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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章 광혈풍(狂血風) (2/35)

第一章 광혈풍(狂血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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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과 낙양(洛陽)을 잇는 관도 위.

한여름의 태양이 무시무시한 열기를 내뿜고 있어, 길 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돌연.

두두두두두-!

갑자기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한낮의 정적을 깨고 들려 오는 게 아닌가?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마상(馬上) 위.

한 쌍의 남녀가 더위에도 불구하고 서로 꼭 붙어 있었다.

한낮의 정적을 깨고 폭염 속을 질주하는 일남일녀(一男一女).

그러나 이 남녀를 본 순간 누구나 고개를 돌리고 말리라.

왜냐하면 두 사람은 너무도 추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천하제일의 추남(醜男)과 추녀(醜女).

연신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사내.

이십여 세의 나이에 축 처진 눈썹, 반쯤 감겨져 바보스럽게 보이는 눈, 그리고 묘하게 뒤틀어진 코, 그 밑으로 축 처져 있는 입, 거기다 얼굴은 곰보여서 보기만 해도 역겨움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그 곰보청년을 뒤에서 꽉 끌어안고 있는 여인에 비한다면 그래도 그는 나은 편이었다.

생기다 만 눈썹, 벌렁 뒤집혀진 들창코, 거기다 졸린 듯 감겨져 있는 실눈, 함지박만한 입…….

실로 꿈에 볼까 두려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이한 것은, 이들 못생긴 두 남녀에게서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은은한 기품(氣品)과 천군만마(千軍萬馬)조차 호령할 수 있는 위압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내력을 지닌 이들 남녀.

이윽고 두 사람은 관도상에 자리잡은 한 객잔(客棧) 앞에서 말을 멈추었다.

"수연(洙淵), 이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갑시다."

곰보청년의 입에서 흘러 나온 목소리.

그것은 도저히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청아하고 낭랑한 목소리였다.

"그래요, 공자."

수연이라 불린 추녀의 입에서 흘러 나온 목소리.

그 목소리 역시 천상(天上)에서나 들을 수 있는 선음(仙音)이 아닌가?

생김새와는 달리 우아한 목소리를 가진 이들 추남추녀는 곧장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은 더위 때문인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두 사람이 들어서자 점소이가 간사스럽게 웃다 말고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정말 두 사람 다 지지리도 못생겼군. 사람이 어찌 저리도 못생길 수 있을까? 저 두 사람에게 비하면 그래도 나는 상당히 미남일세.'

점소이가 주방으로 사라지자, 곰보청년이 맞은편에 앉은 여인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연, 고초가 무척 심하구려."

그러자 수연이란 여인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저 때문에 공자님이 더……."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곰보청년은 비장한 눈빛을 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소. 이제 우리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수연, 절대로 포기하거나 약해져서는 아니 되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연은 무림 여협들이나 일반 여염집 여인들과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였다.

'나야 핏덩어리 때부터 이 살벌한 강호에서 자라났으니, 이미 단련될 대로 됐지만…수연은 태어나서 이런 긴 여행을 처음 하는 것일 테니 몹시도 힘들겠지. 그런데도 힘든 내색조차 안 하다니…….'

곰보청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수연이 물었다.

"공자님, 중조산(中條山)은 언제쯤이면 당도하게 될까요?"

"이제 이틀 정도면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오."

"거기는 정말 안전할까요?"

"물론이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그 곳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오?"

"하지만 숙부님은 절대 단념하실 분이 아니에요."

갑자기 숙부라는 말이 나오자 곰보청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는 여인의 숙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며 주문한 음식을 먹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요란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네 명의 장한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모두 백색 경장에 장검을 착용하고 있어 무림인들로 보였다.

"정말 지긋지긋하도록 더운 날씨군. 이런 날은 그저 차가운 물 속에 발이나 담그고 있는 게 제일인데 말이야."

코가 납작하고 입이 두툼하게 생긴 장한의 말에 옆에 있던 건장한 체격의 장한이 음탕한 눈빛을 흘리며 대꾸하였다.

"이 사람, 뭘 모르는군. 자넨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도 모르나? 이런 날은 착착 달라붙는 여우 같은 계집 하나 끌어안고 한바탕 질펀하게 땀이나 흘리는 게 제일일세."

그러자 네 사람은 모두 수긍한다는 듯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우히히히……!"

그 때였다. 한 장한이 웃다 말고 무엇인가를 본 듯 웃음을 딱 그쳤다.

그러자 다른 장한들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 말고 약속이나 한 듯이 웃음을 딱 그치고 말았다.

곰보청년과 수연이란 여인을 보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식욕이 없어 죽을 지경인데, 먹었던 것까지 도로 넘어올 지경이군."

"이 고독검(孤毒劍) 삼십 평생에 저렇게 못생긴 년놈들은 또 처음일세그려."

"흐흐흐… 천생배필(天生配匹)이군. 어떻게 저런 못생긴 년놈들이 만났을까? 정말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군."

그들 중 가장 험악한 얼굴을 한 자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나더니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이 재수없는 년놈들아! 냉큼 여기서 사라지지 못해!"

여지껏 그들의 농담을 꾹 참아 내고 있던 곰보청년이 더 이상 못 참겠는지 한 마디 했다.

"당신은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는구려."

그렇게 말하는 곰보청년의 눈에는 은은한 살기(殺氣)까지 비치고 있었다.

"흥! 네놈의 말투로 보아하니 어디서 제법 굴러먹던 놈인 것 같구나. 하지만 본 천지교(天地敎) 제자들은 천하의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천지교.

강북녹림맹(江北綠林盟)의 맹주 비도혈객(飛刀血客) 왕우극(王宇極)이 군림하는,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는 방파였다.

그 자의 말에 곰보청년이 비웃듯 중얼거렸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말하는 곰보청년의 눈에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살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 눈빛을 본 천지교 인물은 온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으으, 네놈은 대체 누구냐?"

천지교 수하는 재빨리 장검을 빼들었다.

찰나, 곰보청년의 손이 그보다 더 빨리 허공을 날으며 예리무비한 파공음과 함께 한 가닥 광채를 번뜩였다.

슈욱-!

다음 순간, 미처 검초를 전개하기도 전에 천지교 인물은 하복부가 불에 덴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으아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토해지는 순간, 핏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리며 그는 마치 썩은 나무 토막처럼 고꾸라지고 말았다.

"아앗!"

이 뜻밖의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란 세 명의 장한들은 순간, 민첩하게 장검을 뽑아 들고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이 놈! 감히 본교에 대항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몸집이 큰 고독검이라는 자가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다 말고 경악성을 터뜨렸다.

"아니? 저럴 수가?"

이미 호흡이 단절된 동료의 석문혈(石門穴)에 가는 대나무가 깊숙이 박혀 있지 않는가?

그 대나무는 한눈에 보아도 젓가락임에 분명하였다.

실로 귀신 같은 솜씨.

'이… 이제 보니 저 자는 반박귀진(返璞歸眞), 삼화취정(三花聚頂)의 경지에 오른 고수…….'

그는 순간적으로 상대를 잘못 만났음을 직감하고 얼른 동료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곰보청년에 의해 제지당하고 말았다.

"천지교! 본 공자는 너희 같은 하류집단과는 시비조차 가리고 싶지 않다. 하나 네놈들이 그 쥐꼬리만한 세력을 믿고 너무 날뛰는 것 같으니 내 죽음을 내려 주마."

천지교 세 인물은 그의 섬칫한 살음(殺音)을 듣는 순간 부르르 전율하고 말았다.

그 때였다. 고독검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곰보청년을 향해 수중의 검을 비스듬히 후려쳐 갔다.

"죽어랏!"

그러자 다른 두 명도 동시에 몸을 날리며 검을 떨쳐 냈다.

쇄애액-!

순간, 살기로 뒤덮인 검기(劍氣)가 무시무시한 검풍과 함께 곰보청년을 향해 덮쳐 갔다.

금시라도 곰보청년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갈 것 같은 위급한 상황. 그러나 곰보청년은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민첩하게 신형을 날렸다.

휘익-!

그는 검기를 피하는 것과 동시 우렁찬 일갈을 내질렀다.

"팔방풍우(八方風雨)- 오악압정(五嶽壓頂)-!"

그가 방금 시전한 두 초식은 화산파(華山派)와 소림파(少林派)의 비전 절예(絶藝)였다.

곰보청년은 연달아 쾌속무비하게 신형을 움직이며 쌍수를 휘둘러 댔다.

그 순간, 그 청년의 수법을 예상이라도 한 듯 고독검은 재빨리 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미리부터 상대의 고강함을 눈치채고 허초를 날렸던 것이다.

다른 두 명은 그의 이 약삭빠른 계교에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팍-!

다음 순간, 두개골이 빠개지는 듯한 기음과 함께 허공을 찢는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윽!"

"으아악……!"

곰보청년의 쌍수가 정확히 그들의 정수리를 내리찍은 것이다.

시뻘건 핏줄기가 화살처럼 뻗쳐지며 뇌수가 흘러내렸다. 실로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끔찍한 참상이었다.

"하찮은 자기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동료들을 희생시키다니… 벌레보다 못한 놈!"

쉬이익-!

곰보청년은 몹시 분개한 듯 도망치는 고독검의 앞을 가로막았다.

"으윽! 네놈은 대체 누구냐?"

고독검은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

"간악한 놈! 무림인의 기개(氣槪)와 의리(義理)를 팔아 생명을 구걸하다니! 네놈은 살 가치도 없는 놈이다. 가거라!"

그는 고독검을 향해 그대로 일 장을 격출했다.

우우웅-!

순간, 태산을 무너뜨릴 엄청난 장풍이 휘몰아쳤다.

펑-!

고독검은 신법을 전개하려 했지만 생각에 불과할 뿐, 그대로 가슴을 강타당하며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으악!"

고독검은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이 장 밖으로 나가떨어지며 입에서 울컥 선혈을 토해 냈다.

쓰러진 그의 가슴에는 사람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져 있었다.

"아앗! 마(魔)… 력(力)… 묵혈장(墨血掌)!"

마력묵혈장(魔力墨血掌)!

당금 무림에서도 오직 강남녹림(江南綠林)을 장악하고 있는 풍운신마장(風雲神魔掌) 우열(于熱)만이 사용한다는 사도 최강의 장법.

그렇다면 이 신비한 곰보청년이 바로 우열이란 말인가?

"귀… 하가 바로 강남… 녹림맹주인… 풍운… 신마장이오?"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는 끝내 곰보청년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죽어 버린 것이다.

신비에 싸인 곰보청년,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2

두두두두-!

이경(二更).

사위가 어둠으로 물든 야밤, 누군가 무섭게 말을 몰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중조산으로 길을 떠난 곰보청년과 수연이란 추녀였다.

떨어질세라 청년의 허리를 꼭 껴안고 있던 수연이 문득 입을 열었다.

"공자님, 소녀와의 약속을 저버리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보잘것없는 나 때문에 그대는 온갖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다 포기했는데… 내 어찌 이 무림에서 발을 빼지 못하겠소?"

"고마워요, 공자님."

수연은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는 듯 그를 더욱 깊이 끌어안으며 그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그 때였다.

파파파팍-!

갑자기 예리무비한 파공성과 함께 섬칫한 광채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시퍼런 빛이 반뜩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극독이 발라진 암기들임에 틀림없었다.

"아악!"

갑작스런 사태에 수연이 비명을 내질렀다.

쇠털같이 가는 암기에 두 사람이 고슴도치가 되기 일촉즉발의 순간.

갑자기 곰보청년의 입에서 일갈이 터져 나왔다.

"일학충천(一鶴沖天)-!

그는 수연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허공으로 신형을 날렸다.

휘이익-!

그 순간, 날아오던 무수한 암기들은 그대로 말의 전신에 박히고 말았다.

히이이잉-!

말은 울음소리를 내며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곰보청년은 바닥으로 내려서며 호통을 내질렀다.

"어떤 놈들이 감히 본 공자에게 암습을 가한 것이냐?"

하지만 사방은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죽은 말의 피비린내만이 두 사람을 감싸고 돌 뿐이었다.

그러나 곰보청년은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피부로 와 닿는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적이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닌 수십 명! 중조산을 눈앞에 두고 적이 나타나다니… 그렇다면 적은 이미 우리들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바로 이 때.

후두둑- 타탁-!

무엇인가가 나뭇가지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 후 두 사람의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순간.

"아악!"

수연이 공포로 인해 비명을 내지르며 곰보청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수급! 굴러 떨어진 물체는 놀랍게도 피로 뒤범벅된 사람의 머리가 아닌가?

청년은 이 뜻밖의 사태에 몸서리를 치며 이를 갈았다.

"웬 놈들이냐? 어서 썩 얼굴을 드러내지 못할까?"

그의 추상 같은 호통이 떨어지기 무섭게 숲에서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흐흐흐… 어리석은 놈! 네놈은 정녕 관을 봐야만 눈물을 흘릴 놈이구나. 그 수급이 누구의 것인지 궁금하지도 않느냐? 네놈도 아는 얼굴일 테니 똑똑히 봐라."

곰보청년은 순간 섬칫한 심정이 되며 얼른 수급으로 고개를 돌렸다.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는 수급! 

그 끔찍한 모습을 주시하던 청년은 일순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으헉! 천… 면… 신… 옹!"

천면신옹(千面神翁) 전우(田友).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협인으로, 무공뿐 아니라 잡기(雜技)에도 능한 무림의 일류고수이다. 그 중 역용술(易容術)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일반 무림인들은 약물이나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이용해 얼굴을 변형시키지만, 천면신옹은 보다 획기적인 역용수법을 사용하였다.

천용만화술(千容萬和術).

천용만화술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용모까지 바꿔 줄 수 있는 기예(奇藝)였다.

그토록 명성을 날리던 인물이 수급이 잘려진 채 나뒹굴고 있다니…….

곰보청년은 이 뜻밖의 정경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이 놈들! 도대체 이 무슨 잔인무도한 짓이냐? 냉큼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겠느냐?"

그의 목소리가 채 여운도 사라지기 전, 다시 음랭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흐흐흐… 얼굴은 천하의 추물로 바꾸어도 그 성미만큼은 결코 바꾸지 못했구나."

휙- 휘익-!

소리와 함께 수많은 인영들이 숲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형형한 안광을 내뿜고 있는 삼십여 명의 인물들.

그들은 모두 내외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듯, 하나같이 위맹한 모습들이었다.

가사에 선장을 든 승려, 

도포 차림의 도사(道士), 

무복(武服)을 입은 속인들, 

그리고 관부(官府)의 인물들…….

그 중에는 이미 은거하여 무림 일에 일체 관여하지 않던 전대의 고수까지 끼여 있었다.

곰보청년은 <관(官)>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는 아홉 명의 관부고수들을 둘러보고는 흠칫 놀라움을 드러냈다.

'아니? 저들은 오 년 전, 하남(河南) 금웅표국(金雄 局)을 피바다로 만들고 행방을 감춘 독랑구혈(毒浪九血)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들이 관부에 소속돼 있다니……?'

그의 우측, 그 곳에는 고희에 접어든 회색 가사에 염주를 두른 노승 세 명이 서 있었다.

소림삼현인(少林三玄人).

소림파의 고승들로서 무림의 태산북두로 불리어지는 달마원(達磨院) 소속의 장로(長老)들이다.

정진(正眞),

정송(正松),

정하(正河).

이들 세 명은 소림의 당금 장문인 명종대사(明宗大師)의 사숙뻘로서, 소림의 무학을 칠 성 가량 연성했으며 덕망도 높았다.

그들 옆에는 청색 도포에 길다란 장검을 든 일곱 명의 도사들이 서 있었다. 무당파의 무당칠성(武當七星)이었다.

그리고 좌측에는 금의를 입고 벽록색의 섭선을 든 중년인과 핏빛의 피풍(皮風)을 두른 노인이 십여 명 가량의 흑의경장인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귀응신군(鬼應神君) 합구범(合丘凡).

그는 중원무림 남북 십삼 개 성의 녹림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정고수로, 무공이 뛰어나며 특히 잔혹한 손속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의 악랄한 손 아래 피를 토하고 죽어 간 무림인들만 해도 부지기수(不知其數)였으며, 그들 중에는 당금 무림에서 위명을 떨치던 고수들도 상당수 끼여 있었다.

그런 귀응신군 합구범과 나란히 하고 있는 인물.

풍운신마장 우열!

그가 바로 약관의 나이에 강남무림을 휩쓴 뒤, 양자강 이남의 칠십이(七十二) 채(寨)를 장악한 강남녹림 맹주였던 것이다.

곰보청년은 장내에 나타난 그들을 일별한 후 가볍게 냉소를 지었다.

"여러분들이 왜 저희 남매(男妹)의 앞길을 가로막는지 모르겠구려."

그러자 풍운신마장 우열이 앞으로 나서며 차갑게 외쳤다.

"닥쳐라! 네놈이 감히 우리들을 속일 셈이냐? 광폭한 혈풍(血風)이 천하를 진동시키며 난무(亂舞)하고… 이 구절을 들으면 네놈도 생각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순간, 곰보청년의 안색이 싸늘하게 변하고 말았다.

- 광폭한 혈풍(血風)이 천하을 진동시키며 난무(亂舞)하고…….

이 노래는 바로 이살 중 광혈풍을 가리키는 구절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이 곰보청년과 광혈풍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그 구절만으로 부족하다면 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지. 얘들아, 그 계집을 이리 끌고 오너라!"

귀응신군이 뒤쪽에 선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자, 잠시 후 그들은 한 소녀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데리고 나타났다.

이제 십칠팔 세 가량 되었을까?

갸름한 얼굴, 그린 듯한 눈썹, 오똑하게 솟은 콧날, 그리고 석류속같이 붉은 입술.

화용월태(花容月態)의 선녀를 무색케 하는 소녀의 용모.

소녀는 아혈이 짚였는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아앗! 정매(庭妹)!"

그 소녀를 보는 순간 곰보청년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얘들아, 그 계집의 혈도를 풀어 주어라!"

풍운신마장 우열의 지시에 한 명이 소녀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으으음……!"

잠시 후 소녀는 가벼운 신음성을 토하며 의식을 되찾았다.

"너는 저 자가 누군지 알고 있겠지?"

풍운신마장 우열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눈길을 돌리던 소녀는 곰보청년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두 눈에는 원한의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오호호호… 호호호호호……!"

다음 순간, 그녀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 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곰보청년의 가슴을 예리한 비수처럼 후벼팠다.

'아, 정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되다니… 부디 나를 용서해 다오.'

그는 자신으로 인하여 소녀가 난처한 지경에 처하자 죄책감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때 문득 소녀가 웃음을 뚝 그치더니, 곰보청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차갑게 내뱉었다.

"광혈풍!"

바로 이 곰보청년이 무림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광혈풍이란 말인가?

설마 그럴 리가?

전해진 풍설에 의하면, 그는 천하에 다시없는 절대미남(絶代美男)이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목전의 곰보청년은 그와 정반대로 지독한 추남이지 않는가?

실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소녀는 계속해서 표독스런 음성을 토해 냈다.

"당신은 이 전여정(田汝庭)을 너무나 어리게만 보았어요. 이제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그녀의 말에 곰보청년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정매를 철부지 소녀로만 보았어."

이 말은 그가 곧 광혈풍임을 시인하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광혈풍(狂血風) 진유걸(陳儒傑)!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싸늘하게 외쳤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우리를 추적하는 것이오?"

그러자 귀응신군 합구범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광혈풍! 몰라서 묻는 것이냐? 네놈이 감히 당금(當今) 천자(天子)의 혈족이신 태성왕야(太成王爺)의 질녀, 수연(洙淵) 군주(君主)님을 납치해 가다니!"

수연 군주라니?

그렇다면 곰보청년과 함께 있는 추녀가 바로 수연 군주라는 뜻이 아닌가?

해월영(海月影) 주수연(朱洙淵).

재색(才色)이 출중하여 황실(皇室)의 뭇 군주들 중에서도 가장 명망이 높은 여인.

그녀의 아름다움은 비단 황궁(皇宮)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인(世人)들에게도 이미 널리 알려진 터였다.

그녀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숙부인 태성왕(太成王) 주웅(朱雄)의 손에서 자라났다.

주웅은 절강성(浙江省)과 복건성(福建省) 일대를 통치하는 제후(諸侯)로서 야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녹림의 인물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강남맹주인 풍운신마장 우열이 이번 일에 직접 나선 것도 바로 태성왕과의 친분 때문이었다.

풍운신마장 우열이 흉흉한 안광을 내뿜으며 호통을 내질렀다.

"광혈풍! 네놈이 대역무도(大逆無道)한 죄를 짓고도 성할 줄 알았더냐?"

그러자 추녀, 즉 주수연이 앞으로 나서며 서슬이 시퍼런 목소리로 외쳤다.

"이 분께는 아무 죄도 없어요! 이 일은 어디까지나 본 군주가 결정한 일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간섭 말아요."

이 때, 독랑구혈 중 한 명인 독랑마혈(毒浪魔血)이 나섰다.

"군주님! 왕야(王爺)께서는 기필코 군주님을 잡아 오라 하셨소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씀이오."

그의 말에 광혈풍 진유걸이 비웃듯 말했다.

"하하하… 독랑마혈! 비록 관부의 고수가 됐다고는 하지만, 본 공자의 검에는 눈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오!"

그러자 다시 독랑마혈이 입을 열었다.

"애송이 놈! 본좌들이 종횡할 땐 네놈같이 건방진 녀석은 없었다. 네놈이 비록 광혈풍이란 살성으로 그 위명이 천하를 뒤덮는다 해도, 감히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주수연은 그 말을 듣자 눈썹을 상큼 치켜떴다.

"당신들은 대체 누구의 명을 받고 온 것이죠?"

그녀의 물음에 독랑마혈이 대답했다.

"속하들은 강서성(江西省) 남창왕부(南昌王府)에 소속돼 있습니다."

순간, 주수연은 몹시 놀란 얼굴을 하였다.

"남창왕부라면… 바로 천우(天友) 공자(公子)님이… 계시는……."

귀응신군 합구범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소이다. 공자님께서는 지금 몹시 군주님을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지금쯤 양성(陽城) 부근을 헤매고 계실……."

그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 주수연이 그의 말을 잘랐다.

"듣기 싫어요. 본 군주는 분명히 그의 청혼을 거절했는데, 이렇듯 성가시게 따라오다니… 왕가(王家)의 체통이 말이 아니군요."

이제껏 처량한 모습으로 광혈풍을 노려보던 전여정(田汝庭)이 냉소를 쳤다.

"왕가의 체통을 내세우시는 고귀하신 군주님은 어찌 험악한 무림(武林)의 일개 낭인(浪人)과 야밤도주를 꾀하시는 것입니까?"

주수연은 전여정의 일침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군주님 때문에 할아버지와 제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주수연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의아한 얼굴을 했다.

"나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죠?"

"할아버지는 당신들의 얼굴을 역용시켰다는 죄목으로 참형(斬刑)을 당하셨고, 나는 죽도록 사랑하는 정랑(情郞)을 잃었어요!"

절규에 가까운 부르짖음!

그렇다. 이 소녀가 바로 천면신옹의 손녀인 월화신녀(月花神女) 전여정(田汝庭)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직 천면신옹의 수급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만약 수급을 발견했다면 그녀는 지금쯤 미쳐 버리고 말았으리라.

월화신녀(月花神女) 전여정(田汝庭).

그녀는 원래 쾌활한 무림의 여협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가슴에 분홍빛 감정(感情)을 안겨 준 사람이 있었으니…….

광혈풍 진유걸, 바로 그였다.

그는 천면신옹과 교분이 깊은 사이여서 자주 안휘성의 만화장(萬和莊)에 머물곤 했다.

그로 인해 꽃다운 나이의 월화신녀는 광혈풍을 깊이 사모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감정을 겉으로 내색할 수가 없었다.

여인의 몸으로 어찌 자신의 마음을 함부로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녀가 내색하지 않아도 천면신옹은 느낄 수 있었다.

또 천면신옹의 귀띔으로 광혈풍 진유걸 역시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하나, 그에게는 이미 사모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해월영(海月影) 주수연(朱洙淵)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사모하고 있었으나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신분이었다.

어찌 고귀한 왕실의 군주와 무림의 낭인이 서로 걸맞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주수연의 숙부인 태성왕 주웅은 그녀를 같은 왕족인 남창왕부의 천우 공자와 짝지어 주려 했던 것이다.

태성왕의 속셈을 파악한 주수연은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명예(名譽)와 지위(地位), 부귀영화(富貴榮華)…….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광혈풍 진유걸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느 날 밤 왕궁을 빠져 나왔고, 관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천면신옹을 찾아가 역용을 했던 것이다.

전여정에게 모든 사연을 듣고 난 주수연은 몹시 놀라고 말았다.

"아, 그렇다면 낭자가 바로 천면신옹의 손녀?"

"그래요. 소녀는 비천한 평민의 자식이지요. 하지만 군주님처럼 남의 정인(情人)을 가로채지는 않습니다!"

"전 낭자! 그것은 낭자의 오해입니다. 공자님과 나는 낭자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사이였어요."

월화신녀 전여정은 움찔 놀라며 진유걸을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빛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진유걸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수연의 말에 동의했다.

"그것은 수연 군주의 말이 맞아. 나는 정매를 알기 이전부터 이미 수연 군주를……."

"닥쳐라! 네놈이 어찌 고귀하신 군주님을 욕되게 하려느냐!"

독랑구혈 중 마른 가지를 연상케 하는 독랑독혈(毒浪毒血)이 그의 말을 자르며 나섰다.

광혈풍은 으시시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독랑독혈(毒浪毒血)! 그토록 죽기를 희망하다니… 내가 그 소원을 풀어 주겠다."

진유걸은 잔혹한 미소를 입가에 피어 올리며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다 문득 소림파 고승들을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소림파와는 하등의 원한도 없는데, 세 분의 현인께서 직접 나서시다니… 어쩐 일들이시오?"

소림삼현인 중 비교적 풍채가 좋은 청송선사가 나직이 불호를 읊었다.

"아미타불… 빈승들은 단지 본파 장문방장의 명을 받들 뿐이외다."

진유걸은 눈길을 다시 무당칠성에게로 돌렸다.

"당신들 역시 장문인의 명을 받고 왔소?"

무당칠성 중 유일하게 도관을 쓴 자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렇소. 장문인께선 이번 일에 직접 참여까지 하셨소이다."

"그렇다면 태령자(太靈子)는 천우 공자와 함께 행동하겠구려?"

"그렇소."

이 때, 귀응신군 합구범이 크게 소리쳤다.

"광혈풍! 순순히 우리를 따라 남창왕부까지 동행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진유걸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귀응신군! 당신은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구려. 그러나 잠시 후엔 내게 목숨을 구걸하게 될 것이오."

야멸한 그의 폭언에 귀응신군 합구범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신형을 날렸다.

휘익-!

그는 몸을 날림과 동시에 쌍장을 힘껏 내뻗었다.

우우웅-!

태산을 허물어뜨릴 듯한 장력이 무섭게 덮쳐 왔다.

그러나 광혈풍은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무시무시한 잠력이 그의 몸 앞 세 치 부근까지 접근하자 그제서야 우렁찬 기합성을 토해 냈다.

"으핫-!"

그는 신속하게 몸을 빼내는 것과 동시에 우측에 있는 독랑구혈에게로 쏘아 갔다.

실로 전광석화와도 같은 동작이었다.

독랑구혈은 그가 그토록 절묘한 공세를 취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라 일순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아앗! 피해라!"

그러나 광혈풍은 독랑구혈이 채 피하기도 전에 쌍장을 연속 격출했다.

퍼펑-!

둔탁한 음향이 불꽃처럼 터지며 찢어지는 듯한 단말마의 비명이 허공을 쥐어뜯었다.

"으악!"

"허억!"

진유걸의 일 초에 독랑구혈 중 두 명이 피분수를 내뿜으며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풍운신마장 우열이 우렁찬 폭갈을 내질렀다.

"죽여라!"

그의 명이 떨어지자 소림삼현인을 비롯하여 무당칠성, 흑의경장인들이 저마다 공세를 취해 왔다.

진유걸은 눈에서 시퍼런 살기를 발산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가느다란 연검(軟劍)을 뽑아 들었다.

천애고독검(天涯孤獨劍)!

광혈풍과 생사를 같이해 온 연검으로, 이 연검 아래 피를 묻히고 죽어 간 무림인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였다.

진유걸은 자신의 애병기인 천애고독검을 꼬나 잡자 크게 호기가 치솟았다.

그는 연검에 내력을 주입시키며 폭갈을 내질렀다.

"폭일한우(暴日寒雨)-!"

쉬쉬쉭-!

예리무비한 파공음이 울리며 천애고독검이 허공을 갈랐다.

장창을 휘두르며 달려들던 독랑구혈 중 일곱이 대경실색하며 주춤거리는 사이 무당칠성이 일제히 짓쳐들었다.

무당칠성은 명문검파(名門劍派)의 제자들답게 쾌속무비한 동작으로 수중의 장검들을 비스듬히 후려쳐 왔다.

쇄- 쇄- 쇄-!

날카로운 검풍이 휘몰아치며 수백 수천의 검화가 진유걸의 요혈을 노렸다.

뿐만 아니고 우측에 있던 정진, 정송, 정하선사 등도 쌍장을 난무하며 덮쳐 왔다.

또한 흑의경장인들도 저마다 병기를 휘두르며 압력을 가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고립무원(孤立無援)!

그야말로 절대절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상대가 누군가? 바로 광혈풍 진유걸이 아닌가?

그는 사방에서 적이 밀려드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렁찬 광소를 터뜨렸다.

"우하하하하… 가거랏!"

파르르르륵-!

천애고독검이 번개처럼 빠르게 허공을 스쳐 갔다.

찰나,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단말마의 비명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으악!"

"허어억……!"

"아악!"

"윽!"

시뻘건 피화살이 섬전처럼 뻗쳐 오르며 핏물을 뚝뚝 떨구는 살점 덩어리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던 풍운신마장 우렬과 귀응신군 합구범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으음,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놈의 공력이 심후하구려."

우열의 말에 합구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놈은 각 파의 절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좀 전에 전개한 점창파(點蒼派) 비폭유천(飛瀑流泉)은 장문인인 점창절검(點蒼絶劍)보다도 한 수 위인 듯싶습니다."

풍운신마장 우열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놈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각 파의 절기절초(絶技絶招)들을 통달하고 있는 것이오?"

"그 자의 내력에 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자는 각 파의 무학뿐 아니라, 절정고수들의 독문수법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럴 수가? 그렇다면 저 자가 본 맹주의 마력묵혈장도 시전할 수 있단 말이오?"

순간,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진유걸이 대갈성을 내질렀다.

"마력묵혈장(魔力墨血掌)-!"

콰쾅-!

"으으윽……!"

"끄으악……!"

무당칠성 중 네 명이 가슴에 시커먼 장영을 새긴 채 삼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들의 입, 코, 귀 등 칠공에서 시커먼 핏물이 콸콸 쏟아졌다.

이 장면을 목격한 풍운신마장 우열은 기겁할 듯 경악하였다.

"아니? 저 자가 어찌 본 맹주의 독문장법을……?"

그가 놀라고 있는 사이, 진유걸은 수중의 천애고독검을 연속 휘두르고 있었다.

"팔방풍우(八方風雨)- 낭파호문(浪波虎紋)- 야화소천(野火燒天)-!"

쇄액- 쇄애액-!

싸늘하기 이를 데 없는 검기가 독랑구혈 중 나머지 살아남은 인물들의 요혈을 노리고 쏘아들었다.

"헉! 비켜 서라!"

풍운신마장 우열이 소리를 지르는 것과 동시에 독랑구혈 중 네 명은 갑자기 가슴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으으윽……!"

"아악!"

순간, 그들은 시뻘건 선혈을 주르르 흘리며 썩은 고목처럼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독랑구혈 모두가 순식간에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진유걸은 그들을 처치한 뒤, 연이어 소림삼현자를 비롯한 인물들을 공격해 나갔다.

신출귀몰(神出鬼沒)!

진유걸은 그야말로 귀신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손속이 빨랐다.

"푸하하하… 이제 보니 소림의 무학도 별게 아니로구나."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인 진유걸의 말에 소림삼현인은 온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여지껏 살아오는 동안 누구에게도 이런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이제 갓 약관을 넘어선 새파란 애송이가 아닌가?

소림삼현인들은 분노로 인해 살갗이 다 뒤집혀질 지경이었다.

"방자한 놈! 비룡강풍(飛龍强風)-!"

정진선사가 욕설을 퍼부으며 나한권법(羅漢拳法)을 시전했다.

그는 쌍수를 기묘하게 놀리며 진유걸의 유근(乳根), 불용(不容) 등의 요혈을 노려 갔다.

휘익- 휙-!

그러자 정송, 정하선사와 나머지 인물들 역시 합세하여 덮쳐 들었다. 세 명 모두 노화가 치밀어 쓴 손속인지라 그 위력이 상당히 거세었다.

"죽어랏!"

흑의경장인 역시 대갈성과 함께 수중의 귀두도를 찍어 왔다.

위이잉-!

살벌한 소음이 돌출되며 예리한 도기가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진유걸은 창졸간에 위험을 맞이했으나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냉랭한 미소를 뿌리며 수중의 천애고독검을 더욱 바짝 움켜잡았다.

바로 이 때.

"아악! 공자님! 위험해요!"

주수연의 다급한 외침 소리가 진유걸의 고막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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