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섬
남은 이들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다.
하나같이 무언가에 씐 채 바동거리고 있었다.
명한이 억지로 그것을 뜯어내 처리하자, 크게 기력을 잃은 듯 쓰러졌다.
"그게 이 섬에 존재하는 귀신이라는 건가?"
"쉽게 말하자면 그렇지만, 조금 성격이 달라요."
"다르다? 무엇이 말인가?"
막천우의 질문에 명한은 잠시 답을 정리했다.
"저들이 삼류 무인이라고는 해도 양생공을 익힌 무인입니다. 일반적인 귀(鬼)라면 파고들지 못해요. 하지만 보다시피 순식간에 당해 버렸죠."
"자네가 말한 대로 명계와 겹쳐 있기 때문인가?"
"그것도 그렇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요."
명한이 동굴 바닥을 손끝으로 훑었다.
묻어나는 건 먼지.
그리고 이미 말라붙은 피였다.
"우욱."
그 모습에 청청이 입을 틀어막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역시 네 눈에는 보이는 모양이네."
"무슨 소리인가? 대체 뭐가 보인다는 거지?"
"동굴 바닥에 쌓아둔 죽음입니다. 원념이라고 말하면 좀 쉬우려나. 엄청나게 많은 수, 그리고 지독한 집착이 이 아래에 누적되어 있어요."
발로 쿵쿵 두드릴 때마다 침잠한 귀기가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건 너무나 무겁게 침잠해 있었기 때문.
섬을 방문한 사람들 때문에 조금씩 풍기기 시작한 기운이 이제야 코끝을 적시고 있었다.
‘왜 이곳이 겹쳐 있나 싶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의 죽음이 한곳에 있다면 이미 이곳이 지옥이었다.
"아무래도 이 섬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거 같네요. 내공을 끌어올려서 몸을 보호하세요. 이 섬에 깃든 귀기들이 몸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이 모르겠군."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결과가 있다면 어딘가에 원인이 존재할 겁니다. 거짓 소문과 얄팍한 술책도 그 끝에서 파악할 수 있겠죠."
명한이 횃불을 꺼내어 불을 붙이며 앞을 밝혔다.
갈라지는 어둠은 끝이 어디인지 모를 만큼 깊었다.
"가죠."
무겁게 발을 뗐다.
#
동굴은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안으로 갈수록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왔던 길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는다면 돌아가기도 쉽지 않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안으로 갈수록 귀기는 더욱 진해졌다.
"……피부가 따가울 지경이군."
영에 대한 개념이 없는 막천우조차 귀기를 느낄 정도였다.
게다가.
"으윽. 윽."
"사제! 조심해!"
"죄, 죄송합니다. 속이 뒤틀려서……"
함께 섬으로 들어온 무당파의 무인들이 슬슬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공이 약한 순서대로 귀기에 대한 저항에 한계를 보였다.
깜빡깜빡 정신을 놓고, 홀린 듯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이대로 계속 들어가는 건 무리가 있겠군."
"아무래도 일정 수준 이하의 무인은 접근이 어려워 보입니다."
"으음. 일단은 잠시 피해 있는 편이 낫겠어. 너희는 나를 따라와라."
"하지만 장문인……!"
"부끄러워할 것 없다. 무당의 무인으로서 돌아갈 곳을 지키고 있거라."
막천우는 남은 이들을 다시 지상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 이상은 기개나 결의 따위로 어떻게 될 수준이 아니었다.
장문인만 두고 어떻게, 라며 절절매는 이들을 설득하여 지상으로 옮겼다.
"후우. 우린 막 장문이 올 때까지 잠시 숨을 고르자."
그사이, 명한은 자리를 폈다.
말은 안 했을 뿐, 그도 피로한 건 마찬가지였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향아가 쪼르륵 다가와 팔과 다리를 조물거렸다.
"나야 묵혼공이 있으니 귀기가 침범할 일은 없다. 나보다는 네가 더 힘들 거 아니냐. 네 눈에는 이 지옥도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텐데."
"저는 견딜 만해요."
"센 척은. 그만 주무르고 와서 앉아라. 영단을 만들어서 주마."
"아, 아니에요! 영단을 어찌 제게……"
"군소리는."
명한이 바동거리는 향아를 꾹 눌러서 옆에 앉혔다.
일행 중 눈이 가장 좋은 건 누가 뭐래도 향아.
깊이 내려갈수록 많은 걸 보고 있었을 것이다.
피로라면 그녀가 가장 많이 쌓였다.
"뺘악."
"응? 어? 그래?"
그때, 청청의 품 안에서 잠들어 있던 금홍이 고개를 빠끔 내밀었다.
큰 눈을 깜빡이며 향아를 보더니 푸르르 날아서 그 앞에 내려섰다.
‘금홍?’ 의아함에 그녀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금혼은 날개를 쫙 펴며 기운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화기와 뇌기가 섞인 신묘한 기운이었다.
"어? 도련님, 귀기가……"
"그래. 금홍의 기운이 귀기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오! 금홍아, 너 이런 재주도 있었던 거냐?"
"뺘아!"
청청이 신나서 금홍을 번쩍 안아 들었다.
들고 이리저리 흔들어도 주변을 보호하는 막은 변함이 없었다.
숨쉬기가 전보다 한결 편했다.
"근데 이러면 무당파 사람들은 괜히……"
"아니, 됐다. 어차피 그들은 이 아래 싸움에 도움이 안 됐어. 막 장문 체면 때문에 딱히 뭐라 하지 않았을 뿐이지 언젠가 돌아갔을 이들이야."
"뭐야, 아버지 체면도 챙겨준 거야?"
"네 아버지니 내게도 남은 아니지. 이 아래 싸움에서 피해를 늘리니 그 편이 나아."
"……남이 아니야?"
"응?"
"아니, 아무것도."
줄어드는 목소리에 명한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금홍으로 시선을 옮겼다.
뇌기와 화기가 뒤섞인 이 막은 확실하게 귀기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신수의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영성인가.’
명한이 손끝으로 그 면을 천천히 훑었다.
"순수한 자연지기는 음험한 귀기를 차단하는군. 하긴 죽은 자의 기운이 산 것의 생기를 무턱대고 침범하기는 어렵지."
생명이 충만한 것에는 죽음이 깃들지 못하는 이치.
무림인의 내공도 이것을 대체하기는 하나, 순수함 면에서는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 또한 정제가 아닌 순수한 개념으로 사용하면……’
다시 손을 뻗어 막의 기운을 끌어왔다.
웅―
명한의 몸 주변으로 드리워지는 금적색의 기운.
금홍의 것과 닮았으면서 어딘가 다른 기운이었다.
기운의 발현에 금홍이 눈을 반짝이며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뺘? 뺘아?"
"내 영기에 네 기운을 섞었다. 아직은 좀 서툴지만, 하다 보면 이것도 구색은 갖추겠어."
"뺘아!"
금홍은 아예 풀쩍 뛰어 명한의 몸에 날개를 비볐다.
어딘가 경계하던 기색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뭘 한 거야? 금홍이 엄청 좋아하는데?"
"닮은 걸 좋아하는 거지. 금홍의 기운을 내 영기에 섞어서 움직이고 있어. 이놈 눈에는 내가 아버지 정도로 보이겠지."
"네가 아버지면 나는 뭐가 되는데?"
"글쎄. 어머니?"
"킥. 그런 식의 청혼은 좀 싸구련데?"
"흰소리는."
명한이 피식 웃으며 금홍을 청청에게 던졌다.
뺙, 하며 날아간 놈은 머리 위에 안착해서는 부리로 성을 부렸다.
다정한 아버지를 흉내 내는 건 아직 이른 일이었다.
"막이 있으면 한동안은 숨쉬기 편하겠어. 다들 숨 좀 고르고……"
있어, 라고 말을 맺으려는 순간.
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측면의 벽이 통째로 무너졌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와 돌 구름 소리가 이어지고.
몇몇 그림자가 그곳을 넘어서 일행이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으으아아아아!!"
"내놔! 내놔!!"
"으아아아!! 내 거야! 내 거라고!!"
익숙한 복장.
남궁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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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동굴로 흩어진 무렵이었다.
"막 소협께서 무당을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구려."
"배신자 따위에게 빌붙어 사는 무당파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호오?"
남궁환에게 있어서 막군천은 어중간한 위치.
무당파와 대적하니 친구라고 할 수 있으나, 본적은 무당파니 친하기도 어렵다.
슬쩍 몇 마디 던져서 속내를 알아보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막천우 그자가 내 아버지를 죽였소. 그리고 감언이설로 무당파 동문들을 속여서 권력을 취했지."
"듣기로 조사령을 가지고 왔다고 하던데."
"흥. 아버지를 죽이고 빼앗은 물건이오. 세상에 어떤 인간이 동생을 목숨을 취해서 권력을 얻는다는 말이오. 게다가 무당파의 늙은 놈들. 실전된 무공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심장을 벌렁거리며 맨발로 뛰어오더이다. 그딴 것들이 무당이라니."
으드득.
이 가는 모습에는 한 점의 거짓도 없었다.
‘이건 잘하면……’
남궁환의 미소가 짙어졌다.
"허면 막 소협은 어찌하실 생각이오?"
"소문을 따라 이곳까지 오기는 했으나,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소. 막천우 그자가 검성의 보물을 얻는 것만큼은 막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럼 검성의 보물에는 욕심이?"
"뭐, 빈말은 안 하겠소. 검성의 물건인데 욕심이 어찌 없겠소? 하지만 그보다는 막천우 그자에게 보복을 하는 것이 먼저요."
"그렇군."
막군천의 무공 수위는 상당하다.
무당파의 장문인을 포함하여 다른 세력을 상대하려면 검은 하나라도 더 있는 것이 이득.
‘게다가 여차하면……’
어둠 속에서 처리하기도 쉽다.
"허면, 이 섬에서 막천우 그자를 처리하고 검성을 무공을 찾기까지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는 것으로. 어떻소?"
"제가 바라던 일입니다."
"하하. 잘됐군요."
어차피 막군천은 개인.
혼자서는 아무리 날뛰어 봤자 남궁세가를 이기지 못한다.
낭궁환이 사람 좋은 미소로 막군천을 환대했다.
"그럼, 잠시나마 동맹을 맺은 기념으로 제가 한 가지 정보를 드리도록 하죠."
"호오?"
이에 같은 미소로 응대하며 말을 꺼내는 막군천.
"명왕도의 샛길입니다."
여기서부터 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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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젠장!!!"
남궁환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몇 걸음 뒤에서 짐승 소리를 내며 쫓아오는 괴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공? 용기?
그런 건 통하지 않았다.
"내놔!! 내 보물을 내놔!!"
"멈춰!! 으아아아아!! 멈추라고!!"
한때 자신을 따르던 가문의 이들이다.
이름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남궁천, 남궁수연, 남궁종운……
하나하나 애정을 들여서 키웠다.
헌데, 지금은 그저 미쳐버린 추적자에 불과했다.
"크으으으으! 빌어먹을 막군천!!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더냐!?"
목이 빠져라 이 상황의 주모자를 불러 봤다.
그저 이용하기 쉬운 애송이.
그렇게 생각했던 놈 말이다.
아니, 처음에는 그 생각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막군천이 안내한 샛길은 다른 이들이 들어간 동굴과는 다르게 제법 잘 정돈되어 있었다.
길도 반듯하고 별다른 위험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뭔가 목에 걸린 가시가 피부를 찌르는 듯한 껄끄러움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으…… 어어. 가주 어르신 제게 주십시오. 제게 필요합니다."
"보물. 보물. 보물을 주세요. 당신이 가진 걸 전부 주세요."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
맹목적으로 피력하는 욕구.
가진 적도 없고 가지지도 못한 보물을 탐하며 자신을 몰아붙였다.
가장 어린 막내 제자부터, 한 명씩 한 명씩 변해갔다.
어떻게든 막고 제압하며 나가고자 했지만……
이건 안 되겠다, 싶은 순간에는 이미 늦은 후였다.
"크아아아아! 막군천!! 막군천!!"
"누구냐!?"
"어!?"
끓어오르는 감정으로 외친 소리에 돌아온 반문.
돌아가는 시야 속에서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빌어먹을 무당의 막천우와 함께 움직이던 무리.
그래, 그들이었다.
"으어어어……!!"
남궁환의 입에서 낯선 소리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