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4/235)

겹친 세계

어색한 침묵 속에 배 위로 자리를 옮겼다.

밖에서 보던 기괴한 모습과는 다르게 배는 자연스럽게 물 위를 가로질렀다.

속도도 빠르고 매우 안정적인 항해였다.

"이런 일에는 왜 끼어들었어요?"

"세상일이 흉흉하니 무당파가 점잔만 빼고 있을 수는 없지 않더냐."

"척 봐도 위험한 일이잖아요. 그냥 가만히 계시지 왜 나서고 그래요."

"그건…… 크흠."

그리고 그 배 한쪽에서 은소소가 막천우를 타박했다.

천하의 무당파 장문인이지만 무남독녀 앞에서는 그저 힘없는 아버지였다.

고개가 조금씩 내려가더니 ‘미, 미안하다.’라며 속삭였다.

"그간의 해후는 천천히 풀도록 하고…… 지금은 이 상황부터 대처하죠."

적당한 시점에서 명한이 끼어들었다.

마냥 속 편히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오랜만이네. 제대로 인사도 못 했군."

"하하. 막 대협. 아니, 막 장문께서도 잘 지내셨죠? 함께 온 무당파 무인들을 보니, 그때 가져간 태극진검결이 도움을 준 거 같네요."

"덕분에 큰 진전이 있었네. 문파 내의 소란도 적었고."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짧은 인사로 말문을 열고.

"검성의 무덤에 대해서 뭐라도 아는 바가 있나?"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위치는 알지만, 그 이상은 모릅니다. 다만, 지금 상황이 누군가. 특히 저쪽에 있는 막군천의 수작임은 알고 있지요."

"군천의?"

"네. 해룡방에게 장보도가 있다는 내용부터, 후에 제게 넘어왔다는 소문까지. 이를 뒤에서 흘린 것이 막군천입니다. 아마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원한 것이겠죠."

"무림인들과 함께 자네를 섬으로 유인했다?"

"어디까지 계획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확실할 겁니다."

막천우와 명한의 시선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막군천을 훑었다.

그는 남궁세가 및 남은 몇 세력과 연합하여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다.

척 봐도 좋은 건 아니었다.

"기묘한 일이로군. 군천 저 아이가 무당을 떠난 것은 아직 일 년도 안 될 일이네. 그사이에 이 정도 규모의 일을 꾸밀 역량은 없어."

"뒤를 받쳐주는 세력이 있을 겁니다."

"세력?"

"막 장문도 최근의 정세는 읽고 계시겠죠? 봉문에 들어가는 문파, 세력 구조가 변하는 문파, 바삐 오가는 상단들의 움직임."

"으음. 무당파가 세속과 거리를 두고 있으나 그런 건 모를 수가 없네."

"그 뒤에 암약하는 세력이 존재합니다. 군천에게 힘을 실어준 것도 아마 그들이겠죠."

"그게 사실인가?"

"확실해요. 이미 우린 몇 번이나 그들과 맞닥뜨리곤 했으니까."

마지막 말은 은소소의 것이었다.

수많은 싸움을 다 말로 전하기는 힘들었으나, 딸의 확언이면 충분했다.

막천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럼, 이 요상한 배와 섬도 그들의 수작이라는 거냐?"

"그건…… 확실하지가 않아요. 이 자리로 유도한 건 분명 저들의 계획이지만, 검성의 무덤 자체는 실존한다고 생각해요."

"실존하는 무덤으로 유도해서 처리한다. 이런 속셈인가?"

"단순히 보자면 그렇지만 뭔가 더 있을 거 같아요."

"무언가 더 있다라."

무당파가 어촌 앞에서 진을 치고 명왕도의 출입을 막았지만, 어디까지나 일부.

이미 섬으로 들어간 이들과 앞으로 들어갈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런 규모의 계획에 또 다른 수를 섞는다.

막천우는 상대의 역량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쉽지 않겠구나."

"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겁니다."

배의 흔들림 속에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품었다.

#

배는 물살을 가르고 작은 섬에 당도했다.

대부분이 돌로 이루어진 돌섬이었다.

앞과 뒤를 높게 솟은 돌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양분된 느낌을 자아냈다.

"어차피 서로가 검성의 무공을 찾으러 온 거라면 그때까지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어떠냐?"

"속이 훤히 보이지만, 일단은 따라주지."

"건방진 새끼."

무당과 명한 무리.

그리고 남궁세가와 막군천의 무리.

섬의 초입부터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은 의미 없다, 판단하고 일시적인 정전을 합의했다.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약속이나, 일단은 평화 상태였다.

"저쪽에 길이 있다. 동굴인가?"

"저기에도 동굴이 있어. 하나둘이 아닌데?"

돌산은 천연 동굴로 이어져 있었다.

사방이 입구였고, 사방이 출구였다.

주변의 흔적만 봐도 이미 섬에 도착해서 동굴을 탐사한 발자국이 여럿이었다.

어디가 진짜 검성의 무덤으로 이어지는 입구인지, 그것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도련님."

"응. 나도 보인다."

그렇게 섬을 찾은 무림인들이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 무렵.

명한과 향아는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두 사람이 보고 있다는 거…… 중턱 언저리에 있어?"

한 명 더.

청청도 두 사람이 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돌섬이 내려다보이는 산의 중턱 부근에서 검은 형체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림자로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꺼림칙한 기운을 내뿜는 형체였다.

"저 위에 누가 있다는 건가?"

"막 장문의 눈에는 안 보이는 겁니까?"

"흐음. 무언가 주변 기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군. 하지만 눈으로는 보이지 않네."

"흐름은 읽히지만, 형체는 숨겼다. 막 장문이 모를 정도면 단순한 은영술은 아닐 터. 어쩌면 영체일지도 모르겠네요."

"영체?"

"우리가 타고 온 배의 목소리 말입니다. 배를 움직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습니까?"

서로를 견제하느라 그런 건 신경도 쓰지 못했다.

명한이 허공으로 손으로 가볍게 훔치며 말을 이었다.

"괜히 명왕도라고 한 게 아닌가 봅니다. 이 섬, 영기가 짙어요."

"영기가 짙다?"

"죽은 자라면 마땅히 이승을 떠나 명계로 가는 것이 이치. 이건 세상의 규칙이며 정해진 규율입니다. 하지만 몇몇 특수한 경우, 이 이치가 어긋나기도 하죠."

"두 사람이 봤다는 형체가 그런 건가?"

"……맞기도 하며 아니기도 합니다."

"음?"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섬…… 겹쳐 있어요."

마치 구덩이 안에 들어와서는 그 구덩이의 생김새를 알지 못하는 격.

짙어진 영기에 명한조차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 두 세계가 겹쳐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명왕도라는 명칭은 한 점의 과장도 없었다.

#

섬뜩함을 품에 안은 채 명한 일행도 동굴 하나를 잡고 들어갔다.

워낙 입구가 많아서 어디가 더 정답에 가깝다고 말할 것도 없었다.

"뒤에 따라오고 있어."

"알아."

하지만 소문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명한.

장보도가 있다는 정보부터 무덤의 기관진식을 안다는 소문까지.

남은 이들이 뒤를 쫓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 동굴들. 전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건가?"

"딱히 사람 손이 닿은 흔적은 없어. 물이 빠지면서 만들어진 동굴 아닐까?"

"뭐, 그게 가장 합당한 설명 같긴 한데……"

하나둘도 아니고 수십 개의 동굴이다.

명한이 벽을 손으로 훑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백, 앞에서 누군가 싸우고 있어."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한보다 앞서서 들어온 사람은 없었으니, 같이 배를 탄 무리는 아니었다.

일행은 황급히 동굴을 가로질러 소리가 들린 쪽으로 움직였다.

"크…… 크흐흐흐. 내 보물은 뺏어갈 수 없다!"

"내놔! 네놈이 가진 모든 걸 내놓아라!"

폭이 조금 넓어지는 공동이었다.

두 무리가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이미 크게 한바탕을 한 건지, 시체가 여럿이었다.

남아서 소리치는 사람들도 몸이 성치 않았다.

"내가 주인이다! 내가 이 보물을 얻었다! 앞으로 천하의 주인이 이 몸이 되실 거다!"

"닥쳐!! 네놈 따위에게 자격은 없다! 내놔! 전부 내 거다!"

"어림없다! 이건 내 보물이야!"

"죽어! 죽어!! 죽어버려!"

남은 이들이 순식간에 싸움에 말려들었다.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이었다.

서로의 심장을 도검으로 찔러 그대로 양패구상했다.

쿵, 하고 무너지는 소리만 도드라지게 컸다.

"허. 아무리 욕심이 커도 그렇지 양패구상이라니."

"완전히 눈이 돌아갔군."

뒤늦게 명한 일행이 들어가 죽은 이들을 살폈다.

전부 요혈을 찔린 터라 숨이 붙은 자가 없었다.

상처의 도검을 처리하고 양쪽으로 나눠 시체를 수습하니 그 숫자가 전부 열이었다.

"이건 패검방이네요."

"이쪽은 홍도방. 각기 안휘성 근처에서 이름 좀 날린 방파들이야. 다른 뱃길을 타고 먼저 섬에 도착했던 모양이네."

"서로 견제하던 사이였을까요? 아무리 무공이 탐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글쎄."

명한이 말을 아끼며 죽은 이들의 품을 뒤졌다.

보물 운운하던 물건을 찾기 위함이었다.

"이게 목숨을 걸고 싸우던 보물이라고?"

하지만 품에서 찾은 건 오래된 양피지 하나가 전부.

그것도 다 낡아서 내용을 알아보기 힘든 쓰레기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멈춰! 당장 그 보물을 내려놔라!"

그때였다.

뒤를 쫓던 무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명한을 보며 소리쳤다.

시선이 닿은 건 쓸모없어 보이는 양피지.

"제정신인가? 이런 쓰레기 때문에 우리와 싸우겠다고?"

"닥쳐! 그 보물만 있으면 나도 이런 삼류 무인에서 벗어날 수 있어! 천하제일이 될 수 있다고! 죽기 싫으면 당장 내놔!"

"……네가 요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겠지?"

"내놓으라고!!"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무리는 갑자기 명한 일행을 습격.

채, 한 호흡이 지나기도 전에 전부 제압당했다.

애초에 상대도 안 되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상대가 안 된다는 건 네놈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으…… 아아아! 내놔! 내놓으라고! 보물! 보물!!"

"이건 정상이 아니군."

말로 설득하는 건 무리였다.

전부 점혈을 짚어 기절시킨 뒤, 대충 묶어서 구석에 던져 놨다.

"끄…… 아아아! 이거 풀어! 나는 보물을 찾아야 한다!"

"뭐? 점혈이 풀렸다고?"

하지만 놈들은 순식간에 점혈을 풀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단단히 묶어 두었던 포승줄도 힘을 이기지 못하고 팽팽하게 당겨졌다.

단순히 욕망을 못 이겨서 날뛴다, 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씐 거야."

"응? 청청, 뭐라고?"

"씐 거라고. 자세하게 봐봐. 저 사람들 몸에 다른 것들이 섞여 있어."

"다른 것?"

청청의 지적에 명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허. 정말이잖아?"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희미한 겹침이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이 한 공간에 같은 모습으로 겹쳐 있는 것 같았다.

발버둥 칠 때마다 조금씩 선 밖으로 요동치는 것을 제외하면 구별이 어려웠다.

"저걸 용케도 알아봤네."

"내가 아니라 금홍이 알아차렸어. 발버둥 칠 때마다 날개를 움찔거려서 이상하다 싶었거든. 뭔가를 굉장히 꺼리는 기분이었어."

"신수의 감이라는 건가. 확실히 우리의 눈보다는 그쪽이 더 트여 있겠네."

명한이 눈을 반개하며 천천히 몸 안의 기운을 일으켰다.

은휘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 ‘영기’에 대한 쓰임이었다.

인간은 자연의 기운을 다루기 위해 특정한 식(式)을 통해 이를 규정한다.

하지만 영기라는 건 어떤 식도 존재하지 않는 가장 혼탁하며 순수한 기운.

그렇기에 둘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잡았다."

명한이 쓰러진 이들의 머리에서 별개의 영혼을 뽑아냈다.

사람이 죽고 난 뒤 기운 자체로 흩어지던 영기보다 훨씬 짙고 무거웠다.

앞선 것이 죽은 생선이라면 이건 활어였다.

펄떡이며 명한의 힘에 저항했다.

"죽은 자의 세계와 겹쳐 있기 때문이로군."

기(氣)가 약한 이라면 미치거나 씌는 것이 당연한 환경이었다.

"사라져라."

하지만 명한에게는 턱도 없었다.

그의 묵혼공은 이미 경지에 올랐다.

한 손으로 영혼을 으깨고 그것을 그대로 흡수했다.

― 갸아아아아아!!

단말마가 귓등으로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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