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40화 (40/300)

#40화

분명 의식이 잃은 것을 확인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 몸엔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약까지 걸어놓지 않았나.

하지만 자신을 향해 부릅뜬 주호의 두 눈엔 새파란 광망이 가득했다.

우드득.

다시 한번 팔이 돌아갔다. 이번엔 뒤트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몸에서 뽑아내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 의도를 짐작한 궁기는 크게 분노를 터트리며 왼손을 떨쳤다.

“어림없다!”

막대한 내력이 그 손에 서리며 허공을 때렸다. 그와 동시에 주호는 재빨리 손을 놓곤 두 팔을 교차해 그것을 막아냈다.

‘어리석긴!’

서로 간의 차이가 얼마인가.

또다시 뇌려타곤을 펼치며 꼴사납게 바닥을 굴러서 피해내도 완전히 피해내지 못할 판에 저리 당당한 태도라니.

콰아아아아아앙-!

강맹한 일격이 주호를 중심으로 그 사방을 휩쓴다. 땅은 뒤집혔고, 초목은 터져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졌다.

“…….”

그 처참한 광경과는 달리 궁기의 눈썹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꿈틀했다.

자욱한 먼지 사이로 아직 건재한 주호의 기운이 느껴진 것이었다.

“어떻게 그걸 막아냈지?”

적지 않은 힘을 실었다.

서로 간에 차이가 작지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신의 혈맥이 터져서 운신할 수 없을 상처를 입을 터.

하지만 주호는 그 말에 대답하는 일 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팔을 내렸다.

무복은 여기저기 찢겨나가 거친 모습이었지만, 방금의 일격으로 다친 곳은 없었다.

“…뭔가 이상하군.”

곧 궁기는 주호의 모습에서 이질적인 무언가를 눈치챌 수 있었다.

분명 의식은 있었으나, 그 눈에선 전에 보였던 이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극히 냉정하고, 극히 계산적인 눈빛으로 현상을 분석하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

“…….”

실제로 주호의 의식은 저 심연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그를 움직이는 것은 시야 한 편에 떠오른 단 하나의 글귀의 작용일 뿐이었다.

[자동 전투 시스템 가동 중]

“후우…….”

짧은 숨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의식을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음 공격을 위해 몸을 긴장시키는 것이었다.

새로이 활성화된 시스템 어시스트 기능이 시야를 기반으로 정보를 분석했다.

궁기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상태창에 축적되며 그 대처 방안을 분석했다.

“좋다, 숨겨둔 한 수는 있다 이거지.”

궁기는 가라앉은 얼굴로 제 팔을 붙잡았다.

우득.

큰 상처는 아니었다. 비틀린 뼈야 바로잡으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방심했어도 자신보다 하수에게 기습을 당했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우웅.

궁기의 손 위로 다시금 파멸적인 기운이 깃들엇다.

잠깐이라도 아차 하는 순간 전신을 찢어발길 수 있는 막대한 힘. 하지만 주호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그것을 주시했다.

파아앗-!

궁기의 신형이 쏜살같이 사라졌고, 귓가에 스치는 날카로운 파공성에 주호 역시 몸을 날렸다.

“소혼참(消魂斬)!”

시뻘건 강기에 뒤덮여 있던 궁기의 두 손이 거칠게 허공을 찢어발겼다.

진심을 낸 궁기의 공격은 감히 정면에서 맞설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쿠구구궁-.

얼마나 강맹한 힘이 담겼는지 그 궤적을 따라 땅이 깊게 파이며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크게 뒤흔들렸다.

“…….”

주호의 행동 역시 간결했다.

타닷-!

바닥을 박차 크게 도약하며 자신에게로 쇄도한 소혼참을 피해냈다.

몸 상태가 정상이었어도, 그것에 맞설 생각을 하기 어려운바.

아까 전의 무리한 수법으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지금은 최대한 정면 접촉을 피해야 함이 옳았다.

다만.

“모두 훤히 보일 따름이다. 그래서 네놈들은 결코 우리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주호가 그렇게 피할 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 곧바로 궁기가 그 지척까지 따라붙었다.

파앗-!

그의 손이 다시 한번 주호의 목을 잡아갔다.

‘이번에는 전신의 뼈를 분질러주마.’

이미 보여준 바로 경시하는 생각을 버렸다.

단숨에 목을 잡아채 바닥에 내리꽂음으로 전신의 뼈를 분질러 다시 움직일 여지를 주지 않을 셈이었다.

우웅.

“……!”

하지만 귓가를 스치는 한 줄기 파공성에 그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 짧은 사이에 태세를 가다듬었다?’

곧, 깊게 당겨진 주호의 두 손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청룡신공(靑龍神功)

멸천(滅天).

어둠을 밝히는 광명이 궁기를 짓눌러왔다.

마치 거대한 청룡 한 마리가 그를 향해 쇄도하듯 막대한 기파가 사방을 떨치며 그대로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조차 감히 가벼운 마음으로 막을 수 없는 일격이었으니. 그렇기에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명을 자초하는구나. 적어도 숨은 붙여서 본단으로 데려가고 싶었거늘.”

그의 두 주먹이 힘껏 당겨졌다.

파멸적인 힘을 가진 강기가 그 위에 깃들었고, 곧 역천의 기세로 자신에게 떨어져 내리는 청룡에게로 힘껏 뻗어졌다.

쩌어어억-!

커다란 바위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그 일대의 땅이 뒤집히며 파괴되었다.

사흉수의 고수들은 감히 그곳에 버티고 설 엄두를 내지 못하며 훌쩍 뒤로 몸을 날렸고, 입을 벌리며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주시했다.

쿠우우우우웅-!

궁기의 주먹은 자신에게 들이닥친 청룡의 이빨을 부수고, 그 입을 찢어발겼다.

곧 시퍼런 광망은 제 형태를 잃고 가루로 화해 허공에 스러졌다.

그 뒤에 있던 주호는 재차 힘을 끌어모아 다시 출수하려 몸을 움직였지만, 지척까지 다다른 궁기는 싸늘한 눈으로 손을 뻗어 그의 가슴에 일장을 날렸다.

퍽-!

허공을 체류하던 주호의 몸이 엄청난 힘에 얻어맞아 저 멀리 튕겨 나갔다.

그러곤 몇 번이고 바닥을 구르며 나아갔고, 이내 그 기세가 다했을 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땅에 엎어졌다.

“…….”

우습게도 그러한 충격을 받자 의식이 각성했다.

사실 조금 전의 모든 상황 역시 뇌리에 남아 있었다.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완벽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코앞에서 느껴지는 진한 흙냄새와 풀내음에 겨우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나, 이대로라면 반송장이 되어 녀석들의 손에 끌려가게 될 터.

어떻게든 일어나기 위해 애썼지만, 한계를 넘어선 몸은 주인의 의지를 배반했다.

“청룡을 거둬라. 이 정도 소란이 일어났으니 저쪽에도 무언가를 눈치챘겠지. 날파리들이 꼬이기 전에 철수한다.”

궁기의 손짓에 따라 사흉수의 고수들이 쓰러진 주호에게로 다가왔다.

“…….”

일전의 무위를 보아서 그런지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힘이 없던 주호는 그런 그들을 보며 쓴웃음 밖에 나오질 않았다.

쐐애애애애액-!

그때, 이질적인 파공성이 허공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주호의 주위로 다가와 있던 이들이 가슴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이내 수많은 기척이 이곳을 향해 들이닥쳤다.

-쳐라!

먹먹해진 주호의 귓가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려왔다.

곧 칼부림 소리가 장내에 가득해지고, 거친 싸움이 일어났다.

“이놈-!”

궁기는 분노에 찬 얼굴로 사방에 강기를 흩뿌렸다.

마치 양 떼 안에 풀어놓은 이리처럼 날뛰었고, 자신들에게 닥쳐온 이들을 갈가리 찢으려 했다.

하지만 그 직후, 앞으로 나선 한 사내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설마 정말로 사흉수가 모습을 드러냈을 줄이야.”

단정하게 묶은 백발이 밤바람에 흩날린다. 지긋한 나이였지만, 그 건장한 풍채와 전신에서 풍기는 기세는 절대 궁기에 뒤지지 않았다.

“…백호인가.”

궁기의 시선이 노인의 손을 향했다.

그의 백발과 같이 새하얀 빛을 품은, 아마 세상에 단 한 자루밖에 없을 지고의 명창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백호는 침중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습으로 인해 우위를 점하긴 했지만, 상대의 전력 역시 만만치 않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청룡의 신형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몇백 년 만에 등장한 청룡의 명맥을 이곳에서 끊어지게 할 수는 없지.’

휘릭.

새하얀 백광의 궤적이 어지러이 허공에 휘둘러졌다. 그렇게 제 신창을 든 백호는 날 서린 얼굴로 그것을 궁기에게 겨누었다.

“검을 들어라, 사악한 마귀여! 오늘 나의 발톱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네 사지를 찢음으로 증명하겠다!”

곧 백호와 궁기 사이에 공전절후의 싸움이 일어났다.

서로 한 치의 밀림도 없는 동수.

둘 다 죽어도 승리하겠다는 결사의 각오로 손해를 도외시한 채 피 튀기는 혈전을 벌였다.

“…주호.”

그리고 그 뒤, 주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앞서 있었던 싸움의 여파인지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으나, 곧 뺨을 쓰다듬는 따뜻한 손길에 조금씩 시야가 돌아왔다.

“…우, 희…….”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에 그간 있었을 고충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천우희는 곧 그의 몸을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따뜻한 품에서 주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상태창 개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스템 어시스트 활성화 완료]

[자동 전투 시스템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하였습니다. 재조정을 위해 한동안 기능이 비활성화됩니다.]

은연중에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얼굴을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에 주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

“…….”

낯선 천장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의식은 수마에 찌들어 있었다.

흔들리던 초점을 몇 번이나 바로잡고서야 눈앞이 똑바로 보였고, 이내 자신이 있는 장소를 파악할 수 있었다.

“…큭.”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뼈 마디마디를 찌르는 듯한 격통에 신음을 토해냈다.

눈치채고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 머리는 무슨 약에 취한 사람같이 몽롱했고, 손과 발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감각이 무뎠다.

주호는 고통에 겨워하면서도 가부좌를 틀었다.

어서 빨리 이 괴리감에 벗어나고 싶었다.

서둘러 자세를 잡고 청룡신공을 운용하자 폭포를 맞고 있는 듯한 시원한 청량감이 쏟아져 정신에 깃든 몽롱함을 씻겨 내렸다.

“…후우.”

그렇게 얼마 후, 깊은 한숨과 함께 겨우 통증을 가라앉힌 그는 눈을 뜨곤 침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뻐근해진 손발의 관절을 풀어주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잘 감이 잡혀 오지 않았다.

누워있는 동안 여러 말소리가 들린 것 같긴 했는데, 도통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윽.”

문득, 뇌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일며 지난밤 벌어졌던 거친 싸움들이 모두 떠올랐다.

사신문과의 접선, 함정, 그리고 사흉수까지.

자신을 궁기라 소개했던 초고수의 힘은 경악스러울 만한 것이었다.

그 대목에 이르러 주호는 무심코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그대로 저승에 갔겠군.’

아직도 목을 옥죄던 그 항거할 수 없는 손길이 기억에 생생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 이렇게 살아서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만족할 따름이었다.

끼익.

방문의 경첩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곧 모습을 드러낸 익숙한 얼굴에 주호가 두 눈을 크게 뜰 찰나, 상대측에서 먼저 그에게 다가왔다.

“일찍 일어났네? 의원은 적어도 며칠 더 누워있을 거라고 했더니.”

막 씻고 온 것인 듯 천우희의 머리카락은 촉촉하기 그지없었다. 제 마리를 가다듬은 그녀는 이내, 씩 웃으며 주호를 바라보았다.

“죽다 살아난 기분은 어때?”

“…이미 몇 번 맛본지라, 특별할 건 없군.”

죽음 정도야 무황의 비동 안에서 수련할 때 수백, 수천 번을 맛보았다.

그렇기에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천우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당신, 목숨이 몇 개 더 있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하나뿐인 듯한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