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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25화 (25/300)

#25화

입관식은 별문제 없이 끝났다.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인 만큼 중간에 몇 번인가 작은 소란이 일어났지만, 교관들의 중재에 다행히 좋게 마무리되었다.

하루 내내 이어진 입관식이 끝나니 하늘이 어두워지며 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사람들은 썰물처럼 정천학관을 빠져나갔다.

반 시진이 되지 않아 내빈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고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올해 정천학관에 입관하게 된 신입생들뿐이었다.

“정천학관에 온 것을 환영하네.”

단상에 올라선 팽대환은 입관생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이후부턴 오로지 자네들을 위한 시간일세. 학기가 시작되는 이틀 뒤부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겠지만, 적어도 오늘 이 자리는 즐겼으면 하는군.”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음식과 술이 차려진 상을 든 사람들이 나타난다. 한 상 가득히 차려진 진미에 관생들은 환호를 질렀다.

주호를 비롯한 교관들은 한쪽에 서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런 이들을 바라보았다.

입관식의 뒤는 신입생을 환영하는 연회가 진행되었지만, 교관들은 감시역으로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니 눈앞의 광경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술을 눈앞에 두고 있자니, 미치겠구먼.”

교관 중 누군가 신음을 내뱉었다. 그들 역시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연회에서 온종일 술판을 벌였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오늘은 오늘이었다.

“일이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러면 끝나고 한 잔 어떻나. 연회는 자정까지 하고 어차피 내일도 하루 쉰다고 하니.”

“그것도 나쁘지 않군.”

어느새 사급 교관끼리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들 옆에서 담우양이 주호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찌할 텐가?”

“저번에는 가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참여하고 싶습니다.”

“잘 생각했네. 두루두루 사람을 사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풍류지.”

술자리에 참여하겠다는 주호의 말에 담우양은 미소를 지었다.

주호는 이틀 전 있었던 연회의 대련 때문에 화제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천무학관에선 막대한 금액을 들여 학관의 수준을 개편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가장 신경 쓴 것이 교관인데, 새로이 들어온 이들의 면면을 살펴본다면 명성만으로는 정천학관을 크게 웃돌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련 가운데 풍운검 강무석을 꺾고 승리를 차지했으니 주목을 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나이는 이제 고작 스물 중반. 수려한 용모에 무공까지 고강했다.

거기에 은밀히 나도는 소문에 의하면 출신 역시 범상치 않은 내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났으니, 사람들의 이목이 모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음?”

연회가 끝날 때까지 잡담이나 나누자며 이야기를 할 찰나, 연회장 한구석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제기랄,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군.”

한 교관이 불평을 토해냈고 다른 이들 역시 그에 동조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주호는 거리낄 것 없이 말했다.

천무학관의 일로 자신들의 위상을 세워주었다며 업무적인 면에서 많은 배려를 받았다.

오늘도 비교적 쉬운 위치에 배치되었기에 그리 힘든 일은 없었으니 살짝 지루해지던 찰나였다.

“부탁 좀 하세.”

교관들도 나름대로 고수라 불리는 이들이었지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신적인 면에서 피로가 컸다.

그 때문에 주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더러는 수고하라며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다툼인가.”

주호는 저 멀리서 들려온 소란스러움을 듣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연회가 시작되고 술이 들어갔으니 치기 어린 마음에 주먹다짐이라도 일어난 것일 터.

애송이 몇 명 정도야 눈을 감고도 제압할 수 있었다.

***

정천학관의 입관한 이들의 출신은 다양했다.

구파일방과 세가 연합 등 정도 무림을 대표하는 세력의 후기지수들.

지역의 유력 세가, 그리고 유명한 고수의 핏줄 혹은 제자.

그리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중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중소 문파의 제자들이었다.

같은 학관에 같은 학년으로 입관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화산파의 후기지수가 저 산동 작은 문파인 절검문의 제자에 비견될 수 없듯이 그들 간에는 뚜렷한 신분의 차이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연회에서 어울리는 무리 또한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이번 소란이 일어난 곳은 구파일방과 세가 연합을 비롯한 유력 문파들의 후기지수들이 있는 무리였다.

“남궁 소저가 싫어하지 않느냐!”

“그녀가 싫어하는 것은 네놈의 그 뻔뻔한 태도인 것 같은데.”

남궁연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짜증이 났다.

남궁세가라는 배경과 자신의 외모, 그리고 수석 입관이란 성적은 뭇 많은 사람의 부러움과 질시가 예정된 것이었다.

물론 어렸을 적부터 좋거나 좋지 않은 것으로 차고 넘치는 주목을 받아왔기에 그런 종류의 주목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설마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자신에게 추근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을 멍청한 사람들이 있을 거란 것은 추호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례하기 그지없군. 도대체 사문에서 무엇을 배우고 온 것이냐.”

“내 사문에선 너 같이 안하무인의 재수 없는 녀석은 콧대를 날려버리라고 가르쳤다.”

두 명의 남자가 그녀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기세가 얼마나 사나운지 금방이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것 같기에 주위 사람은 훌쩍 물러난 뒤였다.

분명 학관에 입관할 정도이니 서로 무공과 학식이 수준에 이르렀을 테지만, 그들은 뒷골목의 파락호처럼 비아냥 섞인 말과 모욕적인 언사로 서로를 자극했다.

그런 천박한 행동을 앞에 둔 남궁연은 남자에 대해 환멸이 나기 직전이었다.

‘후우.’

마음 같아선 모두 베어버리고 연회장을 떠나고 싶었지만, 자신은 이 연회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기분에 따라 말없이 사라진다면 가문의 이름에 누가 될 수 있기에 가까스로 마음을 억눌렀다.

‘도대체 이따위 겉가죽이 무엇이 좋다고.’

어차피 사람의 살과 육신은 스러지기 마련이다. 무인이라면 무예라는 좀 더 그럴듯한 것을 숭상해야 하지 않나.

“그만하시죠,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수준 낮은 말다툼에 끼어들기 싫었지만, 가만히 있었다간 더 큰 소란이 날 것 같기에 형식상 말리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불에 기름을 붓는 행위였다.

“소저! 이 후안무치한 놈이……!”

“남궁 소저,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 기필코……!”

남궁연은 이제 어처구니가 없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두 명 다 그녀에게 있어서 면식이 있는 얼굴이었다.

한쪽은 입관 심사 때부터 자신에게 치근덕거리던 사내, 위천강.

주호에게 호되게 당한 후 포기한 줄 알았지만, 연회가 시작되고 어느새 가까운 거리에 자리해 자신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져왔다.

위천강이 대놓고 추파를 던졌다면, 다른 한쪽은 은근한 분위기를 만들어 그녀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선우연이라 함은 신룡을 이어 화산의 기재라 알려진 후기지수였다.

그 재능이 어찌나 뛰어난지 이미 일류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문도 있었다.

약관의 나이에 일류의 경지, 그리고 뒷배경으로는 화산파란 든든한 사문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그가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선우연은 오늘 입관식에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때껏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기에 그 반향 역시 너무나도 커다랬으니. 입관 수석을 놓친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남궁연이라는 이름이 불린 순간 머릿속에서 커다란 종이 울리는 듯했다.

“검화 남궁연.”

안휘제일미라 불리며 천하칠미에 들어가는 미인.

그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예뻐 봤자 얼마나 이쁘겠냐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자신은 검에 인생을 바친 무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그녀를 보아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 청순하며 청초한, 말로 설명하지 못할 신비로운 분위기에 선우연의 마음은 순식간에 함락당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그녀와 친해지고 싶어 연회의 시작 때부터 같은 명문 정파의 출신이라는 명목으로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점찍어 놓은 여인에게 치근덕거리던 위천강의 존재는 참으로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름도 들어본 적도 없고 사문도 몰랐지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검을 뽑을 듯 말 듯 대치하는 것은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오묘한 기세 때문이었다.

‘절대 하수가 아니다.’

기생오라비 같은 외모에 하는 행동은 시정잡배와도 다름이 없지만, 그 전신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기세는 절대 약자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주제도 모르고 자신과 대적했다며 위천강을 비웃고 헐뜯는 말을 내뱉었지만, 여기 있는 사람 중 그의 십 초를 받아낼 사람이 있을까.

결정적인 것은 바로 남궁연의 시선이었다.

그녀도 검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난 후기지수. 위천강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 눈빛은 마치 자신을 위해 저깟 남자 한 명 쓰러뜨리지 못하는 것이냐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물론 전부 말도 안 되는 오해였지만, 선우연은 그간 화산에 틀어박혀 수련에 매진하느라 세상 경험이 적었다.

서투른 경험은 서투른 생각을 가져오기 마련.

그것은 곧 파란을 일으켰다.

“남궁 소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다니.”

선우연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녀를 실망하게 한 자신에게 실망했고, 이 모든 것의 원인인 위천강에는 분노가 피어올랐다.

“좋다, 너도 남자라면 검을 들어라. 무릇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선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하는 법.”

그렇기에 강수를 두고 말았다.

금은 소란이 일어나겠지만, 화산의 제자인 자신에게 무어라 할 사람은 없을 터.

혹시나 상급 교관들이 제재를 걸어온다면 연회의 흥을 돋울 작은 유흥이라 둘러대면 되리라 생각했다.

“우와아아아!”

“역시 소신룡이다! 화끈하게 보여주시오!”

그의 직설적인 발언에 주위에 있던 후기지수들이 환호했고, 남궁연의 얼굴은 분노를 넘어 싸늘한 냉랭함이 감돌았다.

남궁연은 원래 분노를 잘 표출하지 않았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부동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고수라 불릴 수 있었고 그런 감정의 조각에 힘을 소비할 바엔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두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선을 넘었다.

자신을 마치 제 것인 것처럼 취급하는 작자들의 행태에 두고 볼 수 없었다.

“좋다! 내 능히 오십 초 안에 너를 꺾어 그녀의 마음을 받아가도록 하겠다!”

“오오오오오!”

위천강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분위기가 더욱 상승했다.

슥.

곧 두 사람 사이로 작은 원이 만들어진다. 말은 호기롭게 내뱉었지만, 연회 중인만큼 오십 초나 겨루는 비무는 할 수 없기에 딱 일합으로 서로의 우위를 정하기로 합의를 봤다.

‘좋군.’

위천강은 눈앞에서 나대는 천둥벌거숭이를 바라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힘으로 제 반려가 될 여인을 취한다. 자신이 속한 천마신교에 더없이 걸맞은 이념이 아닌가.

설마 중원까지 와서 이렇게까지 마음에 드는 여인을 두고 대결할 줄은 몰랐기에 흥분되는 마음이 컸다.

“…….”

남궁연은 소리치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말로만 하는 것은 자신의 무력을 피력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했다.

자신은 그저 관상용 화초가 아니라는 것을.

관중 속에서 한 발자국을 내디디고 발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두 사람이 맞붙는 순간 개입해 모조리 때려눕혀 줄 생각이었다. 자신은 그런 실력도 자신도 있었다.

달칵.

검 일부가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그 이질적인 소리에 그녀 주위에 있던 이들이 눈치가 빠른 이들은 몸을 움찔하며 뒤로 발걸음을 물렸다.

턱.

“……!”

하지만 그녀의 손은 이내 누군가의 것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내가 처리하겠소.”

그 익숙한 목소리에 남궁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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