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3/235)

산속 마을

낡은 마차가 삐걱거리며 산길을 올라갔다.

평지도 버거워 보이는 말이 숨을 헐떡이며 겨우겨우 걸음을 뗐다.

아슬아슬한 비탈길 옆으로 돌이 구르고 깜짝 놀란 산새가 머리 위로 배회했다.

이 모든 걸 합치면 고행길이었다.

"허억. 허억. 이 산만 넘어가면 우도촌이지요."

"……네. 갈 수는 있는 거죠?"

"우하하……! 쿨럭! 쿨럭! 암요, 암요. 산행만 30년째입니다."

마부석에서 잔기침을 토하며 답하는 마부.

그 모습은 영 내키지 않았지만, 명한은 뭐라 타박하지 못했다.

돈 주고 산행을 요구한 것도 마차를 택한 것도 전부 그였다.

‘이럴 거면 그냥 흑점을 이용할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쏘아 보낸 화살이었다.

"으으으. 무서워 죽겠네. 조금만 삐끗해도 저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이야."

"산행만 30년이라잖아. 괜찮겠지."

"괜찮기는. 말 나이가 30이겠지."

청청이 창문 밖의 아찔한 광경을 보며 툴툴거렸다.

무릉도원을 간다, 라는 말에 훌쩍 따라 나온 것이 벌써 며칠 전.

이런 광경을 기대한 건 절대 아니었다.

"뺘―!"

"떨어지면 잡아준다고? 크으. 그래. 금홍아 너밖에 없다."

"뺘아! 뺘!"

머리 위를 빙빙 도는 금홍에게서 눈을 떼고 명한이 품 안의 작은 꾸러미를 바라봤다.

‘이 안에 담았어요.’ 은영영이 건넨 귀문 조사령이었다.

먼 길을 가기에는 은휘의 미련이 부족하니 조사령으로 묶어둔 차였다.

"오. 오오. 우도촌이 보이는군요."

그사이, 마차가 비탈길을 올라 중턱에 들어섰다.

열 가구나 될까 싶은 작은 마을이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소만 지나간다고 해서 우도(牛道).

붙인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딱히 별 볼 일 없는 지역이었다.

"고생했어요. 마을에서 좀 쉬시다가 다시 태워주시면 됩니다."

"흐흐흐. 저야 그리하면 편하지요."

명한은 짐을 챙겨 내리며 은자를 두둑하게 건넸다.

험지라지만 평범한 산행.

무거워지는 주머니에 마부가 이를 내보이며 히죽 웃었다.

"그보다 공자님. 이런 험지까지는 대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오랜 지인분께서 이곳에 기거하시거든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오. 그렇군요, 그래요……"

"흠? 왜 그러시죠?"

살짝 늘어지는 말꼬리가 어딘가 의뭉스러웠다.

마부가 염소 꼬리 같은 수염을 손끝으로 비비 꼬더니, 마뜩잖은 듯 입을 열었다.

"이 산 말입니다. 귀신 들렸다는 소문이 있어요."

"귀신? 산귀라도 있단 말입니까?"

"아이고, 저 같은 무지렁이가 그것까지는 모르지요. 다만, 이 산을 소만 지난다는 게 인적이 없어서만은 아니라는 소문이 있습죠."

"다른 뭔가 있어서 사람이 없다?"

"그러니 해가 떨어질 시점에는 행차를 삼가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요."

명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소문이라도 없었다면 되레 실망할 판이었다.

"뭐, 기다리던 바입니다."

귀신이든 뭐든.

특별함이 필요했다.

#

우도촌은 작고 별 볼 일 없는 마을이었다.

산 중턱 약초를 캐거나 밭일을 해서 자급자족하는 일이 전부였다.

오가는 행객도 드물어서 물건을 파는 일도 거의 없었다.

외부인인 명한의 방문은 마을에 몇 없는 특별한 일이었다.

"허허. 밖에서 사람이 오다니 별일이 다 있군요."

마을의 가장 웃어른이 슬쩍 다가와 말을 붙였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마을에 쉴 곳은 있는지요?"

"이런 외지에 객잔이 어디 있겠소. 그래도 손님을 밖에서 재울 수야 없으니, 해가 떨어질 것 같으면 저기 안쪽 큰집으로 오시오."

"어르신 집입니까?"

"대단할 건 없지만, 그래도 우도촌에서는 이 늙은이가 가장 오래 살았다오. 명목상 촌장직을 맡고 있으니, 이런 일이라도 해야지. 편하지는 않아도 노숙보다야 나올 거요."

"하하. 마다할 형편은 아닙니다."

명한이 가볍게 포권으로 답했다.

이런 벽지의 마을치고는 그래도 외부인에 우호적인 편이었다.

아예 폐쇄적으로 외부인과 벽치는 마을도 적지 않으니까.

"참. 해가 떨어지면 이런 산속은 길을 찾기가 어렵다오. 돌아다닐 생각일랑 거두고 바로 집으로 돌아오시오."

"그렇게 어두운 겁니까?"

"해가 안 들어오는 산길은 무림인도 발을 헛디디기 쉬운 법이라오. 다 경험에서 나오는 충고니 객기 부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명심하죠."

같은 충고가 연달아 두 번째다.

‘이곳 사람들은 해가 지는 것에 꽤 민감하네.’

의아한 듯싶지만, 산속 마을이니 그럴 만도 하다.

명한이 짧게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을의 규모가 작은 터라 전부를 다 둘러보는 것에는 한 시진이 걸리지 않았다.

"사부님. 마을에는 찾는 분이 안 계신데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조사패를 꺼냈다.

이곳까지 보낸 것이 은휘였으니, 다음 단서가 필요했다.

은색 빛이 몽글몽글 맺히더니 말이 아닌 뜻이 전해졌다.

"해가 지고 수상해 보이는 것을 따라가라."

"해가 진 뒤에요?"

"무릉도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를 먼저 찾아야 한다.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있다면 산속에 터를 잡은 것이다. 그럼 해가 진 뒤에야 찾을 수 있겠지."

은휘는 무릉도원을 찾기 위해 ‘미요’라는 여성을 찾으라고 했다.

우도촌까지 온갖 고생을 다 하며 온 것도 바로 그녀를 찾기 위함.

"마을 사람들은 꼬박꼬박 해가 진 뒤를 경고하던데. 이거 흐름이 영 불안한데요?"

"만나보면 이해가 갈 거다. 난 귀문을 벗어나서는 힘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다음부터는 네가 임기응변으로 대응해라."

"뭘 알아야 대응을 하죠."

"보면 알 거다. 보면……"

말은 점차 흐려지다 이내 연기처럼 흩어졌다.

"끄응. 대체 뭔데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말을 하는 거지?"

"그러니까. 사부님이 이렇게 말을 돌리는 경우는 못 봤는데."

"그만큼 위험한 존재라도 사는 걸까?"

"뺘!"

청청의 으스스한 경고에는 금홍이 놀랐다.

날개를 꽉 오므리고 청청 뒤에 몸을 숨기는 꼴이 적잖이 겁먹은 모습이었다.

신수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특별함이 주변이 있다는 얘기였다.

"가지 말까?"

"여기까지 와서 그럴 수야 없지. 사부님이 무언가를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상황이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

"나도 말만 그런 거였어. 금홍, 너도 갈 거지?"

"뺘……"

"어딜 도망가. 우리는 한 몸이라고."

슬금슬금 도망치는 금홍을 청청이 낚아챘다.

셋 중 둘이 찬성.

남은 신수 하나에게 반대권은 없었다.

"해가 지면 움직인다."

공포영화였다면 첫 번째 피해자 패턴.

해가 스물스물 저물고 있었다.

#

사위가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산속은 평지보다 밤이 빨리 오는 법.

해가 저무는가 싶었을 때는 이미 어둠으로 뒤덮인 후였다.

"이때부터라 이건가."

익숙하지 않은 침상에서 일어나 명한이 옷을 갖춰 입었다.

이른 시간부터 일을 접기 시작한 우도촌 촌민들은 이미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 상황.

마을은 죽은 듯 고요했다.

"손님, 안에 계십니까?"

"……음?"

그때, 예상치 못한 객이 찾아왔다.

우도촌 촌장의 아내였다.

가슴께서 올려 안은 바구니에는 방금 찐 듯한 감자가 가득 담겨 있었다.

"찬이 부족해서 손님분들 속이 허할까 싶어서요. 마을 뒤에서 키우는 감자랍니다. 알이 실하니 자기 전에 드셔요."

"아니, 굳이 이렇게 챙겨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후후. 이런 외지에 손님이 오는 일이 흔치 않아서요. 게다가 손님을 보면 마을을 떠난 아들놈이 떠올라서…… 아. 이거, 주책이네요."

민망하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안주인의 청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명한이 바구니를 그대로 넘겨받았다.

방금 찐 감자의 냄새는 제법 그럴듯했다.

"잘 먹겠습니다. 아드님이 저와 비슷한 또래인가 보죠?"

"마을을 떠난 것이 벌써 3년 전이니, 비슷할 겁니다. 우도촌에서 나기 어려울 정도로 인물도 훤하고 머리도 좋았었죠. 하긴, 그런 아이니 이런 마을이 좁기만 했겠죠."

"……한참 혈기 넘칠 나이 아닙니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향 생각이 날 겁니다."

"후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 제가 너무 시간을 잡아먹었죠? 다 드시고 바구니는 문 앞에 두세요."

안주인은 가볍게 웃으며 물러났다.

"감자? 갈 때 가더라도 배는 채우는 편이 좋지 않겠어?"

뒤이어 청청이 밖으로 나와서는 감자를 하나 낚아챘다.

코를 대고 킁킁대더니 망설임 없이 그대로 베어 물었다.

"독은?"

"허. 사람이 각박하네. 설마 저런 순수한 촌사람이 해코지할까."

"밑바닥을 구르면서 생활한 주제에 의외로 의심은 없네?"

"내게는 쌍둥이들이 있었으니까. 어지간한 독은 안 통해서."

씩 웃으며 청청이 감자를 던졌다.

독이라면 청청이 아니라 명한 쪽이 더 강하다.

그대로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갓 찐 감자는 더없이 고소했다.

"그보다 조금 전에 눈치챘어?"

"응? 뭘?"

"안주인 말이야. 아들 얘기를 할 때, 기색이 묘하던데."

청청의 지적에 명한이 안주인의 모습을 되짚었다.

특별한 것이 없었다 싶지만, 조금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죄책감. 그리움 사이로 희미하게나마 죄책감이 느껴졌어."

"맞아. 죄지은 사람을 많이 봐서 아는데, 그 눈은 확실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어."

"하지만 그게 특별할까? 아들이 마을을 떠난 원인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앞뒤는 맞는데."

"뭐, 그럴 수도 있고. 사부님이 특이한 걸 찾으라고 했으니 사소한 거라도 짚고 넘어가야지."

어깨를 으쓱하며 지나가는 청청.

"근데, 소백. 보통 다른 감정으로 죄책감을 가리는 사람은 뭔가 구린 법이야."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

밤의 우도촌은 이제부터였다.

#

"찾았습니다, 교주님."

피로 만들어진 긴 복도 위로 한 남자가 부복했다.

전신이 날붙이에 난도질당했지만, 고통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효. 어디로 움직였지?"

"망야산입니다."

"망야산이라. 고문을 따르자면 선계의 입구라고 했던가?"

"네. 배신자 놈도 이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거 같습니다."

남자의 앞.

해골로 만들어진 옥좌에 양생이 앉아 고개를 기울였다.

서복에게 다음 계획에 대한 전권을 양도받은 이후 처음이었다.

"역시 고문은 황제진경을 바탕으로 하는 건가. 영생을 추구하는 건 시대를 불문한 모든 황제의 업이라 이거군."

"도력제가 미친 것도 역시 고문 때문입니까?"

"황제진경이 사라지기 전, 당시의 관료 일부가 이를 필사했다고 한다. 그게 우리와 몇몇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갔지. 도력제의 광증은 완벽하지 않은 고문의 술법을 이용했기 때문. 인간이면 벗어날 수 없는 업이다."

양생이 품 안에서 붉은색 함을 꺼내 들었다.

수십 마리의 고가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져가라. 배신자가 고문을 바탕으로 움직였다면 시기를 읽고 있음이 분명하다. 놈의 수단과 방식이 무엇이든 혈고라면 대응이 될 것이다."

"명을 받듭니다."

효라 불린 남자가 조심스럽게 붉은 함을 받아들었다.

자연스러운, 흐트러짐 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빛이 드리워진 그의 얼굴에서는 보통이라면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었다.

"가서 마음껏 귀향을 즐겨라."

두 눈이 도려내진, 장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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