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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15화 (15/300)

#15화

‘두 번은 없다.’

위천강은 결코 상대의 무공이 자신보다 높지 않다고 여겼다.

익힌 무공이 비해 자신의 경험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 간격을 메우고자 중원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쿵.

“억!”

쿵.

“커헉!”

몇 번을 덤벼들어도, 몇 번을 회심의 일격을 가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위천강은 공격이 실패할 때마다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감탄을 터트리던 좌중은 그 꼴사나운 모습에 조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아까 몰아붙였던 것도 교관이 봐준 것인가? 그러기엔 무공이 출중해 보였는데.”

“자네, 눈을 좀 닦고 보게. 저게 어디가 출중하다는 것인가.”

으득.

어디 가서 이런 취급을 당해보았던가. 위천강의 이가 절로 갈렸다.

‘그래 인정하마.’

몇 번을 더 바닥에 구르고서야 그의 높았던 자존심이 꺾였다.

주호는 위천강의 얼굴에서 더 이상의 투기가 느껴지지 않자 기세를 거두곤 심사관에게 말했다.

“합격이다.”

“…….”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위천강을 뒤로한 채 주호는 후련한 표정으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만만한 곳이 아니라 이거지.”

그리고 그런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는 위천강의 얼굴엔 사나운 웃음이 서렸다.

주호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음은 꿈에도 모른 채.

***

“올해 뛰어난 후기지수들이 많이 들어왔다지?”

설위연은 당대 정천학관의 관주를 맡고 있었다.

무인으로서 무림에 크게 이름을 날리지 않았지만, 온화한 성품에 깊은 혜안을 가지고 있어 강호 명숙에게 큰 호감을 사고 있는 인물이었다.

“당장 금일만 해도 화산의 후기지수의 무공이 제법이었습니다.”

“신룡(神龍)의 사제라는 아인가.”

당대 무림에 이름을 날린 후기지수는 벌써 몇몇이 있었다.

그중 으뜸이 일룡일검(一龍一劍)으로 화산의 신룡과 무당의 태극검을 뜻했다.

이 둘 역시 정천학관을 거쳐 갔는데, 벌써 졸업한 지가 일 년이 지나갔다.

‘벌써 그들의 사제들이 들어오는 건가.’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하는 설위연이었다.

“참, 다른 건으로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또 무엇이 있는가?”

팽대환의 말에 그는 의문을 표했다.

입관 심사야 항상 예년 있는 행사였다.

수석교관의 위치인 만큼 어지간한 일은 그 선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까지 보고해야 할 일은 드물 터.

“이번에 뽑은 교관 한 명에 대한 일입니다.”

“음?”

올해부터 구파일방과 세가 연합의 의견에 따라 입관생의 정원을 두 배로 확충했다.

그로 인해 교관을 추가로 뽑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

팽대환이 직접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하다며 넘겨주는 서찰에 그는 흥미를 보였다.

“…허허.”

휘갈긴 듯한 필체였지만, 그 안에 깊은 무학의 묘리가 느껴졌다.

그것에 설위연은 탄식을 내뱉었다.

“맹주님이 이리 말씀하실 정도라니. 어떤가?”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팽대환은 꼭 그를 끌어 들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지 대치만 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주호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제대로 붙었다고 하더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나이가 스물 중반이라고? 그런데 자네와?”

“그렇습니다.”

강한 확신을 담아 말하는 그의 태도에 설위연은 흥미가 생겼다.

팽대환이 누구인가.

하북팽가가 자랑하는 고수 중 한 명으로 도호(刀虎)라 불릴 정도로 패도적인 무공을 자랑하지 않나.

그가 이토록 극찬하는 인물이 누구일지 설위연은 매우 궁금했다.

“뭐, 그 정도는 되어야 맹주님의 사제라 불릴 만할 터. 언제 한 번 자리를 만들어주게나. 젊은 고수와 안면을 트는 것은 언제나 나쁘지 않은 일이니.”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남은 일정도 마무리 잘 부탁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

“너무 과했네.”

“…지금은 살짝 후회하고 있습니다.”

입관 심사가 끝난 뒤, 주호는 담우양과 주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지만, 앞서 있었던 심사 때문에 여러 말이 나올 것 같아 담우양이 미리 선수 친 것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은원이 있는 것인가?”

“그런 것도 없지 않습니다만, 말로 설명하기엔 복잡하군요.”

그의 물음에 주호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입관 후보생이 천마신교의 소교주였소,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더군다나 주호는 그것을 밝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소해야 할 은원이다.

그때 천마신교의 소교주란 이름은 좋은 재료가 될 터.

굳이 굴러들어온 그것을 발로 차버릴 생각은 없었기에 치밀어오르던 살심을 내려 앉히고 합격을 선언했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 나오겠지. 당사자가 문제 삼지 않아도 강호에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담우양은 심각한 얼굴로 말해왔지만, 주호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정천학관의 교관직이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뜻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흘러나갈 수 있는.

“그나저나 이야기 좀 해보게. 무슨 인연이기에 그렇게 모질게 굴린 건가.”

담우양이 그를 끌고 나온 것은 개인적인 궁금증을 풀려는 마음도 있었다.

대개 젊은 사내들끼리의 분란은 여자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뭐, 상상하시는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주호는 점소이가 가져다준 술을 잔에 따른다. 그러곤 단숨에 그것을 들이키며 씁쓸하게 말했다.

“일방적인 악연이라 할 수 있겠군요.”

***

“달이 밝구나.”

담우양과의 술자리가 끝난 후 주호는 숙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적당한 취기에 적당한 흥취.

거기에 밤이 깊은 인적이 드문 길목은 고즈넉한 분위기로 뒤덮여 있다.

주호는 늦은 밤의 선선한 봄바람을 즐기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입관 심사는 이레나 남아 있었다.

그것이 끝나면 본격적인 교관 생활이 시작될 터.

“교관이라.”

팔자에도 없던 선생 노릇을 하게 생겼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없었다.

아직 전부를 만나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간 슬쩍 둘러보니 교관 중 나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무림 맹주의 추천장을 팽대환에게 전달했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상부에 이야기가 들어갔을 테고 좋든 나쁘든 이목이 쏠릴 것이 분명했다.

“그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하지만 주호는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이왕 일신에 강한 무공을 얻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강호를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음……?”

느긋한 기분을 만끽하며 숙소로 돌아가던 주호가 돌연 자리에서 멈춰섰다.

밤공기와는 다른 서늘한 느낌이 그의 등골을 훑고 지나간다. 그에 주호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지(無知)는 죄가 아니지만, 그 아둔함으로 인한 행동은 네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오늘은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 그냥 가거라.”

필시 취객을 노리는 강도일 것으로 생각한 주호는 손을 가볍게 휘저으며 검대에 메인 검을 툭툭 쳤다.

자신이 무림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며 험한 꼴을 보기 싫다면 나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

날 선 살기가 밤공기를 뒤덮는다. 그 안에서 풍겨오는 짙은 마기(魔氣)에 주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대천산의 마귀들과 척을 진 일은 없을 텐데.”

척.

주호는 왼손으로 검집을 부여잡으며 무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부를 박살내고 다니던 것의 덜미가 잡혔나?’

온몸을 옥죄어오는 마기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주호는 생존자를 남기지 않았다. 철저하게 적을 죽였고,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남궁세가와의 일이었다.

그들은 주호의 얼굴을 보았을뿐더러, 남궁연과의 접전 때문에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터.

그쪽에서 이야기를 흘러나갔다면 어렵지 않게 자신의 용모파기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하.”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을 본 주호는 무심코 실소를 내뱉었다.

위천강.

천마신교의 소교주로 정천학관의 입관 심사를 봤던 그가 복면까지 착용한 채 자신을 찾아왔다.

‘낮의 심사 때 당한 수모의 보복인가.’

유치하기 짝이 없었지만, 결국 그것이 강호인의 생리였다.

마인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터.

오히려 약육강식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었기에 더욱 민감한 사항이었을 것이다.

“네놈은 선(線)을 넘었다.”

“선?”

목소리를 변조한 것인지 쇠를 긁는 듯한 괴음으로 위천강은 말해왔다.

“그 선은 누가 정한 선이지?”

주호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상대의 정체를 뻔히 아는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까지 했으니.

무공의 격차를 생각한다면 이 자리에서 단숨에 쳐죽일 수 있었지만, 마교의 소교주라는 이름은 한때의 기분에 따라 처리해버리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패였다.

설사 이 자리에서 그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마교 자체는 건재했다.

후계가 사망했으니 잡음이 일어날 터지만, 고작 한 명이 죽었다고 해서 흔들릴 마교가 아니었다.

‘거기에 이 녀석의 죽음을 조사라도 하러 나온다면 내가 엮일 수도 있겠지.’

낮의 심사 때 그렇게 망신을 주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연결점을 찾아낼 터.

만약 상대가 자신보다 강한 고수가 나온다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적당히 상대하고 보내자.’

그것이 주호가 내린 결론이었다.

위천강은 이미 정천학관에 입관을 신청한 상태.

자신을 배제하려는 것은 낮의 수모도 있지만, 괜한 불씨를 제거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무지(無知)는 죄가 아니지만, 그 아둔함으로 인한 행동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 했나.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남에게 할 소리는 아니로군. 네놈이야말로 선을 넘은 것을 몸부림치게 후회하며 죽을 것이다.”

위천강은 낮은 목소리로 엄숙히 말해왔다.

그것에 주호는 비릿한 미소만 지어질 뿐이었다. 제 딴에는 마기를 풀풀 뿜어대며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해왔지만, 앞서 말했듯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말이 많군. 마인은 입으로 싸우나?”

“…그것이 유언인가.”

가벼운 격장지계에 위천강의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스릉.

주호 역시 가볍게 검을 뽑아 들었다.

‘어떤 무공으로 올 것이냐, 천마의 독문 무공인 천마신공? 아니면…….’

위천강의 검에 칙칙한 검붉은 색의 불꽃이 일어난다. 서늘했던 밤공기가 순식간에 후끈하게 달아오르고 그를 중심으로 거센 마기가 휘몰아쳤다.

[상대의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무공]

무월십이검(無月十二劍)

일월(日月), 화마의 달.

그때, 주호의 시야 한 편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적힌 내용은 위천강이 사용한 무공에 대한 것이었다.

‘무월십이검이라.’

상태창에 적힌 정보는 세세했다.

무월십이검은 경지에 오른 한 마인이 달(月)의 변화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 만든 무공이라는 것부터, 각 초식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또한 나타나 있었다.

‘이렇게 자세한 것은 처음인데. 상태창이 진화했기 때문인가.’

상태창에 적힌 글들을 읽어가며 주호는 혀를 내둘렀다.

괜히 무황이라는 칭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마 마교의 무공까지 알고 있을 줄은.

“그렇다면 이쪽도 대충할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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