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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귀환-10화 (10/300)

#10화

“예끼, 이 사람아. 이 자리는 나 같이 할 일 없는 노인네나 앉을 수 있네.”

주호의 농에 단철량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가. 나로선 자네가 맹에 남아 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러게 말입니다. 딱히 마음에 와닿는 곳이 없군요. 본가에서 나올 땐 맹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강호 유람이라도 할 생각인가? 그러다 갑자기 사도맹에 입맹했다느니 마교에 입교했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날로 내가 찾아갈 줄 아세.”

“사도맹과 마교라. 나쁘진 않지만, 단 노인이 계시니 은퇴할 때까지 기다려야겠군요.”

“아직 십 년은 멀었네. 실없는 소리는 그 정도만 하고 정말로 어쩔 생각인가?”

“아직 결정한 것은 없습니다. 단 노인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강호 유람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도 두루두루 만나고, 아무래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식견이 늘지 않겠습니까?”

“뭐, 자네 나이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무공을 익히는데 편협한 시야는 좋지 않았다.

세상을 둘러보며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알기에 단철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그는 자신의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던 서찰 중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정천학관의 이름은 들어보았겠지.”

“들어만 보았겠습니까, 아쉽게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죠.”

“놈들도 보는 눈이 없구먼. 하여튼 작년보다 관생의 정원을 늘린다고 하더군. 거기까진 문제가 없는데 교관 인력이 부족해서 말이야. 정천학관이 어디 서당도 아니고 아무나 대려다 쓸 수는 없잖은가.”

“그렇죠.”

정천학관의 제일 큰 후원자들은 구파일방을 비롯한 오대세가였다.

물론 인원의 분포를 보자면 일 할을 조금 넘는 규모이긴 했지만, 명문이 괜히 명문이겠는가.

뒤떨어지는 이를 교관이라고 세워뒀다가 망신이라도 당하면 학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터.

“자네 실력이라면 충분하고도 남으세. 그곳에 가면 여러 사람을 두루 만나면서 경험을 쌓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그렇습니까.”

그 말에 주호는 솔깃한 마음이 들었다.

출가 후 제일 먼저 달려갔던 곳이 아닌가. 비록 그 문턱도 가보지 못한 채 입관 심사에서 떨어지고 말았지만, 그때의 아쉬움은 아직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관생도 아닌 교관이라.’

“어때, 솔깃하지 않나? 특히 이번 연도에는 인재들이 많이 입관 심사를 치른다고 하더군. 그들과 연을 맺어 놓으면 자네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네.”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아무리 맹주님께서 소개장을 써주신다고 하여도 저는 이렇다 할 사문이나 내세울 이름이 없습니다. 그건 분명 걸림돌이 되겠죠.”

“흠.”

그 말에 단철량은 제 수염을 쓰다듬었다.

얼마간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가 싶더니 돌연 고개를 들고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내 제자가 될 생각은 없는가?”

“제자, 말입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주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 강호는 무공이 강해서만 살아갈 수 없네. 배분이며 문파며, 온갖 잡다한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지.”

“그렇지요.”

“이건 조금 자랑이 섞인 말이지만, 무림맹주라는 직함은 어디가서 꿇리지 않는 이름이 아닌가.”

“그렇지요……?”

“그렇네. 그러고말고. 그러니 자네가 수락만 한다면 그런 형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싶네만.”

단철량은 은근한 기대를 담은 눈치로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주호로선 의아할 따름이었다.

단철량은 점창파의 소속은 아니지만, 그 계보를 잇는 무인이었다.

그와 더불어 무언가 복잡한 사정이 있어 이때까지 제자를 들이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호의를 의심하는 말이기에 실례가 되는 것임은 알지만, 어째서 이렇게까지…….”

“이렇게까지 해주느냐, 그런 말인가?”

담담한 그 어조에 주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절정에 달하는 경지가 올랐다곤 하나, 그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

“과거 일에 대한 사죄와 보상, 이라는 이유는 표정을 보니 먹히지 않겠군.”

단철량은 제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이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를 보니 내 소싯적이 생각나서 그렇다네. 이래봬도 옥면신룡이라고까지 불린 몸이야. 지금은 이런 주름투성이지만, 그때는 자네 못지않았다네.”

“하하하.”

그 말에 주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호의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적당한 이유지 않은가.

물론 그것보다 더 복잡한 속내가 있겠지만, 어차피 서로에게 좋은 것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제자는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에잉, 욕심 가득하기는. 당대 무림맹주의 첫 제자가 될 기회를 차버리다니.”

의사가 명백한 그 대답에 단철량은 아쉬움을 삼키며 농을 던졌다.

그것에 주호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에, 이런 건 어떻습니까?”

***

하남 성내는 정천학관의 입관 시험을 치르기 위한 후기지수와 그 일행으로 북적거렸다.

마차가 몇 대는 지나갈 수 있는 대로(大路)임에도 불구하고 빈틈이 없는 길을 지나며 주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올해 몰려든 인파가 이때까지의 규모를 넘었다는 소리는 과장이 아니겠어.”

중원제일학관이란 이름답게 중원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든 것 같았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객잔을 잡기도 힘들었다.

“교관이라.”

주호는 품속에 있는 한 장의 서찰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향후 거취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정천학관 쪽의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단철량 역시 품을 수 없다면 정천학관 쪽이 차선이라 생각했는지 순순히 물러났다.

주호로선 다행인 이야기였지만, 정천학관이란 이름에 살짝 설레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입관 심사는 총 열흘에 걸쳐 예선과 본선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예선에는 정원의 배수를 뽑아 기본적인 수준을 겨뤘고, 예선에 합격한다면 곧바로 치러지는 본선에서 순위를 매겨 그 절반은 가차 없이 탈락하는 구조였다.

심사의 공정을 위해 예선은 탁 트인 연무장에서 이루어졌다.

비단 시험을 보는 이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을 비롯해 뛰어난 후기지수를 영입하려는 문파의 일원들까지 가득 자리를 채웠다.

주호 역시 그 한쪽에서 시종일관 흥미로운 얼굴로 입관 심사를 바라보았다.

예선 시험은 설치된 비무장에서 교관과 비무를 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무위를 보이지 못한 이는 가차 없이 탈락했다.

와아아아아-!

이름있는 문파나 세가의 후기지수가 나올 때마다 관중들 사이에 환호가 터져 나왔다.

“호오.”

주호 역시 그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흘렸다.

심사를 치르고 있는 후기지수들을 보아하니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품고 있었다.

과거의 자신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지경이었으니, 아무것도 모를 그때의 치기에 쓴웃음이 나왔다.

‘쥐뿔도 없던 것이 무슨 강호인이 되겠다고.’

입관 시험의 첫날, 주호는 하루를 꼬박 그것을 구경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역시 이틀 차의 입관 심사를 위해 학관의 문이 활짝 열렸다.

교관 문의를 위해 접수처에 갈 찰나, 이른 시각부터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그 앞으로 죽 늘어서 있다.

입관 심사의 신청은 이미 마감이 되었지만, 간혹 뒤늦은 신청을 받는 때도 있었다.

일정에 늦은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하고 접수처에 향했으나, 모두 예외 없이 거절당했고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째 발걸음을 돌렸다.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주호는 이각은 기다린 끝에야 겨우 접수처의 무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주호라 하오.”

“입관 심사는 이미 마감되었습니다.”

앞의 사람에게도 했었던 응답에 주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입관하러 온 것은 맞지만, 생도가 아니라 교관이 되기 위해 왔소.”

“……?”

접수처의 무인은 주호가 당연히 입관 심사를 신청하러 온 줄 알았다.

많이 쳐주어도 약관을 조금 넘어 보이는 나이에 훤칠한 외모는 얼굴에 ‘나, 명문 세가의 후기지수요.’라고 써 놓은 것 같지 않나.

더욱이 이곳은 교관 접수처가 아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많은 것을 본 무인은 자신의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교관 접수처는 저 뒤에 있소.”

“…고맙소이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답변에 주호는 무안함을 감추며 허탈한 한숨을 내뱉었다.

무인이 가리킨 곳을 향해 걸어가니 입관 심사장보단 조금 작은 규모의 연무장이 나왔다.

아무래도 교관 쪽은 관심이 덜한 것인지 한산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연무장 가운데서 비무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입관 심사장보다 몇 배는 더 치열해 보였다.

“교관 심사를 신청하러 왔습니다.”

“지금 말이오?”

주호의 말에 접수처에 있던 무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관의 입관 심사는 오늘로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것도 한 시진 있으면 마감이 되었기에 더 신청할 사람은 없을 줄 알았다.

‘너무 젊어 보이는데.’

“지원 조건은 알고 있소?”

“물론이오.”

교관이 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신원과 일정 수준 이상의 무공, 그리고 나이가 스물여섯이 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인의 의문에 주호는 담담히 자신의 신원을 증명했다.

“…접수되었소. 지금 심사관들이 전부 심사를 치르고 있어 조금 기다려야 하오. 차례가 오면 불러줄 터이니 잠시 구경이라도 하고 있겠소?”

“저 앞에 있겠소이다.”

교관 심사는 입관 심사와 비교하면 일 할도 되지 않는 규모였지만, 가진 무공의 수준은 비교할 수 없었다.

쉬시시식-!

아무래도 가르치는 쪽인 만큼 후기지수보다 몇 배는 높은 수준의 비무가 비무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그중에 주호보다 강한 자는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경험을 겪은 이도 있었고,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의 유명세를 가진 이도 있었다.

“지원자가 더 있다고?”

주호가 각양각색의 무공이 펼쳐지는 심사를 구경하고 있을 때, 무인의 연락을 받은 누군가가 심사장 안으로 들어왔다.

올해로 불혹에 오른 팽대환은 오대세가 중 한 곳인 하북팽가의 출신으로 교관 심사의 총괄을 맡았다.

위쪽에서 무리하게 입관 규모를 늘린 탓에 교관을 추가로 뽑아야 했지만, 그 시기가 입관 심사와 겹친 탓에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장 어제 뽑은 교관들을 오늘 입관 시험에 써먹을 정도였으니.

그것도 더는 여력이 없어 오늘까지 교관 심사를 끝내려 할 찰나, 마지막 지원자가 있다는 소리에 한 손이라도 거들기 위해 그가 직접 이곳에 찾아왔다.

“저쪽의 지원자입니다.”

“…너무 젊지 않나? 제대로 확인한 것 맞아?”

“신분은 확실합니다. 산동의 주가장의 출신입니다.”

팽대환은 주호가 작성한 지원서를 읽어내려갔다.

나이는 스물여섯, 산동 하택의 주가장의 출신으로 사문과 무공은 일인 전승으로 이름은 없었다.

“무림맹에서 일했다, 라.”

“조금 전에 확인했는데 삼 년 전에 무림맹 소속으로 있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외당 소속이더군요.”

“외당? 기껏 해봐야 중급 무사 수준인데, 이류 언저리이지 않은가.”

팽대환의 얼굴에 짜증이 서렸다. 후기지수들의 수준만 하더라도 재능이 있는 이들은 입관하는 순간 일류에 근접한 실력을 지녔다.

그런데 고작 무림맹 외전 무인에 불과한 무인을 어디다 써먹겠는가.

“곧 하교관의 심사가 끝납니다. 끝나는 대로 부를 터니…….”

“아니, 내가 직접 하지.”

팽대환은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학관의 입관정원을 늘렸다는 소식에 어중간한 녀석들이 대거로 교관직에 지원했다.

그 탓에 쓸데없는 시간만 낭비한 터라 부아가 치밀은 차.

그렇기에 주호를 직접 지도해 본보기로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엄포할 생각이었다.

“자네가 마지막 지원자인가.”

“예, 주호라 합니다.”

팽대환은 심사를 구경하고 있던 주호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비어있는 비무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얼른 끝내지.”

“……?”

자신을 바라보는 싸늘한 눈초리에 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향한 태도에 무언가 날이 서 있는 것 같았다.

‘피곤해서 그런 것이려나.’

아무렴 며칠 동안 입관 심사의 준비로 고생을 했을 것이니 사람인 이상 피로가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

“본인의 이름은 팽대환이라 하네.”

도호刀虎 팽대환.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오대세가 중 한 곳인 하북팽가에서도 이름있는 자였다.

직계는 아니지만, 같은 항렬에선 적수가 없는 고수이며 그 영향력은 직계 못지않다고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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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도호(刀虎) 팽대환

나이: 마흔

직업: 정천학관 수석교관

경지: 초일류(九/十)

무공: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원보混元步

‘과연.’

주호는 내심 감탄을 흘렸다.

과연 하북팽가의 호랑이라 불리는 고수였다.

이전에 만난 혈사문주나 삭풍단주보다 젊지만, 그들보다 더 훨씬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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