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귀환-1화 (1/300)

#서장

그래, 의뢰 내용이 무공 하나를 찾고 싶다는 것이었지.

이 넓디넓은 강호에 얼마나 많은 무공이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자네가 우리 통이문에 찾아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네.

강호에 정보 조직은 많지만, 제대로 된 곳은 우리 통이문을 비롯해 개방과 하오문 밖에 없지 않은가.

그 비루먹은 거지들은 제 짝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곤 무거운 엉덩이를 떼지 않고 하오문은 상종하기도 싫은 저급한 녀석들이니 말이야.

우리가 가격은 좀 비싸도 일은 제대로 처리한다니까?

참, 의뢰는 무조건 선수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들었겠지?

…어이쿠, 묵직하기도 하군. 돈은 확실히 받았네.

자, 어디 보자 자네가 말한 무공이…….

이름을 보니 무슨 창술 같더군?

유명한 창술을 꼽으라면 당연 오대세가 중 한 곳인 산동악가의 것을 최고로 치지 않나?

예전에는 양가창법을 최고로 쳐줬지만, 그쪽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지 않은가.

아, 자네 세대에겐 이화창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려나. 나름대로 한 획을 긋긴 했는데 너무 옛날 무공이라 지금은 익힌 이가 거의 드물다고 할 수 있지.

…뭐? 창술이 아니라고?

음, 그러면 골치가 조금 아파지겠구먼.

글쎄, 무공 목록을 대충 훑어보니 비슷한 이름으로 상비창술이나 상아창술 같은 건 있긴 했는데.

참, 낙장불입이라고 이미 한 번 지급한 의뢰금은 환불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겠지?

흠흠,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말게.

세상사가 다 이렇게 돌아가는 법 아닌가.

설사 자네가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해도 우리가 이렇게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겠나.

혹시 모를까 봐 이야기해주는 것인데 일류 고수 셋이 번갈아 가면서 이곳을 지키고 있다네.

워낙 세상이 흉흉하지 않은가.

저번에는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갑자기 검을 빼 들고 위협하는 후안무치한 놈도 있었고 말이게.

이 늙은이도 제 몸 귀한 줄 아니 방비는 해두었지.

뭐, 자네는 전혀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해두는 것일세.

나중에 다른 이들이 우리 통이문을 이용한다고 할 때 일러줘도 괜찮고.

…참, 이야기가 또 샛길로 빠졌군.

흠흠, 그래서 어디까지 했더라.

아, 그렇지.

그 상태창이라는 무공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1화

그믐의 어느 밤.

주호는 높게 솟은 전각의 지붕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달빛이 적은 하늘은 어두컴컴하기 그지없었지만, 그에게는 더없이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다.

“…시원하구나.”

머릿결을 간지럽히는 한 줄기 바람에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대로 깊은 밤이 주는 언제까지고 즐겼으면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호에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막아라! 곧 지원이 올 것이다! 아가씨를 중심으로 천천히 후퇴해라!”

눈앞에 펼쳐진 장원의 내부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흑색 무복을 입은 수백의 무사들이 이제 고작 스물 남짓한 인원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일행의 수장으로 보이는 고수가 악을 쓰며 그 앞을 막아섰지만, 그 끝이 머지않아 보였다.

“…상태창.”

[상태창]

이름: 주호

별호: 월영사신(月影死神)

직업: -

나이: 스물여섯

소속: -

무공: 청룡신공(五成)

경지: 절정(一/十)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그 앞으로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신묘한 술수였다.

고작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인적 사항과 익힌 무공, 그리고 그 경지를 볼 수 있다니.

“…….”

하지만 상태창을 바라보는 주호의 눈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았다.

고금제일인 무황(武皇).

삼 년 전에 발견된 그의 비동은 그야말로 폭풍의 핵이라 할 수 있었다.

비동이 자리하고 있는 안휘로 수많은 이가 몰려들었고, 주호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사람이 몰린 곳엔 악의가 솟고, 욕심이 모인 곳엔 피가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

천마신교의 마인들이 무황의 무공을 독점하기 위해 검을 빼 든 것이 혈겁의 시작이 되었다.

지금에 와선 비동혈사라 불리며 뭇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참혹한 과거라 불리며 기록될 정도였으니.

하지만 주호는 기어이 살아남았고, 수많은 시체를 지난 끝에 무황의 무공을 손에 넣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그것이 이런 형태의 기묘한 주술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현재까지 고금제일인이라 불리는 이의 무공이었다.

조금 정도는 특별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을 터.

비동을 빠져나온 그는 그 직후부터 마교와 사도맹과 관련된 지부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이전에 죽은 동료들에 대한 복수였으며, 추모였다.

아니, 사실은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강해졌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두 자릿수가 넘는 지부를 박살 내고 수백의 인원을 죽였다.

피 냄새가 손에서 가시질 않았지만, 그리 개의치 않았다.

피는 피로서 갚는 법. 후에 자신 역시 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덕분에 웃기지도 않은 이름까지 따라왔군.”

월영사신(月影死神).

깊은 밤중 달빛을 뒤로 한 채 마교와 사도맹의 지부를 습격했기에 붙은 별호 같았다.

다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남궁세가. 슬슬 봉문을 푼다고는 들었거늘, 그것이 오늘이었던가.’

남궁세가는 비동혈사 때에 세가의 후계자 소가주인 검절 남궁벽이 사망하는 참사를 당했고, 그 때문에 삼 년간 봉문을 선언했다.

그리고 오늘로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흉수인 마교 지부를 공격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건재함을 드러내려는 생각인가. 뭐, 의도는 좋다만…….”

전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 지부는 주호가 오늘 밤의 목표로 했던 곳이었다.

적당한 규모의 지부로 인원은 많아야 오십을 조금 넘을 것이 확실했고, 가장 고수라는 지부장 역시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다.

남궁세가의 전력으로도 어렵지 않은 상대였을 터. 하지만 습격의 정보가 새어 나갔는지 예상을 뛰어넘는 전력이 매복하고 있던 탓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오십에 이르렀던 인원은 반절도 넘게 줄어 있었고,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면.”

철컥.

주호는 제 옆에 기대 놓았던 검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동혈사때 사망한 검절 남궁벽에게는 받은 은혜가 적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남긴 유품과 식량 덕분에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으니.

탁.

가볍게 내디딘 한걸음에 주호의 신형이 장원의 한가운데로 내려앉았다.

“…….”

치열했던 전장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조금 전까지 주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 범상치 않은 기세에 남궁세가 무인들의 얼굴엔 희망이, 마인들에게는 경계심이 서렸다.

“웬 놈이냐.”

마인 중 제일 기세가 빼어난 고수가 앞으로 나오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하지만 주호는 대답지 않았고, 그저 왼손에 든 철검을 뽑으며 남궁세가 쪽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 계시오.”

“…고인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남궁세가의 고수가 황급히 포권하며 인사를 하려 했지만, 주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상태창의 능력으로 그가 섬뢰단의 부단주인 남궁진영이라는 것을 파악했기에 더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월영사신?”

그때, 그의 귓가로 한줄기 미성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피비린내 나는 전장과 어울리지 않은 고운 미성이었기에 슬쩍 시선을 보내자, 지친 얼굴로 검을 쥐고 있던 여성을 볼 수 있었다.

‘남궁연. 남궁의 직계가 어째서 이런 자리에.’

안휘제일미 남궁연.

세가의 마지막 남은 직계로 이런 습격 작전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하지만 주호는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뒤쪽에 흉흉한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수백의 마인이 남아 있는바. 그러는 와중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껏 열다섯 지부를 부쉈고, 육백마흔다섯을 베었다.”

주호는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두 눈을 감은 채 깊은숨을 내쉬었고, 자신을 향하는 수백 쌍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중 단 한 명조차 놓친 적이 없으니.”

밤이 깊은 시각이라 주변은 어둡기 그지없다. 장원 내부를 밝히던 화롯불은 조금 전의 싸움으로 인해 엎어져 광원이라곤 하늘에 있는 희미한 그믐달밖에 없었으니.

“살아가겠다는 덧없는 생각은 버리도록 하여라.”

하지만 주호의 두 눈이 뜨였을 때 피어오른 시퍼런 불꽃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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