대여섯 살은 더 어려 보이는 두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주호를 올려다보았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닌 듯싶었다. 그렇기에 주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느냐?”

누군가의 전령으로 온 것일까.

하지만 아이들은 곧 주호의 소매를 잡아 오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룡단에 들어가게 해주세요!”

“…뭐?”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주호는 그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청룡단.

무림맹의 청룡단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 터.

사신수의 이름 중 하나이니, 사신문에 있는 단체를 일컫는 것이리라.

하지만 왜 그것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인가.

“저 이번에 소성을 이루었어요! 이 정도면 충분히 청룡단에 입단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너 저번 비무에서 나한테 졌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먼저지!”

아이들은 주호에게 매달리며 열렬한 태도로 자신의 무공 성취를 자랑했다.

“…….”

주호가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뺨만 긁고 있자니, 복도 끝에서부터 쿵쿵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

험상궂게 생긴 장한이 일갈을 터트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아이들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주호의 소매를 놓았다.

“악! 대머리다!”

“대머리 아저씨다! 도망가!”

아이들은 저 멀리 달려나가면서도 나중을 기약하겠다며 눈을 찡긋했다. 그 모습이 재미났기에 주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후우…….”

아이들에게 대머리라 놀림당한 사내는 대략 삼십 대 초반의 나이로 보였다.

우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이들의 말처럼 머리가 깔끔했다.

“대머리가 아니라 삭발한 거란 말이다, 이놈들아…….”

사내는 침울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주호는 차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대머리 사내는 곧 몇 번 헛기침을 내뱉더니 정중한 자세로 포권을 올렸다.

“장산철이라 합니다. 사신문의 사대 정예 조직 중 한 곳인 청룡단의 부단주를 맡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내일 뵈러 올 생각이었습니다만, 저 악동들 때문에 이렇게 되는군요.”

“악동들입니까.”

“문 내에 자자한 말썽꾸러기들입니다. 둘 중 그 허여멀건 놈이 올해 열다섯으로 하월량이라 합니다. 문주의 손주가 되는 위치죠. 그리고 그 옆에 있던 것이 진량이라 합니다. 둘 다 지닌 재능은 뛰어난데 천방지축으로 날뛰어서 말입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해오지만, 그리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문주의 손자라.’

필시 사신문을 이끌어 나갈 재목이 될 터. 분명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으리라.

“이왕 이렇게 된 것 지금 청룡단원들과 안면이라도 트지 않으시겠습니까. 주작께서 청룡을 찾았다고 연락이 왔을 때부터 모두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장산철은 그 머리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권유해왔다.

‘청룡단이라.’

마침 호기심이 동하던 차였다.

사신문의 사대 정예 조직 중 한 곳인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청룡과 청룡단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주호의 물음에 장산철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쪽의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었군요. 쉽게 말해 사신수의 이름을 가진 분들이 각 단체를 이끄는 수장이라 보시면 무방합니다.”

청룡은 청룡단을, 주작은 주작단을, 백호는 백호단을, 현무는 현무단을.

“그렇다고 다른 단체가 약하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하하.”

“그러면 제가 청룡단을 이끌게 되는 겁니까?”

주호는 난처하단 표정을 지었다.

교관 생활이야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

하지만 신비 조직에 속해 강호의 물밑에서 여러 작전을 수행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어릴 적을 제외하곤 해보지 않았다.

“하하, 너무 심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도 사정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요.”

주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상태창을 불러내었다.

장산철은 절정의 고수였다.

천우희보단 경지가 몇 수 낮았지만, 어지간한 문파에서도 요직에 차지할 만큼의 실력자이지 않은가.

‘그런 그가 부단주를 맡고 있다, 라.’

예전에 조우한 남궁세가의 경우, 자신을 섬뢰단의 부단주라 칭했던 남궁진영은 고작 초일류의 올라있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보자면 사신문의 저력을 알 수 있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어쩌시겠습니까?”

“저녁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주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장산철은 신이 난 얼굴로 앞장섰다.

배정된 숙소를 나와 사신문의 내부를 걸어가자니 곳곳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듯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적인 풍경에 주위를 둘러보던 주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평화롭기 짝이 없구나.”

“하하, 보통은 그렇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삼백 하고도 몇 년 전에 외세에 공격을 당한 것을 제외하면 이때껏 적들의 침입을 허락한 적이 없으니 말이죠.”

그것 역시 놀랄 이야기지만, 주호가 진정으로 감탄한 것은 모자람 없이 풍족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바깥세상은 빈부격차가 심했다.

배부른 자들은 더 배불리 먹었으며,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헐벗은 채 추위를 견뎌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러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이들의 웃음은 끊이지 않으며, 그들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얼굴도 모두 밝았다.

마음 같아선 언제까지고 이곳에 눌러살고 싶을 정도로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곳입니다.”

주거단지를 지나 좀 더 내원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전각 여러 채가 눈에 들어왔다.

둘은 푸른 지붕의 전각 앞으로 걸어갔다.

그 입구에는 빼어난 필체로 청룡(靑龍)이라 쓰인 명패가 걸려있었다.

“상당한 고수가 쓴 명패군.”

웅혼한 기상이 스며 있는 그 필체에 주호는 감탄을 흘렸다.

특히 용(龍)의 글자는 정말로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원래는 초대 청룡께서 쓰신 명패가 걸려있었습니다만, 큰 화재로 소실되어 새로이 걸린 것입니다. 뭐, 이마저도 삼백 년도 더 전의 것이지만 말입니다.”

대대로 단주를 맡은 청룡이 새로운 명패를 쓰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청룡은 그간 명맥이 끊긴 지 오래였기에 다른 조직과는 달리 옛것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장산철은 이제 새로운 명패로 교체할 수 있겠다며 안면에 만개한 미소를 지었다.

하압-!

저녁에 가까워져 가는 시간이었지만, 청룡단 내부에는 힘찬 기합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슬쩍 시선을 옮긴 주호의 모습에, 장산철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새로운 청룡께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나 봅니다.”

“인수가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신문의 단급 조직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총 백일 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주인 청룡의 공석으로 현재 인원은 총 백 명.

그리고 그 인원이 다섯 개의 조로 쪼개져 각 이십 명씩 나뉘었다.

“저는 일조의 조장으로 부단주직을 겸하고 있습니다만, 단주가 공석인지라 지금까지 단주 직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단주 겸 부단주 겸 일조 조장이셨군요.”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뭔가 모양새가 이상하군요.”

헛웃음을 내뱉은 장산철은 이내 힘찬 기합 소리가 들려오는 연무장으로 주호를 안내했다.

그러곤 그곳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안쪽으로 큰소리로 외쳤다.

“이놈들아! 귀하신 분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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