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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31화 (31/300)

#31화

선우연은 처음엔 주호를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화산이 모욕을 당했고, 자신은 수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바.

이대로라면 강호 동도가 자신과 화산을 비웃을 것이 분명하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문에 연락을 취하려 했다.

연회가 끝난 뒤 간밤에 찾아온 남사일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지금은 사문과의 관계가 데면데면하다곤 하나 차기 장문인으로 심심치 않게 거론되곤 하는 그였다.

당연히 서로 간에 까마득한 배분 차이가 있었기에 선우연은 극진한 태도로 인사를 올렸다.

“괜찮다, 편히 앉아라.”

“예.”

선우연은 남사일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까 있었던 소란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것도 있고 말이지.”

그는 입술을 깨문 채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화산이 모욕당한 일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그 자신이었다.

훈계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기에 체념 섞인 태도로 부끄러움을 숨기며 입을 닫았다.

“딱히 혼내러 온 것이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곧 들려온 인자한 목소리에 선우연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 말대로 남사일의 표정은 딱히 화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쉽다는 감정이 진하게 묻어왔다.

“너와 다툼이 있었던 교관의 이름은 주호라 한다. 올해로 스물여섯에 이르렀지. 서로 간의 격차를 생각해본다면 그런 결과가 나온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저는 화산의 제자가 아닙니까. 적어도 지진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남사일은 눈앞의 제자가 안쓰러웠다.

소신룡이라는 이름은 더없이 영광스러운 것임과 동시에 그의 몸을 조이는 족쇄와도 같은 것이었다.

일거수일투족에 수많은 이목이 따라다니니 어린 나이부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는가.

자신 역시 밟아온 전철이기에 그것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지진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라. 그 생각은 틀렸다. 그 교관은 고작 그 나이에 나와 동수를 이루는 경지의 고수이니.”

“……!”

그 말에 선우연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곤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믿기지 않은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 되물었다.

“저, 정말입니까?”

고작 스물여섯 살의 젊은 교관이 화산의 장로인 매화선풍검과 같은 경지라니.

어림잡아 스무 살 차이가 아닌가.

선우연은 순간 남사일이 자신을 놀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닌지까지 의심이 들었다.

“내가 너에게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 그래서 더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예?”

“그 친구는 아직 무림에 출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다 할 명성이 없지만, 곧 어마어마한 폭풍을 몰고 올 테지. 아마 후에는 강호를 대표하는 고수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까지…….”

선우연으로서는 너무 후한 평가가 아닌가 싶었지만, 남사일은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와 검을 맞대니 알 수 있었다. 절대 평범한 자가 아니야.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사이좋은 관계로 지냈으면 좋으련만, 이미 늦고 말았군.”

화산을 이끌어갈 자신이 무림의 신성으로 떠오를 주호와 친해진다면 분명 후일 큰 도움이 될 것이리라.

남사일이 말하는 바는 그러했다.

그리고 선우연은 그가 직접 자신을 찾아오면서까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먼저 다가가라 이 말씀이신가.’

하지만 사문이 모욕당하고 자신은 망신을 당했다. 선뜻 먼저 다가가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풍문은 한순간이다. 더욱이 그런 것 하나로 꽁해있을 만큼 소신룡이란 이름이 가볍지는 않지 않은가?”

“과찬이십니다.”

선우연은 몇 배분이나 높은 남사일이 자신을 좋게 봐줌에 따라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기에 조금 망설였고, 끝내는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수고하게.”

그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남사일은 선우연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자리를 떠나갔다.

고작 이십 대 중반에 절정의 경지에 오른 남자.

만약 그 밑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자신이 그토록 바라지 않는 고수가 되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선우연은 자신의 자존심을 죽이고 주호의 앞에 섰다.

***

“최종 인원은 이 정도인가.”

주호는 자신의 등 뒤에 늘어선 일곱 명의 인영을 돌아보았다.

천우희의 제자인 천후.

안휘제일미, 검화등 휘황찬란한 별호를 달고 있는 남궁연.

천마신교 소교주 위천강.

산동악가의 악비산.

사천당가의 당천유.

철대환.

화산의 소신룡 선우연까지.

면면 또한 화려한 것이 거를 타선이 없었다.

인원 배정이 끝난 교관은 각자 지정된 장소로 옮겨 강의를 계속해나갔다.

주호 역시 제자들을 이끌고 연무장으로 자리했다.

일곱 쌍의 시선이 그를 주시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는 이도 있었고, 진한 흥미를 나타내는 이도 있었다.

반면 시큰둥한 눈빛과 아예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쪽도 있었으니.

“일단 반갑다. 앞으로 반년 동안 이 반을 이끌게 된 주호라 한다. 잘 부탁하지.”

천후와 남궁연이 손뼉을 쳤다.

그 뒤를 따라 위천강과 철대환, 그리고 선우연까지 동조하니 남은 두 사람도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 시간이니만큼 같이 강의를 들을 친우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지. 먼저, 천후.”

주호의 부름에 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다른 여섯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호북 출신의 천후라 합니다. 가전 무공으로 도법을 익혔습니다.”

그의 성격이 보이는 담백한 인사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머지 이들도 각자 자기소개를 해나갔다.

“남궁세가의 남궁연이라 해요. 배움을 청하는 자리니 부디 불미스러운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남궁연의 스산한 인사에 남자 관생 일동은 몸을 움찔했다.

“신강에서 온 위천강이라 하오. 아버지께 가전 무공을 몇 수 익혔소.”

“…….”

위천강의 소개에 주호는 무심코 헛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틀린 말은 없다.

단지 그 아버지란 사람이 천마이고, 익힌 무공은 강호에서 신공이라 불리는 몇 안 되는 무공 중에서도 최강이라 꼽히는 천마신공일 뿐이니.

“악가의 비산이다. 창을 다루는 것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지.”

“당가의 천유라 하오.”

각자 개성이 드러나는 소개가 끝났다.

악비산은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거구의 사내로, 커다란 장창 하나를 등 뒤로 매고 있었다.

당천유는 제 팔보다 긴 소매를 가진 무복을 입었으며, 음침한 표정으로 연신 히죽 미소를 띠고 있었다.

“철대환이라 합니다. 저도 가전 무공으로 권법을 조금 익혔습니다.”

철대환은 가볍게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더벅머리에 영웅건을 맨 그는 머리가 앞머리가 길어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손 곳곳에 굳은살과 흉터가 박혀 있는 것을 보니 평범한 수련을 한 이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화산의 선우연.”

수려한 외모와 압도적인 명성.

악비산, 당천유, 그리고 위천강의 얼굴에 경계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 모두 남궁연을 노리고 이곳에 오지 않았는가.

그중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선우연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그들끼리의 생각일 뿐이지만.

“소신룡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잘 부탁하오.”

“당가의 잠룡이 있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었지. 마찬가지로 잘 부탁하지.”

당천유가 먼저 음침한 인상과는 달리 넉살 좋게 웃으며 손을 건넸고, 선우연 역시 그것을 맞잡으며 인사에 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뭘 하면 됩니까.”

팔짱을 낀 악비산이 고개를 꺾으며 물었다.

이 중 상당수가 강호에서 일류라 일컬어지는 무공을 익힌바. 악비산의 어조는 그런 우리를 과연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는 뜻을 품고 있었다.

“실전의 이해, 이 강의의 이름이다.”

보통의 강의는 교육 내용의 큰 틀이 구성되어 있었다. 교관은 이제 그 위에 자신의 경험과 색체를 입혀 설명하면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주호가 보기에 그것은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었다.

실전의 이해는 정말로 실전을 겪으며 익혀야 하는 것이었다.

주호 역시 무황의 무공을 얻기 전에도 강호를 구르며 적지 않은 실전을 경험했다.

그 이후에도 숱한 고수들과 대련하며 몸에 감각을 새기지 않았나.

반면 눈앞의 이들은 아직 풋내기에 불과했다.

자신이 진심으로 기세를 흘린다면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천후와 위천강, 단둘뿐이었으니.

“첫 시간이니만큼 가벼운 비무로 각자의 실력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지.”

“비무 말입니까.”

그 말에 모두의 눈이 빛났다.

각자 드러난 표정은 달랐지만, 주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 끝은 다 똑같을 터.

“상대는 어찌합니까.”

“내가 직접 해주지. 가볍게 하는 만큼 손대중은 할 터이니 걱정은 하지 말도록.”

“내가 먼저 하겠소이다!”

그러자 악비산이 자신의 장창을 손에 쥐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섰지만, 주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따로 할 필요가 있나. 너희들 모두 한 번에 덤비도록.”

“…….”

장내는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아무리 관생이라 할지라도 각자 배움이 적지 않다. 서넛만 모인다면 사급 교관 정도는 이길 수 있으리라는 것이 평균적인 인식이었다.

다만, 후기지수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주호의 무공을 대략이나마 알고 있던 남궁연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선우연은 슬쩍 뒤로 빠지며 다른 이들이 앞으로 먼저 나서주길 바랐고, 악비산과 당천유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철대환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머리를 긁었고, 위천강은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주호의 말에 화답해 앞으로 나선 것은 단 한 명뿐이었으니.

“삼가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천후는 등 뒤에 매고 있던 도를 손에 쥐곤, 도신을 뒤덮고 있던 천을 풀었다.

스르륵.

햇빛에 반사된 불그스름한 도신에 모두가 작게나마 감탄을 터트렸다.

한 눈으로 보아도 범상치 않은 내력을 지닌 도였다.

“이름이 홍령(紅靈)인가.”

“예, 홍령도라 합니다.”

주호가 도면 옆에 새겨진 이름을 읊으니 천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척.

곧 기수식을 취한 천후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가겠습니다.”

“언제든지.”

화아악-!

홍령도가 휘둘러지자 후끈한 열양지기가 일어나 공기를 달궜다.

천우희 때처럼 도 자체에서 시뻘건 불꽃과도 같은 도기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탄이 나오는 상승의 경지였다.

“제법이군.”

그를 상대하는 주호는 검조차 뽑지 않았다. 그저 한 손을 들어 올려 도신의 옆면을 쳐내며 천후가 발한 초식을 무너뜨렸을 뿐이었다.

천후의 경지는 분명 낮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 일방적인 양상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저도 가겠어요.”

챙!

그 직후 남궁연 역시 망설임 없는 태도로 검을 뽑아들며 연무장의 가운데로 난입했다.

검과 도의 연회.

물론 주호의 여유로운 태도는 전과 다름이 없었다.

곧 그 뒤를 철대환이 따랐고, 끝내는 위천강까지 합류했다.

일대 사의 싸움.

한 치의 밀림 없이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공방에 악비산과 당천유는 이게 지금 뭐 하자는 상황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선형은 어찌할 생각이오?”

당천유가 팔짱을 낀 채 대련을 지켜보던 선우연에게 슬쩍 물었다.

“음…….”

주호는 흡사 신들린 움직임으로 네 명의 공격을 막으며 흘려내고 있었다.

한순간도 허투루 움직이는 법이 없었고, 그 모든 것이 완벽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내가 저 사이로 난입한다고 할지라도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을까.’

결론은 없다, 였다.

절정의 고수가 어디 뉘 집의 개 이름인가.

고작 일류에 오른 것이 전부인 후기지수들로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터.

선우연이 가만히 있던 것은 순전히 주호의 움직임을 눈에 익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의 진정한 실력을 몰랐다. 그렇기에 선우연은 짐짓 모른 척 말을 이었다.

“저렇게 자신만만하니 무언가 수가 있을 것 같아 지켜보고 있던 와중이오.”

“과연 선형이오.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하오나 네 명의 공격을 막는 것도 아슬아슬해 보이오. 우리가 여기서 난입한다면 승부가 날 터.”

당천유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악비산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거창을 붕붕 휘두르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자네가 올 것도 없이 내가 끝내놓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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