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울리면 손님이 온다
이른 새벽.
명한은 귓가를 울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공기를 타고 희미한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무엇일까.
호기심과 경계를 반쯤 섞으며 처소에서 걸어 나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전날, 묘아가 훔쳐왔던 방울이다.
분명 깊은 곳에 잘 보관해 뒀는데, 어떻게 밖으로 새어 나와서는 허공에서 혼자 울리고 있다.
딸랑. 딸랑.
그야말로 귀신놀음이었다.
"무슨 소리냐, 소백?"
"으아악! 귀신이다!!"
곧이어 은소소와 묘아도 현장으로 달려왔다.
허공에 떠서 스스로 울리고 있는 방울은 대충 봐도 기괴했다.
"일단 두 사람 다 물러나 있어."
허둥대는 둘을 물리고 명한이 방울로 손을 뻗었다.
차가운 금속 재질의 감촉 너머로 무언가 느껴졌다.
‘공명?’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같은 무언가와의 공명이었다.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는 거리를 격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명한은 감각을 천천히 범위를 넓혀서 그 이어짐을 추적했다.
"이런. 이 방울은 일종의 방범 장치였군."
신호는 정확하게 묘아가 털고 온 팔반의 처소 방향이었다.
게다가 그 신호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물건을 누군가 훔쳐갔을 때, 그것을 추적하기 위한 수단.
콰콰―!
이내, 굉음과 함께 소궁의 정문이 통째로 날아갔다.
"종리운."
흩어지는 파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종리운.
팔반의 일원이며 절대 고수 중 한 명이었다.
"귀혼령(歸魂鈴)을 내어놓아라."
"남의 처소 문을 그렇게 박살 내놓고서는 하는 말이 그건가?"
"두 번은 없다. 당장 귀혼령을 내어놓아라. 그럼 적어도 목숨은 살려주마."
"……"
종리운의 태도에는 한 점의 허풍도 섞여 있지 않다.
신교 내에서 소궁주를 죽이겠다는 말을 거짓 없이 뱉는 것이다.
‘신기자. 이걸 노렸나?’
방울을 유도해서 종리운과 맞서게 하는 수.
적절한 차도살인의 계책이었다.
"뭐, 정 필요하시다면 건네 드리죠."
그렇다면 굳이 계책에 휘둘릴 이유는 없다.
방울의 정체는 궁금하지만, 종리운과 맞설 정도는 아니다.
방울을 그대로 종리운 쪽으로 던졌다.
"……뭐?"
분명 던졌다.
헌데, 무슨 귀신의 장난이라도 되는 듯 방울이 손에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을 더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렇게 물어보지 마. 나도 모르는 일이니까."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야! 몇 년에 걸쳐서 귀혼령을 연구했음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 그런데 어째서 네놈이 귀혼령을 부리는 거지!?"
"이건 내가 부리는 게 아니라……"
그냥 달라붙었다.
그렇게 말하려는 찰나, 귀혼령이 손에서 떨어져 머리 위에 안착했다.
누가 봐도 다루는 모습이었다.
"감히 나 종리운을 놀리려는 것이냐!?"
"잠깐. 잠깐! 침착해 보라고. 난 이 물건이 뭔지도 몰라. 이건 내 의도가 아니야."
"……상관없다. 쌍령이 활성화된 이상, 주인을 죽으면 그 권한이 인계되겠지. 차라리 이게 기회일지도 모르겠어."
"쌍령?"
귀혼령이 아닌 쌍령.
바뀐 명칭에 명한이 의문을 품는 순간.
산이 덮쳐오는 듯한 압력과 함께 전면의 공간이 무너졌다.
벽, 기둥, 나무……
눈앞의 모든 것이 절반 이하로 압축되는 모습이었다.
쿵―!!
소리가 들린 건 그 이후.
전면의 한 점을 중심으로 반경 삼 족장 안의 공간이 통째로 주저앉았다.
위기를 느낌과 동시에 몸을 뒤로 빼지 않았다면 명한도 같은 처지가 됐을 터.
이건 확실한 살계였다.
"종리운!"
"울부짖어도 소용없다. 그는 자식의 눈물에 반응하는 인간이 아니다."
"빌어먹을, 미친 인간 같으니!"
이타와 삼타가 동시에 날아왔다.
좌우측으로 겹치는 붕괴의 공격.
어느 쪽으로도 안전하지 않으니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어림없다."
하지만 그조차 종리운의 사정거리.
손짓 하나에 후방의 공간이 주저앉으며 퇴로마저 차단했다.
‘큭.’ 이렇게 된 이상 정면에서 힘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명한의 내공이 극천일무기의 성질을 띠며 달아올랐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후배에 대한 배려가 없군!"
"도련님을 건드리지 마세요!"
그 순간, 은소소와 향아가 시기적절하게 싸움에 개입했다.
공간을 파고 들어가는 혼원일기와 붕괴의 사이마저 밟는 향아의 보법이었다.
동시에 종리운의 빈틈을 찔렀다.
카라라랑.
금속의 마찰과 흡사하게 주변 한 뼘 공간이 붉게 달아올랐다.
은소소의 혼원일기를 밀어내고 향아의 항룡이십팔장을 분쇄했다.
"하! 동시에 둘은 안 되는 모양이지!?"
완벽한 방어였으나, 그 덕에 명한을 노리던 붕괴는 사라졌다.
동시에 시전이 어렵다는 방증이었다.
물러나던 걸음을 되짚어 명한이 앞으로 돌진했다.
타구봉 끝에 실린 힘이 공격의 박자 사이를 정확하게 찔렀다.
파앙―!
"뭐?"
"네깟 놈들이 나, 종리운의 허공권(虛空拳)을 파악했다고 승세라도 잡은 것 같더냐?"
타구봉의 끝을 손가락으로 움켜쥔 종리운.
그대로 힘의 방향을 뒤집어 명한을 아래로 돌렸다.
회(回)의 요령으로 버티려 했지만, 종리운의 수가 너무 절묘했다.
명한은 견디지 못하고 타구봉을 놓은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가져가라."
그러자 물러나는 걸음보다 빠르게 종리운이 타구봉을 튕겼다.
소리보다 앞서 타구봉의 끝이 명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장이 흔들리고 의식이 무너질 것 같은 어마어마한 충격이 내부를 관통했다.
가이신공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화경의 요령으로 겨우 몸을 바로잡았다.
‘무슨 충격이……’
단 일격으로 힘의 격차가 느껴졌다.
"젊은것들이 신공을 익히며 경지를 빠르게 밟아 올라가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건 빈 수레에 불과하다. 백 년 연마의 경험이 없다면 과연 그 힘이 온전히 네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쯧. 갑자기 잘난 척 훈계하지 마."
"그 오만이 널 죽이는 거다."
다시 공간을 격해서 붕괴가 시작됐다.
명한은 이를 악물고 극천일무기를 끌어 올렸다.
바닥부터 시작한 힘의 파도가 무너짐에 대항하여 붉은색 막을 만들었다.
마치 불꽃으로 뒤덮인 모습이었다.
"화륜? 네놈이 어떻게 그 아이의 신기를 쓰는 거지!?"
"역시 그쪽이 나형을 후원하던 인간인가?"
"말해! 네놈이 어떻게 화륜을 쓰고 있는 거냐!?"
"궁금하면 죽은 나형에게 물어보든가."
"감히!!"
공간의 점들에서 붕괴의 힘이 확장했다.
그 숫자가 무려 다섯.
명한이 도망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포함하고 있었다.
"우리는 무시하는 거냐!?"
"도련님을 건드리지 마세요!"
은소소와 향아가 다시금 반응했다.
혼원일기와 항룡이십팔장이 공세로 돌아선 종리운을 노렸다.
이번에도 매우 시기적절한 개입.
하지만 대응은 앞서와 달랐다.
"크, 크윽!?"
"아가씨!"
종리운은 붕괴의 힘을 유지한 상태로 두 사람과 맞섰다.
좌수에서 부드러움으로 대변되는 유권(柳拳)을 우수에서 강맹함으로 대변되는 파권(破拳)을.
혼원일기가 틀어지고 항룡이십팔장은 부러졌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것들. 신교라는 울타리에서 편하게 성장한 네놈들이 진정한 무리에 대해서 뭘 안다고 설치는 거냐?"
"이…… 이이! 괴물 같은 인간이!"
"아악!!"
어떤 수를 써도 종리운은 완벽하게 대처했다.
은소소와 향아의 내공이나 파괴력이 부족한 건 절대 아니었다.
다만, 이에 대응하는 종리운의 경험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그는 무공의 형질을 단번에 파악할 정도의 눈과 이에 대응할 만큼의 수단을 모두 충족하고 있었다.
명한을 붕괴로 몰아넣고 남은 둘을 여유롭게 상대했다.
"……저게 바로 신교를 지탱한다는 팔반의 위용인가."
명한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지금껏 만났던 모든 무인 중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 누적된 경험과 그것을 받쳐주는 탄탄한 실력.
정석적으로 단계를 밟아 올라간 무인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맥없이 당할 수야 없지.’
감탄은 한순간으로 족했다.
가슴 깊은 곳, 눌러 두었던 힘을 꺼내 올렸다.
화르르륵―!!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꽃.
사방을 짓누르던 붕괴의 힘이 불꽃에 휘말렸다.
공간을 누르는 기의 집합마저 화륜은 태울 수 있었다.
불길이 순식간에 거대해지며 불기둥으로 변모했다.
살이 익을 정도의 열기에 은소소와 향아.
심지어 종리운마저 한 걸음 물러났다.
"끝까지 해보자는 거지? 그럼 젊은 놈의 패기로 상대해주지."
"네놈이……"
날이 밝고 강유와 대전이 준비되어 있지만,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싸워야 한다면 전력으로.
명한도 각오를 세웠다.
#
화륜(火輪).
부족의 이름이자 신기의 명칭.
황제가 세운 여덟 부족의 일부이며 혈계주법을 통한 적응의 산물이다.
오행 중 화기에 특화된 형태.
"피를 통해서 화기를 통제하는 건 옳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명한은 혈사충을 통해서 그 성질을 분석했다.
극도로 희석되고 희미해져 있지만, 피 안에는 그 존재의 념(念)도 담겨 있다.
말하자면 황제가 남긴 집착이나 욕망의 산물.
지나간 세월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지만, 그만큼 과거의 황제가 아득한 존재였다는 의미.
이를 깨닫지 못하고 단지 피 하나에 목매어 화륜을 통제하려 하면, 본질에 닿을 수 없다.
‘황제라는 인간이 가진 여러 성질 중 하나. 화(火)는 분노. 끓어오르는 감정의 산물.’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은 황제의 분노가 근원이었다.
"얼마나 분노할 수 있는가. 새벽에 느닷없이 찾아와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 치는 네놈에 대한 분노. 사람을 우습게 보는 태도에 대한 분노. 그리고 죽어버린 나형이 남기고 간 분노까지."
"감히 네놈이 어디서 나형의 이름을 꺼내는 거냐!?"
"그럼 왜 너는 그 불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
"……"
"죽은 나형의 원념이 말하더군."
명한의 불꽃이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단지 무작정 태우기만 하는 불꽃이 아닌, 무언가를 움직이는 불꽃이었다.
이것이 화륜의 올바른 쓰임 중 하나.
"가장 분노한 건 자기 자신이었다고.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이라고. 화륜의 불꽃이 살과 뼈를 태운 건 그 때문이야."
"헛소리……"
"헛소리가 아닌 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아닌가? 나형 아버님?"
"닥쳐!!"
점. 점. 점.
셋으로 나뉘어 붕괴의 힘이 명한을 찍어 눌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명한도 마냥 피하지 않았다.
몸 안으로 응축한 화륜이 폭발적으로 확장하며 모든 반응을 가속했다.
점에서 확장하는 종리운의 붕괴의 형태가 두 눈에 전부 새겨질 정도였다.
극한의 가속상태.
땅이 무너지고 명한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
벼락같이 이어진 충돌.
반사적으로 만들어진 종리운의 벽과 명한의 타구봉이 충돌했다.
충격에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고 파편이 유성처럼 날아가 박혔다.
종리운은 그 무거움에 두 걸음이나 밀려났다.
벽의 형태마저 일렁거릴 정도의 엄청난 충격이었다.
"……네놈. 정녕 화륜을 다루는 것인가?"
"봐. 제대로 아는 게 없잖아."
으드득.
종리운의 이가 거칠게 마찰했다.
무림출도 이후 이런 취급을 또 언제 받아봤을까.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사지를 뜯어주마."
"할 수 있다면."
전력을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