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235)

움직이는 음모

귀문으로 향하는 길, 작은 마을에서 마차를 세웠다.

흑점의 분타에서 정보를 수급하기 위함이었다.

전서구가 바삐 날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다.

"소문이 돌고 있다?"

"네. 꽤 넓은 범위로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해룡방이 장보도를 얻어서 검성의 무덤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죠."

"흐음. 이 정도 규모로 소문이 퍼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저희도 그 점에 의문을 품고 조사 중입니다. 몇몇 곳에서 인위적인 흐름이 느껴지는 것이 목적을 지닌 세력의 공작으로 판단됩니다."

툭툭.

명한이 탁자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해진다.

해룡방이 검성의 장보도를 지녔다는 것.

무엇을 위한 수단인지 이해해야 했다.

"일단 흑점은 소문을 퍼뜨린 자들을 찾아봐."

"네, 태사."

해룡방과 연관된 곳은 크게 둘.

하나는 물자를 탈취하던 주검산장과 이를 거래하던 남궁세가다.

여기서 가지를 치면, 남궁세가와 경쟁하는 무당파도 포함시킬 수 있다.

소문 하나로 해룡방 주변의 말들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럼 나는 우연히 걸려든 걸까?’

확신은 어렵다.

주검산장에서 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여럿.

딱 맞춰 그곳에서 해룡방과 남궁세가를 충돌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은공, 어찌하시겠습니까?"

"우선은 귀문으로 가자. 사부님의 조언을 받아야겠어."

상황이 혼란스럽다면 혜안을 가진 사람의 조언이 필요하다.

그리고 명한이 아는 사람 중, 은휘만큼 통달한 인물도 없다.

이날 저녁, 마차가 마을을 빠져나갔다.

#

명한 일행이 귀문으로 접근하고 있을 무렵.

향간에 도는 소문을 접한 세력이 또 있었다.

"검성의 장보도라."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이미 이름 좀 있다 싶은 이들은 소문을 접하고 움직이고 있더군요."

"이런 시기에 이런 소문은 의도된 것이 분명하다."

"맞습니다, 문주님."

무당산의 무당파였다.

보고를 접한 무당파 문주, 막천우는 단번에 핵심을 꿰뚫었다.

유력 문파가 봉문에 들어가고 이래저래 뒤숭숭한 시기에 갑자기 장보도 소문이 도는 건 의도가 너무 분명했다.

"문 내에 명을 전해라. 절대로 헛된 소문에 반응하지 말라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당장……"

"문주님!"

그때였다.

무당파 무인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와 문주 앞에 부복했다.

"경망스럽게 이 무슨 짓인가?"

"급보입니다. 해룡방과 남궁세가가 충돌. 그 결과 해룡방의 무인 다수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벌써? 그럼 장보도를 남궁세가가 취했다는 건가?"

"그게…… 조금 다릅니다."

무인이 마른침을 꼴딱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소백이라는 자가 개입했다고 합니다."

"소백?"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는 막천우.

"네. 해룡방이 위기에 몰린 순간, 소백이라는 자와 그 무리가 나타나 남궁세가를 패퇴시킨 모양입니다. 향간에서는 소백이라는 자가 장보도를 얻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어찌 그런!"

쿵. 발 구름에 큰 진동이 퍼져나갔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소백과 일행은 곤란하다.

‘소소야.’

그 안에 자신의 딸인 은소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

"장문. 서둘러 사람을 파견해야 합니다."

"허나, 장보도를 움직인 속셈은 뻔하지 않은가."

"남궁세가가 움직였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남궁세가가 안휘 밖으로 세력을 뻗치기 위해서 온갖 수를 쓰고 있다는 건 저잣거리 아이도 압니다. 만에 하나라도 장보도를 얻어 그 위세를 빌린다면 무당파도 위험합니다."

"으음."

속내를 읽은 사질의 조언에 막천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당파가 중요한 건 두말하면 입 아픈 진실.

하지만 그와 비견될 만큼 중요한 것이 은소소의 안위였다.

지금까지야 신교 안에 있으니 신경을 꺼도 좋았지만, 밖에서 소동에 휘말리면 상황이 다르다.

아내도 지키지 못했는데 딸까지 그럴 수는 없다.

"장문령으로 전해라. 향간에 도는 사특한 소문을 파헤치기 위해서 무당이 움직인다고."

"네, 장문."

무당이 무거운 엉덩이를 떼었다.

#

귀문에 도착하기 전.

명한 일행은 일단의 무리와 맞닥뜨렸다.

인근에서 활동하는 ‘패천방’이라는 문파였다.

규모는 중상, 사파 쪽에서는 제법 명망 있는 무리였다.

"그대들에게 원한은 없다! 검성의 장보도만 넘기면 목숨을 살려주지."

"……"

숫자는 적게 잡아도 서른.

해룡방과 남궁세가의 마찰이 고작 사흘 전이니 굉장히 발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미 소문을 접하고 병력을 모았다고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해룡방이 지니고 있던 장보도가 너희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순히 넘기고 목숨을 보전해라."

"패천방이라고? 제법 소식이 빠르네."

"일대는 모두 패천방의 영역이다. 너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허풍은. 그렇게 자신 있었으면 남궁세가보다 먼저 움직였겠지. 하여튼 승냥이 같은 놈들이 사자 흉내는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감히!"

차차차창.

무기를 뽑아 드는 소리에 긴장감이 높아졌다.

"이거 아무래도 소문이 퍼지는 건 막기가 어렵겠어. 해룡방을 거쳐서 우리라. 발뺌한다고 이놈들이 들어먹을 것도 아니고."

"보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이 무림인이지. 주검산장에 엮인 해룡방으로 소문을 퍼뜨린 이상 우리가 피해가기는 애초부터 어려웠어."

"교묘한 수라고 해야 하나. 시기와 장소를 고르는 것부터 영악함이 느껴지네."

짧게 혀를 차는 명한.

한 번 구르기 시작한 눈덩이는 억지로 막기 어렵다.

지금 와서 상황을 설명한다고 믿어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설픈 각오로 덤벼든다면 목이 날아간다는 걸 보여줘야겠네."

무림은 결국 힘.

명한이 타구봉을 뽑고 은소소와 향아 등도 저마다의 무기를 쥐었다.

말로 안 되면 결국 힘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감히 패천방과 맞서겠다는 거냐?"

"이 말을 꽤 자주 하는 느낌이네. 너야말로 감히 나와 맞설 용기가 있나?"

"뭐?"

"내 이름은 소백. 앞으로 천하제일이 될 인물이다."

황당함에 물드는 패천방도의 얼굴을 보며 명한이 진하게 웃었다.

허풍과 허세지만, 어쩐지 조금씩 재미 들리는 기분이다.

천하제일이라는 거.

"죽고 싶으면 덤벼."

그 거창함만큼의 매력은 확실히 있었다.

#

귀문에 도착하기까지 명한 일행은 다섯 무리와 싸워야 했다.

작은 문파도 있고 큰 문파도 있었다.

하나같이 원하는 건 검성의 장보도.

명한 일행에 대한 정보도 없이 일단 들이대고 봤다.

그때마다 때려잡으며 천하제일 운운해야 하는 건 결국 명한이었다.

"이 정도면 적당히 소문이 퍼졌겠지?"

"어중간한 놈들은 떨어져 나갔을 거야."

"이것도 못 할 짓이네."

소문에는 소문으로 대응했다.

흑점을 통해서 장보도를 지닌 이들이 굉장히 강하고 무서운 집단임을 퍼뜨렸다.

혹시, 라고 덤벼들던 이들이 줄어든 것도 이 덕이었다.

"여기가 귀문?"

어쨌든 온갖 소란 끝에 귀문까지 도착했다.

새롭게 짠 현판 앞으로 청청이 홀린 듯 다가갔다.

"그럭저럭 괜찮네. 사람이 더 필요하긴 하겠지만."

"저기, 소백. 고용주. 여기가 네 문파라는 거야?"

"내 문파라고 하긴 좀 뭐한데…… 일단은 그렇게 돼 있어."

"여기서 산다고? 무공을 수련하고? 그게 가능해?"

청청은 아예 현판 앞에 쪼그려 앉아 중얼거렸다.

어딘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듯한 얼굴이었다.

"조그만 계집이 남의 집 앞에서 무슨 초 치는 소리냐?"

"어? ……힉!?"

그리고 불쑥 현판을 뚫고 나타난 은휘의 모습에 주저앉아 버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도 얼마 안 먹은 소년이지만, 그녀는 그 너머의 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 사람.

아니, 이 존재는 인간이 마주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호오. 불완전하지만 영안(靈眼)이 열려 있군. 영영아, 네가 찾은 물건이냐?"

"아뇨, 조사님. 은공께서 우연히 조우한 뒤, 수하로 받아들였다고 해요."

"그래? 귀문은 뒷전인 줄 알았더니 그래도 열심히 일은 하고 있었구나."

은휘가 흐뭇하게 웃으며 청청의 주변을 돌았다.

그때마다 청청은 자지러지듯 놀랐지만, 아쉽게도 여기에 그녀를 챙겨줄 사람은 없었다.

"뺘아악!!"

아니,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 있다.

품 안에서 불사조가 고개를 빠끔 내밀며 은휘를 쏘아봤다.

"오호. 이게 뭔가. 불사조 아니냐."

"사부님은 한눈에 알아보시는 겁니까?"

"이런 신수가 흔한 것은 아니니. 다만, 좀 기묘하구나. 불사조에 다른 것이 섞여 있어. 금색의 용인가?"

"정말로 한 번에 꿰뚫어 보시네요. 맞습니다. 용과 불사조의 새끼죠."

"신수의 혼혈이라. 나올 수 없는 존재가 나왔구나. 이 또한 천기의 어긋남의 결과인가."

은휘가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신수라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격을 얻어 천지의 흐름의 한 축을 차지한 존재.

그렇기에 다른 신수와 섞인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천기가 뒤틀리지 않는 이상.

"뺙?"

"뭐, 그렇다고 태어난 녀석을 어찌할 수야 없지. 됐다. 오는 길도 험했을 테니, 일단 들어와서 얘기하자꾸나."

불사조의 머리를 툭툭 치고는 몸을 돌렸다.

현판 너머로 모습이 사라지고 닫혀 있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청청은 한 번 더 자지러졌다.

"들어가자. 여기가 귀문이다."

답할 힘도 없었다.

#

잘그락.

쇠 구슬 부딪치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단상에 앉은 한 남자의 손아귀 안이었다.

푸른 도포에 냉정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남자.

"귀문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남자가 손을 움켜쥐었다.

쇠 구슬이 거칠게 요동치더니 우그러졌다.

"무당파는?"

"놈들도 소식을 접하고 병력을 모으는 중입니다. 은소소에 대한 이야기도 흘렸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그래. 자신의 동생은 망설임 없이 죽이면서 딸은 아낀다 이거네."

퉁. 퉁.

바닥으로 우그러진 쇳덩이를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전 주변의 음영으로 가리지 못한 반듯한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한때 무당파의 잠룡으로 칠용팔봉의 수장을 역임하던 막군천이었다.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도련님."

"기회를 잡아야지. 어르신께서 날 위해 판을 만들어 준 것 아닌가. 밖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들에게 명령을 전해라. 검성의 장보도는 귀문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그리고……"

잠시 무언가 생각한 막군천.

이내, 정리를 마치고 말을 이었다.

"실제 검성의 무덤 위치도 소문으로 퍼뜨려라."

"실제 위치를 말입니까?"

"장보도에는 무덤의 기관진식을 파훼할 방법이 적혀 있다는 말도 섞어서. 슬슬 달아오른 놈들이 여럿일 테니, 실제를 섞어서 유인할 때다."

"엉덩이 무거운 것들도 움직이기 시작하겠군요."

"검성의 진전이라면 욕심이 생기겠지."

장소를 한 곳으로 좁히고 여러 세력을 모은다.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명한 등도 방법이 없을 테니,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과 무당파 역시 한곳에 묶을 수 있다.

"한곳에 모아서 모조리 처리한다."

바라 마지않던 염원.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핏값을 받아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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