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이오
[이름 : 소백]
[등급 : 50급 / 화경(化境)]
[체질 : 연단성체(練團成體) / 천하급]
[능력 : 심(75급) / 기(80급) / 체(70급)]
[생명 : 2100 / 2100]
[내공 : 350년 / 350년]
[무공 : 오독경 / 지중급(10성)]
[무공 : 가이신공 / 천하급(10성)]
[무공 : 타구봉법 / 천하급(10성)]
[무공 : 묵혼공(습득 제한) / 천상급(5성)]
[무공 : 반야신공 / 천상급(8성)]
[무공 : 극천일무기 / 외급(4성)]
[상태 : 천독불침 / 환골탈태 / 귀문전인 / 반탄지체]
[상태 : 삼화취정]
[사역수 : 쌍각사 / 성성이]
명한이 조용히 상태창을 내렸다.
화무천에게서 극천일무기를 전수받은 지 일주일.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된 상황이었다.
"괜찮은 거냐? 수련할 때마다 불안한데."
은소소가 살짝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수련하는 무공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극천일무기의 기운은 자연스럽게 묵혼공과 섞이고 있어. 파괴적인 기운은 덜고 좀 더 부드러운 것으로 채우는 거지."
"네가 그리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만······"
"광인은 안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짧게 답을 하며 숨을 뱉었다.
실체화된 기운이 연기처럼 입가를 맴돌다 사라졌다.
‘확실히 묵혼공 하나로 연단할 때 보다는 어려워.’
연단이라는 건 결국 기운을 뭉쳐서 단으로 만드는 과정.
극천일무기같이 패도적인 기운이 섞이면 쉽지 않다.
지금까지 정제되었던 기운은 괜찮지만, 앞으로는 한 땀 한 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보다 이제 슬슬 도착할 때가 됐을 텐데."
명한이 마차의 천을 가볍게 밀었다.
살짝 벌어진 틈으로 밖의 전경이 시야에 잡혔다.
우거진 숲과 녹음이 펼쳐진 장소였다.
"굳이 여기를 와야 했어?"
"신교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필요한 물건이 여기에 있어서."
"동네 점포처럼 말하지 마. 이쪽은 독곡의 영역이라고."
"알아.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지."
사천에서 더욱 깊이 들어간 독곡의 영역.
신교로 복귀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할 곳은 바로 이 독곡이었다.
‘귀의에게 줄 물건도 있고.’
핵심적인 적, 혈염마녀의 전력도 줄일 필요가 있었다.
"궁곡의 소식이 이미 이곳까지 닿았을 거야."
"미친 듯이 분노하고 있겠지. 내가 뭐라 포장하든 귀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날 보면 잡아서 죽이려고 할걸?"
"알면서 온 거야? 혈염마녀는 보통 고수가 아니야. 너도 알잖아."
"알지. 궁의 안방을 차지한 여인 중 그녀와 견줄 만한 인물은 고작 둘. 짐작건대, 경지는 화경의 끝자락에서 현경의 초입."
"그것도 독공의 고수라고. 네가 독을 다룬다고는 하지만, 그녀와 비교할 수는 없어."
명한도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독경을 대성한 그이지만, 혈염마녀가 익힌 ‘만독비전(萬毒秘傳)’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는 귀의가 있던 백약문의 약황비전과 대척점에 있는 독의 최고봉.
그 어떤 고수도 독 앞에서는 자신할 수 없다.
"도련님, 마을이 보여요."
하지만 그렇기에 꼭 방문해야만 했다.
"도착한 모양이군."
살아남기 위해 명한이 구상한 세 가지 조건.
돈, 무력.
그리고 남은 하나인 독을 충족하기 위해서.
#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마을 초입.
창밖으로 마을을 살피던 은소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딘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흠. 표정도 썩 좋지 않네.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아, 괜히 불안하잖아."
"겁이 많기는."
"누가 겁이 많다는 거냐!"
은소소가 발끈하는 사이, 마차가 도착했다.
그나마 인적이 좀 차 있는 객잔 앞이었다.
말과 마차를 안쪽에 깊이 대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
그리고 확신했다.
이 마을에는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
마차 안에서 보던 것보다, 실제로 마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훨씬 암울했다.
사람들은 힘이 없고, 눈에는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숫자도 적은데 그나마 있는 사람조차 이랬다.
"일단, 들어가서 상황부터 파악해 보자."
"으, 응."
객잔 안으로 서둘리 움직였다.
밖과는 다르게 그나마 온기가 도는 곳이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엉덩이를 붙였다.
‘시선이 따가운데?’
두셋씩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따라와 붙었다.
"안 좋을 때 오셨군요."
슥, 다가와 찻물을 올려주는 건 객잔의 주인.
시선을 막아주는 모습이 꽤 익숙한 듯 보였다.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분위기가 흉흉한데."
"역병이 돌았지 뭡니까. 근래에 다섯 가구가 몰살당했습니다."
"여, 역병이요?"
은소소가 깜짝 놀라며 소매로 입가를 막았다.
"그리 가려봐야 별 의미는 없습니다. 이 마을에 퍼진 역병은 좀 특이해서."
"특이하다면 어떤 식으로?"
"병이 걸린 사람 집 앞에 푸른 꽃이 핀답니다. 우리네 사람들은 그걸 청사화(靑死花)라고 부르죠."
"주, 죽음의 꽃."
은소소가 몸을 웅크리며 전신을 천으로 가렸다.
두렵지 않다, 라고 말한 것과는 달리 꽤 겁먹은 모습이었다.
"푸른 꽃이라. 언제부터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까?"
"근 한 달 정도 됐으려나. 한 명 두 명 죽어갈 때는 괴질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이 꼴입니다. 손님들도 급히 볼 일이 없다면 후딱 떠나는 편이 나을 겁니다."
"역병이 도는데 왜 다들 마을에 남아 있는 거죠?"
"에휴. 우리가 가 봐야 어딜 가겠습니까. 역병신께서 하루라도 빨리 떠나기를 기도할 뿐이죠."
주인의 긴 한숨에 온갖 감정이 다 섞여 있다.
토박이로 살아온 촌민이 마을을 버리고 떠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가벼운 요깃거리와 쉴 곳을 준비해 주세요."
"설마 머무르실 생각인가요?"
"저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요."
"전 분명 만류했습니다."
손사래 치는 주인에게 명한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역병 도는 마을이라면 피해 가는 것이 상책.
하지만 명한은 그렇게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푸른 꽃이라.’
짚이는 부분도 있었고.
"소백, 미쳤어? 역병이 도는 마을에서 머물자고?"
"안 무섭다며."
"아, 안 무섭지. 그래도 역병이잖아. 병에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모든 병에는 원인이 있어. 이유 없이 나타나는 괴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푸른 꽃이 피는 괴상한 현상이면 더더욱."
명한이 챙겨온 짐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식량을 포함, 독곡을 찾는 길에 준비한 모든 물건이 들어있었다.
"여기서는 의원 흉내나 좀 내봐야겠다."
그리고 수많은 약재도.
명한이 나지도 않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
명한이 오독경을 대성했다고 의학 지식이 있는 건 아니다.
증상을 읽고 약재를 분배할 능력 같은 건 없다.
대신, 그것과 별개의 독특한 능력은 있었다.
[상태 : 식중독]
[사고 : 아랫배가 끊어질 것같이 아프다]
"전날 먹은 음식이 탈이 났군요. 역병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약을 먹고 하루 푹 쉬면 나을 겁니다."
접촉한 대상의 상태를 읽어내는 능력.
큰 병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상황에 맞게 약만 제공하면 그만이다.
처음에는 어린놈이 ‘의선(醫宣)’이라는 깃발을 들고 있는 걸 고깝게 보던 이들도 이젠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역병 도는 마을에서 의원은 가뭄의 단비와 같으니까.
"자자, 다음 분 들어오세요."
빈집을 하나 빌려서 진료실 비슷하게 사용했다.
의원은 하나고 진료를 바라는 사람은 여럿.
질서를 잡고 차례대로 진료를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간호사 역할은 향아가 맡았다.
"저, 저기 의원 나으리. 우리 아이부터 먼저 봐 주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진료한 사람 숫자가 열 명을 넘어섰을 즈음.
남루한 차림의 한 여성이 포대기를 안고 다가왔다.
길게 늘어선 줄의 가장 앞선이었다.
"저기 진료를 원하시면 일단 줄부터 서심이······"
"그, 급해서 그래요. 우리 아이가 열이 펄펄 끓는 것이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거 같아요."
"열이요?"
향아가 포대기 안쪽, 하얗게 질린 아이를 만졌다.
손끝이 뜨거울 정도의 고열이었다.
"세상에. 이마가 불덩이 같잖아?"
"오, 오늘 새벽부터이랬어요. 제발 우리 아이 먼저 의원님을 뵐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어. 아, 네. 일단 먼저······"
"잠깐! 잠깐! 이봐요! 아까부터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쪽 먼저 보내주면 안 되지!"
향아가 다급히 여인을 들여보내려 하자, 늘어선 줄에서 한 중년 남성이 나섰다.
"죄송해요. 위급한 분부터 먼저 진료할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이익! 그런 법이 어디 있소!? 나도 진료를 받으려고 아까부터 서 있었는데!"
"맞아! 우리도 급하다고!"
중년 남자 하나만이 아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신이 급하다며 아우성이었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결국, 안에서 진료 보던 명한이 밖으로 나왔다.
외면하려고 해도 외면할 수 없었다.
"도련님. 이쪽 여성 분 아이가 매우 위급해 보여서요. 먼저 진료를 볼까 했는데, 보다시피······"
향아의 손짓에 명한이 주변을 훑었다.
성난 군중과 다급해 보이는 여성.
‘뻔한 건가.’
눈에 훤한 상황이었다.
"아이부터 좀 봅시다."
그래도 일단은 아이부터.
명한이 여인이 안고 있는 아이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열기.
[상태 : 중독(청사독) / 지속적인 생명력 감소]
그리고 단번에 읽히는 중독 증상이었다.
명한이 찾던 이였다.
"이, 이봐요 의원 나리! 그쪽보다 우리를 먼저 진료해야지! 우리가 더 먼저 와서 기다렸단 말이오!"
"맞아! 우리가 더 먼저 왔는데, 이러는 법이 어디 있소!?"
"저 여자를 끌어내!"
"우리도 진료를 해 달란 말이오!"
명한까지 나서서 아이를 먼저 진료하는 듯 하자, 뒤에 선 이들이 크게 분노했다.
소매를 걷고 행동으로 나서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하여튼 뭔가 좀 해주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니까."
이에 명한은 가벼운 손짓으로 대꾸했다.
그와 군중이 서 있는 중간 지점.
바닥이 한 치 폭으로 푹 파였다.
"무, 무림인!?"
"허억!"
깜짝 놀라 물러나는 군중 앞으로 명한이 훌쩍 뛰었다.
"진료해 주고 아니고는 내 마음이다. 어디서 감 놔라 배 놔라야."
"그, 그래도 나름의 규칙이 있지 않소!"
"규칙은 무슨. 진료하는 건 나고, 정하는 것도 나다. 너희가 뭔데 내 진료에 떠들어? 진료고 뭐고 아예 접고 갈까?"
"크, 크윽."
여기서 철저한 갑은 명한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처지가 곤궁한 건 이해하지만, 이럴 때 제대로 눌러주지 않으면 요구는 끝도 없다.
"물러나. 필요한 사람을 진료한 후에 내가 원하는 만큼 너희를 봐 주겠다."
"······"
"그게 싫으면 떠나든가. 선택은 자유다."
아이를 넘겨받은 뒤 진료실로 몸을 돌렸다.
성난 군중도 꼬리를 말고 침묵했다.
칼을 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
다시금 줄이 질서 정연하게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