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흠.”
주호는 삼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기억하고 있는 풍경과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자신의 상황이 예전과는 큰 차이가 있었기에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장원의 벽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자니, 예전엔 보지 못했던 낡은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곧 그는 주가장이라는 현판이 걸린 장원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옛날에는 이것이 그리도 보기 싫더니.”
주가장은 상계 가문.
그리고 주호는 그곳의 장자로 태어났다. 순리대로라면 가문을 물려받아 상인이 되었을 터.
하지만 그는 제 운명을 거부했고, 무인이 되기 위해 강호 무림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지금, 우여곡절 끝에 육 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주가장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흠.”
두 번째 침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가족을 볼 생각에 가벼웠던 발걸음은 막상 대문 앞에 서자 천근추가 걸린 듯 무거워졌다.
주가장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온 곳이지만, 동시에 스스로 문을 박차 뛰쳐나온 곳이 아닌가.
‘분명 혼쭐이 나겠지.’
기억 속 아버지의 성정은 불과 같으셨다.
스물여섯에 달하는 장자라 할지라도 버릇을 고쳐놓겠다며 망설임 없이 매를 드실 터.
하지만 언제까지고 밖에서만 서성거릴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에 주호는 점차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오기 시작하는 무사에게 다가갔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주가장의 무사의 어조는 평범했지만, 그 눈빛엔 분명 숨길 수 없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출가한 지 오래되었으니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 터. 쓴웃음을 지은 주호는 이내 각오를 다지곤 입을 열었다.
“본 장원의 장자인 주호다. 삼 년만의 귀향이로군.”
“…하.”
그 이야기를 들은 무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참나, 이젠 하다하다 별 이상한 것들……?”
하지만 곧 주호의 얼굴을 보곤 두 눈이 커졌고, 이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으어억-!”
그러곤 경기를 일으키며 대문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들어간 것이 벌써 일각째.
주호는 나름대로 조금 기대를 품었다.
집 나간 자식이 오랜만에 돌아와 얼굴을 비춰주었으니, 자신을 그리워하던 부모님과 동생들이 맨발로 뛰쳐나와 맞아주지 않을까.
하지만 얼마가 지나도 잠잠한 장원의 내부에 살짝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예전에 출가했을 때처럼 다시 문을 박차고 당당히 안으로 들어갈까, 진지하게 고민이 들었을 때.
“…아.”
무언가가 주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난 몇 년, 자신은 아마 사망 처리가 됐을 것이리라.
말단이나마 무림맹에 몸을 담고 있었기에 그 부고가 본가에도 전해졌을 터.
그러던 차에 몇 년이 지나 그 장본인이 멀쩡하게 돌아온다면, 놀라지 않을 수가 있을까.
“물러가라며 소금을 맞지 않은 것이 다행…….”
퍽.
그와 동시에 주가장의 정문이 벌컥 열리며 새하얀 소금 다발이 주호의 얼굴을 때렸다.
설사 사천당문의 절기인 암천화우가 코앞에서 터진다고 하여도 그 암기를 하나하나 잡아낼 수 있는 무공을 지닌 그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아니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이럴 줄은 몰랐기에 당혹감이 컸다.
“네놈이더냐! 감히 내 형님의 흉내를 낸 것이!”
씩씩거리며 뛰쳐나온 한 사내가 자루째 가져온 소금을 재차 두레박으로 퍼서 내던지려 했다.
“산아.”
주호는 얼굴에 묻은 소금을 닦아내며 제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어렸을 적엔 그리 허약하던 녀석이 이젠 소금 자루를 번쩍 들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 모습에 감개무량해진 주호가 아련한 표정을 짓자, 잔뜩 화가 났던 주산의 얼굴에 점차 당혹감이 깃들었다.
어째 눈앞에 있는 남자의 모습이 제 기억 속에 있던 형님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형님? 정말로 형님입니까?”
아니. 조금 성숙해지긴 했지만, 오히려 흘러간 세월을 생각하면 딱 들어맞았다.
동생이 드디어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에 작게 한숨을 내쉰 주호는 두 팔을 벌리며 다시금 그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이로구나, 산아. 이리로 오너라. 어디 한 번 안아보자…….”
퍽.
하지만 다시금 입안에서 느껴지는 짠맛에 주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산아? 나다, 주호. 네 하나뿐인 형이…….”
“형님이고 나발이고!”
주산은 아예 소금을 자루째로 집어 들어 내던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미리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주호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받아내었다.
그의 두 눈은 바람에 흩날리는 자그마한 씨앗 하나하나 조차의 생김새까지 파악할 수 있었지만, 소금 자루의 뒤를 이어 휘둘러진 두레박까진 미처 담아내지 못했다.
따악!
경쾌한 소리가 그 주위를 울렸다.
얼마나 커다랬는지 장원 안쪽에 있던 사람이 어디 돌이라도 쪼개졌냐며 문밖으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을 정도였다.
“…환영 인사가 거칠구나.”
동생에게 얻어맞아 고개가 뒤로 젖혀졌던 주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이마가 찢어진 것인지 한 줄기의 피가 그의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
주산은 손에 든 산산이 조각난 두레박의 파편을 내려놓은 채 성큼성큼 그에게로 걸어왔다.
주호는 내심 긴장했다.
솔직히 주먹으로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어렸을 적부터 이 형님에게 가득 존경심을 가지고 있기에 적어도 손찌검은 하지 않을 것이리라 믿었다.
덥석.
주산은 그대로 몸을 날려 제 형을 안았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감촉에 그는 이제야 정말로 제 형님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왜! 왜 이제야 돌아오셨습니까!”
주산은 돌연 그간 설움이 복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간 얼마나 고생했던가.
아버지는 강호인이 되겠다고 집을 뛰쳐나간 형님의 모습에 이성을 잃으셨다.
곧바로 그 뒤를 따라나가 팔다리를 분질러서 데려오겠다며 얼마나 난장을 피우셨는가.
그런 아버지를 겨우 진정시키고 형님의 공백으로 생긴 소장주의 자리는 자신이 대신 채웠다.
집을 나간 것은 잠깐의 치기일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형님을 기다리며 밤을 지새웠던 날이 부지기수였다.
간간이 전해 듣기로 무림맹에 들어간 것은 알고 있었다.
비록 말단 무사였지만, 제대로 무공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무림맹에 들어간 것이 어디인가.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아버지 역시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셨던 것으로 기억했다.
비록 원하는 고수가 되진 못했지만, 무림맹의 무사가 되었으니 언젠가 집에 얼굴을 비추리라.
하지만 돌아온 것은 형님이 아닌, 부고를 알리는 서신이었다.
주가장은 난리가 났다. 아버지는 사방으로 그것을 알아보시다 지병에 몸져누우시고, 갑작스럽게 세를 부풀린 혈사문은 시시각각 압력을 가해오고 있었으니.
미숙하디 미숙한 자신만이 주위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겨우 가문을 꾸려나갔을 뿐.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마음을 졸였던 그에게 겨우 의지할 곳이 생겨났다.
그렇기에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주호의 가슴팍을 부여잡으며 대성통곡했다.
“다시는, 다시는 저희를 버리지 마십시오.”
“…미안하다.”
다 큰 청년이 되었음에도 자신의 품에 매달려 눈물을 흘리는 동생의 모습에 주호는 고개를 떨궜다.
미안했다.
정말로 미안했다.
그때의 철없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고, 저주스러웠다.
동생의 얼굴을 보아라.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으면 자신보다 더 어린 녀석이 더 늙어 보이는가.
주호는 입안에서 느껴지는 짠 기를 애써 눌러 참으며 얌전히 품에 안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
물론, 갑작스러운 소란에 뒤늦게 밖으로 나온 주예향으로선 알 수 없는 이야기였으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그렇기에 서로 끌어안은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남정네들을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근래 주가장은 혈사문의 눈치를 보느라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갔다.
하지만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문의 첫째가 멀쩡히 살아 복귀한 날이 아닌가.
주호는 무안한 표정으로 그러지 말라고 했으나, 주산은 막무가내로 일을 밀어붙여 온 동네가 울릴 정도로 큰 잔치를 벌였다.
“그동안 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형님? 삼 년 전에 무림맹에선 분명 돌아가셨다고 서신이 왔었는데.”
“맞아요, 정말 돌아가신 줄 알았다고요!”
시끌벅적한 주가장의 한복판.
주호는 의문 어린 표정으로 물어오는 동생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답했다.
“말도 마라. 고약한 늙은이에게 잡혀 무공 수련만 계속했다.”
실제로는 고약한 늙은이도, 고지식한 스승도 없었다.
한 점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무저갱 속에서 홀로 살아왔던 세월이 무려 삼 년에 달했을 뿐이었다.
먹을 것도 없어 벽에 자라는 이끼를 뜯어 먹으며 허기를 채웠고, 천장에 고여 떨어지는 이슬방울로 갈증을 달랬다.
미치지 않은 것으로 다행인 일이었으나, 이런 좋은 날 굳이 그런 우중충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대충 지어낸 말로 적당히 둘러대며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부모님은 어디 계시느냐? 아무리 집 나간 아들이라지만, 몇 해 만에 돌아왔거늘…….”
가벼이 이야기를 넘긴 주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창 잔치가 벌어지는 와중, 사람들은 무사히 생환한 자신에게 한가득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그 사이에서 부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에 주호는 살짝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연세가 연세신지라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말입니다. 지병 때문에 사천으로 요양하러 가신 지 꽤 되었습니다.”
“사천? 아, 어머니의 본가로 가셨구나.”
“예, 며칠 전에 온 전서로는 이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셨다고 합니다. 잔치가 끝나는 대로 형님께서 돌아왔다고 연통을 보내겠습니다.”
“되었다. 몸이 좋지 않으시면 아들 된 도리로서 내가 가야겠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께서 집을 박차고 뛰쳐나가셨습니까?”
“…큼, 음식이 맛있어 보이는구나.”
뼈가 잔뜩 들어있는 동생의 말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진 그는 괜한 음식만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느새 훌쩍 자랐지만, 여전히 자신의 눈에는 아이처럼 보이는 두 동생.
그리고 집을 나가기 전보다 주름이 조금 더 늘었으나, 아직 정정한 가신들까지.
서로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떠들고 있자니 더할 나위가 없는 행복이 느껴졌다.
‘이 순간이 계속되면 좋으련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는가.
우습게도 그저 그 지옥 같던 무저갱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나저나 무공을 익히셨다고 하셨습니까.”
“어떤 무공이에요?”
두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들의 모습에 주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검기라도 일으킨다면 놀라 자빠지겠지.’
집 나갔던 망나니 아들이 고수가 되어 돌아왔으니, 놀라지 않고서야 배길까.
“음?”
곧 그들이 지을 표정을 기대하며 입을 열 찰나, 주호는 저 밖에서부터 다가오는 선명한 기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산아, 혹시 더 올 손님이 있느냐? 그, 어디 주변 문파의 고수분이라던가.”
“예? 그런 분은 없습니다.”
“그럼 누구지?”
그 물음에 주산과 주예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
콰아아아아아앙-!
돌연 멀쩡했던 주가장의 정문이 폭발하며 잔해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더러는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더러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들에 반해 비교적 정문과 가까이 있던 주호의 행동은 간결했다.
‘위험하다.’
쪼개진 나무 조각 같은 파편들이 폭발에 휘말려 쏟아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찰나에 상황 파악을 끝낸 그는 들고 있던 음식들을 내려놓고 두 동생의 팔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크하하하하하!”
그와 동시에 폭발한 정문 쪽에서 피어오른 자욱한 먼지 사이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침 성대하게 잔치도 벌이고 있구나! 어서 내 색시를 내놓거라, 이놈들아!”
일단의 무리가 허락도 없이 주가장에 침입했다.
그 가장 앞에는 시뻘건 장포를 입은 중년 남자가 진한 웃음과 함께 흉흉한 눈빛을 내뿜으며 걸어 나왔다.
“…어디 다친 곳은 없더냐!”
하지만 주호는 누가 웃던지 말던 지 품에 안은 두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터져나간 문의 조각들은 자신이 받아냈지만, 혹시나 상처를 입지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기에 다급한 시선으로 동생들의 안위를 살폈지만, 다행스럽게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듯싶었다.
“…혀, 형님!”
“오, 오라버니! 등에 상처가…… 없네?”
곧 정신을 차린 둘은 비명을 지르다시피 소리쳤지만, 이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떨어져 내리는 파편들을 모조리 등으로 받아낸 것치고는 그의 상태가 너무 멀쩡하지 않은가.
“말하지 않았느냐? 무공을 익혔다고.”
주호는 씩 웃으며 손을 털었다.
그러자 가루가 된 나무 부스러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내 비록 산이가 뿌린 소금은 피하지 못했지만, 이런 나무 쪼가리 정도야 신경 쓸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