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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35화 (35/300)

#35화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간밤에 주호가 보인 무위에 압도되었다.

허공을 가득 채운 검막. 특히나 정면에서 그것을 본 당천유의 놀라움은 매우 컸다.

얼굴을 얻어맞아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오른 탓에 앞뒤 가리지 않고 던진 젓가락들이다.

내공을 잔뜩 머금은 그것들이 맹렬한 기세로 손끝을 떠났을 땐, 당연히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기에 간밤에 자신의 미숙함을 자책하기도 했다.

아무리 술을 마셨다곤 하나 무인이라는 작자가 자제심을 잃다니.

물론 그것은 당천유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그러니 주호와 마주하자 다들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어찌 되었든 소란을 일으켰고, 그 중심에 있던 주호가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지 않은가.

“간밤에 많은 일이 있었지.”

“…….”

그 누구도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자 피식 웃은 주호는 말을 이었다.

“선우연.”

“예, 예!”

설마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화들짝 놀란 선우연이 새된 목소리로 답했다.

이내 추태를 깨닫곤 얼굴을 붉혔지만, 이어진 주호의 말에 입을 벌렸다.

“잘했다.”

“…예?”

선우연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질책을 들었으면 들었지, 칭찬을 들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그의 당황은 더욱 컸다.

“입으로만 의니 협이니 하는 이야기를 부르짖는 이들은 많다. 비록 술에 취해 본능이 앞섰다곤 하나 다른 이들을 위해 나선 것은 아주 훌륭한 행동이었다고 말하고 싶군.”

주호는 협객이 아니었다.

협객이 아니었지만, 무엇이 의고, 무엇이 협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되지 못한 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선우연을 칭찬했다.

그러곤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여섯 명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너희들 역시 훌륭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그런 수라장에 선뜻 몸을 밀어 넣는 것은 고민되는 일이지. 남을 위해 나섰을 때의 그 마음을 잊지 말도록.”

그 말에 천후의 눈동자는 감동으로, 위천강은 오묘함으로, 선우연은 자조로, 당천유는 일렁임으로, 악비산은 호감으로, 철대환은 감탄으로 물들었다.

“…….”

오직 남궁연만이 의외란 감정을 담아 주호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큼, 내가 제일 많이 때렸었지.”

악비산은 자랑스러운 태도로 자신의 전공을 자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당천유가 질린 얼굴로 이죽거렸다.

“제일 많이 맞기도 했고.”

“시끄럽다, 나는 누구처럼 한 대 맞았다고 코가 주저앉지는 않았으니까!”

“…이 자식이.”

주호는 곧 투닥거리기 시작한 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약관에 이르렀지만, 아직 어딘가 순수한 면모를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이제 막 성인이 되었다는 두려움을 숨기며 오히려 대범하게 행동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며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잡담을 나누던 그들은 툭 하고 내뱉어진 그 스산한 한 마디에 몸을 움찔했다.

“아무리 그들이 선배라곤 하지만, 그 엉망인 꼴로 치고받고 싸우던 무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더군. 오늘부터 한 명 한 명씩 그 몸에 직접 가르침을 새겨줄 테니 각오하도록.”

그 서슬 퍼런 기세를 느낀 그들은 경직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

주호는 자신이 말한 바를 정확하게 실천했다.

한 명당 이각의 시간을 할애하여 실전을 방불케 하는 비무를 벌였고, 말 그대로 숨 쉴 틈도 없이 그들을 몰아붙였다.

“헉헉…….”

선우연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이각동안 뜀박질을 해도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주호와의 비무는 지옥 그 자체였으니.

“나는 진심을 내지 않겠다. 좌수만 사용할 것이고, 수준 또한 너희들에게 맞춰주지.”

“그러셔도 괜찮겠습니까?”

첫 상대가 된 선우연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그 앞에 섰다.

절정 고수와 진심으로 싸운다면 십 초식도 버티지 못하겠지만, 같은 경지로 좌수만 사용한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흡-!”

그렇기에 시작부터 자신의 절기인 이십사수 매화검법을 펼쳤고, 곧 화려한 검영이 주호의 전신을 찔러가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해볼 만한데?’

수준을 맞춰주겠다는 것은 거짓이 아닌지 주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자신과 비슷한 정도였다.

그렇기에 어쩌면 역으로 한 방 먹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내 어처구니없는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윽?!”

온몸을 옥죄이는 중압감에 선우연은 신음을 토해내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 자식, 진심으로 살기를 뿜어냈어.’

주호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농밀한 살기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직 실전 경험이 적은 후기지수에게 살기는 비교적 생소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주호가 뿜어낸 농밀한 살기에 선우연은 손끝을 잘게 덜 수밖에 없었다.

마치 뱀을 눈앞에 둔 생쥐처럼 마음이 굽혀졌고, 추한 모습으로 몇 대 얻어맞은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응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실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가 누군지, 무슨 무공을 사용하는지, 지형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음엔 어떤 공격이 올지 끊임없이 생각해라.”

“끄으으윽!”

“무아지경? 그건 모든 것에 통달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기본도 되지 않는 녀석이 요행으로라도 디딜 수 있을 것 같나? 굳이 머리로 떠올리지 않아도 몸이 기억할 정도로 숙달되어야 비로소 잊을 수 있지.”

비무 내내 날카로운 조언이 쏟아져 내렸다.

선우연이 더 힘들었던 것은 그 말이 구구절절 옳아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무공이 경지에 올라 완벽은 아니어도 그에 가까워졌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주호 앞에선 한 수라도 제대로 펼칠 수 있다면 다행일 따름이었다.

이윽고 이각이 가까워졌을 때.

툭.

주호의 손끝이 선우연의 중심을 밀었다. 그것에 화산의 신묘한 묘리는 그 본질을 잃었고, 매화는 곧 뿌리부터 시들어버렸다.

“실전이었다면 넌 이각동안 쉰여섯 번을 죽었다.”

같은 경지에 좌수만을 사용했다.

그 말은 즉, 선우연은 아직 제힘을 백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허억, 허억…….”

선우연은 체면도 잊은 채 바닥에 벌러덩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만큼 앞서 있었던 대련은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주호가 정말로 자신을 죽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지만, 몸은 끊임없이 경계를 보내며 필사적으로 움직이길 원했다.

곧, 두 번의 차례가 흘렀고 뻗어버린 선우연의 옆으로 당천유와 악비산이 기진맥진한 상태로 엎어져 마찬가지로 헐떡거렸다.

“제길, 괴물이 따로 없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싸웠지만, 주호를 털끝 하나 건들지 못한 악비산은 분한 표정으로 슬쩍 고개를 들었다.

반 시진이 넘도록 세 명과 싸워 그들 모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그 장본인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다음 차례의 상대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흠.”

주호는 오히려 상쾌함까지 느꼈으니.

남을 가르침과 동시에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뚜렷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돌아왔다.

당연한 것이 왜 당연한지 알게 되었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행했던 것들에 모두 일련의 법칙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이 시간에서 제일 득을 본 것은 주호였다.

***

여섯 번째 차례가 되었다.

앞의 다섯은 모두 하나같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비무를 바라보며 사이좋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언제 저리 친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주호로선 썩 나쁜 광경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비무를 관전하라고 했지, 언제 잡담을 하랬지? 마지막 차례가 끝나면 한 번 더 순번을 돌겠다.”

“아, 안 됩니다!”

“열심히 경청하겠습니다!”

주호의 으름장에 그들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그와의 대련은 치가 떨릴 정도로 힘든 것이었기에.

“배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이제 남궁연이 검을 들고 나와 그와 마주 섰다.

앞에 있었던 다섯 번의 대련 동안 그녀는 보고 느낀 것이 적지 않았다.

주호는 정말로 딱 자신들의 무위에 맞춰 비무에 임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달라 보이는 것은 상대의 움직임을 보는 ‘눈’과 움직임의 효율일 터.

‘호오.’

남궁연의 움직임을 본 주호는 내심 감탄을 흘렸다.

경지를 비교하자면 다른 이들과 큰 차이가 없지만, 검 끝에서 느껴지는 무학은 비교할 수 없는 깊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녀가 익힌 검은 남궁세가의 절기 중 하나인 창궁무애검법.

드넓은 하늘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는 무공이었다.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매섭게, 때로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남궁연과의 비무는 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녀는 대련 내내 다른 이들처럼 일방적으로 밀려가는 일 없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백중지세의 균형을 이루었다.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은 주호가 그녀를 봐주는 것이리라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이 뼈아픈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단하군.”

누구랄 것 없이 감탄이 흘러나왔다.

한치의 밀림이 없다는 것은, 곧 자신이 가진 힘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바꿔 말하자면 이해도가 높기에 성취가 느리다는 이야기가 되겠군.’

하지만 이는 절대 단점이 아니었다. 어느 분기점에 도달하는 순간, 그 재능은 활짝 피어난 꽃봉오리처럼 찬란하게 만개할 터였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이각동안 이어진 대련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남궁연은 다른 이들처럼 바닥을 구르진 않았지만, 구슬땀을 흘리는 것이 상당히 지친 듯했다.

“수고하셨소, 소저.”

그녀와 주호가 보인 검무에 흠뻑 빠져 있던 선우연이 한가득 미소를 지어왔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남궁연은 그들에게 시선을 주는 일 없이 벽에 기대 조금 전에 있었던 비무를 복기했다.

‘대단해.’

이각동안 나눈 검로는 자신의 뇌리에 똑똑히 각인되어 있다.

주호의 움직임은 마치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듯하지 않은가.

그것들을 모두 흡수한다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마지막 차례인가.”

“잘 부탁드립니다.”

그때까지 팔짱을 낀 채 잠자코 있던 천후가 앞으로 나섰다.

그와 비슷한 실력을 갖춘 위천강은 네 번째 순번으로 여전히 제 실력을 숨겼다.

아직은 상황을 살피는 것 같은 태도를 보였기에 주호 역시 다른 이들과 비슷할 정도의 강도로 적당히 굴려댔을 뿐이었다.

‘이제 좀 해볼 만한 상대인가.’

다른 이들을 상대로는 손속의 여유를 상당히 두어야 했지만, 천우희의 진전을 이은 그는 손맛이 상당할 터.

그렇기에 주호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걸렸다.

‘…윽.’

그와 마주한 천후는 사방에서 항거할 수 없는 거력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당대의 청룡.’

마치 자신의 스승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긴장된 한숨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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