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부정
지독한 싸움이 이어졌다.
명한은 화륜을 통한 가속으로 종리운을 압박.
그의 붕괴가 펼쳐지기 전의 틈과 틈을 오가며 타구봉을 쑤셔 넣었다.
폭음이 쉼 없이 이어지고 아득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그 힘이 얼마나 거센지 은소소와 향아마저 끼어들 수 없었다.
"내게 뭘 바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너무 우습게 봤어."
"닥쳐라. 우물 안 개구리 주제에 뭐라도 된 듯 떠드는 거냐?"
"하! 그 개구리 하나 다루지 못해서 죽어버린 게 어디의 누구지?"
"네놈이 정녕!!"
공간을 짓누르던 붕괴의 힘이 얇게 펴졌다.
손아귀에 딱 들어가는 검의 크기였다.
그리고 종리운이 그 검을 부드럽게 쥐었다.
끝없이 요동치는 힘의 검이었다.
"네놈의 재주는 인정하마. 하지만 이 허공검(虛空劍)을 보고 멀쩡하게 살아나간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얌전히 죽어라."
"그 입에서 뱉을 수 있는 건 허풍뿐인가? 그러니 자식새끼 하나 건사하지 못하지."
"……네놈은 거죽조차 남기지 못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명한은 끝없이 도발했다.
‘길어야 5분인가.’
화륜을 통제할 수 있는 제한 시간 때문.
아무리 명한이 화륜의 근본을 파악했어도 익힌 지 고작 하루다.
그 들끓는 분노와 열기를 장시간 제어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나형처럼 폭주하고 말 뿐이다.
그 안에 승부를 보기 위해서는 상대 역시 뜨거워져야 했다.
드드득.
크게 부서지는 지면.
종리운의 모습이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측면에서 나타났다.
공간을 짓누르던 붕괴의 힘이 검의 형태로 사선으로 날아왔다.
막을 시간은 있지만, 예단이 어렵다.
명한은 몸을 길게 누이며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피할 수 있을 것 같더냐?"
순간적으로 늘어나는 검.
명한의 가슴팍을 베고 지나갔다.
상처 주변이 급격히 메마르고 내공의 흐름이 막혔다.
하지만 이 사실에 당황할 틈 따위는 없었다.
곧바로 이격 삼격이 이어졌다.
‘물러나면 당한다.’
검의 범위를 재단하기 어려우면 밖이 아닌 안이 답.
명한은 허리에 힘을 주며 되레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화륜의 힘이 순간적으로 가속하여 거리를 제거했다.
쩌엉―!!!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공간.
명한과 종리운의 충돌 지점이 원형으로 무너졌다.
화륜의 가속을 종리운이 허공검으로 받아치며 주변 기운까지 함께 뒤틀려 버린 결과였다.
공기가 타고 자연지기가 엉망으로 날뛰었다.
경지에 이른 고수라도 내식을 다스리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나이치고 제법일 뿐이다."
"……큭!"
이럴 때 드러나는 건 경험.
내식의 수습에 버거운 명한과는 다르게 종리운은 여유가 있었다.
자신의 기운을 이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도 완벽하게 다스렸다.
그야말로 완숙에 들어선 현경의 모습이었다.
명한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네게는 물어볼 것이 많다. 하지만 이대로 네놈을 살려 둔다면 앞으로 내 일을 끝없이 방해하겠지. 이대로 숨을 끊어 쌍령을 받아가는 것이 옳다."
"……겁이라도 먹었나? 천하의 팔반께서 약관도 안 된 아이에게 너무하는군."
"도발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내식을 다스리기도 힘든 환경 속에서 종리운은 다시금 기운을 모았다.
주먹 하나를 감쌀 정도의 허공권이었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두 눈으로 명한을 확인하고 손을 뻗었다.
팟. 팟. 팟―!
하지만 그 순간.
거의 같은 시기에 세 명이 움직였다.
한 명은 종리운의 뒤로 검을.
다른 한 명은 허공권을 막기 위한 일장을.
다른 한 명은 움직이지 못하는 명한을 낚아채기 위한 보법을.
순식간에 점 셋이 지나갔다.
"쿨럭……!!"
"향아!"
정면에서 허공권을 받아친 것은 향아였다.
일월배심경을 통해서 얻은 무월을 통해서 종리운의 허공을 받아냈다.
완벽하지 않은 허공이라 간신히 견딜 수 있었으나, 내상은 피하지 못했다.
"감히! 뒤를 노리다니!"
"반절도 안 된 후배를 상대하며 예의 운운하지 말자고!"
그사이 뒤를 노린 건 은소소의 혼원일기였다.
중심으로 앞으로 쏠린 상황에서는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급히 끌어올린 기막을 찢고 종리운의 어깨를 베었다.
"낭군, 괜찮아!?"
그리고 마지막에 명한을 구한 것이 묘아.
경지에 오른 능파미보로 혼탁한 공간을 가로지르며 명한을 낚아챘다.
내식이 진탕되어 얼굴이 창백했지만, 소기의 목적은 이뤘다.
"하찮군! 사내대장부라는 놈이 계집들 치마폭에 싸여서 구명하는 것이냐!?"
"……하. 그런 식이니 자식 놈이 엇나가지. 나형, 그 인간이 어머니라는 존재를 알기는 하는 거냐?"
"시끄럽다. 좋은 씨를 품고 양질의 사내놈을 잉태하면 그만이다. 제 역할도 다하지 못한 계집 따위, 알 바 아니다."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니까."
명한이 내식을 겨우 수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앉아서 쉴 상황은 아니었다.
"내가 그쪽 가치관에 뭐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한 가지는 알겠어. 남을 아끼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그것뿐이야. 끝없는 실패에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하지. 하지만 결국 하자 있는 건 본인이거든. 당신, 씨는 제대로 있어?"
"네놈이 감히!!"
"타버려!"
종리운이 발끈하는 순간.
명한이 눌러 두었던 화륜을 한 점으로 토해냈다.
그는 묘아의 도움으로 망가진 공간의 밖으로 물러난 상황.
은소소의 공격으로 머뭇거리는 종리운에 비해서 집중도에서 이점이 있었다.
쏟아낸 불꽃이 파도를 만들어서 종리운을 덮었다.
"크으으으으!!"
다급히 만들어낸 허공은 완벽하지 않았다.
"도련님을 괴롭힌 죄!!"
"내 검을 무시한 죄!!"
그리고 그 일격에 향아와 은소소의 힘이 더해졌다.
평소의 종리운이라면 절대로 닿지 않을 공격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균열이 난 벽에는 작은 돌멩이도 충분히 치명적.
걸음이 밀리고 허공의 벽이 부서졌다.
"크아악!!"
견디지 못하고 불길에 휩쓸리는 종리운.
수 장을 날아가 지면에 처박혔다.
꺼지지 않는 불길이 그를 완전히 뒤덮어서 태웠다.
고통 어린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아. 하아. 사람 무시하면 이렇게 된다 이거야!"
은소소가 더없이 호탕하게 웃었다.
"아직 아니야!!"
하지만 불에 탄다고 끝날 사람이라면 팔반이라는 이름이 아깝다.
홍염 속에서 한 줄이 빛이 튀어나와 은소소의 목을 노렸다.
한발 빠르게 미끄러진 명한이 빛을 타구봉을 휘어 감아서 옆으로 밀었다.
‘……!!’ 문제는 그게 노림수였다는 것.
타구봉이 외력에 옆으로 쓸려나가자 불길 속에서 종리운이 튀어나왔다.
얼굴 절반이 불에 탄, 악귀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내식을 집중해서 반격기회를 노린 것이다.
"도련님!!"
이건 피할 수 없다.
명한은 가이신공으로 안을 보호하며 충격에 대비했다.
쾅―!!!
이어진 굉음.
그리고 사방을 휩쓰는 엄청난 충격.
명한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누구?"
하지만 타격은 없었다.
그저 지척에서 폭발이 일어나 몸이 밀렸을 뿐.
뿌옇게 피어오른 먼저 사이로, 싸움에 개입한 제삼자를 찾았다.
"마창―!!"
"무모했네, 종리운. 아무리 자네라도 교내에서 이런 소란은 불가하네."
창끝을 밟고 선 채 고고하게 바라보는 남자.
마창, 육마완이었다.
#
소궁 한 채가 완전히 박살 날 정도의 충돌이었다.
이걸 외부에서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내각에서야 팔반의 위용 때문에 개입을 늦춘다고 해도 같은 팔반은 상관없다.
육마완은 현재 천마대전을 담당하는 인물.
그의 이런 개입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러나라, 육마완. 이건 너와 상관없는 일이다."
"종리운. 아니, 형제여. 이번 일은 자네가 선을 넘었네. 아무리 팔반이 신교 내에서 독립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다 한들, 소궁주를 저리 대할 수는 없어."
"그는 신경 쓰지 않아!"
"내가 신경 쓰네."
끊는 듯한 목소리에도 육마완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와 종리운은 벌써 3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사이.
한눈에 종리운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그만하고 의당으로 가세. 상처가 심해지면 흉이 깊이 남을 거네."
"이딴 낯가죽 따위는 상관없어. 난 오늘 이곳에서 저놈을 죽여야겠다!"
얼굴 한쪽을 손으로 가린 채 종리운이 소리쳤다.
지독한 고통이 끝없이 이어졌지만, 분노가 더 컸다.
"어리석은 말이야. 자네 몸에 침투한 화기는 평범한 것이 아니네.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지우지 못할 상처가 되고 말 거야."
"불구가 돼도 상관없다. 오늘 이곳에서 저놈을 죽이지 못할 바에는 그게 나아!"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건가? 자네 절반도 살지 않은 아이네."
"저놈이 내 아들을 죽였단 말이네!!"
막혔던 둑이 터지듯 종리운이 소리쳤다.
수많은 변명과 수많은 이유로 방향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그것 때문이었다.
아들, 나형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부족하고 아무리 모자라도 아들이었다.
"쌍령이 움직였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 나형 그 아이가 어딘가에 있는 거네. 저자를 죽여서 귀혼령을 가져온다면 그 아이를 다시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자네가 내 친구라면 여기서는 눈감고 물러나 주게."
"……"
"나는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네.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쩌면 이건 날 불쌍히 여긴 하늘의 기회일지도 몰라. 제발 한 번만 물러나 주게."
"……그럴 수는 없네."
훙.
묵직한 울림과 함께 육마완의 창이 종리운을 겨냥했다.
"자네가 말한 쌍령이 무엇인지 기회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네. 죽은 자가 살아서 돌아온다는 터무니 없는 말이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 허나, 난 신교의 팔반이네. 규율을 어기고 문주님의 혈육을 해하려는 자네를 방관할 수 없어."
"육마완!!"
"그것을 위해 친구를 죽여야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
창끝에 서린 기운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30년을 넘게 알아온 친구라도 한 번에 꿰어버릴 것 같은 무거움.
종리운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자네가 어찌 나에게 이러는가! 고작 저 어린놈이 나보다 중하다 이건가!?"
"저 아이가 아닌 신교라는 이름이네."
"헛소리! 신교는 천마 그자의 놀이판이라는 걸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자기 자식이 죽어도 그자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
"그렇다 해도, 나는 움직이네."
"으아아아아!!!"
종리운의 허공검이 빛처럼 날아가 육마완의 뺨을 스쳤다.
벽을 부수고 기둥을 단절하며 소궁의 절반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공격에도 육마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날 선 창.
그 자체였다.
"우리 우정은 끝이다, 육마완!"
"……"
"이 빌어먹을 신교도,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천마도! 모두 끝이야! 모조리 저주하겠다! 저주하겠어!!"
종리운은 피를 토하며 자리를 박찼다.
지금 상태로 육마완과 싸우면 백 번을 싸워도 필패.
그 사실을 알기에 저주를 토해내는 것이 전부였다.
육마완도 그런 종리운을 바라만 볼 뿐, 붙잡지 않았다.
"어리석은 친구."
그저 쓰리게 읊조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