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
흔히 있는 딜레마다.
착한 거지와 못된 부자 사이의 선택.
사회적 지위와 개인의 소양을 비교하는 갈등지문.
가혹한 환경에서 가혹한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사람의 본질을 들쑤시는 그런 악독한 행동이다.
명한은 눈으로 수레 안의 이들을 차례대로 훑었다.
"둘 중에 살릴 사람을 고르라는 건가?"
"맞습니다. 저쪽 차림새가 좋은 분은 일대에 명망 높은 문장가지요. 학식이 높아서 제자가 바다처럼 많고 명성은 산처럼 높습니다. 다만,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아 이래저래 괴로워하는 이들이 많지요. 반면 저 아이는 보다시피 가진 것 없고 어떤 명망도 없습니다. 대신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덕이 있는 행동을 많이 하긴 했습니다. 공자께서는 어느 쪽을 살리겠습니까?"
"재미없는 선택지를 주는군."
"아, 참고로 둘 다 살리는 선택은 없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한 쪽은 반드시 죽게 돼 있으니까요."
웃음 속에는 자신감이 섞여 있다.
명한이 시선을 떼고 휘문종월을 바라봤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공자에 대해서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혼천의 앞을 이토록 막아선 존재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신교의 그 천마조차. 당신이라는 작은 존재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이 가능했을까. 전 그 부분을 알고 싶은 겁니다."
"혼천에 대한 충성은 어쩌고?"
"하하. 모두가 불사를 위해 혼천을 따르는 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전 보다 직관적인 무림의 기준을 위해 혼천을 따르고 있을 뿐이죠. 만약, 공자께서 더 나은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면 전 망설임 없이 혼천을 버릴 겁니다."
전형적인 신념을 가진 미친놈.
그의 말에는 아마 어떤 거짓말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기준을 만족한다면 혼천이든 서복이든 가볍게 배신할 수 있는 인물.
하지만 그렇기에 그의 놀이가 불쾌하다.
‘그의 기준은 선악을 따지는 것이 아니야.’
모호함이 없는 뚜렷한 기준.
"사회의 명망을 본다면 나이 많은 쪽이 더 도움이 되겠군. 하지만 인간 개인의 성정을 보자면 어린 쪽이 더 나아 보여."
"무엇을 택하든 공자의 자유입니다."
"근데, 자세히 보자면 상황은 또 달라. 나이 많은 쪽이 훌륭한 문장가라서 제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게 허명인지는 알 도리가 없어. 게다가 인품의 문제는 개인적으로 알기 전까지는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이지. 내가 아는 건 그저 저 사람의 얼굴일 뿐이야. 그럼 반대로 어린 쪽은 어떻지? 허름한 옷을 입고 있지만, 눈빛은 맑은 편이고 손은 깨끗해. 어쩌면 명문가의 자제가 장난삼아 가출한 걸지도 모르겠어."
"호오. 뛰어난 관찰력입니다. 허나, 반드시 선택은 내려야 합니다."
집요함이 섞인 눈빛으로 휘문종월이 바라봤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명한의 속내를 들춰내고 싶은 표정이었다.
"어느 쪽으로든 내 상실을 확인해 보고 싶은 눈치로군."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흐릿함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도려내고 선명함으로 채워야겠지요. 공자께서는 할 수 있습니까?"
"글쎄. 굳이 택해야 한다면……"
명한이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기의 흐름이 한 점으로 응축되더니 선의 형태로 갈라졌다.
이는 각 수레에 갇혀있던 중년인과 아이를 관통.
그대로 숨을 끊어 버렸다.
"강요받지 않는 걸 택하겠다."
"……하. 위치가 필요한 것 아니었습니까?"
"필요하다. 하지만 그 필요가 네놈에게 휘둘릴 만큼의 가치는 없지. 네놈이 무엇이라고 감히 나를 재단하려 하느냐? 기준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세워라."
다시 손을 움켜쥐며 공간을 터뜨렸다.
탁자부터 바닥까지 한 번에 밀려나, 전방 수 장을 황무지로 만들었다.
무시무시한 압력과 힘.
하지만 휘문종월 역시 아무런 대책 없이 마주한 건 아니었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정원 곳곳이 밝은 문양으로 빛나며 하나의 형태를 구축했다.
이건 일종의 진법으로, 사람을 축으로 삼는 상고의 기술이었다.
"선택하지 않는 걸 선택한다라.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군요."
"어차피 누군가를 택한다고 한들 남은 자의 원망과 죄책감은 내 짐이 되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내 선택으로 둘 다 죽이겠다."
"둘 다를 살리는 노력은 없는 겁니까?"
"실패 역시 바라지 않으니까."
"……하하하! 마음에 듭니다. 마음에 들어요. 과연 혼천의 어르신과 자웅을 겨룰 만큼의 자격이 있군요."
박장대소를 하며 손을 들어 올리는 휘문종월.
정원 곳곳의 벽이 밀리며 수십, 수백의 민간인이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 나왔다.
하루 이틀 잡아둔 몰골이 아니었다.
하나하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습니까? 둘이 아닌 백이라면? 그 죽음도 스스로 택할 자신이 있습니까?"
이어지는 광기.
명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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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무천이 귀를 쫑긋 세우며 걸음을 멈췄다.
바람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너머인가?"
"멀지 않네요."
"숫자는 꽤 되는 것 같군."
벽을 반사해서 전달되는 소리가 여럿이었다.
상당수는 걸음이 가벼운 고수, 몇몇 아닌 이들도 섞여 있었다.
화무천이 잠시 연연과 시선을 주고받은 뒤 그대로 뛰어나갔다.
신중하게 움직일 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누구냐!"
"적이다!!"
검과 도 등을 꼬나쥐는 무리가 얼추 서른.
굴의 너비가 넓어지고 탄광처럼 여러 갈래라 나뉘는 중계지점이었다.
화무천은 그대로 무리의 중앙에 안착하여 주먹을 뻗었다.
쿠――쿵!
묵직한 충격에 그대로 처박히는 적들.
검과 도로 방어를 해 보았지만, 화무천의 권은 압도적이었다.
일권에 한 명씩 고꾸라졌다.
"도, 도망쳐! 각주에게 상황을 알려라!"
"흩어져"
놈들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도주를 택했다.
"갈 수 없다."
"넌 또 누구냐!"
"……"
하지만 길을 막아선 연연의 검에 차례대로 쓰러졌다.
그녀는 여러 무기를 돌려서 쓰는 것에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하나하나가 고수의 수준이었다.
초 하나를 다 태우기도 전에 상황은 정리됐다.
"예전보다 검 쓰는 솜씨가 늘었군."
"이런 일 하다 보면 무공을 숨겨야 할 때가 많으니까요."
"고생이 많았겠어."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이에요."
연연은 말을 줄이며 쓰러진 이들을 한곳에 모았다.
옷이 겹치는 이도 몇몇 있었으나, 대부분은 제각각의 복색이었다.
나이, 성별, 무공의 흔적.
모든 것이 달랐다.
"이놈은 해룡방 출신이로군. 저기 저놈은 군룡파의 무공을 썼다."
"사파와 정파가 섞여 있다는 말인가요?"
"각 문파에 침입한 첩자일 가능성도 있겠지. 고수의 회유와 협박 등에 지인을 이용했다면, 이들이 그 역할을 했을 거다."
"납치 및 감금……"
"밖을 경계해도 안의 위험은 알아차리기 힘든 법이지."
단순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수법.
연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쓰러진 이들의 혈도를 두드렸다.
경맥이 끊어져서 앞으로는 영영 무공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으음."
"왜요? 제 손속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다. 할 거면 그냥 목을 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해서."
"……"
광기에 휩싸여서 잠적했다지만, 화무천은 신교의 교주.
천하제일악이라 불리던 인간이다.
손에 피 묻히는 일 정도를 꺼릴 성격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 안까지 사람이 들어와 있다는 건 건너편에 중요 시설이 있다는 얘기겠지. 다만……"
"갈림길이군요."
"하나하나 전부 뒤져보는 건 너무 오래 걸려.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이 많은 길 중 하나……"
연연이 뻥 뚫린 갈림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선택을 하기에는 너무 단서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부 쓰러트리면 안 됐을까.
약간의 후회가 입술 사이로 씹히는 순간.
"소리."
"네?"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났다."
화무천이 무릎을 굽히고 청각에 집중했다.
여러 갈림길 중 하나에서 들린 소리였다.
"가자."
"네."
선택은 간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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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명.
명한이 한 명 한 명을 눈으로 훑었다.
제각각의 나이에 제각각의 복색.
통일되지 않은 백 명의 사람이었다.
"내게 억지를 쓰려는 건가?"
"나는 공자의 선택을 보고 싶은 겁니다. 인간은 작은 것 앞에서는 당당하지만, 큰 것 앞에서는 언제나 망설이게 되는 법이지요. 하지만, 중원 전체에 기준을 세울 존재가 그런 식으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공자께서는 어찌하겠습니까?"
"내가 백 명을 모두 죽이겠다면?"
"그것도 답이겠지요."
"잔인함. 비정함. 이런 가치와는 상관없이?"
"산 위로 올라가면 인간은 개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고의 존재는 언제나 비정하고 잔인할 따름이지요."
외경에서 보았던 경치가 떠올랐다.
밖에서 세상을 관조하면 모든 것들은 작고 하잘것없이 느껴진다.
백 명의 인간? 천, 만. 아니 모든 인류 자체도 대수로울 것 없다.
하지만 그건 인간을 벗어난 탈각의 감상.
명한은 탈각의 자유보다 인간의 부질없음을 더 사랑한다.
"그런 성격을 잘도 숨기고 살았군."
"하하. 인간 하나하나를 개돼지로 보면 연기는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허울뿐인 형식에 맞춰서 웃고 떠들면 그만이니까요."
"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망가진 거냐? 휘문가는 본래부터 그랬던 건가?"
"아뇨.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휘문종월이 백 명의 인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한때 이 휘문가는 명예와 정직함을 최우선으로 삼았었습니다."
"한때는?"
"진부한 이야기지요. 오래전에 가뭄이 길게 들어서 모두가 허덕일 때. 가문은 창고를 개방하여 많은 이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게끔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고마움은 잠시뿐. 바닥난 식량에 사람들은 되레 가문을 성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곡식을 쟁여두고 자신들의 배만 채운다고."
"허약해진 사람들의 광기일 뿐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지요. 선의와 도덕. 이해와 합의라는 건 이렇게 간단하게 부서지는 거구나, 라고."
죽음 속에서 살아남은 휘문가의 후계자가 다시 힘을 키웠다.
그런 길고 지루한 이야기는 입 밖으로 내지도 않았다.
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혼천을 따르는 건가?"
"어르신의 구상의 저의 사상과 부합하는 면이 있었으니까요. 불로불사를 얻은 신선과 새로운 모습으로 재편되는 무림. 기존의 관습과 기준을 사라지고, 새로운 것으로 틀을 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의심이라도 생겼다는 건가?"
"공자의 행보에 흔들리는 모습을 봤으니까요. 절대적 존재는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가정이 잘못됐을 수도 있습니다."
"서복이 아니라 나다?"
"그걸 확인하기 위한 장소입니다."
휘문종월이 양손을 펼쳤다.
백 명의 목 언저리에 날카로운 갈고리가 닿았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 어떤 고수라도 이 모두를 한 번에 구할 수는 없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공자. 당신은 여전히 선택할 수 있습니까?"
"나는……"
명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