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一章 태명회(太命會) (12/35)

第十一章 태명회(太命會)

휘이잉-!

쌀쌀한 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깊은 밤.

어둠이 깃든 대지 저 멀리, 한 채의 건물이 을씨년스럽게 자리잡고 있었다.

몰아치는 추풍(秋風)에 금시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장원.

모진 풍상(風霜)을 겪은 듯 문짝도 떨어져 나가 있었고, 담장도 군데군데 허물어진 것이 여간 흉칙스럽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원의 편액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만화장(萬和莊)>

만화장이라면 당대 역용의 최고 권위자인 천면신옹 전우의 장원이 아닌가?

일순.

바스락-!

메마른 나뭇잎이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한 인영이 등장했다.

강직한 인상의 백의서생.

그의 등에는 두 자루의 검이 교차되듯 메여져 있었다.

서생 차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검의 명칭은 상로쌍검!

그렇다면 이 곳에 등장한 인물은 바로 진유걸이 아닌가?

인피면구를 쓴 그는 지금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눈빛으로 만화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 대가! 못난 제가 이제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반가워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군요. 정매는 그 후 어떻게 됐는지……."

그는 감회가 깊은 듯 쓸쓸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 만화장이 폐허가 되었구나.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이다."

주수연과 진유걸에게 인피면구를 주어 그들의 도주를 도왔다는 명목으로 참형을 당한 천면신옹 전우.

진유걸은 그의 잘려진 수급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는 침통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며 만화장으로 들어섰다.

여기저기 널려진 기왓장과 무너진 건물들이 지난날의 번영을 암시해 주고 있었다.

이 때 돌연, 극히 미약한 음향이 진유걸의 청각을 자극했다.

그것은 옷자락과 풀이 부딪치는 아주 경미한 소리였다.

"후원 쪽이군."

그는 말과 함께 어깨를 가볍게 한 번 흔들었다.

순간, 그는 한 줄기 연기처럼 날아오르며 건물 지붕 위로 살짝 내려섰다.

지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십여 장 아래쪽에 누군가 숨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울창한 잡초 속에 몸을 감추고 있었는데 매우 우스꽝스런 자세였다.

벌러덩 드러누워 한쪽 손에는 술병을 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코를 후벼대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생김새는 가관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추남이었다.

눈썹은 불장난하다가 타 버린 듯 반밖에 없었고, 눈은 새우처럼 가늘고 작았다. 게다가 코는 위치를 잘못 잡아 벌러덩 제껴져 있어 비라도 오면 수난을 겪어야 할 정도였다.

또한 그의 입은 메기처럼 큼직하여 솥뚜껑 하나가 들락날락할 지경이었다.

진유걸은 그의 모습을 보자 킥!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녕 괴물이로군. 천하에 저런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는데… 하지만 무척 배짱이 두둑한 자임에는 틀림없군.'

그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그 추괴로부터 삼 장쯤 떨어진 곳에 세 명의 회의인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괴는 그 회의인들의 뒤를 추격해 온 것으로 보였다.

진유걸은 추괴가 쫓는 회의인들의 정체가 누군지 무척 궁금했다.

'저들이 어떤 인물인데 저 괴물 같은 자가 쫓아다닐까?'

진유걸은 지붕 끝에 몸을 바싹 낮추며 청각을 돋우었다.

그러자 한 회의인의 걸직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계속된 사건으로 인해 회주님의 신경이 몹시 예민해지셨네. 광혈풍란 자는 진정 신출귀몰한 자임에 틀림없네."

일순, 진유걸은 그들의 입에서 자신의 명호가 튀어나오자 바짝 긴장하였다.

이번에는 약간 간사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회주님의 신임은 더욱 확고해지지 않았나?"

이 말에 진유걸은 뭔가 꼬리가 잡히는 듯했다.

'이 자들의 회주라는 자가 누구의 사주를 받고 있는 모양이군. 강남무림의 풍운신마장 우열이나 강북녹림의 비도혈객 왕우극을 조종한 인물… 그가 과연 누굴까?'

진유걸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것들을 짐작하게 된 것이다.

우열과 왕우극이 죽었으니 배후 인물은 당연히 남은 하나를 신임하지 않겠는가?

이 때 또 다른 음성이 흘러 나왔다.

"어쨌든 본회가 무림에 군림하게 될 날도 이제 멀지 않았네. 그건 그렇고, 다른 친구들은 왜 아직 소식이 없지?"

그들은 하나같이 음흉한 얼굴에 태양혈이 불쑥불쑥 돌출되어 있어 일견하기에도 하류배 같지는 않았다.

바로 그 때였다.

"웬 놈이냐?"

갑작스런 고함 소리에 진유걸은 자신이 들킨 줄 알고 움찔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외침은 진유걸이 아니라 여유를 부리고 있던 추괴에게 던져진 것이었다.

먼저 와 있던 세 명 외에 다른 세 명의 회의인이 안으로 들어서다 그 추괴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추괴는 정체를 들키자 믿을 수 없을 만치 신속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달빛 아래 그의 화려한(?) 몰골이 모두 드러났다.

흡사 수세미처럼 뒤엉킨 머리카락, 너덜너덜한 의복, 거기다 평생 씻어 보지 않은 듯 때가 덕지덕지 낀 손발… 그야말로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그래도 자신의 의복을 상당히 아끼는 듯 툭툭 먼지를 털며 들켰다는 것이 원망스럽다는 듯 투덜댔다.

"제기랄! 이십 년밖에 안 입은 옷을 닳려 가며 숨어 있었는데 발각되다니……."

그러자 여섯 명의 회의인이 일시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상대의 걸레쪽 같은 옷과 그의 흉물스런 용모 때문이었다.

"이 죽일 놈! 차림새를 보아 하니 거렁뱅이 같은데,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아예 말아라."

한 명의 회의인이 욕설을 퍼부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흉폭한 기세에 추괴가 자지러지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아니? 소생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러십니까요?"

그러자 나이가 많아 보이는 회의인이 나섰다.

"이 놈! 숨어서 우리들을 지켜본 것이 어찌 잘못이 아니란 말이냐?"

"그렇다면 소생만 가지고 그럴 게 아니라 공평하게 저 사람도 죽여야죠."

추괴는 말과 함께 갑자기 지붕 위에 몸을 숨기고 있는 진유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순간, 회의인들은 화들짝 놀라며 그가 가리킨 곳으로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여우 같은 놈!'

진유걸은 내심 한 마디 욕설을 내뱉으며 신형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회의인들을 추궁하고 싶었던 참이라 망설이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얏-!"

추괴는 그 때를 노렸던지 대성일갈을 터뜨리며 미끄러지듯 이 장 밖으로 물러났다. 동시에 땅을 박차며 비스듬히 월광을 갈라 갔다.

휘휙-!

그 일련의 동작이 어찌나 신속했던지 회의인들은 멍청하게 쳐다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깐 사이 추괴는 담장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한 회의인이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쫓아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세 명의 회의인이 빛살처럼 신형을 폭사했다.

휙- 휙- 휙-!

일진의 소성을 남기며 그들은 담장을 넘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 불쑥 담장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닌가?

"으헉!"

"앗!"

추괴를 추격하던 세 회의인이 기겁할 듯 놀라며 신형을 멈춰 세웠다.

그들은 자신들을 가로막은 물체를 확인하는 순간 더욱더 경악성을 내질렀다.

"으아악……!"

"허어억……!"

쌍검을 둘러멘 백의서생.

그는 분명 지붕 위에 있던 그 자가 아닌가?

그런데 어느 틈에 날아와 자신들을 가로막고 있다니……?

회의인들은 그의 등장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가 있던 지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곳에는 지금 자신들의 동료들이 우왕좌왕하며 그의 종적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장내에 남아 있던 회의인들은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조차 모르는 듯했다.

세 명의 회의인들은 순간, 머리끝이 쭈뼛 서는 듯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들은 공포심으로 사색이 된 채 일제히 외쳤다.

"여기다!"

그 소리에 놀란 나머지 세 회의인이 민첩하게 달려왔다.

그들 역시 경악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 중 수뇌 격인 중년인이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대단한 경공조예를 지니고 계시외다. 화로검(火爐劍) 조모(曹某)가 미처 고인을 몰라뵈었소이다."

진유걸은 그를 지그시 쏘아보며 코방귀를 뀌었다.

"이제 보니 소호(巢湖)의 졸개들이었군."

진유걸은 화로검 조양귀(曹陽貴)가 안휘성(安徽省) 소호 일대를 주름잡고 있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순, 화로검 조양귀는 진유걸의 반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조모를 알고 있다면 어디에 속해 있는지도 알 듯한데 시비를 걸다니… 매우 배짱이 두둑하시군."

"대단잖은 네놈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본 공자가 알게 뭐냐?"

화로검 조양귀는 진유걸의 냉막함에 등골이 다 시려 왔다.

"네놈은 이 조모와 본 태명회(太命會)를 너무 얕보는구나."

그는 은근히 자신의 방파를 내세웠다.

"태명회?"

진유걸이 의아한 얼굴을 하는 순간.

"흐흐흐흐… 왜? 본회의 위명을 들으니 오금이 저리느냐?"

돌연, 어둠 속에서 괴괴한 음성이 바람을 타고 새어 나왔다.

이어 붉은 장포를 입은 오순 가량의 노인이 유령처럼 등장했다.

그는 칠 척에 달하는 키에 음침한 눈을 가진 인물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의 안면도 장포 빛깔처럼 새빨갛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달빛 아래에서 본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공포스러워 보였다.

'적면노괴(赤面老怪) 황원우(黃元宇)!'

진유걸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내심 경계했다.

그가 출현하자 화로검 조양귀를 비롯한 나머지 오 인의 회의인이 재빨리 포권일례를 취했다.

"속하들이 향주님을 뵙습니다."

순간, 진유걸은 쇠뭉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경악하였다.

'아니? 적면노괴는 사파의 거두(巨頭)로 알려져 있는데, 겨우 한 방파의 향주급에 불과하다니… 실로 놀랄 일이로구나.'

그가 이렇듯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적면노괴 황원우.

그는 안휘성 일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파의 거물(巨物)이었으며,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였던 것이다.

일찍 무림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안휘성의 최절정 고수로 알려진 금마혼천신(金馬魂天神)의 제자로 입문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극양의 무공으로 알려진 태양경(太陽經)의 일부를 전수받았다. 그 때문에 황원우의 얼굴이 핏빛으로 변한 것이다.

이것은 극양(極陽)으로 이루어진 태양경을 연성하게 되면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진유걸은 적면노괴의 말투에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흉내냈다.

"적면노괴! 금마혼천신은 요즘 잘 지내느냐?"

진유걸이 금마혼천신과 친구 사이인 것처럼 굴자, 적면노괴의 눈에서 무서운 살광이 뿜어졌다.

"어린 놈!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는 것으로 미루어, 사는 데 염증을 느낀 모양이로구나."

그러자 진유걸은 유들유들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네놈의 사부인 금마혼천신도 본 공자 앞에서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는데 정녕 버릇이 없구나."

그 소리에 적면노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노부가 오십 평생을 살았어도 너같이 무례한 놈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네놈의 심장은 무쇠라도 된단 말이냐?"

그가 고래고래 악을 써 대자, 회의인들이 진유걸의 주위를 빙 둘러쌌다.

돌연.

"사(死)-!"

적면노괴의 입에서 죽음의 통첩장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회의인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며 검을 퉁겨 냈다.

"차앗-!"

찰나, 진유걸의 입에서도 기합성이 터지며 두 줄기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쇄쇄쇄쇄쇄액-!

정녕 전광석화를 방불케 할 절륜한 검법이었다.

회의인들은 단지 눈앞을 스쳐 가는 빛살 같은 검기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그들은 각기 목과 가슴 부위 등에 극렬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그것은 그들이 태어나서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아픔이었다.

이어 터져 나오는 끔찍스런 단말마의 행렬들.

"으아아악……!"

"허어억……!"

"크아악……!"

구천지하(九天地下)로 떨어지는 절규성이 밤하늘을 무참히 찢어 놓았다.

회의인들은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썩은 고목처럼 바닥에 고꾸라졌다.

쾌검(快劍)!

정녕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초였다.

당사자인 진유걸조차 자신의 절륜무비한 검세에 대해 놀랄 정도였다.

그러니 적면노괴 황원우의 놀라움은 얼마나 극심할까?

그는 넋 나간 사람마냥 진유걸을 바라보며 더듬거렸다.

"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노부는 이제껏 이토록 빠른 검법이 존재한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진유걸은 그를 냉랭히 응시하며 한 마디 던졌다.

"태명회주란 자는 대체 어떤 인물이냐?"

"내 질문에 먼저 답해라.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재차 물어 오는 그에게 진유걸은 씨익 웃음을 띄웠다.

"태명회에서 지금 몹시 찾고 있는 인물이지."

순간.

"광혈풍!"

적면노괴는 혼비백산하며 주르륵 뒤로 물러났다.

"그렇다, 노괴! 이제는 네놈이 얘기할 차례다."

진유걸은 냉혹한 음성으로 재촉했다.

적면노괴는 음험한 눈알을 굴리며 빠져 나갈 방책을 궁리하였다.

"나도 회주님의 정확한 내력은 모르고 있다."

진유걸은 그의 전신을 꿰뚫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래? 그렇다면 너희들은 누구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냐?"

"사부님의 지시에 움직이고 있다."

"금마혼천신이 다시 무림에 나서다니… 재미있군. 그는 태명회에서 어떤 직책에 있느냐?"

적면노괴는 의외로 순순히 대꾸했다.

"그 어르신은 태명회의 풍성당(風星堂) 당주로 계신다."

그의 말에 진유걸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금마혼천신이라면 강호 배분이 각 문파의 장문인보다 높은 인물이 아닌가?

적어도 그러한 자라면 능히 한 방파를 거느리거나, 공봉(公奉)의 위치에 있어야 하거늘… 한낱 당주로 있다니?

진유걸은 적면노괴의 입을 통해 태명회가 결코 평범한 집단이 아님을 깨달았다.

'음, 태명회가 어느 틈에 그토록 방대한 조직을 구축했을까? 여기에는 실로 가공할 음모가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가 태명회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섯거라!"

어둠을 깨며 일진의 다급한 고함 소리가 튀어나왔다.

뒤이어 한 인영이 만화장의 담장을 뛰어 넘어왔다.

그 뒤를 이어 십여 명의 회의인들이 절묘한 경공술을 발휘하여 쫓아왔다.

일견하기에도 먼저 담장을 넘어온 인영을 추격하는 광경이었다.

한데 뜻밖에도 그들 회의인을 피해 도주해 온 인물은 좀 전, 이 곳을 도망쳤던 그 추괴가 아닌가?

'여기에 회의인들이 있을 줄 알면서도 다시 돌아오다니…….'

추괴를 발견한 진유걸은 그의 엉뚱함에 일순 어이가 없어졌다.

적면노괴는 추괴와 진유걸을 번갈아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저 거지녀석이 본회의 기밀을 두 달 동안 염탐했다는 놈이군. 그러나 저러나 광혈풍이 눈앞에 버티고 있으니… 정말 낭패로군.'

그가 망설이는 순간, 추괴는 진유걸과 적면노괴 사이로 끼여 들어왔다.

"이 놈! 섰지 못하겠느냐?"

회의인들은 고함을 질러 대며 그를 잡기 위해 덮쳐들었다.

하나, 그는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며 진유걸의 등 뒤로 숨으며 엄살을 떨어 댔다.

"아이고, 공자님! 이 불쌍한 추괴(醜怪)를 살려 주십시오."

그 때 추괴를 추격해 오던 회의인들이 적면노괴를 발견하고는 멈춰 서며 물었다.

"향주님! 저 거렁뱅이 녀석을 어찌 할……."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문득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제서야 피를 쏟으며 죽어 있는 동료들을 발견한 것이다.

진유걸은 정체도 모르는 추괴가 자신의 등 뒤로 숨자 기가 막힌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보시오, 석 자 밖으로 물러서시오. 강호인은 누가 등 뒤에 서는 것을 금기로 여김을 모르시오?"

그의 음성에는 함부로 거역치 못할 위엄이 내포돼 있었다.

추괴는 그의 말에 섬칫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당신은 어찌해 본 공자를 골탕먹이는 것이오?"

진유걸이 싸늘하게 말하자, 추괴는 짐짓 진저리를 치며 엄살을 떨었다.

"공자님, 만약 이 추괴를 버리신다면 평생을 악몽(惡夢) 속에 헤매다가 결국은 접시물에 빠져 익사(溺死)하게 될 것입니다요."

그 말에 진유걸은 하마터면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터뜨릴 뻔하였다. 그는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호통을 내질렀다.

"본 공자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만 지껄이다니… 정녕 따끔한 맛을 보고 싶소?"

그러자 추괴는 금세 숨이 넘어갈 울상을 지었다.

"소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단지 공자님처럼 영준하시고, 지혜가 번뜩이며, 풍모가 당당하고… 또 무예가 걸출하고, 의리가 있으며, 신의를 배반하지 않고… 뭐 하여간 그런 분을 뵈오니 너무도 영광스럽고 황홀해서 실수를 벌인 것뿐입니다요."

진유걸은 그의 횡설수설을 들으며 내심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리고 또……."

추괴가 다시 말을 이으려고 할 때였다.

돌연.

"타앗-!"

진유걸이 팔방풍영보를 시전하는 동시, 철영보의 용호포박십이식 중 가장 현묘한 금나수법의 하나인 천지부동(天地不動)을 벽력처럼 펼쳐 냈다.

쉬익-!

이 금나수법에 서혈천왕의 신법까지 합세했으니, 그 빠르기란 실로 빛살과도 같았다.

그러니 추괴가 제아무리 빨라도 그의 손을 감히 피할 수가 있겠는가?

"헉!"

창졸간에 진유걸의 손아귀에 잡힌 추괴의 얼굴은 완전히 경악으로 물들여졌다.

'이럴 수가? 그가 사용한 수법은 철영보의 철악거수(鐵嶽巨手) 철웅산(鐵雄山)의 금나술이 아닌가? 한데…….'

"본 공자로 하여금 난처하게 만들었으니 한 번 당해 보시오."

진유걸은 말을 맺으며 추괴를 홱 던져 버렸다.

"아앗!"

추괴의 신형은 정확히 회의인들이 있는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일순, 그들은 흉폭한 살광을 발하며 추괴에게 덮쳐들었다.

"이얏! 가거라!"

한 회의인이 대갈을 토해 내며 추괴의 천돌혈(天突血)을 베어 갔다.

쉬쉬쉭- 쉭-!

예리한 검풍이 일어나며 한 줄기 섬광이 어둠 속을 뚫었다.

그러나 추괴는 빙글 몸을 회전시키며 그 자의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추괴는 일단 정신을 수습한 뒤.

"아앗! 여보게, 천천히 하게나! 자칫하다간 이렇게 되네."

그는 다른 회의인의 검기를 유유히 피해 내며 수중의 호로병을 휘둘렀다.

퍽-!

두개골이 파열되는 듯한 음향과 더불어 단말마의 비명이 허공을 할퀴었다.

"으악!"

회의인의 머리통이 으깨진 채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동료의 죽음을 확인한 나머지 회의인들이 더욱 광폭하게 날뛰며 추괴에게 달려들었다.

"이 놈아! 목숨을 바쳐라!"

"죽어!"

그들은 일시에 몸을 날려 추괴를 포위한 뒤, 검을 난무하며 쾌속무비한 합공을 전개했다.

슈슈슈슈-!

무시무시한 검기가 폭우처럼 쏟아지며 면밀한 검막을 형성했다.

추괴는 절묘한 보법으로 검막 속을 누비며 호로병으로 검을 퉁겨 냈다.

땅- 땅-!

그 때마다 검이 퉁겨 나는 소리가 귀를 따갑게 했다.

그 정경을 물끄러미 주시하고 있던 적면노괴가 돌연 입을 열었다.

"광혈풍! 본회에 관심이 무척 많은 듯한데, 언제 한 번 방문하겠느냐?"

진유걸은 강호 경험이 풍부한 그의 노련한 말에 내심 냉소를 흘렸다.

'여우 같은 늙은이! 그런 식으로 빠져 나가겠다고? 하지만 본 공자가 네놈의 꾀에 넘어갈 성싶으냐?!'

"글쎄, 적면노괴가 제사상이나 받으면 갈까?"

진유걸이 차갑게 말을 내뱉는 순간.

"으악! 추괴 살려!"

격전장으로부터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진유걸은 순간, 민첩하게 몸을 날리며 쌍검을 발출했다.

"신룡쌍광무-!"

츠츠츠츠츠-!

마치 천지가 붕괴되고 해일이 휘몰아치는 듯한 기세로 몰려가는 검기의 소용돌이.

그것은 정녕 이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는 검의 폭풍이었다.

이어 회의인들은 전신을 휘감는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허윽!"

"크으윽……!"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단말마의 비명이 튀어오르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혈우(血雨)!

핏물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며 생의 종지부를 찍은 회의인들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퍽- 퍽-!

끔찍한 음향이 울리며 장내는 한순간, 아수라지옥(阿修羅地獄)을 연상케 했다.

광혈풍 진유걸!

그는 검존 사도천랑의 가르침으로 검의 출수에 있어서만큼은 달인(達人)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었다.

진유걸이 아홉 명을 처치하고 장내로 내려선 순간, 누군가 열심히 달아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바로 진유걸에게 도움을 청했던 그 추괴가 아닌가?

그제서야 진유걸은 또 그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다시 만나게 되면 이자까지 붙여서 갚아 주지."

그가 중얼거리며 적면노괴 쪽으로 돌아선 순간, 그 곳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적면노괴… 지금쯤 신이 나게 달아나고 있겠군. 하지만… 후후후……!"

진유걸이 어둠 속에서 의미 모를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의 의미는……?

2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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