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감히!”
혈사문주는 이대로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본신의 내공을 전부 끌어올리며 제 목을 붙잡은 주호의 팔을 내리쳤다.
쿵-!
보통 사람이라면 그것으로 팔이 찢겨 나가는 중상을 입을 터. 하지만 어째서인지 주호의 팔은 전과 다름없이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
서로 간의 격차가 있다 하더라도 일말의 틈은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그마저도 착각일 따름이었으니.
“그 더러운 입으로 감히 내 동생의 처지를 운운했겠다.”
콰득.
손에 힘을 더하자 혈사문주의 목의 뼈가 비틀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내었다.
“그, 어억-!”
공중에 들린 그의 팔다리가 요동쳤다.
주호는 혈사문주가 딱 버틸 수 있는 한계선까지 압박을 가했다.
동생인 주산의 모습이 감격스러워 잠시간 지켜봤다곤 하나, 혈사문주가 내뱉은 망언에 대한 대가는 철저히 받아낼 생각이었으니.
“…음.”
하지만 등 뒤에 닥쳐온 시선들에 그는 작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주산과 주예향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잔혹한 손속을 보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쿵-!
곧 결정을 내린 주호는 혈사문주를 그대로 땅에 꽂아버렸다.
단단한 지면을 뚫고 머리부터 깊숙이 땅에 박혀 들은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절명했다.
오직 그 몸만이 순리를 거슬러 거꾸로 꽂혀 있을 뿐이었다.
탁탁.
한 건 해결했다는 표정으로 허리를 편 주호는 손에 묻은 불쾌한 잔재를 털어냈다.
“…….”
그 덤덤한 모습에 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 어…….”
주가장의 문지방을 밟으며 서 있던 혈사문도들 역시 제 문주가 당한 것이 믿기지 않은 눈치였다.
벌어진 입을 겨우 다물고 몇 번이나 두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지만, 머리부터 땅에 꽂혀 있는 그 신형은 일말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도망가! 문파에 알려라!”
“문주님이 당하셨다!”
“괴, 괴물이다!”
잠시 뒤, 그들은 겨우 혈사문주가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인지 하나같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망가는 꼴이 꽁무니에 불이 붙은 망아지 같군.”
“혀, 형님. 정말로 혈사문주를 쓰러뜨리신 겁니까?”
그 꼴을 바라보며 조소를 흘리던 주호의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간 조사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직접 보아라. 녀석은 내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다.”
주호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자신의 솜씨가 어떠냐는 듯 주먹을 꽉 쥔 채 허공에 팔을 번쩍 들어 보였다.
주산과 같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주가장의 사람들은 그제야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 현실임을 깨닫고 환호를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첫째 도련님이 혈사문주를 무찌르셨다!”
환호성이 빗발치는 가운데 주산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조심스레 바닥에 꽂혀 있는 혈사문주의 신형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곤 발끝으로 그것을 툭툭 치며 정말로 숨이 끊어진 것인지 확인했다.
움찔.
“으허헉!”
반듯한 수직으로 세워져 있던 혈사문주의 발끝이 움직이자 주산은 기겁하며 몸을 뒤로 내뺐다.
물론 그것은 그가 건드린 것 때문에 흔들린 것뿐, 축 늘어진 몸 자체는 다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진짜로 절명했다.’
조심스레 팔을 잡아 맥이 잡히지 않는 것을 확인한 주산은 그것을 내동댕이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님께선 정말로 무림의 고수가 되신 겁니까?”
상가의 자제가 무인을 목표로 해봤자 그 한계는 뚜렷했다.
그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던 주산이었지만, 이렇게 우뚝 서 있는 형님의 모습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녀석.”
주호는 동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 헝클어트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들이 소속이 혈사문이라고 했지?”
주산은 형님의 스산한 얼굴을 보곤 깜짝 놀랐다.
“위험합니다! 아무리 형님께서 고수가 되셨다곤 하나, 혈사문엔 수십 명은 더 있을 터…….”
금방이라도 혈사문에 쳐들어갈 것 같은 모습에 황급히 만류해보았지만, 주호의 표정은 단호했다.
“산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형님의 모습에 주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강호는 은원이라는 이름의 실타래로 얽혀 있는 곳이다. 특히 혈사문 같은 사도의 문파들은 더더욱 민감하다 할 수 있다. 당장은 자신들의 문주가 죽어서 움직이지 못하겠다만, 누군가 이 일을 수습하고 다시 주가장을 습격하면 어찌하겠느냐? 너는 네 힘으로 이들을 지킬 자신이 있느냐?”
“…….”
그 말에 주산은 입을 열 수 없었다.
조금 전의 자신은 사람들을 희생해서라도 향이를 지키려 하지 않았던가.
‘녀석.’
주호는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인 동생을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릴 적부터 한마디를 하면 열 길을 깨우치는 영특한 아이였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아차렸을 터.
이 경험은 분명 그가 가문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더군다나 우리 막내를 그렇게 겁박했으니 그 대가는 받아내야겠지.”
“읏.”
주호는 그 옆에서 조용히 자신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던 주예향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오라버니, 정말로 괜찮으신 건가요? 저 때문이라면 무리하지 않으셔도…….”
주호는 혈사문주를 손쉽게 무찌른 것으로 자신의 실력을 보였다.
하지만 가족이기에 쉽사리 걱정은 지울 수 없는바.
주예향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자 그는 씩 웃으며 이번엔 상냥한 손길로 제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올 터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러곤 바닥에 처박힌 혈사문주의 시신을 끄집어내더니 그것을 옆구리에 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돌아올 것이니 밀린 이야기는 그때 다시 하자구나.”
“아, 사람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혈사문이 있는 곳은…….”
“되었다. 저리도 흔적을 남기고 갔는데 내가 찾지 못할까. 너는 집안사람을 잘 다독이고 있어라.”
그 말에 주산은 등 뒤를 돌아보았다.
혈사문주를 쓰러뜨려 더없이 밝은 분위기였지만, 그 이면에는 혈사문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그들의 걱정을 읽을 수 있었다.
“다녀오마.”
주호는 한 손에 혈사문주의 시신을 들고 손을 흔들며 문지방을 나섰다.
“오라버니!”
“……?”
몇 걸음이나 앞으로 걸어갔을까, 주호는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발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걱정이 드는 것인가.’
부서진 정문 사이로 주예향이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서 있다.
그것에 주호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일 찰나,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왕 가시는 거 확실하게 박살 내주세요!”
예상을 벗어난 이야기에 주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알겠다며 크게 한 번 팔을 휘젓고는 망설임 없는 발걸음과 함께 혈사문으로 향했다.
***
강호가 냉전 상황에 치달음에 따라 사파 연합체인 사도맹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각지로 고수들을 파견했다.
삭풍단 역시 그중 하나로 혈사문을 도와 산동에 영향력을 키우는 것에 주력했다.
그들은 산동의 맹호인 산동악가가 신경 쓰지 못하게끔 차근차근 일을 진행했고, 순조롭게 목표치를 달성해가는 와중이었다.
“뭐? 혈사문주가 죽어?”
그렇기에 그 갑작스러운 소식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것이 번쩍하더니 땅바닥에 내리꽂혀 그대로 절명하셨습니다.”
“저희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런 미친…….”
가월량은 삭풍단의 막내였다.
그런 만큼 작전을 나갈 때마다 잡다한 일을 도맡았는데, 각지 협력 조직의 인원 관리 역시 그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무슨 아닌 밤중의 홍두깬가.
눈여겨둔 계집을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떠난 사람이 죽다니.
거기에 혈사문주는 삭풍단으로 따져도 상위권에 속하는 일류고수였다.
그런 그가 단 한 수에 절명했다는 것부터가 말이 되질 않았다.
가월량은 순간 이놈들이 무슨 사고를 치고 덮으려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 일류 고수가 주는 무게감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계속해서 괴물, 괴물 거리며 허둥지둥하는 녀석들의 뒤통수를 때린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확히 파악할 때까지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고 어깃장을 놓았다.
그러곤 곧바로 심각한 얼굴과 함께 다급한 발걸음으로 내원을 향했다.
“단주님, 혈사문주가 당했답니다.”
“뭐? 그 색골 영감이 왜 당해?”
삭풍단의 단주 역시 그가 딱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을 보였다.
가월량은 혈사문주와 같이 갔던 문도들에게서 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삭풍단주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림맹에 우리 쪽 정보가 들어갔다는 말이 있긴 한데 그놈들 일 처리 하는 것이 뻔하지 않더냐.”
“그렇죠, 뭉그적거리면서 이곳까지 오려면 한세월 걸리겠죠.”
“아마 지나가다 똥 밟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그놈이 누군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겠지. 단원 몇 명이랑 가서…….”
콰아아아앙-!
돌연 그들의 말을 끊고 바깥쪽에서 커다란 광음이 울려 퍼졌다.
그 갑작스러운 소란에 삭풍단주와 가월량의 시선이 마주했다.
“설마?”
***
“여기가 혈사문인가. 옛날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주호는 주가장에서 도망친 이들의 족적을 쫓아 한 문파의 앞으로 당도했다.
분명 자신이 강호인이 되겠다며 떠나기 전까지는 존재도 하지 않았던 문파였다.
하지만 어느새 자리 잡았는지 주위에 있는 문파들보다 몇 배는 더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자, 그럼.”
주호는 제 문파의 이름같이 피처럼 붉은색을 가지고 있는 문 위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혈사문이 주가장을 겁박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은혜는 두 배로, 원수는 열 배로 갚는 것이 무림의 철칙이었으니까.
휙.
청룡신공의 내력이 담긴 일수가 가볍게 휘둘러졌다.
분명 단순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여파는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혈사문의 대문이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갑작스러운 광음에 놀라 뛰쳐나온 혈사문의 문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대문을 보곤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뒤로 담담한 표정과 함께 문지방을 넘는 주호의 모습을 보곤 문도 중 일부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고, 괴물이다!”
“그놈이 왔다!”
주호를 알아본 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커다란 굉음 이후 들려오는 비명에 문파 안쪽에 있던 무인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고, 이내 각자의 병장기를 꺼내 든 체 주호를 둘러쌌다.
“많이도 있군.”
시뻘건 무복을 입은 이들이 적게 잡아도 수십이었다.
하지만 한눈에 보아도 대부분 삼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잡배들이었다.
이름만 문파지 실상 파락호의 집단과 다를 바 없는 집단.
‘고작 이런 녀석들을 가지고 세력을 불렸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흑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정도 문파들이 보고 있을 리 없었다.
필연적으로 충돌이 있었을 테고, 여기 있는 것이 혈사문의 전력이라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었을 터.
타다다닷-
‘진짜는 저놈들이군.’
그런 주호의 생각을 입증하듯 발소리부터 여기 나와 있는 이들과 다른 몇몇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혈사문도들이 입고 있는 정복과는 달리 사막 모래와 같은 색의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있는 장년인은 혈사문주에 버금가는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이기에 본 문파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는가?”
“…하하.”
사도 문파답지 않은 고풍스러운 응대에 주호는 무심코 실소를 흘렸다.
보통 흑도에서 이런 상황이 일어났다면, 바로 육두문자가 날라오며 부모님 안부부터 물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렇기에 주호 역시 적당히 예의를 차려주기로 했다.
“지나가던 나그네일세.”
“…뭐라?”
“내가 어쩌다 살피니 이곳의 문이 참으로 부실하지 뭔가. 그래서 봉사 좀 할 겸 새로이 문짝을 달아주기로 마음먹었네.”
주호는 잠시 벽 쪽에 기대 놓았던 문짝을 들어 혈사문 안쪽으로 던져넣었다.
그것은 아까 혈사문주가 가져온 것으로 주예향과의 혼수품으로 준비해왔다던 문짝이었다.
혈사문으로 향하던 도중 문득 생각이 났기에 다시 주강으로 가서 문짝과 함께 혈사문주의 시신을 챙겼다.
이유는 당연히 그들이 주가장에 했던 것을 똑같이 갚아주기 위해서였으니.
“어때, 마음에 드는가?”
히죽 웃는 주호의 낯짝에 장년인은 살짝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대의 호의를 감사히 받도록 하지. 부탁하도록 하겠네.”
“…….”
예상과 전혀 다른 대답에 주호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서야 말로 개소리하지 말라거나 욕지거리가 날아와야 하지 않은가.
“쩝, 내가 실언을 했군. 말을 취소할 테니 다시 처음부터 하지.”
그는 다시 문지방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조금 옆의 벽으로 가서 주먹을 쥐더니 이내 전과 같이 벼락처럼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앙-!
이번엔 그 앞에 있던 벽이 터져나가며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주호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걸어 들어와 분노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구냐고?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다, 이 개새끼들아! 사도의 잡배 따위가 감히 내 동생을 탐내?”
“…….”
주호를 바라보는 삭풍단주 진무곡의 눈은 깊어졌다.
하는 행실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풍기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듯하군. 잠시 안으로 들어와…….”
“오해는 개뿔.”
주호는 단칼에 그 말을 끊어내며 조소를 흘렸다.
그러곤 들고 있던 혈사문주의 시신을 그들 가운데로 던졌다.
“어엇!”
혈사문도 중 한 명이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었고, 그들은 그 얼굴이 뭉개진 시신의 주인이 자신들의 문주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문주님!”
“문주님이 돌아가셨다!”
사도 문파는 원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임. 당연히 구심점은 혈사문주였다.
그리고 현재, 그 구심점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되돌아왔으니 그들의 결속력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후환을 남기지 않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주호는 마치 저승사자가 사형선고를 내리듯,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