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
여섯째는 달렸다.
나뭇가지가 볼을 긁고 지친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음에도 달렸다.
뒤에서 느껴지는 집요한 살기와 피부에 박힌 두려움이 그렇게 만들었다.
멈춰 서면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잡힐 테니까.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벗어나 도움을 청해야 했다.
"하! 네깟 놈이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냐?"
하지만 오래지 않아 누군가 따라붙었다.
화끈한 열기와 함께 다리가 풀리고 지면에 얼굴이 부딪쳤다.
둔탁한 통증은 지나칠 정도로 선명했다.
바닥을 벅벅 긁으며 몸을 세우려고 했지만, 소리 없이 날아온 밧줄이 두 다리를 묶었다.
순식간에 거꾸로 뒤집혀서 나무에 묶였다.
"가잖은 잡종 놈이 어디서 수작질을. 얌전히 잡혔으면 피 볼 일은 없잖아."
청색 도포 차림의 남자였다.
입술을 비틀어 웃음을 만들고, 여섯째의 앞에 내려와 복부를 후려쳤다.
입이 없어 나올 수 없는 비명이 몸의 떨림으로 대체되었다.
"적당히 두드려. 망가지면 대사형이 화낸다."
"흥. 그 정도는 나도 안다고. 이 새벽에 뜀박질하게 만든 이 잡것들이 짜증 나서 그렇지."
"짜증으로 끝나서 다행이야. 저 모자란 것들이 향에 홀려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었어."
"후후. 대사형의 특제 물건 말이지. 확실히 효과가 좋더라. 이 귀찮은 놈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끌려 나왔으니."
청색 도포는 한 명이 아니었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숫자가 전부 다섯이었다.
가슴팍에 새겨진 문양은 태산의 것.
대사형 군로를 따라서 청청을 잡으러 움직인 이들이었다.
"남은 다섯은 잘 잡아 두었지?"
"이놈이 마지막이야. 여섯을 묶어서 청청을 유인하면 그 계집도 버티지 못할 거다."
"혹시 버리고 도망가면 어떻게 하지?"
"그 계집이? 그럴 성격이었으면 태산을 배신하고 도망치지도 않았겠지. 걸걸한 외면과 다르게 속은 염소젖만큼 유약한 계집이야."
"우리한테는 유리한 점이군."
이들은 낄낄 웃으며 포박된 여섯째를 끌어내렸다.
바닥에 얼굴이 질질 끌리고 묶인 팔다리는 상처가 가득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태산의 입장에서 영물의 혼혈은 그야말로 처분해 마땅한 폐기물.
상한 음식을 처분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응?"
그때, 푸른 도포의 무리 중 한 명이 숲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붉은색 안광을 흘리며 접근하는 어떤 생물이었다.
그 크기가 범상치 않았다.
"곰?"
"―조심해, 곰이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곰.
아니, 곰으로 추정되는 존재였다.
네 발로 지면을 박차며 달려오더니 선두의 남자를 몸통으로 받아버렸다.
쿵,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간 남자는 그대로 기절.
나머지는 불에 닿은 날벌레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아아아앙!!!"
"아니, 이런 곳에 웬 곰이야!?"
"젠장, 조심해라! 보통 곰이 아니야! 영물이다!"
"쯧! 태산도 아니고 야산에 무슨 영물인지. 이놈도 포획한다!"
이내, 당황을 수습하며 자세를 잡는 푸른 도포의 무리.
상대가 영물이라면 그 어떤 이들보다 자신이 있었다.
― 난 곰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몰랐다.
상대하는 영물이 보통 영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
어기적어기적 곰 한 마리가 걸어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곰을 닮은 원숭이 한 마리였다.
보은을 위해서 명한 주변을 맴도는 성성이였다.
들쳐 매고 있던 여섯째를 휙 던져 바닥에 내려놓았다.
"육쌍(六雙)!"
그 모습에 청청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상처 입은 채 쓰러져 있는 건 다름 아닌 여섯 쌍둥이 중 한 명이었다.
"너, 뭐야!? 육쌍을 어디에서 찾은 거야!?"
"침착해, 청청. 이 아이도 쌍아와 마찬가지로 날 따르는 영물이야."
"크릉!"
명한의 설명에 성성이가 콧김으로 답했다.
"널 따르는 영물이라고? 그럼…… 이 아이는 어디에서 찾았어?"
"크릉! 크릉!!"
"주검산장 밖, 숲에서 공격받고 있는 걸 구해왔다고?"
성성이가 전심통으로 밖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청청의 얼굴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우리 애들이 아무 말 없이 내 주변을 떠날 리가 없어. 뭔가 일이 생긴 거야."
"여섯 쌍둥이가 은신하면 나도 찾기가 쉽지 않아. 무림인과 마주쳤어도 쌍둥이들이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 이건 쌍둥이들의 특성을 잘 아는 이들의 짓이야."
"쌍둥이들을 잘 아는 사람……"
"성성이의 말을 따르자면 청색 옷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더군."
"태산파!"
애초에 쌍둥이들을 잡을 수 있는 사람 자체가 한정적이다.
그런 사람들과 우연히 조우해서 우연하게 잡히는 건 말이 안 된다.
셈을 가지고 노렸다는 가정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그런 합리적인 추론의 끝에는 예상된 결론이 존재했다.
청청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개 같은 새끼들이 끝끝내 쫓아와서 우리 애들을 노렸구나!"
"족적을 밟힐 만한 일을 한 적이 있어?"
"최근에 받은 의뢰라고는 너에 대한 것밖에는 없어."
"나에 대한 의뢰뿐이라. 흠. 그렇게 된 건가?"
"뭔데?"
"네게 의뢰한 인물. 네 정체에 대해서 모를 거라 가정했는데,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알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어."
태산파에 정보를 던져서 충돌시킨다.
손 안 대고 전력을 깎아내리기 딱 좋은 수법이다.
게다가 태산파는 명문정파.
까딱 잘못하다가는 공적으로 몰릴 위험성도 있었다.
"……빌어먹을. 나 때문에 쌍둥이들이 위험해졌다는 거야?"
"자책하지 마. 이 경우는 이용하는 놈이 쓰레기일 뿐이니까."
"크윽."
청청이 입술을 깨물며 일어났다.
"가야겠어. 잡아간 게 정말로 태산파라면 애들이 어떻게 될지 몰라."
"……"
"넌 관여하기 싫으면 관여하지 마. 어차피 태산파와의 원한은 내 문제야. 너한테까지 피해가 가게 하지는 않아."
"그런 의미의 침묵은 아니야."
명한은 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손을 뻗어 쓰러진 여섯째의 어깨를 가볍게 쥐어 밖으로 당겼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금색 실이 딸려 나왔다.
"금천사(金薦絲)?"
"어디선가 묘한 냄새가 난다 싶더니 이 실이군. 아는 건가?"
"태산파의 추격조가 애용하는 물건이야. 영성이 있는 존재에 달라붙어서 흔적을 계속 남기지. 아! 금천사가 있다는 건 대사형이 왔다는 말이잖아!"
"대사형?"
"대사형, 군로. 태산파에서 난 일대기재야. 이미 무공도 수완도 장문인을 아득하게 초월했다고 알려진 인간이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평가. 실제는……"
청청이 입술을 깨물었다.
과거 보고 경험했던 몇 가지 상황이 그림처럼 머리를 지나갔다.
첫 사냥을 나가게 된 것도, 그 상황에서 태산파를 배신한 것도.
모두 연장선에 놓인 사건이었다.
"군로는 영물이나 영물의 혼혈을 도구처럼 다뤄. 단순히 사냥감과 사냥꾼의 관계보다 훨씬 지독해. 고통을 주고 그들의 고혈을 뽑아서 무공을 연마하지. 한 점의 온기조차 없는 지독한 냉혈한이야. 날…… 사냥으로 밀어붙인 것도 그 인간이지."
"무공의 연마라. 단순히 영물의 내단을 말하는 것 같진 않은데?"
"용혼공(龍魂功). 영물의 생명을 태워서 그 힘을 흡수하는 기공이야. 본래는 이렇게까지 괴악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한계가 없어졌어."
"용혼공이라."
명한이 설정해 둔 무공 목록에는 없었다.
‘영물을 태워서 힘을 얻는다. 극천일무기와 비슷한 무공인가?’
맞든 아니든 범상치 않은 무공임은 분명했다.
"쌍둥이들을 잡아간 것도 같은 맥락인가?"
"배신자인 날 처단하며 그들도 회수하려는 거지."
"그들로서는 일거양득의 기회라는 거군. 뭐, 상황은 알았다. 여기 이 금천사라는 걸 가지고 있으면 그들이 추적해 온다는 거지? 이걸 이용하면 우리가 가기보다 그들을 유인해 올 수 있겠어."
"자, 잠깐! 대사형이 왔다면 싸우는 건 어리석어. 그 인간은 이미 장문인 이상으로 무공을 익힌 괴물이라고. 네가 아무리 강해도 그와는 상대가 되지 않아."
청청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왔다.
어릴 적 기억이지만, 연무장 중앙에서 뭇 장로들을 단독으로 격파하던 군로의 모습이 선명하다.
인간을 초월한 괴물.
그 누구도 군로를 이길 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네 눈에서 읽히는 두려움이 사실이라면 그는 정말로 강하겠군."
"그, 그래. 맞서 싸우는 건 답이 아니야."
"하지만 도망치는 것도 답은 아니지. 네가 도망치면 잡혀있는 쌍둥이들은 누가 구하겠어."
"그건……"
"넌 그들에게 누이이자 어머니가 아닌가? 두려워도 도망치는 건 안 돼."
청청이 입술을 거칠게 깨물었다.
대부분의 것들은 호쾌하게 처리하는 그녀이나 군로만큼은 정말로 두려웠다.
허나, 명한의 말대로 그녀에게 쌍둥이들은 동생이자 자식.
두려움과 책임 중에서 고르지만, 후자였다.
"그래. 그 눈빛이면 나도 도움을 주지."
반짝이는 눈매에 명한이 손을 내밀었다.
청청이라는 인간이 마음에 들어 밑에 두기로 했다면, 조금 귀찮고 벅찬 일이라도 함께 극복하는 것이 고용주의 의리.
‘감히 내 것을 건드리다니.’
적을 함께 박살 내는 것도 역시 의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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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로는 잡아 온 다섯 쌍둥이를 차례대로 손으로 지목했다.
눈과 입은 없어도 쌍둥이들은 군로의 냄새와 기척으로 행동을 읽고 있었다.
지목당할 때마다 고개를 움찔거리며 두려움을 드러냈다.
"……다섯. 왜 마지막 한 놈이 없는 거지?"
마지막 다섯 번째를 가리키고 질문을 돌렸다.
쌍둥이들과 마찬가지로 남은 태산파의 무인들이 몸을 움츠렸다.
"중간에 예상치 못한 습격을 받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습격? 청청이라도 왔던 건가?"
"아뇨. 곰의 형상을 한 영물이었습니다. 도망친 놈을 추격하던 사제들을 습격해서 탈취해 갔습니다."
"고작 영물 하나에게 빼앗겼다는 거냐?"
군로의 기세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보통 영물이 아니었습니다, 대사형."
"용이라도 되더냐?"
"그건 아니지만……"
"그럼 대체 뭐지? 태산파의 제자라는 놈이 영물에 휘둘려? 처먹은 용혼이 몇이고 산에서 수련한 법이 몇 개인데 고작 영물 하나를 못 이긴다는 거냐?"
변명을 늘어놓은 사제의 머리가 땅으로 처박혔다.
코와 귀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시고 사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벌 떨렸다.
사형제 간에서 보기 힘든 지독한 체벌이었음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태산파에서 군로의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법이었다.
"귀찮은 것들이라 우선적으로 떼어내려 했는데……고작 이런 사소한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줄이야. 이래서야 너희가 본산의 버러지들과 뭐가 다르다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대사형. 배신자를 처리하는 일에는 실수가 없을 겁니다."
"내가 너희를 믿어도 좋을까?"
"기회를 주십시오. 반드시 대사형께 흡족한 결과물을 안겨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군로가 힘을 풀어 사제들을 해방했다.
흘러나오는 피는 적지 않은 내상임이 분명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군로의 눈치만 보며 그의 답이 긍정적이기만 바랐다.
"한 번이다. 이번에도 실수하면 네놈들도 갈아서 용혼으로 만들어 버릴 줄 알아라."
"네, 대사형."
"명심하겠습니다."
메마른 답과 함께 일제히 자리를 박찼다.
금천사의 기척으로 도망친 여섯째의 위치는 확보해둔 상황.
어떻게든 빨리 일을 처리해서 군로의 분노를 잠재워야 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새벽바람 사이를 수십의 사람이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