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4화 (14/300)

#14화

“…음?”

주호 역시 그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빠드득.

“…니다, 많은지도 부탁드립니다.”

이를 가는 소리에 주호는 상대가 누군지 겨우 깨달아낼 수 있었다.

‘어제 남궁 소저에게 집적거리던 녀석인가. 설마 입관 후보생이었을 줄이야.’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위천강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일에 밤잠을 설친 그였다.

오랜만에 눈에 든 여인을 발견했는데 그 앞에서 개망신을 당할 줄이야.

“어제는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개새끼, 잘 만났다. 흠씬 두들겨 패주마.’

그는 짐짓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속마음은 그와 상반된 증오를 품고 있었다.

창-!

위천강은 단숨에 검을 뽑아들었다.

그 시원한 발검 소리에 근처에서 심사를 지켜보던 이들이 감탄을 터트렸고 그의 어깨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이제 알았겠지. 어제의 일은 요행이라는 것을.’

정천학관이 중원 제일의 학관이라지만, 자신은 천하제일의 세(勢)를 자랑하는 곳에서 오지 않았는가.

숨겨왔던 기세를 피어 올리자 점점 굳어가는 주호의 얼굴에 위천강은 통쾌하기 짝이 없었다.

‘심사를 보는 교관이 강해봤자 일류 상위에서 초일류 언저리겠지. 내 무공의 칠 할만 써도 충분하다.’

아무렴 본신의 절기까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일개 교관에게 보이기 너무 과분한 무공이었으니까.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심사는 기본적으로 입관 후보생의 선공으로 시작했다.

교관은 몇 수를 겨루고 그의 통과 여부를 선언했고 그와 동시에 심사가 종료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위천강은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말할 기회를 주지 않으마!’

쉴 새 없이 몰아쳐서 상대를 궁지에 몬다. 압도적인 무공으로 내려찍으면 교관을 이긴 입관 후보생이라 알려지고, 상대 쪽도 나쁜 의미로 이목이 쏠릴 것이다.

‘후기지수에 패배한 교관이라고, 말이지!’

쉬시식.

지켜보던 이들은 몰랐지만, 위천강의 검은 아슬아슬할 정도의 살기를 품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는 매서운 파공성으로 느껴지는 위력보다 더 위험했고 빨랐다.

주호의 반응은 침착했다.

왜인지 한 박자 반응이 늦었지만, 그럼에도 후발제인(後發制人)의 묘리를 살려 위천강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과연, 정천학관의 교관이라고 칭찬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한 수였지만, 그것마저 위천강이 노린 틈이었다.

서걱.

“…….”

순식간에 역공을 당한 주호는 눈앞을 가르는 한 줄기 검광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비틀었다.

하지만 살짝 늦었던 것인지 머리카락의 끄트머리가 잘려나갔다.

‘이 새끼…….’

방금 진심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급소가 위험했을 살초였다.

내려앉은 눈으로 그가 시선을 보내자 위천강은 잠시 검을 거둔 채 입을 열었다.

“과연, 교관님의 무공은 대단하십니다. 그걸 피해내실 줄은.”

허공에서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보지 못할 리 없었다.

자신을 놀리는 듯한 명백한 조소에 주호의 얼굴은 더더욱 굳어갔다.

“어떻습니까. 저는 합격입니까?”

꽈아악.

검을 쥔 주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슬쩍 주위로 고개를 돌리니 명백히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심사관이 얼른 심사를 끝내라며 손짓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주변의 이목이 그들 쪽으로 쏠렸으니.

“와아아!”

“저 친구 실력이 제법이군. 교관에게 한 방 먹였어!”

장내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저마다 한 가닥씩 무공을 익히고 있는 이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위천강의 검이 끄트머리나마 주호의 머리카락을 잘라낸 것을 볼 수 있었다.

구파일방뿐만 아니라 오대 세가의 후기지수가 모이는 만큼 심상치 않은 재능을 보이는 있다.

하지만 교관은 대부분 그들보다 무위가 높았기에 지금 같은 망신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순식간에 집중된 이목에 주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 들어오도록.”

“그러시다면야.”

이죽거리는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거리는 위천강의 모습에 주호는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었다.

일순간 집중이 깨어져 낭패를 당할 뻔했다.

아니,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은 결코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도 핑계에 불과하겠지.’

그럼에도 주호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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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물의 정보를 불러옵니다.

이름: 위천강

별호: 소천마(少天魔)

직업: 천마신교 소교주

나이: 스물

소속: 천마신교

경지: 초일류(四/十)

무공: 천마신공

잠재력: 上中

호감도: 下下

상대는 천마신교의 소교주였으니까.

***

주호가 비무대 위로 올라온 위천강의 상태창을 확인한 것은 단순한 반복 행위에 불과했다.

단지 심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경험이 축적되어 상태창이 진화하지 않았는가.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면 또 어떤 기능이 생길지 궁금해 무심코 불러온 상태창의 내용에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마신교.

신강의 패자이자 단 하나의 세력으로 정도, 사도와 더불어 마도(魔道)를 이루는 곳이었다.

무황의 비동에서 일어난 혈사에 세 세력은 전쟁 직전까지 갔다.

극적인 타협 끝에 전쟁까진 가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터.

그와 별개로 자신은 그들과 해묵은 은원이 있었다.

그렇기에 비동에서 나온 후 달포 동안 마교와 사도맹의 지부를 박살 내고 다닌 것이었으니.

이제는 그것을 훌훌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비동혈사에서 죽어간 동료들의 넋을 기리며 철저하게 복수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허공을 노닐다 비무장 바닥에 내려앉았을 때, 주호는 가슴 속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살심(殺心)에 눈을 감았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위천강은 건들거리는 태도로 기수식을 취했고, 그 모습을 본 주호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얼핏 보면 제멋에 취해 보이는 가벼운 태도였으나, 그 속엔 적지 않은 깊이가 서려 있었으니.

‘확실히 천마신교의 소교주라 할 수 있는 무위다.’

단순히 경지로만 보자면 같은 교관인 단우양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무림맹의 현무단주인 심가벽 정도는 와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터.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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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주호

별호: 월영사신

직업: 정천학관 일반교관

나이: 스물여섯

소속: 정천학관

경지: 절정(絶頂)(一/十)

무공: 청룡신공(五成)

제아무리 약관의 나이에 일류를 넘어섰다곤 하나, 주호와는 크나큰 격차가 있었다.

쉬시식.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검광이 위천강의 검 끝에서 터져 나왔다.

‘대략 칠할 정돈가.’

위천강은 자신의 전력 중 칠할 정도만 선보이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손속을 두는 여유까지 보이다니. 주호는 속으로 조소를 내뱉으며 검을 다잡았다.

마교는 오직 힘의 논리로만 움직인다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닌가.

그런 곳의 소교주라면 그야말로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위치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거리낌 없이 행동해왔을 것이었을 테지만, 지금부터는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우웅-

청룡신공의 기운이 주호의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

주변 이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그와 마주 선 위천강만은 주변을 짓누르는 기세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이미 내질러진 뒤였으니.

어지간한 힘이 실려 있는 공력을 회수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이까짓거!’

위천강은 자신의 공격이 빗나가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자신이 있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란 이름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턱.

“…어?”

주호의 신형이 기묘하게 움직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발을 내디뎌 자연스레 검을 빗겨내곤 도리어 그의 팔을 잡아 오기까지 했으니.

‘한 수가 있었단 말이지!’

위천강 역시 녹록히 당해주지 않았다.

공격이 빗나간 순간 그는 이미 순간적으로 주호의 움직임을 읽어낸 뒤였다.

‘검은 눈속임, 실질적인 주력은 금나수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올 리 없다고 생각했다.

팟!

검을 쥔 팔이 붙잡히기 전에 다시금 위천강의 내력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감히 신교의 소주(少主)를 농락한 죄, 팔 하나 정도는 받아가겠다!’

입관 심사 때에 입관 후보생이 교관을 상처 입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상대가 구파일방이나 오대 세가 같은 명숙이면 어떻게든 문제가 될 것이지만, 상대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소졸. 거리낄 것은 없었다.

파바바밧!

위천강의 검이 맹렬히 선회한다. 그는 찔러가던 검의 궤도를 바꾸는 곡예에 가까운 검술을 보였다.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이들이 감탄을 터트렸고 주호가 또다시 곤경에 처하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절묘한 한 수였지만, 주호의 눈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흡!”

‘뭔가 잘못되었다!’

자신의 공격이 주호에게 닿기 전, 위천강의 본능은 끊임없이 경종을 울려댔다.

도대체 무언가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검은 내질러진 뒤.

두 번이나 궤도를 비트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경지로는 아직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위천강은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작, 일개 교관이 천마신교의 소교주와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문제는 주호가 평범한 교관의 실력을 아득히 상회한다는 것이었다.

“어림없다.”

주호는 아예 검까지 집어넣은 뒤였다.

그간의 망신을 톡톡히 갚아주겠다는 것처럼 맹렬하게 손을 뻗어 위천강의 검에 맞섰다.

툭.

그 직후의 행동은 간결했다.

먼저 빛살처럼 찔러오는 위천강의 검면을 손등으로 툭 쳐올려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러곤 경악에 물들어가는 그의 팔을 부여잡고 안쪽까지 파고들어 가볍게 다리를 걸었다.

휘릭.

위천강의 몸이 허무하리만치 손쉽게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직후,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비무대에 내동댕이쳤다.

쿵.

“…커헉.”

심사장을 울릴 정도의 진동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그에 막 심사를 끝낸 이들의 이목이 그들에게로 집중되었다.

“일어나라. 탈락하고 싶은 것인가?”

안면부터 바닥과 부딪혔기에 코가 부러진 것인지 위천강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잠시간 공황 상태에 빠져 비틀거리던 그는 주호의 싸늘한 일갈에 입까지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다시 검을 들었다.

“호오.”

그 모습을 보고 주호는 감탄을 흘렸다.

지금 것은 의도된 행동이었다.

위천강을 가리키며 이 자가 천마신교의 소교주다! 라고 말해도 믿어줄 사람이 없을뿐더러 정신병자 취급을 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기에 견디지 못할 정도의 굴욕을 주어 이성을 날려버리면 마기를 풀풀 거리며 덤벼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위천강의 자제심은 그의 예상보다 뛰어났다.

‘…평범한 자가 아니다.’

위천강 역시 땅에 꽂히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범한 교관이 어찌 자신의 공격을 간파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진신절기를 보일 수는 없었다. 사방이 적인 상황에서 마기를 드러냈다간 곤욕을 치를 테니.

“습.”

자랑이던 얼굴이 엉망이 됐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피 내음을 맡아서 그런지 머리에 가해진 충격 때문에 흐릿했던 정신이 또렷해진 것 같았다.

흘러내린 피를 닦으며 그는 야수와 같은 눈으로 주호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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