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235)

불사조

"번거롭군."

청색 도포 차림의 남자에게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청청을 쫓아서 움직이기 시작한 태산파의 대사형, 군로였다.

"장문께서 직접 서신을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급한 일인가 봅니다."

"펼쳐 봐라."

하루를 이틀처럼 쓰며 거리를 좁혀가던 그들의 발목을 태산이 잡았다.

태산파에서 사용하는 긴급용 전서구였다.

어지간한 일이면 무시하고 움직일 군로였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그의 작은 사제가 서신을 펼쳤다.

"용맥(龍脈)에서 비보가 탈출. 수거를 첫 번째로 하라는 명령입니다."

"용맥에서? 본산의 머저리들은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기에, 비보가 탈출한단 말이냐?"

"대사형."

"흥. 됐다. 비보의 행적은?"

코웃음에 사제가 다시금 서신을 훑었다.

"불을 쫓고 있으니 남쪽에서 가장 뜨거운 곳을 찾으면 된다고 합니다."

"하. 말이 쉽지, 중원 땅이 좁은 것도 아니고 이 넓은 곳에서 화기를 찾으란 거냐?"

"아, 한 가지가 더 있어요. 쇠를 먹고 자라는 놈이라 화기가 강하고 쇠가 많이 묻힌 곳이면 홀린 듯 찾을 거라고 하네요."

"그래도 마찬가지…… 잠깐. 쇠라고?"

"네. 쇠와 불이요."

군로가 턱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일전에 받은 정보와의 교차점이었다.

"우연인가?"

"네?"

"쇠와 불이 있는 곳 말이다. 마침 배신자 청청이 머무는 곳도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더군."

"배신자가 있는 곳이라면……아! 주검산장 말이군요!"

"그래. 쇠가 넘치고 화기가 강한 곳이라면 주검산장을 빼놓을 수는 없지."

군로가 서신을 빼앗아 눈으로 훑은 뒤 그대로 태워버렸다.

재는 손아귀에서 날리고 시선은 남쪽으로 돌렸다.

"짐 챙겨라. 태산의 보은인지 일석이조의 기회가 찾아왔다."

주검산장까지는 고작 하루 거리.

군로의 눈이 뜨겁게 타올랐다.

#

명한이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바라봤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사고의 결과였다.

"그러니까 묘한 기운이 느껴져서 창고에 갔더니 알이 있었다고?"

"그렇다니까! 나는 도둑 같은 게 아니야!"

"흥! 현장에서 잡혔으면서 무슨 소리를! 은공, 저 여자는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청청과 정운이 각을 세우며 다퉜다.

"둘 다 소리 좀 낮추고 진정해. 내가 볼 때 두 사람 다 거짓말은 아니니까."

"그렇지! 난 도둑이 아니라고!"

"하지만 은공! 저 알은 산장이 힘들게 구한 물건입니다! 저 알을 냉큼 가져가서 저렇게……저렇게 부화시키다니! 인정 못 합니다!"

"뺙!"

울컥해서 쏟아내는 정운의 외침에 청청의 품 안에서 낯선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금껏 알이라 칭하던 물건 속에서 껍질을 깨고 나온 생명체였다.

붉은색 털에 붉은색 눈동자.

어딘가 범상치 않은 외견을 지니고 있었다.

"저런 영물은 아무렇게나 주인을 정하지 않아. 아니, 애초에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지. 정운. 알을 구했다고 했는데, 어디서 구한 거지?"

"그, 그건……"

"탓하지는 않으니 제대로 얘기해 봐."

"성운로 근처에서 죽어 있던 붉은 새를 발견했어요. 새가 품고 있던 게 그 알이죠."

"하! 어렵게 구하긴!"

"으윽!"

붉어지는 정운의 얼굴에 명한이 손짓했다.

손님으로 와서 굳이 일을 크게 만들 이유는 없었다.

"격이 높은 영물은 이유 없이 속세를 찾지 않아. 처음 발견했을 때, 새의 상태가 어땠지?"

"상처가 깊고 피를 많이 흘렸어요. 성운로에서 나오는 열기를 빨아먹으며 상처를 치유하는 듯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죠."

"네가 욕심나서 죽인 것 아니야!?"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힘없이 죽어가는 생명을 모질게 대하지는 않아!"

이번에는 청청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욕심을 낸 건 맞지만, 도리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청청, 그만해라. 정운의 됨됨이라면 내가 잘 알아."

"……흥."

명한이 분위기를 환기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붉은 새의 마지막은 어땠지?"

"신기했어요. 털부터 하나씩 불꽃으로 화하더니 순식간에 저 알로 빨려 들어갔죠."

"그러니까 완전히 죽어서 숲에 묻은 것이 아니라, 불로 변해서 알로 들어갔다?"

"네. 제가 보기로는 그랬어요."

"맞네. 불사조(不死鳥)야."

"부, 불사조요? 전설 속의 새?"

명한은 설정을 짤 때 대표적인 신수 몇 가지를 정해 두었다.

백호나 용과 같은 수준.

불에서 탄생하여 영생을 살아가는 상상 속의 새.

정운의 묘사는 정확하게 그 불사조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사조는 상처를 입고 치유를 위해 이곳까지 왔을 거야. 성운로의 불길이라면 불사조를 치유하고도 남을 테니까."

"하지만 불이라면 화산이나 그런 곳이 낫지 않나요? 왜 굳이 주검산장까지……"

"성운로의 불길도 충분히 강하니까. 게다가 이곳에는 불이 아닌 철도 충분하지."

"철이요? 철이 왜?"

돌아오는 질문에 명한이 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제련을 위해 쌓아둔 철 중 하나를 들어서 그대로 붉은 새에게 던진 것.

새는 ‘뺙!’ 소리를 내며 철을 그대로 씹어 먹었다.

오독. 오독. 씹는 소리가 잠시 이어지고 이내 목 뒤로 넘어갔다.

작은 새가 쇠를.

이 기묘한 모습에 모두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불사조는 철을 먹고 자라거든. 정운의 설명대로라면 부활을 위해 불과 철이 많은 곳을 택했을 거다."

"그럼 저 작은 새가 불사조 그 자체라는 건가요?"

"그렇지. 몸은 줄었어도 신수로서의 격은 그대로야. 아마 청청의 영성을 느끼고 그에 반응해서 깨어났을 거다."

명한이 불사조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놈은 잠시 경계하는 듯 ‘뺙!’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으나, 명한이 지그시 노려보자 꼬리를 말고 머리를 내어주었다.

반항해도 좋은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대를 구별하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각인(刻印)이네."

"각인?"

"불사조는 다시 태어나 성체가 되기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필요해. 그동안은 자신을 보호해줄 대상을 택하지. 이번은 청청, 네가 된 것 같다."

"내, 내가?"

깜짝 놀란 청청이 불사조를 봤다.

이 시선을 느낀 듯 불사조도 그녀를 마주 봤다.

동그랗게 뜬 붉은 눈동자 안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 키워.

"은공, 저 여자…… 청청이라는 분에게 불사조가 각인되었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잘 키워서 어엿한 불사조로 만들든가 그런 거지. 왜? 신수를 뺏긴 것 같아서 아쉽나?"

"……사실 삼촌의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영물이 남긴 알이니 어쩌면 좋은 약이 되지는 않을까 싶어서 보관해 두고 있었죠. 주인을 고르는 영물이라면 욕심은 부리지 않겠습니다."

"삼촌의 상태가 안 좋다고?"

"큰 도시의 의원이 몇 번을 살펴도 병세를 잡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반 정도 포기하고 있죠."

"그랬군."

이제야 정운의 반응이 이해되는 명한이었다.

‘그러고 보니 불사조의 설정에 의하면……’

문뜩 떠오르는 내용도 있었다.

"청청, 불사조 좀 잠깐 빌리자."

"응? 왜?"

"전설에 의하면 불사조의 눈물은 만병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들 하지."

아직 성체는 아니니 그 정도는 무리.

하지만 단순한 병환 정도라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철이라면 넘치는 것이 주검산장.

그리고 불이라면 성운로보다 한 끗발 높은 명한이 있다.

"울어."

"……뺙?"

명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

결과적으로 불사조의 눈물은 약이 맞았다.

중간 과정은 삭제하고 결과만 보자면 병자는 일어나고 정운과 청청은 화해하는 것으로 끝났다.

‘뺙! 뺙!’거리며 우는 불사조만 빼면 모두가 행복했다.

"문제는 네놈을 누가 그 지경으로 만들었냐는 건데."

명한이 뒤뚱뒤뚱 걷는 불사조를 보며 읊조렸다.

지금 꼴이야 병아리와 다를 바가 없지만, 성체인 불사조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신수 중에서도 윗단에 놓인 존재.

어지간한 고수라도 불사조에게 승기를 잡는 건 쉽지 않다.

‘아니, 단순히 무력으로 누른다고 불사조차 회생 불가능의 상처를 입기는 어려워.’

영물, 신수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소행이었다.

"대화가 좀 되면 물어보겠는데. 쌍아야, 넌 어떻게 대화가 안 되냐?"

혹시나 해서 떠봤지만, 쌍각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단편적인 사고는 주고받을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읽기란 요원했다.

"아, 여기 계셨군요."

"응? 정운이구나."

그때, 정운이 명한을 찾아 별채의 뜰로 들어왔다.

"방금 삼촌이 깨어났어요. 열도 내리고 후유증도 남지 않았어요. 다시 한번 은공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내가 한 게 아니야. 저기 저 붉은색 병아리와 그 주인이 한 거지."

"네. 청청 소저에게는 다시 한번 사죄를 할게요."

"너무 빡빡할 것까지는 없고. 적당히 친해져 봐. 그쪽도 너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까."

"네, 은공."

걱정은 씻어낸 얼굴로 정운이 옆으로 다가왔다.

두꺼운 포목으로 둘둘 감싼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음? 아, 그건……?"

"은공께서 부탁하신 물건이에요."

불사조가 깨고 나온 껍질이었다.

잘 갈아서 성운로 안쪽에서 말려 두었다.

자체로 좋은 약이자 재료였다.

"오. 잘 말렸군. 이 정도 양이면 쓸만하겠어."

"이런 가루를 어디에 쓰실 건가요?"

"불사조는 화기의 정점이야. 내가 다루는 힘과도 꽤 연관이 있지."

명한이 화륜으로 가루를 자극했다.

붉은색의 연기가 가루 주변을 휘감았다.

쓴 힘과 비교하자면 활성화된 기운은 그 몇 배는 됐다.

‘역시 화기에 대한 반응성이 뛰어나.’

불사조 정도의 기운이라면 화륜의 능력을 몇 배로 늘릴 수 있었다.

물론, 증폭과 제어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 명한도 가루 이상은 쓸 생각이 없었다.

이건 말하자면 비상수단.

비밀 무기는 많이 만들어 둘수록 좋은 것이 무림이다.

"그보다 서신으로 남긴 제안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어?"

"아. 연합체 말이군요."

"광산의 채굴권은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 필요하면 무력도 빌려줄 수 있고."

"제안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건 이해했어요. 장로들도 충분히 납득하고요. 다만……"

"결정권의 부재를 우려하겠지."

"네."

명한은 오월상단과 묶어서 주검산장을 산하에 두고 싶어 했다.

앞으로 전쟁이 발발하면 거래대상으로는 불안하다.

주검산장처럼 실력 좋은 검장가는 반드시 필요했다.

"에둘러 말하거나 쓸데없는 포장은 안 할게. 나한테는 주검산장의 힘이 필요해. 앞으로 이 중원은 거대한 전쟁에 휘말릴 거야. 그때, 주검산장이 애매한 위치에 있으면 이래저래 곤란하거든."

"그 전쟁이라는 건…… 확실한 건가요?"

"확실해. 신교, 서역, 중원의 명가, 남만이나 동쪽의 무사들까지. 모두가 휘말리는 거대한 싸움이야. 그때가 돼서 편 가르기를 하는 건 너무 늦어. 난 주검산장이 내게 협력해 줬으면 해."

명한은 담담하게 목적을 이야기했다.

"……"

"쉽지 않다는 건 알아.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해 봐. 필요한 정보는 향아나 소소를 통해서 물어보고."

"은공께서는 제가 어떤 선택을 해도 인정해 주시는 건가요?"

"난 선택을 위해서 이 길을 가고 있어. 누군가를 강요하는 건 나와 맞지 않아."

"선택을 위한 길."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선택 위에서 두 발로 딛고 살아가. 결말이 좋든 나쁘든, 선택에 충실했다면 후회는 없겠지."

명한은 여전히 불안해 보이는 정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감언이설과 적당한 설득이라면 선택을 돌리는 건 쉬운 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길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어야 했다.

"전……"

"소백―!!"

긴 고민 끝에 정운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

정적 사이로 청청의 다급한 외침이 끼어들었다.

"쌍둥이들이 사라졌어!"

그만큼 급한 내용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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