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33화 (33/300)

#33화

“…….”

주호의 얼굴은 담담한데 반해 담우양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호 여인과 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족히 열 살은 차이가 나는 후기지수들이 합석하자고 스스로 다가오다니.

‘그러고 보니.’

계속 붙어 있어 익숙해졌지만, 주호의 외모는 수려하기 짝이 없었다.

교관 복을 입고 있지만 않으면 어디 문파의 귀공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

거기에 나이도 젊어 관생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으니, 그들이 관심을 보내만 했다.

-어쩌시겠습니까.

그러던 차, 주호의 입술이 달싹이며 전음으로 의견을 물어왔다. 담우양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잠깐 정도는 괜찮지 않겠나. 몇 마디 나누는 것 정도는.

개관 첫날부터 교관과 관생이 술판을 벌이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돌 수 있었다.

하지만 고작 술 몇 잔과 담소 정도라면 문제 삼을 것도 없지 않은가.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무공뿐만이 아니지.”

담우양의 허락까지 떨어졌다.

주호는 첫 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데다가 술까지 조금 들어가니 기분이 좋은 상태였기에 씩 웃으며 그들에게 앉으라 눈짓했다.

세 후기지수가 합류하자 술자리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담우양과 주호는 낯을 가림이 없었고, 그녀들 역시 스스럼없는 태도로 이야기를 꺼냈다.

“저, 주교관님이 일전에 천무학관과 있었던 연회에서 풍운검 강무석 대협을 꺾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음?”

이야기 도중, 뜬금없이 그러한 말이 나왔다.

그렇기에 어떻게 알고 있느냐 물으니 그들은 관생 사이에 기묘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답해왔다.

정천학관은 중원제일학관인 만큼 뛰어난 교관들이 많았다.

유력 문파의 출신이거나, 명성이 높거나, 무공이 강하거나.

하지만 올해는 입관생의 정원을 늘리며 교간의 숫자 역시 확충한바.

기라성 같이 등장한 고수들 사이에 자리한 주호는 필연적으로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일전에 있었던 두 학관의 연회에서 풍운검 강무석을 꺾었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고 했으니.

‘벌써 소문이 났나.’

주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아무런 이름도 없던 무명 소졸이 산동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를 비무로 정면에서 꺾어버렸으니.

“둘 다 대단했지. 그 많은 사람 앞에서 한 치의 떨림 없이 비무대를 누볐고,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각자의 무공을 펼쳤다네. 물론, 여기 있는 주교관의 무공이 더 뛰어났을 따름이지만.”

담우양은 거기에 거들어 그때 있었던 비무를 묘사하기까지 했다.

주호는 살짝 부끄러운 마음에 그러지 말라며 손짓했지만, 담우양은 그런 그를 놀리기라도 하듯 씩 웃으며 세세히 그 모습을 재현해냈다.

“와아-!”

직접 본 증인에 의한 생생한 묘사에 그들은 감탄을 터트리곤 숨길 수 없는 선망이 담긴 시선으로 주호를 바라봐왔다.

쿵.

그때, 무언가 묵직한 소리가 저 옆에서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큰 소음에 시끌벅적하던 장내의 분위기가 뚝 그쳤고, 이내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씨팔, 학관의 교관이라는 작자들이 여관생이나 끼고 희희낙락하며 술이나 퍼마시고 있다니.”

우락부락한 외모의 사내들이 잔뜩 열불이 난다는 표정으로 주호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주호와 담우양이 오기 전부터 있었던 이들로 거나하게 취한 듯 대부분 얼굴이 새빨갰다.

‘삼운(三雲), 학관생인가.’

정천학관에선 그 이름답게 관생의 연차를 구름의 자수로 무복에 새겼다.

가슴에 새겨진 구름의 숫자는 세 개. 즉, 삼 년 차의 학관생이라는 소리였다.

“자네, 취했네. 아무리 버러지라 할지라도 교관이네. 말썽 피우면 안 되지. 도량이 넓은 우리가 참아야지 않겠나.”

그 옆에 있던 이는 탁자를 내리친 제 친우를 만류하는 척하며 주호를 깎아내렸다.

명백히 시비를 거는 듯한 그 저속한 언사에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무엇을 참는가! 참으로 통탄을 금치 못하겠네. 정천(正天)을 말하던 학관의 수준이 어찌 이 정도까지 떨어졌느냐 이 말이야!”

우락부락한 사내는 몇 번이고 탁자를 내리쳤다. 그럴 때마다 나뭇조각이 튀며 그 위로 실금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잠자코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주호가 진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 말대로다. 정말로 통탄을 금치 못하겠군. 정천학관의 관생이라는 놈의 수준이 고작 이따위밖에 되지 않는다니.”

탁자가 부서지는 소리를 제외하고 고요했던 주점의 안으로 그 말이 똑똑하게 사내들의 귓가로 향했다.

“너!”

“관생이 교관에게 삿대질까지 한다니. 천륜의 도리는 자네 턱에 질질 흐른 침처럼 흘려보냈는가?”

그 신랄한 비난에 탁자를 내리치던 사내는 황급히 턱을 닦았지만, 손에 닦여 나오는 것은 없었다.

곧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사내의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쿵-!

내력까지 실린 주먹질에 장내 분위기는 완전히 싸늘해졌다.

주위에 앉아 있던 다른 이들은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행여나 휘말릴까 싶어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교관이 교관다워야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것이지. 여성 관생을 옆에 끼고 같이 술을 마시는 것이 할 일인가?”

사내의 말에 그 옆에 있던 일행들이 낄낄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주호 옆에 자리했던 관생들은 자신들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가에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후기지수라곤 하지만, 이런 상황에는 면역이 없을 것이리라.

혹시나 상태창까지 불러 확인해보자 저들의 무위가 대부분 일류 중간에서 끝자락에 이르러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사급 교관의 수준이 일류에서 초일류 사이인 것을 고려해 자신들 정보면 꿇리지 않을 것이리라 생각해 이리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것일 터.

‘정도든 흑도든 제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버러지들은 꼭 있군.’

점점 험악해져 가는 분위기 가운데 주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연회의 때처럼 경비를 서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싸움이 붙었다고 해서 관생들을 쥐어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지.”

똥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들이 관생들을 다독이며 자리에서 일어날 찰나, 사내들은 낄낄거리며 비아냥을 흘렸다.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꼬락서니가 우습기 짝이 없구나!”

“그러고도 사내새끼들인가. 떼라 떼!”

“거기, 입관생 같은 데 그런 좀팽이들 말고 우리랑 같이 마시는 게 어때. 지루할 틈이 없을 텐데.”

“자네, 또 한 명 극락으로 보낼 참인가.”

정파 후기지수라고 생각되지 않는 저속한 언사가 계속되자 주호 옆에 있던 관생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담 형은 나서지 마십시오.”

“자네.”

주호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이전에 연회에서의 소란도 있었고 보고 있는 눈들도 많아 조용히 처리하려 했지만, 저들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 애원해도 끝까지 짓이겨주마.’

다시는 이따위 수작을 하지 못하도록 독하게 손을 쓸 생각이었다.

굳이 어딜 때릴 필요는 없다.

몇 개의 혈만 짚으면 온몸이 뒤틀리며 전에 없던 고통을 듬뿍 맛보게 될 터.

타다다다닥-!

하지만 위층과 이어진 계단에서 내려온 누군가가 일갈을 내지르며 주호보다 먼저 몸을 날렸다.

“정파 망신은 혼자 다 시키는 개새끼들아!”

술에 취한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선우연이 제일 앞에 있던 근육질 거구의 턱주가리를 발로 차버렸다.

얼마나 그 기세가 얼마나 살벌했는지 육중한 몸이 붕 뜬 채 허공을 얼마간 유영하다 탁자 몇 개를 휩쓸고 떨어져 내렸다.

“이런 썅!”

그 모습에 분기탱천한 사내들이 자리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죽어, 이 버러지 새끼들아!”

선우연은 진심으로 화가 난 듯 악을 쓰며 주먹을 휘둘렀다.

무공도, 무학도 없는 마구잡이의 주먹질. 다행인 것이라면 일말의 이성은 남아 있던 것인지 상대를 죽일 정도의 강맹한 기운은 담겨있지 않았다.

“소, 소신룡?”

“시팔, 신룡이든 토룡이든 일단 조져!”

개중엔 선우연의 얼굴을 알아본 자도 있었지만, 주먹과 고성이 주변을 뒤덮자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같은 정파라는 게 얼굴이 화끈거린다, 머저리 새끼들아!”

선우연은 악에 받친 기세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내들을 맞아 분전했다.

하지만 막싸움에서 숫자의 차이는 메우기 힘든바. 거기에 처음 그의 발길질에 얻어맞고 날아간 거구의 사내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싸움에 합류하자 더더욱 수세로 몰려갔다.

“선형!”

하지만 선우연은 혼자가 아니었다.

위층에서 내려온 이들이 구석으로 몰려가던 그의 모습을 발견했고, 하나같이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왔다.

“이게 무슨…….”

주호는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다 같이 술을 마시러 온 것인지 선우연을 비롯해 자신의 교육생들이 줄줄이 위층에서 몸을 던져와 사내들과 주먹다짐을 나누지 않는가.

특히, 남궁연은 그녀들이 당한 모욕에 동질감을 느낀 것인지 더욱 모진 손길로 사내 한 명을 곤죽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단단히 취했군.’

적지 않게 술을 마신 것인지 전부 얼굴이 새빨갛다.

그렇기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저렇게 몸을 날린 것일 터.

이젠 숫제 패싸움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도 각자 최소한의 이성은 붙들고 있었기에 병장기를 뽑거나 살수를 날리고 있진 않았지만, 피가 흩뿌려지는 것은 예사요 심한 이는 이빨이 부러지거나 뽑혀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정쩡한 태도로 서 있던 이가 있었으니.

“이런.”

상대적으로 덜 취한 분위기였던 당천유는 한 발자국 물러나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저들의 언행은 분명 질책을 받아 마땅한 것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소란을 일으켜도 좋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일행은 그 소란 한복판에 관여된바. 자신의 안위라도 챙기기 위해 슬쩍 물러나 있을 찰나, 뒤로 밀려난 누군가가 손등으로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퍽-!

“…….”

평소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정도의 차이일 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취해있었기에 반응이 둔했다.

툭, 투둑.

당천유는 제 손으로 코를 움켜쥐었다. 찌르는 듯한 격통과 함께 손가락 사이로 시뻘건 핏줄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조금 전까지 자리하고 있던 이성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대체한 것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평소 모략과 계략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당가 특유의 다혈질적인 성격은 그의 심성 깊숙이 내재하여 있었으니, 그 뒤의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인과였다.

“이 개 새 끼 들 아-!”

당천유는 근처 탁자 위에 있던 원통에서 나무젓가락을 전부 뽑아들었다.

적어도 백 개는 될 법한 그것들을 모두 손가락 사이에 끼고는 맹렬하게 내공을 회전시켰다.

“다 죽 어-!”

그러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그것들을 허공에 흩뿌렸으니.

“다, 당가! 만천화우다! 피해!”

당천유의 소매에 그려진 표식을 본 사람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사천당가와 만천화우.

그 외침과 동시에 하늘을 가득히 메우고 떨어져 내리는 무언가들.

“비, 비켜!”

“으아아아아아아!”

사천당가 최고의 비기인 만천화우가 펼쳐졌다는 사실에 장내에 있던 이들은 기겁하며 몸을 내뺐다.

물론 실제로 만천화우란 위명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는 아니었지만, 안면을 얻어맞아 이성이 흔들린 것인지 젓가락 하나하나엔 살과 뼈를 꿰뚫을 만한 힘이 실려 있었다.

우당탕탕!

하지만 협소한 공간 탓인지, 아니면 술을 거나하게 마신 탓인지 서로 도망치다 발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무인이라고 볼 수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멍하니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젓가락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타다다닷-!

대참사가 목전에 다가온 가운데, 유일하게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손이 많이 가는 제자들이군.”

달려가는 도중, 부러진 탁자의 다리를 주워든 주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한줄기 내공을 끌어올렸다.

우웅-.

시퍼런 검기가 거친 울음을 토해내며 다리 짝 위로 세차게 솟구쳤다.

‘총 아흔일곱 개, 과연 재능은 있다 이건가.’

허공에 흩뿌려진 나무젓가락 하나하나가 주호의 시야에 들어왔다.

위력은 차이가 클 테지만, 이만한 숫자의 암기를 한 번에 뿌릴 수 있다는 것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혼자만 있다면 몸에 닿는 걸 쳐내는 것으로 충분할 터. 하지만 바닥을 구르고 있는 이들이 피할 수 있으리라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손에 들린 다리 짝이 마치 검처럼 유려하게 휘둘러졌다.

한 줄기 궤적이 허공에 이어졌다.

그 푸른 선은 이내 수십 가닥이 되었고, 허공을 물샐틈없이 채워갔다.

“거, 검막-!”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 검기 정도는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검막은 그보다 훨씬 높은 경지의 무학.

더군다나 지금은 비무 중도 아니었고, 갑작스럽게 발생한 상황이지 않은가.

고작 부러진 탁자의 다리 짝으로 그들 모두를 뒤덮는 검막을 펼쳐낸 주호의 신위에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티디디디디딕-!

푸른 검막에 닿은 나무젓가락이 산산이 조각나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이윽고 비가 그쳤을 때, 주호는 지친 한숨을 내뱉으며 끝이 뭉텅이로 깎여나간 나무토막을 내던졌다.

“딸꾹.”

종래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딸꾹질을 하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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