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난 뒤
늦은 밤의 산은 지독하게 어두웠다.
불이 없으면 바로 앞도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하늘 높이 뻗은 산과 나무에 달빛마저 가려져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
명한과 청청은 조심스럽게 산길을 타고 움직였다.
"이렇게 두서없이 찾다가는 하루 이틀로도 부족할 거 같은데."
"해가 지고 난 뒤의 특이함을 찾으라고 했으니, 뭔가 있을 거야."
마땅한 단서가 없었다.
어둠 속 산길을 마냥 맴돌았다.
그리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다른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언제 끝날지 가늠이 안 되네. 일단 마을 쪽으로 돌아갈까?"
"흐음. 탐색 방향을 바꿔야 하려나. 마을에 없어도 산속에 기거한다면 어딘가 흔적을 남겼을 텐데."
"대체 그 미요라는 여자가 뭔데 찾으라는 거야?"
"무릉도원으로 가는 단서라고 하잖아. 사부님이 중원을 종횡할 때 만난 인연이라고 하니…… 보통 사람은 아니겠지."
"무림을 종횡할 때면 대체 언제야. 나이로 따져도 백은 훌쩍 넘었을 텐데."
애초에 인간이기는 할까.
명한은 머금은 의문을 말없이 삼켰다.
어차피 청청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굳이 필요 없었다.
"응? 소백, 저기."
그리고 그렇게 우도촌 근방으로 돌아왔을 때.
청청은 인적 없던 마을 주변의 인형 몇 개를 발견했다.
무언가를 찾는 듯 횃불을 들고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누군지 보여?"
"……촌장하고 안주인."
"흐응. 우리가 사라져서 찾고 있다는 가정은?"
"글쎄. 밤의 무서움을 경고한 사람들이 우리를 찾으려고 나올 것 같진 않은데."
그것도 당일 만난 사람들을 위해서?
인정이라는 것도 경우와 정도가 있다는 것이 명한의 지론이었다.
‘밤의 특별함은 이걸 말하는 거였나.’
첫 번째 단서였다.
"어떻게 할까?"
"일단 좀 떠보자고."
가볍게 답하며 명한이 몇 개의 혈을 스스로 제압했다.
흐름이 막히고 혈색이 죽어서 얼굴이 하얗게 떴다.
그 상태로 마을 쪽으로 비적비적 걸어갔다.
"여, 여보! 저기! 저기 보소!"
그런 명한을 먼저 발견한 건 촌장이었다.
아내를 불러 황급히 달려오더니 횃불을 눈앞으로 내밀었다.
"두 사람…… 괜찮은 거요?"
첫 질문이었다.
명한이 배를 손으로 부여잡고 힘겨운 말투로 답했다.
"으음. 속이 매스껍고 어지러운 것이 아무래도 뭔가 탈이 난 것 같습니다. 밤의 산으로 나가지 말라는 두 분의 경고를 무시한 것이 실수인가 보네요."
"으음. 다른 분도 그러신가?"
"……아, 네. 저도 몸이 안 좋네요. 산행의 피로인지 오늘은 돌아가서 쉬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요."
분위기 맞추는 청청.
촌장은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핥으며 명한과 그녀를 번갈아 바라봤다.
무언가 많은 생각이 스쳐 가는 눈빛이었다.
"계속 이렇게 밖에 나와 있으면 안 되겠소. 내가 큰방을 내어줄 테니, 그곳에서 쉽시다."
"아니 그래도 어떻게 염치도 없이……"
"사람이 먼저 아니오. 내가 안내하리다."
그리고는 이내 무언가 작심한 듯 밀어붙였다.
"가서 뜨거운 물과 약을 좀 챙겨오시구려."
"네, 네."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
#
따듯한 물에 약 한 사발.
거의 강요에 가까운 권유로 받은 큰방에 편히 눕기를 반 시진.
잠이 솔솔 몰려와, 잠깐만 눈을 붙일까 싶을 때였다.
"쓰러졌나?"
"그런 거 같아요. 숨소리만 겨우 들리는 게 약이 들었나 봐요."
"휴우. 무림인이라 그런가. 약이 엄청나게 안 듣네."
"……여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문을 슬쩍 열고 들어온 촌장 부부.
"약한 소리는 하지 마. 우리가 안 하면 그때는? 또 예전 효아처럼 되려고?"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든 참아 보자고. 노대께서 그러셨잖아. 신수가 잠에서 깨어나면 우리도 오래된 과업에서 풀려날 수 있다고."
"말은 그리하시지만……"
"어허! 지금 노대를 의심하는 거야? 그분은 무려 일월교 본단의 제사장이셨다고."
명한과 청청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목소리를 높였다.
"일월교의 제사장이라. 그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보고 싶은데?"
"헉!!"
"어머나!"
애초에 어설픈 약에 당할 두 사람이 아니다.
꿍꿍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연극을 했을 뿐.
예상대로 촌장 부부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외지인에게 잘해준다 싶더니 속셈이 있었군.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뒤에서는 이런 짓인가?"
"어, 어떻게 일어났지!? 소라도 쓰러질 만큼의 약을 썼는데!"
"그런 어설픈 약에 당하면 백약문의 문주 체면이 아니지. 말해. 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약을 먹인 거지?"
명한의 손짓에 촌장 부부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평범한 촌부가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두려움으로 물든 얼굴로 벌벌 떨며 답했다.
"우, 우리도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사람을 잡아서 바쳐야 겨우 목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바치다니? 누구에게?"
"이, 일월교의 제사장이셨던 분입니다. 성함은 모르고 저희는 그저 노대라고 부르고 있습죠."
"일월교라. 너희가 일월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지?"
"어떻게 알고 말고…… 저희가 그 후손입니다요."
촌장 부부가 옷을 살짝 내려서 어깨에 찍힌 문양을 보여 주었다.
해와 달이 교차하는 문양이었다.
"너희가 일월교의 후손이라고? 일월교가 망한 지는 이미 백 년도 넘었어."
"이 우도촌 전체가 당시의 난에서 도망친 후손의 집합입니다. 목숨을 건지자고 교를 버리고 도망친 부끄러움에 이렇게 숨어서 살고 있죠."
"하. 그럼, 제사장은? 그는 왜 여기에 나타난 건데?"
"어느 날 마을에 불쑥 찾아와서는 교의 제사장이라며 저희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처음에는 신분을 의심했지만, 교의 신도라면 못 알아볼 수 없는 증거를 내민 터라……"
"증거?"
"일월신장(日月訊杖)입니다."
이건 명한도 아는 이름이다.
설정에서도 사라진 일월신교의 신물로 정해 두었다.
‘사라진 물건이 갑자기 이런 곳에 나타났다는 건가.’
이래저래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너희에게 뭘 요구한 거지?"
"……제물입니다. 일월교의 부활을 위해 사람을 공양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걸 그냥 받아들였다고?"
"처, 처음에는 저희도 저항했습니다. 아무리 교의 제사장이라도 사람을 해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는 없었죠. 하지만…… 제사장은 저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저주를 걸고 명령을 어길 때마다 사람을 하나씩 죽였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산을 오른 이들을 잡아서 바쳤다는 거군. 기묘한 소문은 너희가 만든 거냐?"
"……네."
흉흉한 소문이 돌면 사람이 실종된 것도 그 탓으로 묻힌다.
대도시나 큰 문파 영역이면 조사차 사람이 나오겠지만, 이곳은 변방.
사람이 죽어도 그뿐인 곳이었다.
옆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던 청청이 슬쩍 물었다.
"소백, 어떻게 생각해?"
"당장 아귀는 맞아떨어져.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너무 조잡하지?"
"응. 일월교의 제사장쯤 되는 사람이라면 수단과 방법이 여럿일 거란 말이야. 그런데 고작 촌사람들을 조종해서 제물을 수급한다고?"
"나도 같은 생각이야. 이런 촌에서 사람을 납치해봐야 몇이나 되겠어. 게다가 그렇게 사람을 잡아간다고 일월교의 부활 같은 건 어림도 없고."
"부활이라. 그러고 보니 아까 신수를 언급하지 않았나? 이봐, 촌장. 신수는……"
무엇인지.
그렇게 물어보려는 찰나.
― 크어어어어엉!!!
어마어마한 포효가 산을 통째로 흔들었다.
산중 호랑이도 이것과 비교하면 옹알이게 불과했다.
그만큼 크고 강렬한 포효였다.
"뺘아!!!"
"금홍아!?"
순간, 포효에 금홍이 격렬하게 반응하여 뛰쳐나갔다.
날갯짓 몇 번에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명한과 청청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본 뒤, 그대로 밖으로 몸을 날렸다.
답은 소리가 들린 곳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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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한이 맞닥뜨린 건 거대한 곰이었다.
아니, 이걸 정말로 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 발로 선 키가 못해서 두 사람 몫.
보통의 곰보다 배는 큰 덩치에 눈은 피처럼 붉었다.
끝없이 토해내는 포효에는 생물을 두렵게 만드는 힘까지 서려 있었다.
"마수인가? 영물이 되다만 짐승이 감히 사람을 해치려고 들다니."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서 커다란 배에 주먹을 쑤셔 넣었다.
천둥과 같은 울림이 사방으로 번지고, 땅이 거칠게 흔들렸다.
산신이 노했다며 우도촌 사람들이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 크르르르
"허. 이걸 버텨?"
하지만 거대한 곰은 큰 상처 없이 견뎠다.
두꺼운 뱃가죽이 도움을 줬다 해도 명한의 일격이다.
바위도 단번에 박살 낼 위력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건 정상이 아니었다.
"너는 배신자가 아니로군."
"응? 이건 또 뭐야."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붉은 갈퀴를 가진 호랑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호랑이 위에 걸터앉은 한 남자.
말도 아닌 호랑이를 탄 것 치고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네게 볼일은 없다. 왔던 길로 사라지면 목숨은 살려주마."
"이거 참. 이마에 이름을 붙이고 다니든가 해야지.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무시하네."
"알량한 무림인의 이름 따위에는 관심 없다. 내 앞을 막는다면 너 역시 죽일 뿐이다."
"어디서 온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을에는 나도 볼일이 좀 있어서. 죽게 할 수는 없어."
"그럼, 죽어라."
포효와 함께 곰이 명한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그 돌진은 마치 산사태와 같아서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하지만 짐승에게 겁먹고 꼬리를 말기에는 명한이 걸어온 길이 혹독했다.
쿠웅―!
앞으로 내딛는 걸음 하나.
그리고 위로 뻗는 손바닥 하나.
거대한 곰이 반 치가량 허공으로 떠올랐다.
가슴 아래쪽에서 밀어 올린 공격에 머리가 흔들리고 충격은 내장마저 두드렸다.
곰의 몸이 굉음을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태산을 한 번에?"
"영물도 안 된 짐승에게 당할 수야 없지."
"제법 한 수는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그것뿐이다. 나는 이런 곳에서 지지부진 머무르고 있을 시간이 없어!"
호랑이 위의 남자가 품에서 무언가를 던졌다.
그건 육안으로 확인이 안 될 정도의 작은 벌레.
쓰러진 곰의 코안으로 스며들더니 매우 강하고 이질적인 기운을 뿜어냈다.
"……황제의 기운이라고?"
명한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
몇 번이나 비슷한 것을 만나서 지겹도록 싸워 왔다.
황제의 피를 기반으로 산 자에게 불사에 가까운 재생력을 주는 벌레.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지를 무시하고 존엄을 짓밟는 무고함이 있다는 걸 안다.
불로불사라는 탐욕을 위해 인간이 저지른 지독한 집착의 산물.
"네놈이 그 물건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지?"
"답할 의무는 없다. 당장 물러나라. 이 땅을 모조리 죽음으로 덮기 전까지 나는 물러날 수 없다."
"그래? 답하기 싫다면 힘으로 그 입을 비틀어 얻어내는 수밖에 없겠네. 내가 그 벌레 놈에게는 감정이 좋지 않거든."
명한은 이를 전력으로 부정한다.
인간의 탐욕은 최소한의 도덕과 양심 위에 쌓아 올려야 하는 법.
무도함을 눈감기 시작하면 그곳에 남는 건 덧없는 파괴와 상실뿐이다.
"와라."
그건 아름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