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4/235)

힘의 대가

호릉과 호랑은 신호를 받은 것처럼 동시에 움직였다.

괴한의 좌우로 나뉘어 움직이며 품에서 실타래를 뽑아서 던졌다.

특수하게 제작된 물건으로 얇지만, 질긴 그물이었다.

서불을 뺀 괴한만 정확하게 덮었다.

"끼어들지 마라. 오늘 용건이 있는 건 너희가 아니니까."

"흥! 서불이 싫다잖아! 물러나!"

"맞아, 맞아! 척 봐도 무서워하는 게 보이는데! 너 나쁜 사람이지!?"

가란다고 갈 호릉, 호랑이 아니다.

양쪽에서 그물 끝을 잡고 팽팽하게 당겼다.

구속은 단단하고 서불을 구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말을 듣지 않는 애들에게는 벌을 줘야겠군."

촤아악!!

하지만 괴한이 힘을 주는 순간.

팽팽하게 감싸고 있던 그물이 한 번에 찢어졌다.

특수하게 제작되어 힘으로는 찢기가 거의 불가능한 물건이었는데.

놀란 호릉과 호랑이 펄쩍 뛰었다.

"호릉!"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물을 찢은 괴한은 잔상조차 남지 않을 속도로 호릉에게 접근.

그 머리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어마어마한 아귀힘에 호릉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나쁜 사람! 호릉을 놔 줘!"

호랑이 땅을 박차고 달려서 괴한의 몸에 부딪혔다.

하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충격은 없고, 대신 머리에 고통만 전해졌다.

호릉과 마찬가지로 호랑도 괴한에게 잡혀 버린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대롱대롱 매달려서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 하지 마. 두 사람 아프게 하지 마."

그 모습에 비적비적 몸을 일으키는 서불.

두려움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말을 쥐어짰다.

"호오. 감히 네가 내 행동에 제약을 거는 거냐?"

"두, 둘은 착하다. 날 도왔다. 아프게 하는 거 나쁘다."

"나쁘면? 짐승 따위가 감히 요구라고 할 셈인가?"

"나, 나는…… 나는 싫다!"

무언가 팍, 조여드는 소리와 함께 서불 주변의 넝쿨이 똬리를 틀었다.

이는 살아있는 뱀처럼 바닥을 기어가서는 괴한의 발을 낚아챘다.

훅, 소리를 내며 그를 허공으로 들어 올리는 것은 순식간.

잡혀 있던 호랑과 호릉이 풀려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아아. 아파라.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어."

"쓰읍. 안 좋은 머리가 더 안 좋아지겠네. 근데 어떻게 된…… 헉! 서불?"

"우와아! 서불은 술법사였던 거야?"

"아, 아니야. 도망쳐. 나는 잠깐이야."

"잠깐?"

단락적인 말의 의미는 바로 설명됐다.

바람이 스치는 듯 무언가 넝쿨을 가로질렀다.

끝부터 서불의 몸까지의 모든 넝쿨이 조각조각 잘려서 떨어지고, 괴한은 가볍게 땅으로 내려왔다.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그 하찮은 능력을 내게 썼군. 잠깐 만난 저 아이 둘이 소중하기라도 한 건가?"

"나, 날 보고 놀리지 않았어. 두려워하지도 않았어. 돕는다고 했어. 착해.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짐승에게도 마음이 남아 있다는 건가. 좋아. 그럼 저 둘도 너와 함께 데려가겠다."

"아, 안 돼!!"

서불이 발악적으로 앞으로 뛰어나가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그의 발을 잘랐다.

넝쿨과 수풀이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서, 서불!"

"으악! 이 나쁜 놈아! 어떻게 사람 발을 저렇게!?"

"조용히."

이번엔 어디선가 튀어나온 천이었다.

호릉과 호랑의 입을 순식간에 휘감아서는 서불의 옆으로 끌고 갔다.

둘은 바동거렸지만, 힘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상정 외의 일이지만 짐승을 다스리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상관없겠지."

괴한은 그대로 천으로 셋을 동여맨 채 허공섭물의 능력으로 들어 올렸다.

셋의 발악은 괴한의 능력 앞에서는 너무 하찮았다.

이대로 끝.

절망감에 몸부림조차 멎었다.

"어디서 온 새끼가 남의 집 애들을 납치하냐."

"……"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늦지 않게 현장에 명한이 당도했다.

거칠어진 호흡을 다스리며 천에 묶인 셋과 괴한을 번갈아 바라봤다.

"풀어 새끼야."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다.

#

들끓던 감정이 가라앉자 보인 건 괴한의 생김새였다.

얼굴을 가린 청색의 가면은 너무나 익숙했다.

적면, 백면, 흑면……

우연히 가면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소속이 뻔했다.

"너, 혼천에서 나왔냐?"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청이라고 한다."

"청이라. 얼굴도 드러내지 못할 만큼 부끄러운 새끼들은 이름은 또 깔끔하네."

"우리가 가면을 쓰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네 알량한 판단으로 치부하지 마라."

"닥쳐. 풋내 나는 애들을 납치하려 하는 주제에 뭔 혀가 이렇게 길어?"

혼천의 수단과 방법이 정도를 훌쩍 넘은 건 이미 안다.

인체실험은 물론이거니와 사람 죽이는 건 밥 먹듯이 한다.

하지만 그래도 선이라는 것이 있다.

아직 여물지도 않은 아이들 가지고 장난질 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명한의 주먹에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건 초대 천마의 무공이군. 역시 네가 익힌 건가."

"아는 건가? 아, 하긴 일월교를 박살 내고 신교를 세운 분이니 네놈들 입장에서는 주적이었겠군. 사상교육의 일환으로 배우기라도 했냐?"

"주제를 모르고 떠드는군. 초대 천마가 반란에 성공했던 건 어디까지나 내부 사정 덕분이었다. 그의 역량으로 이룬 위업이라 여기지 마라."

"혀가 기네. 역시 찔리나 본데?"

"……이번 기회에 그냥 네놈을 죽여야겠다."

혓바닥으로는 명한의 승리.

청이 호릉 등을 바닥에 내려두고는 양손을 오므렸다.

‘적수공권인가?’

별다른 무기는 보이지 않음에 명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직은 상대의 역량이나 특기를 모르는 상황.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안 오는 건가? 그럼 내가 먼저 가지."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청은 명한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아찔한 예감에 고개를 숙인 명한의 머리 위로 무언가 스쳐 갔다.

머리카락 몇 올이 잘리고 궤적에 걸린 나무 몇 그루가 통째로 잘렸다.

속도를 떠나서 예리함이 정상의 범위를 훌쩍 벗어나 있었다.

‘뭐였지? 수도인가?’

육안으로 확인이 안 되는 속도.

명한이 크게 뛰어 범위에서 벗어났다.

은색 선이 주변을 휘몰아치더니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땅을 도륙했다.

"……연검."

그제야 명한은 청의 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소매 안쪽으로 감아 놓은 연검이었다.

팔을 휘두를 때마다 풀려나와서 주변을 할퀴었다.

매우 얇고 부드럽지만, 그 예리함이 대단했다.

"제법 날래군.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강해."

"그쪽하고 워낙 자주 부딪쳐야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고."

"그 나이에 그런 실력이라면 확실한 재능이다. 삼십 년. 아니 이십 년의 시간만 있었다면 당대의 천하제일은 네가 되었을 수도 있겠어."

"칭찬이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은 없다. 네 재능이 생각보다 뛰어나니 오늘 여기서 널 죽이겠다."

예리한 금속음과 함께 청의 양손에 검이 잡혔다.

연검임에도 흔들림 없이 바로 선 것은 그 내공의 증거.

특색 있는 무기를 다루는 것에 매우 능하다는 얘기였다.

‘연검이라. 쉽지 않은데.’

차라리 타구봉이 있었다면 상대가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전의 싸움으로 부서진 이후로는 적수공권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

이래저래 상성은 썩 좋지 않았다.

"감히 날 앞에 두고 잡생각인가?"

"……!"

이마를 스치는 검.

상처가 벌어지고 피가 점점이 쏟아졌다.

화끈한 고통은 전기라도 통한 듯 정신을 맑게 만들었다.

집중력이 올라가고 호흡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되고 안 되고는 부딪친 뒤에 생각한다.’

멸아의 시작으로 잡념을 지웠다.

꾸욱.

발끝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동시에 대각선 방향에서 살이 에일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벼랑 끝에 선 아찔함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피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단련된 육체라도 베이고 말 것은 자명했다.

드드득.

땅을 밟은 무게가 더욱 늘어나고……

예기가 피부에 닿을 듯한 순간에 폭발적으로 밀어냈다.

면과 면 사이의 공간으로 육체를 비집고 검격의 주체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폭음과 함께 느껴지는 반발력.

저릿한 손을 털고 몸을 비틀어 안개 속의 검격을 피했다.

어깨가 스쳐 살점이 찢어졌으나 그건 얕다.

딛는 발로 땅을 차 몸을 돌려 이격을 피한 뒤 그대로 허공을 때렸다.

쿵―!!

충격은 있다.

바람이 가라앉았다 사방으로 퍼지고 거미줄처럼 으깨진 바닥을 드러냈다.

다만, 그곳에 있어야 할 청은 없다.

어디냐.

감각이 몰아의 경지로 빠져들어 주변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바람, 흙, 산새, 먼지, 수풀……

눈이 아닌 감각으로 주변 삼장의 공간이 그려졌다.

이 안을 날뛰는 이질감은 바로 이곳.

퍼엉!!

"큭."

밀려나는 청과 나선형으로 모이는 바람.

두 자루의 연검을 교차해서 만든 기묘한 기운이었다.

타격에 대한 방어와 다음 공격을 위한 준비가 함께 어우러졌다.

쉬이익.

바람 잘리는 소리.

하지만 듣기 전에 이미 볼이 찢어졌다.

삼장 안의 감각으로 파악한 뒤 피하는 동작으로는 한 박자 늦었다.

그만큼 빠르고 날카로웠다.

역시 거리를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판단과 동시에 명한의 몸은 이미 앞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챙. 챙. 챙―!

손등과 검면이 팔과 검날이 손가락과 검극이.

계속해서 부딪치며 서로의 거리를 잡기 위해서 싸웠다.

나아가면 물러나고 돌아서면 따라잡는 술래잡기의 연속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공격에 치명적인 만큼 한 번의 거리감이 중요했다.

"후우……!"

"훅!"

동시에 찾아온 호흡.

"……!"

찢어진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가 순간적으로 눈앞을 가렸다.

기회를 놓칠 청이 아니었다.

검이 먹이를 노리는 짐승의 아귀처럼 사선에서 쏟아졌다.

물러날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절묘한 간격이었다.

"하―!"

그렇기에 뽑아 들 수밖에 없었다.

몸을 중심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힘의 기둥이 만들어졌다.

검격을 상쇄하고 단번에 공간의 장악 범위를 십장으로 확대했다.

청의 심장 박동 소리와 당황으로 위축되는 눈동자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치트키."

"뭐?"

답해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신. 어쩌면 혼천이 추앙하고 있는 황제일지도 모르는 자의 선물.

이 세상에서 노는 자는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밖’의 이치였다.

점, 선, 면. 공간 너머의 감각으로 어떤 흐름의 획이 느껴졌다.

발을 딛고 손을 뻗어 청의 연검을 잡고 그것을 그대로 당겼다.

마치 아이의 사탕을 빼앗듯 청의 연검이 딸려 나왔다.

"불가능해. 이건 어르신의……?"

경악은 잠시.

청은 이 대결의 불합리성을 깨달았다.

곧바로 쥐고 있는 남은 연검마저 명한에게 던지며 도주를 선택했다.

자존심 가득한 모습과는 다른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명한은 그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날아오는 연검을 손가락 하나로 밀어내고 ‘간격’이라는 것을 제거했다.

청의 모습이 단번에 커지고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들어왔다.

"……!"

하지만 순간.

심장을 옥죄는 고통에 명한의 동작이 멈췄다.

피가 굳어서 돌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틈에 청은 뒤도 안 보고 도망쳤다.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명한은 쫓을 수 없었다.

심장이 부서져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잠식했기 때문이다.

"……젠장."

짧은 신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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