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정천학관은 그 규모가 큰 만큼 자체적으로 감찰단을 조직해 운영하고 있었다.
인원은 일부 교관과 관생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보통 학관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개입해 소란을 잠재우거나, 판결을 내는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그리고 학기 초는 감찰단이 제일 활발하게 활동하는 주간이기도 했다.
집중 단속 기간이라 명명하여 들뜬 관생들이 행여나 소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고, 학관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을 미연에 막기도 했다.
당연히 학관 앞에서 일어난 소란 역시 그들의 귀에 들어갔다. 그 직후 곧바로 감찰대가 출동했지만, 상황은 이미 정리된 이후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풍비박산이 난 장내의 모습에 교관 한 명이 헛웃음을 흘리며 묻자 주호 역시 마찬가지로 한숨을 토해내었다.
“관생들이 저희에게 시비를 걸다가 다른 이들과 싸움이 붙었지 뭡니까.”
곧 그는 상세한 사정을 설명했다.
다른 것은 우선치고 관생이 교관의 권위에 도전하는 하극상은 감찰대에서도 중히 다루는 사안이었다.
그렇기에 교관은 가늘어진 눈으로 제압된 관생 무리를 바라보았다.
“저놈들은 학관 내에서도 악질로 유명하지. 언제 한 번 사고를 치겠거니 생각했거늘, 제대로 임자를 만났군.”
“…혹시 이들 말고 더 있습니까? 무서워서 피해 다녀야지 원.”
이 소동을 일으킨 주된 인원은 모두 일곱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탓에 각 문파에서도 내놓은 제자들이라 했다.
“이 정도 소란이 일어났으니 어차피 조금 이따가 소집이 있을 걸세. 그쪽에서 이야기하지.”
“그러면 저희 쪽 아이들도 같이 잡혀 들어가는 겁니까.”
주호가 고개를 돌리자 굴비처럼 줄줄이 포승줄에 결박되어 끌려가는 이들이 보였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왔으니 다들 술에 깨서 정신을 차린 것인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꼴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아버님이 아시면 어찌하실지…….”
남궁연에 이르러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그렇게 중얼거리고만 있었으니.
그런 그들을 보며 주호는 살짝 머리가 아파져 왔다.
‘이 때문에 조용히 처리하려 했거늘.’
같이 술을 마시던 관생들을 다독여 돌려보내곤, 저들이 밖으로 나올 때를 기다려 처리하려 했었다.
하지만 선우연의 개입 때문에 그것은 엉망이 되었고, 이제 상황은 자신의 손을 떠났다.
화산의 소신룡, 남궁의 검화는 말할 것도 없었고 당가나 악가의 후기지수까지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소란을 일으킨 죄로 개관 첫날에 붙잡혀 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렇다고 조용히 덮자니 목격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학관 사람뿐이면 모르겠으나, 거리를 지나다니던 행인이나 술을 마시러 온 외부인의 입까지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아이들은 내가 잘 다독여서 돌려보냈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담우양이 쓴웃음을 지으며 되돌아왔다.
일단 이 일과 관련된 것만으로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었기에 취한 조치였다.
그러곤 주호와 담우양 역시 줄줄이 묶인 굴비들과 함께 학관으로 복귀했다.
***
약 이각 후.
“도대체…….”
앞서 있었던 소란 때문에 수석교관인 팽대환의 소집령에 따라 교관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막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이들 역시 영문도 모른 채 불려 왔다.
처음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옆 사람에게 물었지만, 곧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는 벌려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화산파의 선우연, 남궁세가의 남궁연, 산동악가의 악비산, 사천당가의 당천유. 소란을 일으킨 이상 징계 처분이 마땅하지만.”
다른 이들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이들은 유력 문파에 출신인 후기지수들뿐이었으니.
이들을 건드렸다가 사문 쪽에서 반발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또 골치 아파질 것이 분명했다.
“일단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입단속을 하긴 했는데, 소문이 퍼지는 건 막지 못할 듯싶습니다.”
“도대체 개관 첫날부터 무슨 일입니까! 듣기로는 그 자리에 교관도 있었다고 했는데, 도대체 누구기에 관생 간수도……!”
감찰대의 교관이 말하자 그 맡은 편에 있던 누군가가 분개한 태도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러자 자연스레 시선이 한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
태연스러운 주호와는 달리 경직된 얼굴의 담우양의 손바닥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섬서검협이란 별호로 비교하기엔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이름이 너무 무겁지 않은가.
그렇기에 입을 꾹 닫은 채 눈치를 보고 있을 찰나,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팽대환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못 들은 이도 있으니 그때 상황을 다시 설명해주지 않겠나.”
지극히 사무적인 그 목소리에 주호는 입을 열어 감찰대에 말했던 내용을 또다시 반복했다.
담우양과 함께 술자리를 하던 와중, 관생들이 합석했고 옆에 있던 이들이 그것을 두고 시비를 걸어 소란이 커지게 되었다.
“허어…….”
이야기만 들어선 주호와 담우양이 잘못한 부분은 없었다.
소란의 그 원인은 먼저 시비를 건 일곱 명의 관생이었으니.
특히 하극상이란 요소는 쉬이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모두가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을 때, 주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무엇을?”
이어진 이야기는 간단했다.
잘잘못이 아니라 소란 그 자체를 부풀린다. 그러곤 상황을 살짝 바꾼다면 되는 것이 아닌가.
후배들에게 집적거린 선배들.
그리고 그런 부당한 상황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후기지수.
그 자리에 있던 교관은 상황을 중재하려 했지만, 수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소란이 커지고 말았다.
어찌 되었든 같은 결말이었지만, 어순을 바꾸니 상당히 다른 분위기가 되었다.
“…허허.”
누군가는 그 잔머리에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누군가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봐왔지만, 주호의 말을 부정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럴듯해 보이는군. 감찰대는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개관 첫날부터 이런 일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팽대환은 결정되었으니 빨리 처리하자며 손을 저었다.
대충 이야기가 맞춰진 후, 회의는 끝났고 주호와 팽대환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들었네. 자네 덕분에 더 큰 소란이 될 수 있었던 상황이 진정했다고.”
“아닙니다, 괜히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소란은 무슨. 자네가 죄송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주호가 입맛을 다시며 말하자니 팽대환은 코웃음을 쳤다.
“후기지수라곤 하나 약관에 이르렀으면 어엿한 성인이 아닌가. 우리는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이지, 뒤까지 닦아주진 않아. 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지.”
“하면 방금 회의는……?”
“보여주기 용이 아닌가. 어찌 되었든 유력 문파의 후기지수들이 연관된 사건이네.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잡음이 나올 테지.”
“하하하…….”
“원래 그런 회의는 인상을 쓰고 한숨을 푹 내쉰 채로 있으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누군가가 그럴듯한 해결책을 내놓기 마련이라네. 이번의 자네처럼 말이야.”
팽대환은 주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찌 되었든 더 큰 소란으로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올해는 할 일이 아주 많거든. 자네들도 조금 있으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될 걸세.”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응이고 자시고, 만약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초장부터 세게 나가서 소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곤죽을 내버리게. 어지간한 것은 학관의 힘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팽대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주호는 정도나 흑도나 어째 일의 처리 방식이 비슷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하루가 지났다.
점심 이후, 주호에게 교육받는 일곱 명의 관생은 곧 있을 실전의 이해 과목을 수강하기 위해 전날과 같은 연무장에 자리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전날과는 사뭇 다른 상태였다.
천후와 위천강은 멀쩡한 데 반해 다른 이들은 여기저기 긁히고 상처를 입었으니.
남궁연은 다행히 얼굴에 상처가 생기지 않았으나, 손등의 피부가 살짝 찢어지고 말았다.
“…….”
치료는 이미 끝냈지만, 그것이 못내 신경 쓰이는지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제 손등을 쓰다듬었다.
그것을 옆에서 곁눈질로 바라보고 있던 당천유는 몇 번 헛기침을 내뱉곤 슬쩍 무언가를 내밀었다.
“남궁 소저, 이것을 바르시오. 본가에서 내려오는 비전 방식으로 만든 금창약이오. 그러면 손등의 상처는 흉터도 남지 않을 것일 터.”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보단 당 공자께 더 필요할 것 같군요.”
당천유는 남궁연의 환심을 사기 위해 꼭꼭 숨겨놓았던 가문의 비전 연고를 꺼냈지만, 그녀는 모호한 표정으로 그것을 거절했다.
이유인즉, 당천유의 얼굴이 더 엉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안면을 직격으로 맞은 탓에 코가 주저앉았고, 뼈가 뒤틀렸다.
후에 어떻게든 치료하긴 했지만, 피가 고여 멍이 생긴 탓에 굉장히 아파 보이는 모양새가 되었다.
“하하, 마음씨도 아름다우십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발랐습니다. 이건 소저를 위해 남겨둔 것이지요.”
“…그러면 감사히 받도록 할게요.”
거기까지 오니 남궁연은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섬섬옥수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강호인이라곤 하나 여인에게 있어 손은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상처가 남는 것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으니.
“자네, 연고 남는 것은 더 없나?”
“남궁 소저에게 준 것이 마지막이라네.”
“나는?”
“사내자식이 연고가 무엇이 필요한가. 그냥 침으로 때우게.”
악비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제 친우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차별이 아닌가.
“제 상처는 얕은 것이니 다른 분도 같이 사용하도록 해요. 그래도 괜찮죠?”
손등에 난 상처야 가는 실 정도의 크기였다.
상당한 양이 남았기에 남궁연이 그렇게 묻자 그는 곧 감명받았다는 표정으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선하시오, 남궁 소저. 다들 뭐 하는가, 소저께 감사하다 해야지!”
“…고맙소, 소저.”
한숨을 내쉰 악비산은 살짝 부끄럽다는 듯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곤 자신의 상처에 금창약을 바른 후 다른 이에게 그것을 넘겼다.
선우연을 비롯해 철대환 역시 그것을 발랐다.
당가의 비전이라는 것은 허언이 아니었는지, 그들은 금창약을 바르자마자 욱신거리던 상처의 통증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좋게 끝나서 다행이네요. 감찰대에 붙잡혔을 땐 어떻게 되나 싶었어요.”
남궁연이 천만다행이라는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킁, 별것도 아닌 것들이.”
어깨를 돌리며 말한 악비산은 그중 제일 신나게 날뛰었다.
술이 들어간 탓도 있었지만, 애초에 싸움을 좋아하는 성격이기에 멧돼지처럼 날뛰었고 가장 많이 때리면서도 가장 많이 맞았다.
“그래도 조용히 처리되어 다행이네. 닫자 하니 그놈들은 정학을 당했다더군.”
선우연은 제일 먼저 나선 것치고는 상처가 적었다.
대신 등에 의자를 가격당해 보이지 않는 부분에 큰 멍이 하나 생겼다.
“네, 위쪽에서 그렇게 결정 난 모양이네요.”
“길거리에서 다시 마주친다면 흠씬 두들겨 패주겠소.”
말이 적은 철대환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제 단단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남궁연은 그들을 생각만 해도 혐오스러운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답했다.
“저는 마주치기도 싫군요.”
같은 정파의 후기지수라 불리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던 놈들이었다.
그들의 저급한 언행은 지금 생각해도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가.
“다들 모였군.”
“…….”
잡담을 나누고 있자니, 주호가 홀연히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고, 이내 주춤한 태도로 시선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