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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23화 (23/300)

#23화

“호오.”

“손속에 사정을 두었음에도 저 정도 위력이라니. 그의 소문이 축소되었구나.”

대부분이 감탄을 보일 정도로 수준이 높은 초식이었지만, 주호는 마치 그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렵지 않게 그의 검을 막아내었다.

공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둘은 마치 서로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칼 같은 분위기 속에서 검을 나눴고, 장내의 분위기도 그에 따라 고조되어갔다.

샤사삭-!

일순간 세 줄기의 검영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주호의 틈을 노린 강무석이 휘두른 회심의 공격이었으나, 그 결과는 전과 마찬가지로 허무하리만큼 쉽게 막힐 뿐이었다.

탁.

열 호흡 안에 십수 번의 공방을 끝낸 둘의 신형이 원래 서로가 있던 자리에 교차해 내려섰다.

와아아아아-!

다른 이들은 그 화려한 마무리를 끝으로 대련이 막을 내린 줄 알고 환호를 질렀지만, 다시금 검을 든 풍운검의 모습에 헛바람을 삼켰다.

“인정하마.”

웅웅웅-.

“……검기!”

조금 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검명(劍鳴)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어둠을 밝히는 연녹색 검기가 그의 검에서 피어올랐고, 강무석은 그 끝을 주호에게 겨눴다.

“…가벼운 대련이 아니었는지요.”

“네놈의 본심을 반절도 끌어내지 못했는데, 이 정도로 멈추면 어디 가서 풍운검이라는 소리를 못 하지.”

주호의 물음에 강무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검을 들라고 눈짓했다.

“…….”

주호는 슬쩍 귀빈석을 바라보았다.

강호 명숙 사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팽대환에게 시선을 보내니 그는 고심 끝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뱉은 주호가 검을 들자 강무석은 입가에 짙은 미소를 띄웠다.

그 역시 오래간만에 만난 호적수에 기분이 좋은 상황이었다.

“좋다, 한 번 놀아보자꾸나!”

하지만 그의 호기로운 표정은 그 직후 곧바로 경악에 물들었다.

쿠웅.

“……!”

주호가 한 발자국을 내딛자 주위의 분위기가 반전됐다.

분명 들떠 있었던 공기가 묵직하게 내리 앉으며 몸을 짓눌러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추가 전신을 찍어 내리는 듯한 압력에 강무석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이 무슨…….”

그 주변에서 대련을 관전하던 고수들 역시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우우웅-

강무석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진중한 기운이 장내를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청명한 불꽃이 그의 검에 피어올랐다.

대자연의 지기가 주호의 의지에 반응해 제 몸을 불살랐다.

“크윽…….”

강무석은 이를 악물며 떨리는 손으로 검을 들었다.

항거할 수 없는 기세가 해일처럼 쏟아졌다.

가히 폭력적이라 할 수 있는 기의 폭풍에 절로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치 관주님과 마주한 것 같지 않은가!’

일류와 초일류의 차이가 크듯, 초일류와 절정의 차이도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경지의 강함이 눈앞에 이루어지자 강무석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십 년은 더 젊어 보이는 애송이가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경지에 도달해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눈앞에 닥친 모든 상황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환술이구나! 감히 나를 현혹하려 해!”

그렇기에 그는 기세만으로 자신이 압도당했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파바바밧-!

강무석은 단전 밑바닥에 있는 기운까지 끌어올려 혼신의 절초를 떨쳤다.

손에 여유를 두지 않고 전력으로 펼쳐진 그 검격에 주호의 기세에 놀라 굳어 있던 명숙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려야 하오!”

성격이 급한 이들은 벌써 단상에 난입할 듯 앞으로 나섰지만, 그들 앞을 가로막는 손이 있었다.

“지켜보도록 하지요. 평범한 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리하면 되겠지요?”

“…아무리 도호라 할지라도 사람의 목숨을 책임질 수는 없는 법이오. 내 그대의 이 무책임함은 잊지 않겠소.”

팽대환은 그 서슬 퍼런 기세에도 불구하고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거센 공방이 일어나고 있던 단상 위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무르익어가던 연회의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교관 중 일부는 살벌해진 대련을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있는 대부분은 환호를 지르며 자신과 같은 학관의 교관을 응원하는 중이었다.

실제로 흐른 시각은 촌각에 불과했으나 둘의 공방은 벌써 오십 합을 넘었다.

서걱.

“큭?!”

옆구리에 갈라진 옷 자국을 보며 강무석은 침음성을 흘렸다.

한 끗 차이로 치명상을 피해냈다.

시간이 갈수록 필사적으로 맞춰 오던 균형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주호가 의도한 간격일 뿐이었다.

“대단하군. 내 일전에 화산의 최고 기재인 신룡(神龍)을 마주했을 때도 이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

“칭찬이 과하십니다.”

“과하기는 개뿔. 그런 얼굴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주호의 말에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대체 어느 애송이가 자신을 이토록 궁지에 몰아넣을 수가 있는가.

‘하지만 쉽게는 당해주지 않는다.’

우위를 내주고 있지만, 상대 역시 결정적인 공격을 해오지 못해오고 있다. 그것은 역시 자신과 그의 차이가 근소하단 증거.

강무석은 슬슬 끝을 보자며 모든 내력을 검에 불어넣었다.

물론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주호는 지닌 전력의 반절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손대중하며 대중들이 자신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도록 박빙의 싸움을 보였을 뿐이었다.

“하아압-!”

강무석의 검이 빛살처럼 주호를 향해 쇄도했다.

다섯 갈래의 검기가 그 끝에서 쏘아졌고 그 고절한 수법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그렇다면.”

주호 역시 지금의 수로 끝을 볼 생각이었다.

풍운검 정도 되는 고수를 휘몰아친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충분히 알렸다.

마지막을 장식할 것은 결정적인 한 방.

“잠운.”

청룡검법 일 초식

청룡잠운(靑龍潛雲)

일곱 갈래의 검기가 주호의 검에서 쏘아졌다.

그 모습이 마치 구름 속을 노니는 청룡의 모습과도 같았다.

“허…….”

강무석이 풍운검이란 별호를 얻은 뒤부턴 진심을 싸워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물론 스스로 단련을 게을리 한 적은 없었고, 오히려 실력은 나날이 상승하기만 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참상은 그의 마음을 짓누르기에는 충분했다.

혼신을 다해 쏘아낸 다섯 줄기의 검기가 주호의 것에 사정없이 잡아먹혔다.

그러고도 여력이 남았는지 두 줄기의 빛살이 그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파바바박-!

돌로 만들어진 단상에 두 개의 깊은 구멍이 파였다.

“…….”

강무석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상대는 자신의 절초를 이리도 쉽게 파훼한 데다, 그마저도 한껏 여유가 있는 모습이지 않은가.

철컥.

강무석의 표정에서 그가 전의를 상실했다는 것을 확인한 주호는 먼저 검을 거두었다.

그러곤 가볍게 포권을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많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승자, 정천학관의 주호!”

대련이 모두 끝난 것을 확인한 팽대환이 단상 위로 올라 승자를 선언했다.

장내에 있던 무인들이 환호가 터져 나왔을 때야 멍하니 있던 강무석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곤 자리를 떠났다.

“수고했네.”

팽대환은 단상을 내려온 주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의 공을 치하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압도적일 줄은.’

풍운검의 신위가 생각보다 뛰어났기에 살짝 걱정되었으나, 훌륭히 그를 꺾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특히 그 마지막 한 수는 자신이었더라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 정도로 고절한 초식이었다.

그것이 무슨 무공인지는 나중에 물으리라 생각하며 팽대환은 주위에서 쏟아지는 정천학관의 저력에 대한 칭찬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

그런 팽대환과는 달리 전혀 웃을 수 없는 한 남자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단상에서 내려온 강무석이 초췌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 앞에 선 악진명은 수고했다는 뜻으로 담담히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강무석은 뭐라 말할 면목이 없었다.

아무리 방심했다곤 하지만, 저런 젊은 애송이가 자신을 뛰어넘는 무위를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은 악진명도 마찬가지였다

풍운검을 영입한 것은 회심의 한 수.

아무리 정천학관이라 할지라도 신입 교관 중에는 그를 뛰어넘는 인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탐나는구나.’

주호를 바라보는 악진명의 눈에는 타오르는 불꽃이 깃들어 있었다.

***

“대단하군, 자네!”

대련을 마치고 다시 자리로 복귀한 주호에게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그전까지는 그가 누구인지, 왜 대련의 대표로 뽑혔는지 의아한 시선들이 많았지만, 무려 풍운검이란 고수를 꺾어버렸다.

그것도 압도적인 신위를 발휘해.

주호와 원래 친분이 있던 교관들뿐만 아니라 안면이 없는 동기나 혹은 선임 교관들까지 그에게 다가와 칭찬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보잘것없는 한 수였습니다.”

주호는 정신없이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면서도 작게 웃음을 토해내었다.

언제 이런 관심을 받아보았던가.

자신이 받아본 것이라곤 겉으로 드러난 외모 때문에 뭇 여성들의 마음을 현혹한 것밖에는 없었다.

무인이라면 응당 무공으로 이름을 날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간간이 들려오는 외모에 대한 칭찬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몰려든 인파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서야 주호는 원래 일행들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네, 보면 볼수록 대단하군.”

담우양은 미소를 지으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주호에게 슬쩍 운을 띄웠다.

질투는 나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무위는 압도적이었으니.

오히려 그가 자신들과 같은 교관이라는 것이 더 자랑스러울 따름이었다.

“어찌 대련할 때보다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이 더 피곤한 것 같습니다.”

“어찌하겠나, 강호는 항상 영웅을 원하는데. 자네 외모에 그 무공실력이라면 강호에 이름을 알리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 어떤가, 지금이라도 학관을 박차고 나가면 더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 보는데.”

“저는 한 번 정한 것은 쉽사리 꺾지 않는 남자라서 말입니다.”

담우양의 농이 섞인 말에 주호 역시 농을 섞어 답했다.

“우리야 좋지 않은가, 이제 곧 주교관의 소식은 입소문을 타고 흘러나갈 텐데. 주위에 붙어 있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하하하.”

교관 중 한 명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주호는 이들과 같이 있자니 과거 무림맹에서 근무할 때가 생각났다.

각자 위선과 포장을 하지 않는 담백한 성격의 사람들이었다.

지금 역시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그들에게 친근함이 느껴졌다.

“참, 대련으로 얼마의 보수를 받는다고 합니다. 제가 조만간 크게 한턱내도록 하겠습니다.”

“어이구, 이 친구가 외모랑 무공뿐만 아니라 손도 크이.”

“그러니 이런 젊은 나이에 그런 경지에 오르지 않았겠나, 자네도 좀 본받게, 그런 꼽등이 간 크기도 따라가지 못하는 소갈딱지는 떼버리라고.”

“예끼, 아직도 저번 술값을 주지 않은 자네가 할 소린가.”

“하하하하.”

만나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스스럼없는 그들의 모습에 주호는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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