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30화 (30/300)

#30화

학기 첫날이 밝았다.

정천학관의 정문은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렸고, 수많은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쏟아져 들어왔다.

“오늘은 인원 배정을 한다지. 누가 올지 기대되지 않는가?”

“나는 가능하면 명문 쪽이 아니었으면 좋겠네. 사문의 어른들과 비교당하는 일은 피하고 싶군.”

“아서게. 그런 이들이 자네를 선택할 듯싶은가?”

신학기를 맞아 들뜬 것은 관생만이 아니었다.

교관들 역시 앞에선 근엄한 척 무게를 잡았으나, 동료들끼리 있을 땐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으며 고조된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자넨 어떤가? 원하는 후기지수라도 있나?”

실전의 이해 강의를 준비하던 중, 담우양은 은근한 표정으로 주호에게 물었다.

“저는 후기지수들은 잘 몰라서 말입니다.”

“하하, 그러지 말고 말해보게나. 듣자 하니 검화하고도 인연이 있는 듯한데…….”

“남궁 소저와는 정말 스치듯이 인연이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소문이 이상하게 퍼져서 곤란합니다.”

“그런가. 그렇다 하여도 나중에 관생에게 소저니 공자니 하는 호칭은 붙이지 말게나. 얕잡아 보일 수 있으니.”

“명심하겠습니다.”

둘뿐만이 아니라 강의실 내부에 자리한 교관들 사이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다.

다들 전부 자신이 담당하게 될 후기지수에 대한 기대감을 여실 없이 드러내고 있는 모양새였다.

“자자, 진정들 하시게. 자네들이 관생들의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어느새 강의실에 모습을 드러낸 남사일이 웃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무엇이든 새로이 시작하는 날이 되면 들뜬 기분이 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 역시 새로운 만남은 항상 기대하는 바이니.

곧 강의실의 빈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백 개에 달하는 좌석이 공백 하나 없이 가득 찼다.

“반갑네, 본인은 실전의 이해 과목을 맡은 남사일이라 하네. 밑에 선 이들은 나를 도와 자네들을 가르칠 교관들이지.”

강의는 단상 위에 선 남사일의 주도로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매화선풍검 남사일 뿐만 아니라 그 밑에 선 교관들 역시 각 지역에선 쟁쟁한 별호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

관생들은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담당하게 될 교관들을 살폈다.

실전의 이해 과목의 강의 방식은 간단했다.

한주에 닷새 동안 수업이 있었는데 첫날은 지금과 같은 대강의실에 남사일의 주도로 진행되고, 나머지 각 담당 교관의 주도하에 실습으로 이루어지는 구조였다.

그렇기에 이백 명의 인원을 분배하고자 삼십에 가까운 수의 교관이 동원된 것이었다.

그들은 각자 적게는 다섯, 많게는 일곱까지 인원을 맡았는데,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을 것인지는 관생의 선택에 따라 갈렸다.

정천학관은 중원제일학관인 만큼 뛰어난 고수들이 많았고, 구파일방과 세가 연합의 출신들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고수들이 적지 않다.

다만, 그들 대다수가 이, 삼급 교관이었다.

주호나 담우양이 있는 사급 교관 역시 나름대로 강호에서 한가닥 하던 이들이었지만, 저들에 비해 손색이 있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곧 인원의 분배가 시작되었다.

관생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교관의 앞으로 줄을 섰고, 장내는 오만가지 희비가 교차했다.

“우린 남은 이들이나 받는 처지겠군.”

내심 기대했던 유망한 후기지수들은 전부 명문 출신이거나, 빼어난 명성을 지닌 교관들에게 몰려가는 것을 본 사급 교관 중 한 명이 씁쓸함을 삼켰다.

낙수 효과를 보듯 위에서부터 관생들이 채워져 간다. 결국, 남은 것은 지방 중소 문파들의 후기지수들이 될 터.

하지만 사급 교관들은 주눅 들지 않았다.

학관에 들어왔다는 것은 모두 우수한 인재라는 소리다. 기필코 빼어난 성적을 거두게 하리라는 결의를 다진 채 자신을 찾아올 제자를 기다렸다.

척.

아직 관생의 선택을 받지 못하던 사급 교관의 무리 앞에 한 인영이 섰다.

등 뒤에 천을 둘둘 두른 커다란 도를 들고 있는 정갈한 모습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주호 앞에 섰다.

“천후라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함과 동시에 정중한 태도로 포권을 올려왔다. 그 모습에 주호는 내심 감탄 어린 시선으로 천후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녀의 제자인가.”

천후는 전날 마주친 천우희의 제자였다.

그녀는 학관을 떠나기 전, 자신의 제자 역시 이곳에 입관했음을 알려왔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연을 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에 자신이 받아들이기로 미리 약조한 바가 있었다.

‘과연.’

천후의 기세를 가늠한 주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의 기인이사는 모래알같이 많았다고 하던가.

천후는 지금껏 정천학관에서 봐왔던 어느 후기지수보다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정도면 천마신교의 소교주인 위천강과 비교될 만하군.’

[상태창]

-새로운 인물의 정보를 불러옵니다.

이름: 천후

별호: -

직업: -

나이: 스물

소속: 사신문

무공: 주작신공

경지: 초일류(四/十)

잠재력: 上中

호감도: 中中

천우희는 제자의 재능이 뛰어나며 자랑을 늘어놓았었다.

머지않아 강호를 울리는 고수가 될 거라며 호언장담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말이 과언이 아니라 느껴질 만큼 천후의 기세는 출중했다.

“아는 사이인가.”

사급 교관 중 처음으로 선택받은 주호의 모습을 본 담우양이 슬쩍 물어왔다.

“예, 지인의 제자입니다. 어쩌다가 학관에 입관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스승님께서 교관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천후의 태도는 정중하기 짝이 없었고, 풍기는 기세는 정갈했으며 그 품행에 흠잡을 곳 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주위에 있던 교관들은 모두 주호를 부럽다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상위 교관들의 자리가 대부분 채워지자 후기지수들의 발걸음이 이제 삼, 사급 교관들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여러 후기지수가 고민 끝에 선택을 내렸고, 담우양 역시 세 명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주호는 젊은 외모 탓인지 천후 이후로 선뜻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렇게 얼마간 다른 교관들에게로 향하는 관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와중, 그의 앞에 낯익은 얼굴이 다가와 섰다.

“남궁…연.”

주호는 무심코 남궁 소저라 부르려 했던 것을 멈췄다.

밖의 사이가 어쨌든 이곳에서는 교관과 관생의 관계다.

아무리 남궁세가의 여식이라 할지라도 적절한 호칭이 아니었다.

“여기선 교관님이라 불러드려야 하겠네요.”

살짝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에 장내가 밝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 주위에서 흘깃 곁눈질하던 후기지수들은 그녀가 미소짓자 멍한 표정을 지어왔다.

“저는 교관님께 배움을 청하려고 하는 데 문제는 없겠죠?”

“음.”

주호는 살짝 난감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앞에 선 것만으로 수많은 시선이 내리꽂혔다.

좋든 나쁘든 어떤 식으로는 주목을 받기 시작할 터.

귀찮은 일은 가급적이면 사양하고 싶었지만, 남궁연의 얼굴을 바라보니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교관님.”

주호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는 냉큼 그 뒤로 가서 줄을 섰다. 그러곤 먼저 그곳에 자리하던 천후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당신도 주교관님을 선택하신 분인가요? 남궁연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하오.”

천후는 여성에게 익숙지 않은 것인지 이때껏 보였던 진중한 모습과는 달리 우물쭈물한 태도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할 따름이었다.

“나, 나도 교관님께 사사 받고 싶소!”

“나, 나도!”

남궁연의 선택이 끝나자 지금까지 눈치를 보며 기다리고 있던 관생들에 의해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들 그녀와 함께 있고 싶어 했기에 물밀 듯이 그 앞으로 다가왔고, 서로 자신을 뽑아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이것들이.”

인상을 찌푸린 주호가 일갈을 내지를 찰나.

“교양이 없는 자들과 함께하기는 싫네요.”

그 뒤에서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다들 쥐죽은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대로 줄을 선 뒤, 주호에게 열렬한 시선을 보내왔다.

‘남은 자리는 다섯인가.’

그는 원래 최소 인원만 뽑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궁연이 이쪽을 선택할 줄 몰랐고, 그로 인해 희망자가 폭주하고 말았다.

길게 늘어선 후기지수들에 주호는 한숨을 내쉰 뒤, 자체 심사를 진행했다.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 이들은 가차 없이 탈락시켰고, 애매하다 싶으면 상태창으로 탈탈 털어서 옥석을 가려냈다.

“…너는.”

그리고 그렇게 수십 명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 찰나, 다시 마주하게 된 익숙한 얼굴에 주호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교관님을 뵙습니다.”

전과 같이 수려한 외모의 위천강이 정중한 태도로 그에게 포권을 올리며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남궁 소저 때문이 아닙니다. 제 부족함을 알았기에 교관님께 사사 받기를 원합니다.”

전과는 달리 사심 한 점 섞이지 않아 보이는 진중한 태도였다.

그 악랄한 천마신교의 소교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주호는 피식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으니.

‘말은 번드르르하게 잘하는군.’

어디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있을까. 하지만 오히려 좋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를 풀어 놓았다간 무슨 일을 꾸밀지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의 밑에 두어 감시하는 것이 나으리라 판단했다.

“뒤에 서도록.”

“감사합니다.”

합격이라는 소리에 남궁연은 살짝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머저리가 주호의 앞에서 저울대에 올랐다.

개중에 일부는 그 처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의했지만, 주호가 기세로 찍어 누르자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힘없는 걸음으로 다른 교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약 오십여 명을 더 검수한 끝에 주호는 겨우 자신이 가르칠 제자를 추려낼 수 있었다.

남궁연과 같이 세가 연합에 자리하고 있는 산동악가의 악비산, 그리고 사천당가의 당천유. 사문은 없었지만, 스승님에게 권을 배웠다는 철대환까지.

자신을 찾아온 후기지수 중 기세가 출중한 이들로 뽑아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마지막.

“나도 뽑아주길 바라오.”

전날 연회장에서 그에게 망신을 당한 선우연이 당당한 태도로 말해왔다.

“거절하겠다.”

주호는 고민할 필요 없이 즉답을 내뱉었다.

“왜, 왜! 위천강 저 자식은 뽑아주었으면서 나는 왜 안된단 말이오!”

“귀찮다. 소란이 이는 것은 질색이야.”

위천강만으로도 벅찬 상황에 또 다른 폭탄을 품을 생각은 없었다.

더욱이 그를 뽑는다면 남궁연을 사이에 두고 위천강과 하루가 멀다고 투덕거릴 터니, 생각만 해도 속이 쓰려왔다.

“뽑아주시오.”

“거절한다.”

“뽑아주시오.”

“돌아가라.”

“뽑아주시오.”

“대체 왜…….”

“교관님은 저에게 빚이 있지 않습니까.”

“…빚?”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주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그에게 빚이 있다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란 말인가.

“화산을 모욕하고 화산의 무인을 망신시켰소. 내 이번엔 넓은 마음으로 어찌어찌 넘어갔으니 빚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

그 뻔뻔함에 주호는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자신이었더라면 망신을 당한 상대에게 이렇게까지 나오지 못했을 터였다.

“괜찮지 않나.”

마지막 인선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오나.”

뜬금없는 남사일의 개입이었다.

아니, 뜬금없는 일이 아니었다. 둘 다 화산이란 공통분모가 있었으니.

“해묵은 은원도 풀 겸 출중한 무인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내 얼굴을 봐서 어떻게 되지 않겠는가?”

은근한 어조로 돌려 말해오는 것이 자신의 사정을 봐주지 않느냐며 쿡쿡 찔러오는 것 같았다.

끝내 주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뒤에 서라.”

“흐흐, 잘 부탁합니다, 교관님. 남궁 소저도 잘 부탁하오. …자네는 잘 안 부탁하네.”

선우연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남궁연에게 나아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곤 그 옆에 있던 위천강에는 살짝 인상을 쓰며 말을 내뱉는 꼴이, 조용히 지내기엔 벌써 그른 것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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