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0화 (200/235)

나는 파운이다

구한다, 라는 의미에서 공격은 조절이 필요했다.

잘못했다가 목이 날아가면 이곳까지 온 의미가 퇴색되니까.

하지만 서복과 섞인 파운을 맞닥뜨리는 순간부터 명한은 그런 행동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파운은 과거의 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자였다.

힘 조절 따위는 속 편한 소리에 불과했다.

"죽일 각오로 전력을 다해!"

모든 생각을 한마디로 함축하며 명한이 앞으로 움직였다.

땅이 충격에 움푹 파였다가, 힘의 방향과 반대쪽으로 파도처럼 밀려났다.

주변 경물은 선처럼 일그러져 촌각의 세계로 명한을 초대했다.

거리는 눈 한 번 깜빡하기 전에 삭제.

바로 앞까지 다가온 파운을 향해서 명한이 주먹을 날렸다.

"단순한 가속이라니. 날 너무 우습게 봤군."

파운은 이 놀라운 속도를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무(無)의 상태에서 도를 뽑아, 권격을 쳐내는 과정까지가 밀림 없이 일어났다.

이건 행동에 따른 모든 물리적인 법칙을 삭제한 방식이었다.

결과가 먼저 오고 그에 따른 원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체되었다.

"비틀림. 너도 쓰는 건가!?"

"말했을 텐데? 내가 파운이며 서복이라고."

답과 함께 도가 명한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이 또한 결과를 먼저 내보이고 원인을 따라오게 하는 방식이었다.

뒤에서 있던 향아와 은소소가 보기에는 명한이 꼼짝없이 당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를 뒤집는 것이 서복의 힘이라면 명한은 그 선을 다시 풀 수 있다.

인과의 선을 타고 퍼지는 힘에 결과가 삭제되고 원인이 튀어나왔다.

챙―!

한 손으로 도를 튕겨내는 명한.

가슴을 관통했던 흔적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비슷한 것끼리는 상쇄한다 이건가."

"이치 노름은 통하지 않아."

"상관은 없다. 그게 없어도 너희를 상대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어."

파운은 도를 가볍게 밀어내며 간격으로 발을 디뎠다.

땅이 깊이 가라앉으며 어마어마한 열기가 바닥을 타고 터져나갔다.

지옥의 업화와 같은 열기였다.

명한은 정면에서 견디지 못하고 몸을 물리며 주먹으로 허공을 때렸다.

대기가 방사형으로 터지고 열기가 그 경계를 타고 주변으로 퍼졌다.

"방금 저거……"

"확실해. 신기와 같은 냄새였어."

은소소가 명한의 옆으로 다가오며 남은 열기를 걷어냈다.

형태는 다르지만, 파운의 불은 분명 ‘화륜’과 같은 성질을 내보이고 있었다.

"놀랄 것 없어. 신기라는 것도 옛 황제의 힘을 발현하기 위한 방법에 불과하니까. 그 정점에 있는 내가 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혈통과 관계없이 말이냐?"

"혈통이라. 너라면 화륜이 태우는 원료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텐데?"

"……"

한때 나형이 부리던 화륜은 명한이 취했다.

그렇기에 파운이 말하는 ‘원료’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애초에 옛 황제의 힘이라는 건 이 세상에 대한 첫 반역이다. 천기를 거스르고 모든 법칙에 반발했지. 그 땅에서 나고 자란 인간들이 무엇으로 그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영혼."

"그래. 영혼이다. 인간의 영혼만큼 강력한 힘은 없어. 월익, 화륜, 수응…… 각 가문의 신기들은 그들의 피가 아닌, 피에 서린 혼에 기인하는 거다. 위대하신 천기자 스승께서 불로불사의 법을 찾기 위해서 수만의 인간을 죽인 결과지."

"거짓말!! 웃기지 마라!"

마지막 말에 신기자가 반발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천기자를 스승이자 아버지처럼 따르고 있었다.

파운의 몸을 빌린 서복의 발언은 큰 충격이었다.

"우스울 것도 없다. 그리고 그게 나쁜 것도 아니지. 어차피 속세의 벌레들. 그들을 이용해서 신이 될 길을 찾는다면 그 또한 옳은 일이다."

"그건 네 뜻이냐? 아니면 서복의 뜻이냐?"

"같은 말을 하게 만드는군. 나는 서복이자, 파운이다."

"그래? 그럼 왜 네 도는 흔들리고 있는 거냐!"

"……!"

명한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주먹을 날렸다.

파운은 자연스럽게 반응하여 도로 그 궤적을 베었으나, 깊이와 방향이 어긋났다.

힘의 충돌에서 접점의 정확도는 위력을 대변하는 지표.

어긋난 도격은 벽에 처박히고, 이를 뚫고 온 명한의 주먹이 파운의 가슴을 때렸다.

쿠쿠쿠쿵.

반걸음.

충격을 전 지면으로 퍼뜨리고 남은 여력에 의한 퇴보였다.

"섞였다. 그렇게 말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거 아닌 거 같네."

"……"

"그 안에 갇혀 있으려니 울분이 나지 않나, 파운? 호쾌하게 도를 휘두르던 네놈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궁지에 몰렸다고, 두렵다고 포기할 사람이었나!?"

"시끄러워!"

파운을 중심으로 힘이 폭발했다.

석실 벽으로 금이 번지고 주변 공간 전체가 들썩였다.

후두둑, 떨어지는 돌무더기는 지반이 불안함을 알리는 증거였다.

"화도 낼 줄 아는군."

그리고 몸 안 어딘가 남아 있는 파운의 증거이기도 했다.

"인간의 몸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파운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날 받아들였다. 여기에 파운이라는 개인은 없다. 나와 하나 된 존재만이 있을 뿐."

"너는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 서복."

"뭐?"

"오직 인간을 초월하기만을 위한 삶이었다면, 파운은 이곳까지 몰리지도 않았어. 그는 수하를 아끼고 충복의 죽음을 슬퍼하는 인간이었다. 그걸 알고 있기에 나도 이곳까지 그를 구하러 온 거고."

"어디까지 하찮은 감정 따위를……"

"하찮은 게 아니야!"

명한이 천의무봉의 상태를 깨고 극천일무기의 힘을 드러냈다.

극단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불완전한 신공이었다.

무아나 천의무봉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영역이지만, 이 자체로 훌륭한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뚜렷함이다.

쩌엉―!!

앞으로 내딛는 걸음과 동시에 명한의 주먹이 파운을 밀어냈다.

이번엔 두 걸음이었다.

"……뭐? 어떻게 그런 하찮은 무공 따위에?"

"지고의 경지에 오른 이들끼리 서로의 법칙을 묶어 둔다면 이 땅에서 움직이는 건 나와 같은 감정의 동물이다. 보다 선명하고 보다 진하게. 선명하게 색을 드러내는 자가 운명을 이끄는 법이야."

"궤변이다."

"한 번 더 같은 걸 묻지. 너는 천기의 상처를 보았나?"

"헛소리는 그만둬!"

이번에는 파운이 선공을 취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양단한다는 결과가 먼저였다.

하지만 이미 실타래를 밟고 있는 고양이에게 그 끈을 몰래 빼는 건 불가능하다.

명한은 인과의 끈을 당겨 결과와 인과의 순서를 바로잡고, 그 앞에 몸을 던졌다.

극천일무기로 표출되는 단순한 ‘파괴’였다.

흔들리는 인과의 끈이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와 어마어마한 충격을 선사했다.

파운의 몸이 붕 떠서 뒤편에 처박혔다.

"크, 크윽!? 이게 대체 무슨……?"

"신선놀음한 지 오래돼서 인간의 싸움이 익숙하지 않은가?"

"허튼소리. 인간 따위의 하찮은 다툼이 내게 닿을 리 없다."

"하하하! 그렇다고 하는데, 파운?"

"……!"

우드득.

파운의 팔이 기형적으로 비틀리며 격하게 흔들렸다.

의지에서 벗어난, 별개의 생명체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파운. 아니, 서복의 얼굴에 당혹이라는 감정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대체…… 대체 무슨 수작이냐? 멈춰라. 네가 바란 건 내가 모두 주었다. 인간을 초월한 힘과 무너지지 않는 생명이다. 왜 이제 와서 발악이냐? 멈춰!"

"그러니까 넌 파운이라는 인간을 잘못 이해한 거다, 서복. 그는 네게 없는 뜨거움이 있고, 자신의 도를 사랑하고 사투의 즐거움을 안다. 무미건조한 신선놀음 따위는 그와 맞지 않아."

"크으윽. 하찮은 인간 따위가! 친히 자비를 베풀어서 영생의 축복을 주었거늘!"

"삶은 불꽃이다, 서복. 나나 파운 같은 뜨거운 남자들에게 영생 따위는 축복이 아니야."

명한의 감정을 타고 화륜의 힘이 피어올랐다.

전신을 다 덮고 그를 완전한 불꽃으로 만들었다.

세상에 새겨지는 색의 선명함으로 따지자면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경지였다.

가장 뜨겁게. 가장 인간답게.

그것이 명한의 방식이었다.

"이제 손님은 빠져 주었으면 하는데. 형제간의 대화가 필요한 시간이라서."

"크…… 크아아아! 하찮은 벌레 따위가!!"

안과 밖.

사방의 불이 서복의 뒤덮었다.

영혼을 태우고 존재의 오만함마저 지울 정도로 뜨거운 불이었다.

#

불은 흙을 태우고 돌을 녹였다.

열기에 공기마저 끓어서 숨을 쉴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은소소와 향아는 감히 끼어들 생각은 하지 못하고 서둘러 물러났다.

앞선 전투로 금이 가 있던 벽이 일제히 부서지며 붕괴가 시작되었다.

낙석이 가속도를 받아 주저앉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파운!!"

중심에 있던 명한도 상황을 알아차렸다.

불에 타, 새카맣게 탄화된 파운을 잡아서 안쪽으로 당겼다.

힘없이 딸려오는 것으로 보였다.

"……!"

하지만 일순간, 타서 녹아내린 눈알 하나가 번쩍 뜨이더니 손을 비틀었다.

지독하게도 버티고 있던 서복의 원념이었다.

영혼을 불태우는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아 한쪽 팔에 기생체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당기던 명한의 손을 거꾸로 타고 올라가 목을 움켜쥐었다.

"큭! 정신 차려라, 파운!"

명한은 힘을 주며 그를 떼어내려 했다.

어차피 남은 힘이라고는 팔 하나가 전부였다.

억지로 뜯어내려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위험해.’

그렇게 하면 서복의 반응이 어떨지 눈에 훤했다.

파운이 깨어나지 못하면 그의 의지로 몸을 붕괴시키는 건 여반장.

여기까지 와서 그런 결말은 사양이었다.

"잘…… 라. 팔을. 내가 잡아두고……있을 때."

그때, 망가진 성대를 타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갈라지고 뭉개진 소리였지만, 명한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갈등했다.

"이대로 팔을 자르면 다시는 못 써!"

서복은 파운과 뒤섞인 영혼.

아무리 신체 일부에 몰아넣었다고는 해도 그 본질은 여전하다.

고나 다른 기적적인 힘을 사용해도 자른 팔을 살리면 서복은 회생할 터.

지금 팔을 자른다는 건 영원히 그 팔을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알아. 내…… 삶과. 친우. 대가로…… 팔 하나면 싸다."

"너……"

"잘라. 너밖에. 없다."

끊어지는 말투에 명한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다른 수를 내보이고 싶어도 지금은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만큼의 각오를 한 남자의 바람을 들어주는 수밖에.

목을 움켜쥔 팔을 밖으로 밀며……

"크으으윽!!"

수도로 그대로 잘라냈다.

피가 튀고 고통 어린 모습으로 파운이 휘청거렸다.

전신이 다 타버린 상황에 팔까지 잘렸으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쓰러지지 않고 두 발로 섰다.

되레 잘린 오른팔을 반대 손으로 지혈하기까지 했다.

대단한.

아니, 지독한 집념이었다.

"움직이지 마. 지금 바로 치료해 줄 테니까."

"……신기. 신기자는?"

"뒤에. 향아와 은소소와 함께 있다. 앞이 잘 안 보이는 거냐?"

"흥. 팔도. 눈도. 타…… 버린 피부도. 괜찮다."

잠깐의 실수로 한 선택에 비하면 이런 것은 괜찮다.

죽은 이들에 대한 미안함도 살아있는 자에 대한 고마움도.

이곳까지 구하러 와 준 형제에 대한 마음도.

아픔 따위는 가벼웠다.

"나는…… 파운이다."

끝끝내 포기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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