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지계
빨려간다.
명한은 주변 공간의 유동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바람이, 공간이, 사고가.
모든 것이 한 점을 향해서 빨려 들어갔다.
‘위험해.’
그리고 이 소용돌이의 핵심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무공의 고하와 상관없이 빨려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하리란 경고였다.
바닥에 양손을 박아 넣고 흡입력에 저항했다.
"꺄아아아악!!"
"청청!?"
그때 들려온 청청의 비명.
영굴이라 지칭한 공간 자체가 통째로 뜯겨 나가며 휘몰아치는 파편의 폭풍 속.
날개를 펼친 금홍에 매달려 허공을 부유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는 있지만, 위험한 상태였다.
"……"
명한이 잠시 주변을 탐색한 뒤 손을 빼고 몸을 날렸다.
어마어마한 흡입력에 몸이 한쪽 방향으로 쭉 빨려 들어갔다.
필요한 건 잠시 몸을 지탱해줄 기반.
무너진 벽을 발로 디디며 몸을 위로 뽑았다.
힘이 그를 당겼지만 억지로 이를 뿌리치며 청청의 곁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청청, 사부님은!?"
"붉은색 쐐기를 막고 계셔!"
"쐐기라고? 어째서!?"
"서복은 처음부터 양생을 이용할 생각이었어! 그의 몸이 쐐기가 돼서 영굴을 갈가리 찢고 있어!"
"쯧……!"
막군천을 조금 더 빨리 잡았다면 도울 수 있었을까?
명한이 혀를 차며 청청을 바짝 당겨서 안았다.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지금은 내외할 때가 아니었다.
퍼덕거리는 금홍까지 머리에 딱 얹고 힘의 방향의 수직으로 뛰었다.
"으, 으아아아! 끌려간다!"
"꽉 잡아!"
쐐기로 인한 붕괴라면 현상이 무한정 이어지지는 않는다.
영굴의 막대한 영력을 사용하여 천기를 뒤트는 것이 쐐기의 목적.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는 자연의 법칙이 이를 상쇄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쓸려가면 형태를 유지할 수 없어.’
최대한 멀리, 밖으로 돌면서 버티는 것이 해답이었다.
"저, 저기! 사부님의 모습이 보여!"
밖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돌자 안의 모습이 조금은 뚜렷하게 보였다.
붉은색의 기둥과 그 주변으로 무너지는 공간.
그리고 그 앞에 서서 무언가를 틀어막고 있는 은휘의 모습이었다.
"사부님이 위험해!"
"큭. 움직이지 마! 괜히 우리까지 가면 부담만 더해질 뿐이야!"
"하지만……!"
"지금은 사부님을 믿어!"
은휘니까 중심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어설프게 돕는다고 뛰어가 봐야 짐만 더한다.
"잠깐? 미요는? 미요는 어디에 있지?"
그때, 떠오른 한 사람.
영굴의 주인이자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였다.
쐐기의 기운이 아무리 강해도 그녀 정도의 신수가 쉽사리 사라질 수는 없었다.
"뺘아―!!"
답을 대신하기도 한 것일까.
금홍이 갑자기 날개를 펼치며 포효했다.
붉은색 파동이 금홍을 중심으로 퍼지며 힘의 소용돌이를 반대 방향으로 비틀었다.
어마어마한 마찰에 불꽃이 피어나 주변을 휩쓸었다.
"새끼라도 용과 불사조의 새끼라 이건가. 좋다, 도와라!"
그 불꽃에서 아홉 꼬리의 미요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이미 인간의 형상을 버리고 거대한 여우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힘의 소용돌이에 스며 들어가 그 흐름을 제동하는 중이었다.
영굴의 거대한 힘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녀는 구미호였다.
아홉 꼬리는 아홉 번의 생을 나타내는 증표.
"아홉 번의 생을 모두 네게 주마! 길을 비틀어 쐐기로 이어지는 힘을 막아라!"
"뺘아아!!!"
붉은색과 붉은색이 이어졌다.
미요의 꼬리가 안개처럼 흩어져 금홍의 날개로 스며들더니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확장됐다.
영굴 전체를 덮고 망야산을 감싸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야말로 신화적인 영웅의 시효.
불로 이루어진 날개는 쐐기의 흐름마저 제동하며 천기를 짓눌렀다.
"크으으윽―!"
"아악!!"
그와 동시에 명한과 청청은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았다.
뒤틀린 천기에 세상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은 것이다.
금홍의 힘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전신경맥이 터져서 죽고 말 정도였다.
"길을 연다. 청청, 네가 금홍을 유도해라."
"제, 제가요!?"
"금홍과 연결된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사이에 소백 네가 쐐기를 파괴해. 은휘가 묶인 상태에서는 너만이 할 수 있다."
고통을 수습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미요는 짧게 상황만을 전달한 뒤 그대로 붉은빛으로 변해서 사라졌다.
모든 힘을 금홍에게 넘긴 것이다.
청청은 불안한 얼굴로 명한을 돌아봤다.
"금홍은 네 자식과 같아. 너라면 할 수 있어."
"……시집도 안 갔는데."
불안함에 툴툴거리지만, 선택지가 없음은 안다.
청청이 명한의 소매를 틀어쥐며 금홍을 향해서 의식을 전달했다.
마음은 순식간에 이어지고 금홍이 날갯짓을 시작했다.
휘몰아치던 폭풍을 가르며 전설 속의 불사조가 길을 열었다.
#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불의 길 속에서 명한이 주먹을 쥐었다.
열기에 피부가 타고 흔들림에 피부가 찢기지만 그는 고요했다.
무아의 경지에 빠져 한 점에 집중한 그에게 소란은 의미가 없었다.
숨으로 세상을 호흡하고 일수(一手)로 맥을 짚었다.
끝없이 요동치는 세계의 심장이 손끝에 닿았다.
쐐기에 박혀 괴로워하고 있었다.
"……"
그때 명한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했다.
그건 쐐기를 통해서 이어진 수없이 많은 상처였다.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천기라는 기물에 생기진 상처들.
찢기고 타고 멍든 상처가 셀 수도 없이 많이 이어져 있었다.
‘밖’으로 나가 천기마저 극복하겠다는 발버둥의 증거였다.
‘그리고 저것이 아마도 황제가 만든 상처.’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도드라진 상처가 있었다.
깊이 파여서 회복되지 않은 흉터였다.
그곳을 중심으로 쐐기의 흔적이 어마어마하게 늘어져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천기자는 황제의 그것처럼 천기를 뒤틀고자 했다.
온갖 방법으로 쐐기를 새기고 자신의 마음대로 세상을 유린했다.
세상에 새겨진 상처가 바로 그 증거였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천기자는 여전히 환상루에 갇혀 있다.
‘서복을 굳이 막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
쐐기를 박는다고 달라질 천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상처를 주어도 천기는 꿋꿋하게 세상을 덮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기자는 쐐기를 신경 쓰지 않았다.
"우습기 짝이 없군."
얼마나 오만하면 이런 것일까.
천기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인과를 엮은 그물이다.
촌의 농부, 물가의 어부, 산에서 일하는 목수, 상가의 상인……
위아래 없이 모든 존재가 그 그물에 촘촘히 엮여 있다.
이를 상처입히는 건 결국 그 모든 이들을 삶을 마음대로 유린하는 격이다.
삶과 죽음의 이치가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만큼 살다 보니 세상사 모든 것이 지겨워진 거냐?"
이 땅에는 하루를 평생처럼 사는 이들도 있다.
일분일초가 소중하고 그 짧은 추억조차 아끼는 이들이 허다하다.
긴 수명 끝에 영생을 탐하는 늙은이들의 추악함에 명한은 진저리가 쳐졌다.
‘사부님은 지고의 경지에 오르고도 스스로 잠드는 것을 택했어.’
같은 상황에서 취한 다른 선택.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명암처럼 뚜렷했다.
― 그래, 그것이다.
"신?"
소용돌이 너머에서 스치듯 들린 목소리.
착각인가 싶지만, 알 방법은 없다.
어쩌면 그러기를 바란 마음의 속삭임일 가능성도 있다.
"……"
어느 쪽이든 상관있을까.
명한이 주먹을 움켜쥐고 붉은색의 쐐기를 향해서 뻗었다.
지독할 정도의 반발이 그의 육체와 영혼을 흔들었지만, 나아가는 것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
쩌어엉―!!
강렬한 충격과 함께 쐐기가 산산이 조각났다.
부서진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힘의 파동이 땅을 짓눌렀다.
그리고 이 충격은 쐐기를 박아 넣은 서복에게까지 이어졌다.
"크윽!"
황급히 손을 빼며 뒤로 물러나는 서복.
손끝이 새카맣게 타서 연기를 피워냈다.
평소의 여유도 부리지 못할 만큼, 표정 또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어르신!"
"어르신 무슨 일입니까!?"
소란에 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서복은 입구를 열지 않았다.
괜찮다, 라는 말 한마디로 전부 밀어내고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이런 꼴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건 패배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어린놈이 쐐기를 부쉈다고?"
구미호와 불사조로 하여금 쐐기의 기운에 길을 낸 것은 이해한다.
모든 가능성을 논했을 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명한의 수준에서 쐐기를 파괴하는 건 불가능했다.
쐐기는 천기의 흐름을 비틀어서 고정하는 말뚝.
이를 부수면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만다.
은휘나 자신 같은 절대의 경지에 이른 존재도 이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
이제 막 외경에 발을 디딘 아이가 감당할 힘이 아니었다.
"뭔가 이상해. 자꾸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초조함에 손톱을 이로 씹었다.
투둑. 잘게 부서지는 손톱에 흠칫 놀라 손을 뺐다.
이 버릇은 아직 자신이 ‘인간’이었을 때 가지고 있던 것이다.
탈각을 이루어 인간을 벗어난 지금에 다시 이 버릇이 튀어나온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그 아이를 일찍이 처리했어야 했나? 루의 어린것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내버려 둔 것이 실수였나? 아니. 아니야. 내가 읽은 천기에서는……"
혼잣말을 이어가던 서복이 말을 멈췄다.
천기를 비틀어 세상 위에 서려는 자가 기대는 것이 천기.
그 모순에 속이 뒤틀렸다.
‘고작 이런 상황에 머뭇거릴 수는 없어.’
그러기 위해 사부를 배신한 것이 아니다.
환상루를 박차고 사부를 향해서 칼을 든 건 나름의 포부가 있었기 때문.
몇 번의 실패로 약해지는 자신을 채찍질했다.
"밖에 적이 있다면 들어오라 전해라."
감정을 추스르고 문밖으로 말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붉은색 관복 차림이 적이 안으로 들어왔다.
"양생을 통한 쐐기는 실패했다."
"역시 루에서 방해를 한 겁니까?"
"방해는 있었으나, 그 때문에 실패한 건 아니다. 소백. 그 어린놈이 쐐기를 파괴했다."
"소백? 천마의 자식 말입니까?"
"그래. 호랑이 새끼라 생각했던 놈이 이미 다 자란 호랑이었어. 놈의 성장이 내 예상을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다."
적이 눈을 반짝이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쐐기가 실패한 이상 술법의 안정성은 보장하기 어렵다."
"허면, 시일을 다시 잡을 생각이신가요?"
"아니. 칼을 뽑고도 겁쟁이처럼 움츠리고 있으면 그 늙은이의 그늘을 영영 벗어날 수 없다. 무림맹 쪽 아이들에게 전해라. 전쟁을 가속화하라고."
"피의 길이 열리는 겁니까?"
"하늘이 날 막기 위해 발악한다면 나도 그만큼 처절하게 발악할 뿐이다. 모든 걸 불태우고 모든 생명을 죽이는 한이 있어도 나는 손에 넣고 말 거다. 내 스승, 천기자도 이루지 못한 절대의 경지. 불로불사의 완전한 자유를."
그때가 되어야만 천기자라는 거대한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환상루를 흉내 낸 혼천이라는 집단도 온갖 잡술로 빚어낸 괴물도 모두.
마침내 서복이라는 인간의 이름을 세상에 새길 수 있다.
"혼천지계(混天之計)를 시작한다."
물러날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