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235)

산장 속 불

명한은 백약문에서의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주검산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박한 마차에 수행원도 최소한으로 둔 여정이었다.

시간마저 새벽을 틈타서 따라붙는 눈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아, 저기 전서구 한 마리 더 날아간다."

"오른쪽에도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수십, 수백의 눈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백약문을 떠나는 순간 엄청난 숫자의 전서구들이 쉼 없이 날아갔다.

"……거, 우리 고용주께서는 꽤 주목받고 있는 모양이네."

청청도 쉼 없이 날아가는 전서구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자세한 내막까지는 전해 듣지 못한 그녀이기에 이런 정황은 꽤 놀라운 모습이었다.

"앞으로는 종종 볼 거다. 익숙해져."

"끄응. 그쪽하고 계약한 게 슬슬 후회되는데."

"아쉬운 소리는 넣어두고. 쌍둥이들은 잘 지내고 있냐?"

여섯 쌍둥이는 별개의 마차로 이동 중이다.

청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이들이라 처음에는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쌍각사가 함께 타주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격의 차이 때문인지 의외로 잘 따르고 있다.

"다들 안정돼 있어. 최근에 본 것 중 가장 평안한 상태야. 네 신수가 부모 역할을 해주는 모양인데?"

"어쨌든 부모는 맞으니까. 저 상태로 계속 유지해 보자고. 독립적인 행동이 가능하게 하려면 이런 식으로 연습을 해 봐야 해."

"독립적인 행동이라. 저 아이들을 험하게 부리려는 건 아니겠지?"

"가진바 능력이 워낙 출중하니까 낭비하긴 아깝지. 그래도 걱정하지는 마. 난 사람을 험하게 굴리는 성격은 아니니까. 충분히 준비하고 안전한 상황에서만 도전할 거야."

"뭐, 험하게 굴리는 인간이면 신수가 따를 리는 없겠지."

청청히 적당한 수준에서 납득했다.

그녀도 여섯 쌍둥이가 독립성을 길러야 한다는 건 공감하고 있었다.

신수인 쌍각사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훈련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괜찮았다.

‘하지만 뭘까. 신교의 소궁주가 신수까지 부리면서 외유하는 이유가.’

의문이라면 현 상황.

나름 무림 밑바닥을 구를 만큼 구른 그녀이지만, 지금의 형세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호기심이 넘치면 명줄을 당긴다."

그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낀 은소소가 날카롭게 조언했다.

명한의 선택에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청청에 대한 신뢰는 아직 없었다.

"그쪽도 신교의 소궁주라고 했지? 평생 가도 한 명 만나기 힘든 사람을 둘이나 한 번에 만났는데, 호기심이 안 생기면 천치 아닐까?"

"적당히 받은 만큼만 해. 네 재주를 아낀 소백이 특별히 기회를 준 거니까."

"흐응. 받은 만큼 하려면 나도 굴러가는 상황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흥. 대체 널 어떻게 믿고? 평생을 몸담은 사문도 배신한 계집을 덜컥 믿을 만큼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아."

"……거, 말투가 좀 그런데?"

"불만이면 네가 어쩔 건데?"

날카로운 시선이 오고 갔다.

후끈 달아오르는 분위기.

향아는 쩔쩔매고 명한은 그냥 수수방관했다.

"내가 고용주님 실력은 직접 경험해서 인정하는데……그쪽은 아직 잘 모르거든.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쪽이 내 고용주는 아니잖아?"

"하. 그래서 뭐? 네 얄팍한 실력으로 서열 놀이라도 해보자는 건가?"

"한동안 몸담고 일할 거면 위아래는 알아 둬야지."

"나와."

"바라던 바다."

아예 판을 벌였다.

‘어, 어쩌죠!?’ 당황한 얼굴로 향아가 명한을 바라봤지만, 그는 어깨만 으쓱했다.

어차피 연 없던 두 사람이 갑자기 친해지기란 어려운 법.

말마따나 어느 조직이든 서열 정립은 필요한 과정이었다.

마차를 세우고 두 사람을 위한 시간을 내어주었다.

"도, 도련님 저러다가 누구 한 명이 크게 상하면 어떻게 해요?"

"둘 다 그렇게 생각 없지는 않아. 적당한 수준에서 멈출 정도의 실력은 있고."

"으으. 전 너무 걱정되는 것요."

"걱정되면 나가서 너도 한 손 거들던가."

"제가 감히 어떻게……"

"쯧쯧. 네가 내 몸종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에게도 몸을 낮출 필요는 없어. 솔직히 저 둘보다 네가 더 강하잖아."

"아, 아니에요!"

"아니기는."

다급하게 손사래 치는 향아의 모습에 명한이 피식 웃었다.

무월을 깨우친 향아의 전력은 은소소나 청청을 훨씬 웃돈다.

다만, 몸에 밴 습성 탓에 전력을 내기가 힘들 뿐.

‘이것만 잘 극복하면 권왕 이상의 전력은 금방인데 말이지.’

아쉽지만 다그치기는 쉽지 않은.

그런 상황이었다.

"도, 도련님 소소 아가씨가 날아갔어요!"

"화끈하네."

마차 밖, 화끈한 두 여자의 싸움을 관람하며.

명한이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

서열정리는 은소소의 승리로 끝났다.

보법이나 초식의 다양성에서는 청청이 우위에 있었지만, 내공과 파괴력에서 은소소가 조금 더 나았다.

싸움이 더 길어지면 모르겠지만, 청청에게는 그것도 모험이었다.

적당한 수준에서 자존심을 꺾고 은소소를 인정했다.

"은공! 드디어 찾아 주셨군요!"

그리고 얼마지 않아 일행은 주검산장에 당도했다.

장주, 정운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명한을 반겼다.

"오래간만이야. 그동안 키가 좀 큰 건가?"

"반 뼘은 넘게 자랐는걸요."

"이제 좀 장주 티가 나는군."

가볍게 다독이는 말에 정운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에게 명한은 단순한 은인 이상이었다.

닮고 싶은 이상향이라고 해야 할까.

그의 말은 하나하나가 의미가 남달랐다.

"자자, 안쪽으로 드세요. 은공께서 오신다는 소식에 급하게 준비해 뒀어요."

"거창한 환영은 필요 없다고 했잖아."

"그래도 오랜만에 오시는 건데, 소홀히 하면 주검산장의 체면이 상해요. 이 안에서만큼은 장주로서 은공을 대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사이에 말만 더 늘었군. 알았다. 손님의 자격으로 얌전히 있지."

"하하. 절 따라오시면 돼요."

산장의 수많은 하인을 내버려 둔 채 정운이 직접 일행을 안내했다.

이를 고까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사건을 겪었던 이들은 가만히 침묵했다.

정운이 명한을 얼마나 따르는지 알고 있었다.

"오호. 성운로를 아예 이쪽으로 옮겼군."

그렇게 안내된 산장 안쪽에는 거대한 철 울타리로 가려진 용광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주검산장의 자랑이자, 그 핵심인 성운로였다.

연신 타오르며 내뿜는 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최근에 작업량이 많은 터라 쉼 없이 돌아가고 있어요. 성운로가 아니었으면 그 작업량을 다 소화하지 못했을 거예요."

"연료는? 백탄으로 채웠나?"

"섞어서 써요. 최근에는 백탄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하나로만 화력을 채우기 힘들죠."

"그럼, 여기서는 내가 조금 도움을 주지."

명한이 성큼성큼 걸어가 성운로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백색에 가까운 빛으로 타오르는 성운로 안쪽이었기에 주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이 단번에 타버릴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서, 성운로의 화력이!?"

"오오오. 엄청난 고열을 내고 있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하지만 명한의 손은 멀쩡했다.

성운로만 더욱 강한 화력을 뿜어냈을 뿐이다.

그가 안쪽 깊은 곳에 던져 넣은 화륜의 파편 덕이었다.

작은 불씨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못해도 수년은 타오를 거다. 나나 네가 아니라면 불씨를 건드릴 수 없게 해 뒀어."

"으, 은공은 선인이신 건가요?"

"그냥 평범하게 재주가 좋을 뿐이야. 나도 마침 주검산장에 부탁할 일이 있으니 성운로가 잘 돌아가는 편이 낫지."

"저희에게 부탁할 일이요?"

"안에서 얘기해도 될까?"

"그럼요! 절 따라오세요!"

정운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적당한가?’

어딘가 고깝지 않게 보던 시선도 대부분 수그러진 상황.

명한이 웃음을 숨기며 정운의 뒤를 쫓았다.

#

해가 떠 있는 동안 멈추지 않던 망치질 소리가 드디어 그쳤다.

자정이 넘어가고 이제는 잠이 들 시간.

불타고 있는 성운로를 제외한 모두가 철에서 벗어났다.

"대단해. 이곳은 불로 채워져 있잖아."

그 적막의 한가운데를 청청이 걸었다.

손님용으로 내어준 별채의 작은 뜰이었다.

선선한 바람을 뺨으로 느끼며 누적된 여행의 피로를 날려 버렸다.

― 뜨겁다, 뜨거워!

― 불이다! 불은 아프다!

여섯 쌍둥이도 마차에서 나와 그녀 주변을 맴돌았다.

영성이 트인 이들 눈에만 보이는 독특한 시야가 있었다.

주검산장은 거대한 불구덩이 위에 놓인 철.

그 열기는 하나의 생명처럼 영글어져 있었다.

"사람이 한곳에 모여서 열기를 뿜어내면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주검산장의 모든 사람이 불을 품고 철을 손에 쥐었다.

각기 다른 사람이었음에도 어떤 공통된 기질을 가진 셈.

청청은 이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녀가 살던 태산에서는 이런 식으로 기질이 꽃을 피운 적이 없었다.

"왜일까? 태산의 늙은이들이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잖아."

혼자서 질문을 던지고 침묵으로 답을 받았다.

여섯 쌍둥이는 답해줄 지혜가 없었다.

괜히 머쓱함에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낯선 환경에 조금은 뒤숭숭했던 모양이다.

"―어?"

하지만 순간.

정말 찰나의 순간에 그녀의 감각에 무언가가 포착됐다.

아주 작고 희미한 영기였다.

당장 부서질 듯 위태롭게 반짝였다.

― 청청. 청청. 저쪽에 뭔가 있다.

― 우리랑 닮았다. 비슷한 느낌이다.

― 가보자, 가보자. 가서 확인하자.

쌍둥이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머뭇거리는 청청을 다그쳐서 기운이 느껴진 쪽으로 움직이게끔 했다.

명한도 쌍각사도 모두 없는 상황.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선택했다.

"이 아래쪽인가?"

별채와 본채의 중간 즈음에 놓인 창고.

헐겁게 걸린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열자 희미하던 기운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횃대 하나 없이 이어진 창고의 계단 아래쪽이었다.

‘뭐지? 검장가 아래에서 왜 이런 기운이 느껴지지?’

태산이나 천산 같은 영산이라면 자연적인 영물의 탄생이라 여길 수 있으나, 여기는 아니다.

청청이 의문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 알이다, 알!

― 붉은색 알이 있다!

검붉은 나무 상자 안에 덩그러니 담겨 있는 알들.

청청이 느끼는 묘한 기운은 그 안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홀린 듯 알에 접근해서 집어 들었다.

돌같이 거친 알의 표면 안쪽에서 희미한 고동에 전해졌다.

정체는 알 수 없었으나, 이 알은 분명 살아 있었다.

‘확실히. 이 알은 보통 물건이 아니야.’

태산에서 보았던 영물.

아니, 그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존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을 품고 있었다.

쌍각사가 수련으로 영물에서 신수가 되었다면 이 알은 태생부터가 신수에 근접했다.

"―!"

순간, 청청이 무언가를 감지하고 몸을 숙였다.

바람을 가르며 검 하나가 머리 위를 스쳐서 벽에 박혔다.

화악! 확! 확!

이어, 횃불을 든 무리가 안으로 난입하며 그녀를 사방에서 포위했다.

일사불란함이 상당히 잘 훈련된 무리였다.

"감히 주검산장 내부에서 도둑질하려 하다니! 네 목숨은 하나가 아닌가 보구나!"

"……주검산장의 주인?"

그 선두에 서서 외치는 것은 주검산장의 주인 정운.

낯까지만 해도 명한과 형제처럼 웃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왜 저런 사람이 이런 물건을.

청청은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알을 품에 안았다.

투둑―

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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