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235)

우물 안 개구리

바람을 타고 수십의 기척이 접근했다.

명한은 어둠 속에서 그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식별했다.

가진바 기질, 개인의 특성.

묵혼을 통해 바라보는 반야의 시선에는 그 모든 것이 구분되었다.

‘하지만 묘하군.’

서로 다른 수십의 기척에 공통된 기운이 존재했다.

"같은 내단을 섭취해도 이를 쓰는 건 각기 다른 사람일 텐데."

수십의 무리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기운은 한 점의 다름도 없었다.

완벽하게 같은 기운을 수십이 공유하고 있는 격.

이건 일반적인 무공의 상리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용혼공의 특징일 거야. 기본공을 익히고 나면 군로의 주도하에 용혼공을 익히게 돼 있어."

"너도 익힌 건가?"

"아니. 난 첫 사냥에서 도망쳤으니까."

"같이 사냥을 하는 것이 시작이라 이거군."

문파마다 독특한 수련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정확하게 같은 기운을 나눠서 가지는 방법.

‘어쩌면……’

떠오르는 가정은 있었지만 단번에 긍정하기에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명한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접근하는 이들에게 집중했다.

"저기다!! 저쪽에서 금천사의 기운이 느껴진다!"

"찾아! 이번에는 절대로 도망가지 못하게 해라!"

어느새 지척까지 당도해 있었다.

금천사의 기운을 좇아 사방으로 흩어지는 태산파의 무리였다.

명한은 거목의 정상에 발을 디디고 서서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다.

"대사형 같은 인간은 안 보이는군."

"……그는 섣불리 먼저 움직이지 않아. 사형제들이 당하면 그때야 모습을 드러낼 거야."

"그럼, 그 무거운 엉덩이를 떼게 해 줘야겠네."

가볍게 발을 떼어 지면으로 뛰어내렸다.

주변 경물이 휙휙 지나가고, 달려가던 태산파의 무인이 시야에 꽉 잡혔다.

"누……!"

구, 라는 말을 맺지 못한 채 일격.

가슴팍이 뭉개지며 구석으로 처박히는 태산파 무인.

비명 대신 굉음이 그 위치를 대신했다.

"적이다!!"

"조심해, 기습이다!"

부산스럽기가 불에 놀란 쥐 떼.

명한이 극천일무기를 끌어올려 타구봉에 담았다.

쥐 떼라면 때려잡으면 그만이었다.

#

태산파의 무인들은 명한의 존재를 인식하자 빠르게 한 점으로 모였다.

반응과 움직임은 잘 단련된 숙련자의 솜씨였다.

‘이건 몰이사냥이군.’

어떤 방법으로 숙련됐는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무슨 속셈으로 우릴 습격했지!?"

"그쪽이 우리 식구를 잡아갔잖아."

"식구? 무슨 개소리냐!"

"발뺌하지 마!"

마지막 말은 나무 위에서 대기하던 청청이었다.

번개처럼 나무를 박차며 뛰어내려 양손으로 장력을 쏟아냈다.

반응하지 못한 두 명이 장력에 휩쓸려 뒤로 튕겨 나갔다.

강맹하기가 개방의 항룡이십팔장에 밀리지 않았다.

"청청!!"

"오랜만이다, 사형제 새끼들아!"

"감히! 태산파를 배신하고 나간 배신자가 어디에서 사형제를 거론하는가!"

"그럼 그냥 새끼들아! 당장 우리 애들 내놔!"

땅을 밟은 청청의 연격이 이어졌다.

파도가 몰아치듯 강맹하며 유연한 연격이었다.

점과 점이 이어지며 연달아 폭발했다.

선두에서 맞서던 둘이 밀려나고 남은 셋은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감히 배신자 주제에 태산파의 무공을 사용하다니!"

"흥. 어차피 너희는 줘도 못 익히잖아. 자격 있는 사람이 써주는 편이 낫지 않나?"

"닥쳐라, 배신자! 저 계집을 당장 제압해라!"

물러났던 이들까지 포함.

남은 태산파의 무리가 일제히 공세로 돌아섰다.

청청의 그것과 닮은, 하지만 한참 모자란 무공을 사용하며 몰아붙였다.

수적으로 한참 우위에 있으니 고작 둘뿐인 명한과 청청은 손쉽게 처리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함유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견 그 모습이 맞아 보이기도 했다.

"묘하군. 이자들 수준에 맞지 않게 위력이 강하고 반발력이 높다."

그건 무리 진 태산파의 독특한 공능 때문이었다.

명한이 인식하는 개개인의 능력보다 직접 맞부딪친 무인들의 역량이 뛰어났다.

밀릴 것 같은데 밀리지 않고, 막을 것 같은데 막히지 않았다.

마치 역량이라는 선 위에 한 겹이 더 있는 느낌이었다.

"하하하! 네놈들이 태산파의 힘을 감히 어떻게 이해하겠느냐!?"

"청청, 이 배신자! 무공만 훔쳐간다고 태산파의 힘을 전부 이해했다고 생각했느냐? 어림도 없다!"

태산파의 무리는 더욱 기세가 올라서 몰아쳤다.

"계속 이렇게 맞장구 쳐줘야 하는 거냐?"

"아니, 충분해."

하지만 어느 한순간.

짧은 문답의 이후로, 그 기세는 일변했다.

청청이 장력을 날린 무인의 손목을 잡아 그대로 가격.

출렁이는 기운의 벽을 두 주먹으로 후려쳐 깨뜨리고는, 당황한 무인들을 하나하나 팼다.

자랑하던 태산파의 역량도 그 주먹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어, 어떻게!?"

"겹겹이 쌓여 있어도 때리면 깨지기 마련이다, 멍청아. 너희같이 얄팍한 놈들이 힘을 모은다고 그게 태산이 될 수 있으리라 봤냐!?"

"웃기지 마! 우리는 태산의 무인이다!"

"무인이 무공의 단련을 그만두고 용혼 따위에 집착하면서 이미 그런 자격 따위는 없어졌어!"

양 주먹을 교차해서 뻗는 청청.

태산파의 절기 중 하나인 ‘태산압정’ 초식이었다.

웅혼한 기운이 산처럼 밀고 들어가 무인들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그녀 말마따나 얇은 종이를 덧대 봐야 종이였다.

"흐음. 이 용혼이라는 거 어딘가 익숙한데."

한 걸음 뒤에서 명한은 흩어지는 기운을 손으로 훑었다.

청청의 권격에 대항한 태산파의 힘이었다.

각각의 내공의 합보다 많은 덧칠된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태산파에 접점이 있나?’

떠오르는 가정은 있으나 여전히 미심쩍었다.

"크, 크으윽! 우리가 당해도 뒤에는 대사형이 있다! 청청, 네가 날뛰어 봐도 지금뿐이다!"

"……올 테면 어디 와 보라고 해! 난 더 이상 대사형이 두렵지 않아!"

"호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

순간. 그림자 하나가 청청의 앞에 내려섰다.

주변 기운을 삽시간에 뒤틀어버리는 기형적인 존재감의 인물이었다.

발악적으로 청청이 뒤로 물러나 몸을 숙였다.

의지와는 반대로 손과 다리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대, 대사형."

"왜 그러지? 조금 전에는 두렵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크윽!"

쉽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겨내라 말하지만, 청청에게는 깊이 박힌 두려움이 있었다.

잘게 깨문 입술에서 피가 나 턱으로 흘렀다.

"무리하지 마."

"아."

그런 청청의 어깨 위로 명한의 손이 닿았다.

지독하게 느껴지던 군로의 위압감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녀는 놀란 듯 눈만 깜빡이다, 몸을 일으켜 명한 옆에 섰다.

"호오. 넌 누구지?"

"소백. 청청의 고용주다."

"고용주라. 돈에 묶인 관계라면 이 정도에서 물러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괜한 일에 엮여서 절명하는 건 어리석은 선택이다."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잡아간 쌍둥이들을 풀어주고 청청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해. 그러면 목숨 정도는 보전해 주지."

"하하. 재미있는 인간을 찾았군, 청청. 네가 배짱부리는 것도 이 인간에 대한 믿음 때문인가? 그럼 이자도 한 번 망가뜨려 보지. 예전처럼 말이야. 그래도 네가 반항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

스산한 목소리에 청청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가 사냥을 거부하고 도망친 건 단순히 ‘싫다’라는 감정에서 기인한 일이 아니었다.

대사형 군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태산파를 장악했고, 모두가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원했다.

모난 정 같던 성격의 청청에게는 큰 벌을 내림으로써 마음을 꺾으려고도 했다.

그녀가 어머니처럼 따르던 식모를 망가뜨리는 것으로.

청청은 굴복과 도망 중 후자의 것을 택한 것이었다.

"가소롭군."

"아."

침잠하던 사고를 깨운 건 명한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의 얼굴에는 명백하게 웃음이 걸려 있었다.

"고작 태산파 좀 주름잡았다고 네놈이 뭐라도 될 것 같나? 내가 목표로 둔 인간들과 비교하면 넌 그냥 지렁이에 불과해."

"지렁이?"

"아니, 지렁이도 과한가? 용혼? 웃기지 마라. 감히 너 따위가 어디에서 용을 거론하지? 우물 안 개구리가 어떻게 으깨지는지 직접 보여 주마."

명한이 상대해 온. 그리고 상대할 인간들은 이미 초월적인 괴물이다.

천마 같은 인지를 아득하게 벗어난 괴물도 접했는데, 군로 따위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진심으로.

"죽여주마."

"해 봐. 할 수 있다면."

한 점의 보탬도 없는 진심으로 명한은 군로가 가소로웠다.

#

"이쪽이야?"

은소소의 물음에 쌍각사가 쉭쉭거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숲을 빠른 속도로 가로지르는 터라, 전심통을 쓸 여력이 없었다.

"아가씨, 조금 천천히 가면 안 될까요? 육쌍이 힘들어해요."

"아, 너무 빨랐나. 알았어."

따라오던 향아의 조언에 속도를 줄였다.

일행은 마지막 육쌍을 포함해서 전부 넷.

최고 속도를 따라오기에는 육쌍의 상태가 만전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힘내라. 네 형제들을 구해내고 나면 푹 쉴 수 있어."

육쌍이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복이 덜 된 몸으로 무리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명한과 청청이 군로 일행과 맞서는 동안 잡혀 있는 남은 쌍둥이를 구하는 계획.

"아가씨, 도련님은 괜찮겠죠?"

"소백? 소백이야 뭐 문제없을 거다."

"하지만 그 군로라는 사람이 엄청 강하다고 했잖아요."

"강해 봐야 태산파 장문 수준이겠지. 화륜까지 있는 소백이 그 정도에 당할 이유가 없어. 게다가 그 옆에 있는 계집…… 청청도 제법 강하니까."

마음에는 안 들지만, 실력은 인정한다.

청청은 은소소 자신과 거의 동급.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군로가 아무리 강해도 큰 문제는 없다.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쌍둥이들 구하는 일에만 집중해. 군로 쪽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아도 인질이 있으면 이래저래 껄끄럽거든. 확실하게 처리하는 편이 낫지."

"네, 아가씨."

그제야 향아도 걱정을 지우고 뛰기 시작했다.

말마따나 한시라도 빨리 인질을 구하고 돌아가는 편이 더 나았다.

"쉬잇……!"

그렇게 달리기를 얼마나 됐을까.

쌍각사가 은소소의 목덜미를 입으로 당기며 소리를 냈다.

육쌍의 신호를 읽고 일행을 멈춘 것이다.

"저기로군."

"태산파…… 거처 맞죠?"

수십 개의 금줄로 입구가 막힌 동굴 앞이었다.

입구 주변을 서성거리는 태산파 무인이 아니었다면 법당이라 착각할 만한 모습이었다.

어딘가 기묘하고 음침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쉬잇. 쉬잇."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쌍각사는 동굴 안쪽에서 무언가를 느끼며 경고했다.

영물 특유의 감이었다.

"단순히 쌍둥이들을 잡아 두고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거네."

"어쩌면 여기가 용혼공을 수련하는 장소가 아닐까요?"

"태산 밖에서?"

"이동하면서 수련할 수도 있으니까요."

용혼공은 영물을 통해서 경지를 쌓는다.

쌍둥이들을 잡아서 그대로 수련할 목적이라면 향아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묘한 기운 역시 설명이 됐다.

"그럼 예상보다 저항이 거셀 수도 있겠네. 어떻게 할까?"

"……여기서 머뭇거리면 쌍둥이들이 위험할지도 모르죠. 들어가요."

"후후. 그 말을 기다렸다."

예상과는 다르지만, 선택은 바꾸지 않는다.

은소소가 허리춤에 찬 검으로 손을 뻗었다.

날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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