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손과 손이 마주쳤다.
힘이 꼬리를 물고 똬리를 틀다 방사형으로 터졌다.
풀려나는 힘에 바닥이 파도처럼 일어나고 흙이 암기처럼 비산했다.
그 사이로 움직이는 그림자는 두 개.
바닥부터 거력을 끌어 올리는 군로와 타구봉으로 땅을 찍은 명한이었다.
서로의 대각선에서 모래 먼지를 가르며 일격을 쏟아부었다.
점에서 빛이 명멸하고 주변의 모든 것이 일제히 쓸려나갔다.
"크으으윽!! 이게 무슨 싸움이야!?"
심지어 청청마저 쓸려가지 않기 위해 전력을 써야 했을 정도였다.
뿌리째 뽑힌 나무가 수수깡처럼 날고 바위가 공깃돌처럼 날고 있으니, 이렇게라도 버티는 것이 다행이었다.
"소백. 소백이라. 이제 보니 신교의 소궁주였군."
"알아보는 것이 느리군."
"신교의 소궁주가 왜 이런 곳에서 설치고 있는 거지?"
"네가 알 바 아니다."
명한의 손바닥 안에서 타구봉이 고속으로 회전했다.
단순한 찌르기에 회전의 파괴력을 더한 공격.
촌각에 수십 번을 찔렀다.
공간이 찢어질 듯 굉음이 연달아 터졌다.
맞는다면 사지가 멀쩡하지 않을 공격이나, 군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안개 비슷한 막으로 봉격을 흘리고 웅혼한 힘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명한의 앞쪽이 거칠게 폭발했다.
"묘한 공능이군."
"힘의 쓰임은 내 전문이라서."
하지만 이 또한 명한에게 닿지 않았다.
힘은 원을 그리며 명한의 주변을 맴돈 채 흩어졌다.
멸아에 대해서 조금씩 익숙해지며 자연스럽게 응용이 가능했다.
발끝으로 흩어지는 힘의 파편을 모은 뒤 주먹으로 쐈다.
굉음과 함께 군로의 몸이 밀려났다.
"잔재주를."
"통한다면 잔재주가 아니지."
명한은 연달아 권격을 쏘아낸 뒤 타구봉으로 극천일무기, 멸(滅)을 사용했다.
점과 점을 이어서 하나의 공간이 통째로 잘려나갔다.
군로의 왼쪽 팔도 마찬가지.
짧은 저항과 함께 그 궤적이 붉은색으로 폭발했다.
"건방진 놈."
"호오. 숨겨둔 수가 더 있었나?"
궤적에 걸린 팔은 잘리지 않았다.
팔을 보호하고 있는 은은한 기운 때문이었다.
극천일무기의 파괴적인 힘을 자연스럽게 받아내며 육체를 보호했다.
단순히 강기를 사용한 막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태산파의 무리와 같군.’
묘하게 느껴지던 막의 실체화였다.
"네놈에게 태산의 힘을 보여 주마."
군로의 기세가 일변했다.
강맹하게 뻗던 기운이 몸 안으로 빨려들더니 새어나감 없이 응축됐다.
고수일수록 기의 제어가 강해지며, 이런 경향이 강한 건 맞지만 이건 과했다.
마치 아무런 기운이 없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내공 제어가 아니야.’
명한은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생각할 틈이 없을 텐데?"
"……!"
어마어마한 속도로 군로가 거리를 좁혔다.
명한이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
가슴 앞쪽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명한의 몸이 거칠게 튕겨 나갔다.
땅에 한 번, 돌에 한 번, 나무에 한 번 충돌하며 십수 장을 굴렀다.
하지만 군로는 일격으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속도를 유지한 상태로 명한을 추격.
그의 마지막 위치로 주먹을 뻗었다.
콰르르릉―!
굉음과 함께 무너지는 지반.
원의 형태로 쑥 꺼지는 땅 아래에서 명한이 황급히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 뒤를 군로가 매우 빠르게 따라붙었다.
가슴, 허리, 어깨, 머리.
쉼 없이 주먹이 날아왔다.
하나하나가 앞서 땅을 무너뜨린 공격과 같은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굉음이 끝도 없이 이어지며 명한을 밀어붙였다.
"그게 잘난 신교의 무공인가? 별 것 없군."
이어지는 군로의 파괴적인 일격.
주먹에서 뻗어 나온 힘이 숲을 절반으로 갈라버렸다.
궤적은 수백 장 후면까지 뻗어, 수백 그루의 나무를 박살 낼 정도였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쏟아지는 토사와 먼지 사이로 명한의 모습은 완전히 지워졌다.
"소, 소백……!!"
"불러도 소용없다. 용혼을 사용한 내 공격을 받아낼 사람은 없으니."
"잔인한 인간! 그는 그저 우연히 나와 엮였을 뿐이다!"
"그게 죄다, 청청. 너와 엮인 이는 네 죄를 나눠 받는다."
청청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군로의 말은 하나하나가 가슴을 후벼 파는 비수였다.
"지금이라도 깨달아라, 청청. 너는 절대로 나를 벗어날 수 없다."
"……"
"마음에 드는 얼굴이군. 그게 날 대하는 자의 올바른 얼굴이다."
질려버린 청청의 얼굴을 보며 군로가 미소 지었다.
"변태 새낀가? 왜 남의 고통을 보고 즐기지?"
"……!"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지 않았다.
뿌옇게 피어난 먼지 사이로 들려온 명한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힘은 좀 쓸만한데, 쓸데없이 동작이 크군. 못 배워 먹은 것들이 그렇지."
손으로 먼지를 날리며 뚜벅뚜벅 걸어왔다.
옷이 좀 찢어지고 머리가 산발이 된 것을 제외하고는 큰 상처가 없었다.
군로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천천히 가늘어졌다.
"어떻게 멀쩡하지? 내 손에 네놈을 때린 감각이 남아 있다."
"말하지 않았나? 힘을 다루는 것이 전문이라고. 조금 방향을 뒤트는 것으로 충분히 파훼가 가능해. 자기 잘난 맛에 설치는 네놈은 이해를 못 하겠지만."
"개소리. 용혼의 힘은 알량한 재주로 돌려놓을 수 있는 규격이 아니다."
"호오. 그 용혼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대단한가 봐?"
"당연하다. 인간 이상의……"
멈칫.
입을 닫는 군로의 모습에 명한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조금 더 말해주면 좋을 텐데."
"약은 놈. 세 치 혓바닥으로 용혼의 정체를 캐낼 생각인가?"
"자신이 있다면 말해도 좋지 않나? 아니면 정체를 알면 파훼가 될 정도로 불안한 힘? 생각보다 대단하지는 않은가 봐."
"얄팍한 수작 따위는 집어치워라."
군로의 몸 주변으로 다시 힘이 집약되었다.
마찬가지로 한 올의 힘의 유출도 없는 완벽한 집약이었다.
명한은 말라버린 입술을 혀끝으로 축이며 그 너머를 관찰했다.
한 번은 다급해서 어려웠지만, 두 번은 충분하다.
‘그런 건가.’
반야의 눈으로 군로가 감추던 힘의 비밀을 간파했다.
"죽어라."
"싫거든."
찰나의 순간에 가속하는 군로.
명한은 물러나기보다 되레 한 걸음 앞으로 움직여 그 궤적에 몸을 쑤셔 넣었다.
어깨와 어깨가 맞닿으며 둔탁한 충격이 쌍방으로 전달되었다.
군로는 왼쪽으로 명한은 오른쪽으로 빗겨서 튕겨 나갔다.
나무 몇 그루가 통째로 부러질 정도의 위력이었다.
"건방진. 거리를 좁혀서 충격을 줄여도 의미가 없다."
"조금 얕은가."
"죽어라."
다시 가속하는 군로.
날카로운 창이 되어 명한의 가슴을 노렸다.
반응은커녕 확인도 어려울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명한은 이를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받아쳤다.
군로의 주먹이 가슴에 닿고, 강렬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커억……!"
튕겨 나가는 한 사람.
바닥을 구르고 나무 몇 그루를 박살 낸 뒤에야 겨우 몸을 세울 수 있었다.
비틀비틀 일으키는 얼굴에서는 당황과 불신이 함께 엿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격에 튕겨 나간 건 명한이 아닌 군로였기 때문이다.
놈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어째서 내가 튕겨 나갔지?"
"재미있는 경험이지? 탈응(脫應)이라는 재주인데."
"웃기지 마라. 그런 화경 계열의 기술로 꺾을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네놈의 잘난 막 때문에?"
"……!"
당황과 불신 위로 경악이 더해졌다.
"태산파의 다른 놈들도 그렇더군. 자신의 역량 위에 뭔가 한 겹 더해져 있었어. 처음에는 혈염마녀가 사용한 기술과 같은 건가 싶었는데, 묘하게 다르더군. 너…… 영물의 기운을 뽑아서 그걸 몸에 덧씌우고 있었지?"
"……불가능하다. 어떻게 외인이 이걸 간파할 수 있지?"
"이래 봐도 영물하고는 가까운 몸이라서 그 기운을 잘 알고 있다. 너희가 두른 막이 영물이 가지는 독특한 영성(靈性)임을 말이지."
쌍각사도 그렇고 성성이도 그렇다.
모든 영물은 자연에서 흡수한 영기를 모아서 하나의 단으로 응축한다.
그리고 이 단은 그 개체와 맞물려서 영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무인으로 치자면 단전에 모인 내공과 이를 굴리는 심법이라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알았다고 내 공격을 파훼했다는 거냐?"
"알면 쉽지. 네 움직임은 쌍각사나 성성이를 닮아있거든. 힘의 유동은 무인보다 우월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묘리도 없어. 몸을 보호하는 막만 접촉 순간에 파훼할 수 있으면 힘을 돌리는 건 우습지."
"그 짧은 순간에? 불가능해."
"말했잖아. 네 움직임은 너무 단순하다고. 뻔히 읽히는 공격에 당할 이유는 없다."
"……"
힘 자체는 대단하지만 다루는 방식이 어설프다.
차라리 태산파의 무공을 자유자재로 쓰던 청청이 더 까다로웠다.
명한의 수준에서 단순한 힘의 우열은 큰 의미가 없었다.
"정말로 용혼을 파악한 모양이군."
"물론,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어. 영성이라는 건 영물 특유의 성질이라서 내단을 먹어 치운다고 가져올 수 있는 게 아니야. 너, 무슨 수로 같은 영성을 태산파 무리에게 덧씌운 거지?"
"궁금하다면……"
다시 힘을 끌어모으는 군로.
"직접 알아봐라."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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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소소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동굴에 들어와서 대략 반 각.
베어낸 태산파의 무인만 해도 얼추 열 명은 넘었다.
단순히 야외 집결지라고 보기에는 많은 숫자였다.
"성가실 정도로 많네."
"역시 쌍둥이들을 잡아 두기 위해서 준비한 공간은 아닌가 봐요."
"네가 봐도 그렇지?"
향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바닥을 손으로 훑었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특수한 흔적이 있었다.
"역시 이곳은 이상해요. 여기저기에 독특한 흔적이 남아 있어요."
"독특한 흔적?"
"태산파 무인들을 상대하면서 묘하게 능력 이상의 간섭이 있다는 거 느끼셨죠?"
"어. 맞을 게 안 맞고 닿을 게 안 닿는 느낌."
"여기에도 같은 흔적이 있어요."
향아가 손으로 가리킨 건 바닥에 난 작은 흔적이었다.
벽을 타고 넝쿨처럼 동굴 여기저기로 뻗어 있었다.
"벽에 난 흔적이 같은 거라고?"
"제 눈은 그 둘을 같은 색으로 보거든요. 태산파 무인들을 덮고 있던 색이 이 흔적에서도 보여요. 마치……"
"마치?"
향아가 답을 위해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녀로서도 확실하지 않은 답이었기에 잠시 망설임이 있었다.
쿠르르릉.
"뭐, 뭐야!?"
"지진?"
하지만 그 답을 정리하기도 전에 이변이 벌어졌다.
동굴 전체를 관통하는 진동이었다.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전체가 흔들렸다.
"으으윽. 갑자기 뭐야, 대체?"
"뭔가 요동치고 있어요. 땅속 깊은 곳에서."
"땅속 깊은 곳?"
향아의 눈이 발을 딛고 선 땅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은 지면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묘한 기운의 요동을 감지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지맥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거칠고 흉포하여 선뜻 다가설 용기가 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 위험. 도망쳐라.
그리고 그 순간.
지금껏 잠자코 있던 쌍각사가 다급하게 꼬리를 흔들며 경고를 보내왔다.
바짝 선 머리와 날카롭게 벼려진 동공은 농담이 아니었다.
쌍각사의 시선은 향아와 같은 곳.
하지만 더 깊은 무언가를 감지하고 있었다.
― 용이다.
아주 위험한 존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