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7/235)

서로의 목적으로

강유는 냉정한 성격이다.

어린 나이에 부친에게서 버려져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후로는 천기자에게서 세상의 이면을 배웠다.

세상 대부분의 것을 낮게 보고 차갑게 응시하는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역린은 존재했다.

바로 부모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체 누구냐. 어떤 놈이 감히 어머니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지?"

은근히 퍼져나간 소문을 강유가 수집했다.

북해빙궁의 소궁주와 만년빙에 대한 소문.

모른 척하고 싶어도 모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대적으로 퍼졌다.

"듣기로 북해빙궁의 소궁주가 음탕한 탓에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며?"

"그래서 남편도 도망갔던 건가? 예전에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뒤는 감감무소식이잖아."

"하여튼 세외 무림 놈들은 잔인하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딸을 그렇게 얼려버리나?"

"그 차가운 곳에 몸이 뜨거운 여자라니. 웃기지 않냐?"

"큭큭. 그렇긴 하군."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소문이었다.

은밀해야 할 정보가 대놓고 퍼지는 것도 모자라서 살을 더했다.

당연하게도 이건 청의 수작이었지만, 이를 판단하기에는 강유의 머리가 너무 뜨거웠다.

"……네놈들이 대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응? 넌, 뭐야? 너도 대회 참가자인가?"

"닥쳐라. 너희 같은 싸구려의 입에서 거론될 분이 아니다. 당장 뱉었던 말을 취소하고 그 머리를 땅에 조아려 사과해."

"하. 미친놈인가?"

역린이다.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비되어 어머니는 고결했다.

아니, 반드시 고결해야 했다.

적어도 그녀만큼은 완전무결한 존재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래야 어릴 적의 모든 고통과 외로움을 납득할 수 있으니까.

"컥! 커억……!"

"무슨 짓…… 컥!"

어머니에 대한 부정을 담는 모든 것들을 용서할 수 없다.

피가 데일 듯 뜨거웠다.

#

피가 뜨거운 건 강유옥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인간.

아내에 대한 소문이 뒤틀려서 퍼지고 있는 걸 그가 간과할 리 없다.

"감히 네놈이 그딴 소문을 퍼뜨려!?"

거친 소리와 함께 비틀어 쥔 멱살.

청을 구석까지 몰아넣은 채 윽박질렀다.

"하하. 왜 이래, 흑. 목적을 위해서 수를 썼을 뿐이야. 어르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 아니었나? 이렇게 개인적으로 나서면 곤란한데."

"닥쳐, 청. 지금 네놈의 목을 비틀어줄까?"

"되겠어?"

"네놈이 정녕……!"

머리끝까지 차오른 열에 강유옥의 몸이 거칠게 떨렸다.

계획이고 뭐고 눈앞의 청부터 때려죽이고 싶었다.

"큭큭큭. 멍청한 새끼. 고작 계집 하나에 눈깔 돌아가서 감히 어르신의 계획에 초를 쳐?"

"끼어든 건 네놈도 마찬가지다, 청!"

"아니. 나는 내 일을 하러 왔을 뿐이라서."

무슨, 이라고 되물으려는 찰나.

거친 소리와 함께 방문이 뜯겨 나갔다.

강력한 경기가 파도처럼 몰아쳐서 강유옥을 밀쳤다.

"강유옥―!!"

그건 강유였다.

"네가 어째서 이곳에!?"

"어머니의 시신을 유린한 네놈이 무슨 낯짝으로 돌아다니는 것이냐!?"

"……젠장! 청! 네놈이 숨겼구나!"

"큭큭. 즐거운 부자상봉이 되라고."

청은 재빨리 둘에게서 멀어졌다.

소문을 곡해한 것도 그고 상황을 조작한 것도 그다.

냉정하게 보자면 강유옥이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건 강유도 알 수 있는 일.

하지만 쌓인 분노와 평생에 걸친 원망은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는데?’

강유와 강유옥이 부딪치기 시작하면 혼란은 피할 수 없다.

그사이에 목적을 이루면 그만.

과정에서 강유옥이 죽는다 해도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너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겠다, 강유옥!!"

"빌어먹을. 이런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내게 황제의 심장을 가져와라. 황제의 심장이 있다면 그녀를 되살릴 수 있다!"

"감히! 어머니의 안식마저 방해하려는 거냐!"

"너야말로 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거냐!? 네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는 거다! 그녀를 다시 이 땅으로 되살리고 싶지 않은 거냐!?"

"닥쳐! 닥쳐!! 네 썩어빠진 입으로 어머니를 거론하지 마. 내 기억에 남은 유일한 따듯함을 너 따위가 망치지 말란 말이다!"

"이, 이이…… 미련한 놈!"

두 사람의 싸움은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가진 바 절초를 쏟아내고 어마어마한 내공으로 주변을 휩쓸었다.

저택 안쪽에 준비해 둔 숙소가 단번에 파괴되고, 잠에 깬 무인들이 다급하게 뛰쳐나왔다.

혼란 그 자체였다.

"부탁하지, 흑."

그 사이로 청은 자취를 감추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다.

#

이미 안과 밖에서 조사를 마쳐 두었다.

소명회가 기거하는 저택의 크기는 분명 거대하지만, 그래도 부지에는 한계가 있다.

과거의 기록을 기반으로 서불이 있는 위치를 예상해 두었다.

강유와 강유옥이 맞붙는 지금 상황에서라면 충분히 접근이 가능하다.

"심장도 탐이 나지만…… 일단은 이쪽이 더 급하니까."

서복의 상태부터 돌리는 것이 우선.

청이 저택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들어섰다.

방비가 허술하고 경계마저 싸움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어린아이 하나 빼돌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여기인가."

평범해 보이는 방.

하지만 다른 공간과는 다르게 생필품이 계속해서 제공됐다.

누군가 안에 기거하고 있다는 의미.

삼엄한 방비 대신 평범한 속에 숨기려 한 것 같지만, 이래서야 의미가 없다.

청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는 문을 열었다.

"여어."

"……!"

방의 주인인 서불이 아니었다.

훅 튀어나오며 있는 힘껏 발길질하는 명한.

쩍, 소리와 함께 청이 뒤로 날아가서 처박혔다.

"네,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대충 이렇게 있을 법하게 꾸며두면 올 거라고 하더라."

"뭐? 누가!?"

"강유."

명한은 답과 함께 주먹을 연달아 날렸다.

청이 연검을 뽑아서 방어를 시도했지만, 자세가 불안했다.

중심이 흔들리고 연검이 튕겨 나갔다.

묵직하게 꽂히는 주먹은 벽마저 부수고 청을 날려버렸다.

"커억!!"

"얼굴에 뒤집어쓴 거죽은 벗지 그래?"

날아가는 몸을 왼손으로 잡아채며 복부에 팔꿈치를 쑤셔 넣는 명한.

반발력은 땅을 딛는 발로 상쇄하며 몸을 회전시켜서 턱을 쳤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인피면구가 피와 함께 벗겨졌다.

"크으윽. 버러지 같은 놈이!"

청이 땅을 강하게 차며 몸을 회전시켰다.

연검이 실처럼 뽑혀 나와 다가서던 명한의 거리를 베었다.

갈게 파이는 홈에 걸음이 멈추자, 재빨리 자세를 회복하고 망가진 호흡을 돌렸다.

숨에서 묻어나오는 피는 적지 않은 부상의 증거였다.

"빌어먹을. 어떻게 알았던 거지?"

"잠입한 수가 많으면 상황을 지켜볼 것이고, 적으면 얄팍한 수를 쓸 거라 하더라. 강유 그 인간이 싸가지는 없어도 머리는 잘 돌아가."

"흑과 싸우는 것도 연기라고?"

"그를 진심으로 끌어낼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면서."

청이 소리 나게 이를 깨물었다.

이래서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읽힌 수준이었다.

"근데 왜 네놈 혼자지? 다른 놈들은?"

"일정대로 대회를 진행해야 하니까. 너는 나 혼자면 충분할 거 같아서."

"……제정신이 아니군. 외경의 힘을 다루었다고 네가 그 경지라고 생각하나?"

"꼬리 말고 도망친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인지라."

"닥쳐라, 버러지!"

청이 연검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외경은 힘은 분명 황제의 그것. 자유롭게 쓸 수 있을 리 없다.’

단순 전력으로는 자신이 위.

계획과는 다르지만, 이것도 나쁜 성과는 아니었다.

"여기서 네놈을 죽인다."

"할 수 있다면."

두 번째 싸움이 시작됐다.

#

강유의 주먹은 빠르게 강하며 무게감이 있었다.

천둥과 벼락이 몰아치는 태풍과 같았다.

강유옥은 한 번 밀리기 시작한 공세의 우선권을 되찾지 못했다.

형편없이 밀려나 저택의 끝까지 도착하고 말았다.

"그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차적인 공방이 끝났다.

주먹을 내린 강유옥을 보면서도 강유는 추가타를 날리지 않았다.

"눈치챘던 거냐?"

"날 어찌 생각하는지 안다. 하지만 난 너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있어."

"이제 와서 부모 비슷한 행세라도 해보고 싶은 건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아. 난 이미 아버지의 자격을 버렸다. 다만……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았을 뿐이다."

"개소리."

강유가 주먹을 움켜쥐며 억눌린 말을 뱉었다.

"너는 아직 철도 들지 않은 아이를 천마에게 맡기고 사라졌어. 그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환경은 괜찮은지 부모를 그리워하지는 않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선택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건 안다."

"충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야! 너는 내 어린 시절이 어떤지 모른다! 신교라는 삭막한 공간 속에서 나라는 이방인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했는지! 너는 결코 몰라."

"그래서 날 원망하는 건가?"

"원망? 내가 네게 품은 감정은 환멸이다. 네게서 나온 모든 걸 부정한다. 너라는 인간은 감히 어머니를 거론할 자격 따위도 없어."

앞선 감정이 연기였다면 이것은 진심이다.

아버지를 포기한 남자에 대한 지독한 환멸.

어마어마한 기운이 강유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신기인가. 천마가 잘도 그걸 네게 넘겨 주었군."

"쉬웠을 것 같나? 네가 사라지고 신교의 대부분이 널 배신자 취급했다. 진실은 아는 이들은 네 욕망이 결국 서복에게 닿았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 그런 인간의 아들에게 신기를 순순하게 넘겨줄 리는 없어."

"그 말은……"

"내 손으로 직접 증명해야 했다. 경쟁자를 죽이고 말미에 달라붙어 있던 또래의 첩자마저 제거했다. 한때 친구라고 부르던 이들도 섞여 있었지."

"유아야……"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집어삼킬 것 같은 증오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신기라는 건 황제의 피가 가문의 적성과 어울려서 발현된 하나의 능력.

능력은 마음에 크게 좌우되며 때로는 그 한계마저 초월한다.

강유의 마음은 증오로 점철되어 있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신교의 적을 죽인다. 배신자의 피로 가문의 오명을 씻고 영면에 들지 못한 어머니를 모시겠다."

"……그녀는 내어 줄 수 없다. 황제의 심장을 모두 모아 불사종법을 완성하면 그녀를 다시 되살릴 수 있어. 세상이 모두 불타더라도 그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그럼 난 네 눈앞에서 모든 걸 불태우겠다."

"뭐?"

"내 기억에 남은 유일한 따스함은 어머니뿐이다. 그녀의 손길 목소리 체온. 모든 것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 하지만 그런 어머니를 네놈이 욕심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나는 용서하지 않는다."

"강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전부 태울 거다. 태워서 기억 속에만 남기겠다. 그것이 어머니를 위한 일."

"강유!!"

강유옥도 참지 못하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아들에 대한 망설임은 앞선 발언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은 건 처리해야 할 적뿐이었다.

"와라. 오늘 이곳에서 남은 핏줄마저 태우자."

"너를 더 이상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겠다."

성난 야수와 같은 둘.

부자의 정은 지독한 증오로 덧씌워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