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235)

거래를 합시다

선선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마교의 세가 강하다 한들, 고작 사십팔 궁 끝자락에 있는 인물이 강할 수는 없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분명. 분명 그게 정상이거늘······’

눈앞의 기도는 예상을 한참 웃돌았다.

"사부님, 주변에 눈이 많습니다. 여기서는 일단 물러나죠."

"······시끄럽다."

"네?"

"시끄럽다고! 장문인이 안 계시면 내가 아미파를 책임져야 한다! 고작 저런 마교의 무뢰배 하나 때문에 물러나서야 우리 아미파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하지만 물러날 수는 없었다.

말마따나 주변 시선 때문이라도 그럴 수 없었다.

아미파의 체면.

선선 자신의 자존심이었다.

"마교의 패악한 무공이겠지. 아미파의 검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마."

"사부님!"

제자의 만류를 무시하고 출수했다.

아미삼검 중 하나인 항마일검(抗魔一劍)이었다.

쾌속한 검결이 허공을 단번에 자르고 들어갔다.

‘아미파의 검인가.’ 명한은 가벼이 여기지 않고, 타구봉으로 원을 그렸다.

받아치기에 특화된 척과 낭의 요령이었다.

세차게 쏟아지던 검격이 원에 휘말려 주변으로 밀려났다.

파파팍.

땅만 거칠게 갈라졌다.

"타구봉!? 마교의 놈이 감히 개방의 무공을 흉내 낸단 말이냐!"

"만나는 사람마다 이 소리군. 개방이 무너질 때는 아무것도 안 한 놈들이, 왜 무공 가지고는 난리지?"

"감히―!"

파르르르.

선선의 검이 요란하게 떨리더니 수십 갈래로 나뉘어 명한을 압박했다.

마찬가지로 아미삼검 중 하나인 금광검법(金光劍法)이었다.

화려함 속의 변초는 아미파 으뜸이었다.

‘요란하기는.’

하지만 명한에는 진실을 꿰뚫는 반야의 힘이 있었다.

수십, 수백으로 나뉘어도 검은 오직 하나.

챙―!

"뭐!?"

모든 변초가 사라지고 선선의 검이 튕겨 나갔다.

"아미파의 검은 요란하기만 한 건가?"

"감히. 감히!! 네놈 따위가 아미파를 능멸해!?"

극도로 분노한 선선이 검세를 바꿨다.

조금 더 패도적인, 조금 더 흉험한 검세였다.

‘복마검(伏魔劍)? 아주 작심했군.’

철저하게 적을 제거하기 위해 고안된 검법이었다.

문파간의 전쟁이 아닌 이상에야 과한 수였다.

"마교의 피로 아미산을 정화하겠다!"

거대한 강기 덩어리로 뭉쳐서 날아오는 검격.

경지를 웃도는 파괴력이었다.

‘여기서 제대로 보여줘야겠지.’

타구봉을 바닥에 꽂아버리는 명한.

"······흐읍!"

반야의 눈이 강기의 핵심을 꿰뚫고, 묵혼의 기운이 태산처럼 몸을 받들었다.

그건 마치 땅에 뿌리를 박은 거목.

수백, 수천 년의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웅장함이었다.

쿠웅―!

벽(壁)에 막혀 검의 행태로 무너지는 강기.

바위도 쪼갤 것 같은 기운이었지만, 천년고목 앞에서는 무용했다.

강기의 파편이 유리알처럼 비산했다.

‘흩어지는 기운의 본질을 끌어서 사용한다.’

명한은 한 걸음 더 나섰다.

회백의 요령으로 힘의 잔재를 흡수.

이를 가이신공의 방식으로 쌓아서 형태를 가진 기운으로 빚어냈다.

차력타력(借力打力).

남의 힘을 빌려서 때리는 고등의 기술이었다.

쩌엉!!!

거대한 강기 덩어리가 선선을 후려쳤다.

기막으로 방어를 해 보지만, 힘의 차이는 현격했다.

단번에 무너져 십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쿨럭······!"

쏟아내는 울혈은 내상이 적지 않음을 증명했다.

"사부님!!"

선선의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 앞을 에워쌌다.

다음번 공격을 몸으로라도 막겠다는 의지였다.

아미파 다운 의기였으나, 상황이 이래서야 빛이 바랠 뿐이었다.

"네놈. 네놈······쿨럭!! 이럴 수는 없다."

"말을 아끼는 편이 좋을 거요. 허(虛)를 찔렸으니, 내상이 심할 터. 섣불리 움직이면 앞으로 무공을 쓰기도 힘들 것이오."

"내가 네놈 따위의 말을 들을 것 같······쿨럭! 쿨럭!"

어지간히도 고집이 센 인간.

명한이 아득바득 받아치는 선선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뭐, 아미파와 척질 생각은 없으니."

그리고는 품 안에서 단약 하나를 꺼내서 던졌다.

신교에서 챙겨온 내상에 효과가 좋은 영약이었다.

"복용하고 운기하면 삼할은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마교의 약을 믿을 것 같나!?"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이대로 내버려 두면 앞으로 무공을 쓰지 못할 수도 있소만."

"크으윽!"

선선이 이를 갈며 쏘아봤다.

마교가 준 물건이라면 죽어도 싫은 것이 정상.

하지만 몸 상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이대로 버티면 기혈이 역류할 거다.’

아미파로 돌아가 약을 찾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빌어먹을!!"

잇소리를 내며 단약을 삼켰다.

화하게 퍼지는 향과 함께 단번에 내기가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효과 만큼은 발군이었다.

‘내공만 회복하면······’

다시 반격을.

속내도 마찬가지로 발군이었다.

"잡생각을 버리고 운기행공에 집중해라."

"······!"

하지만 그 속내는 이어지지 못했다.

훌쩍 날아 곁으로 다가오는 한 인물.

"운무곡의 일로 잠시 자리를 비웠거늘. 그 사이에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닌 거냐."

"오랜만에 뵙습니다, 백 장문인."

"후우. 못 볼 꼴을 보였군요, 소 공자."

아미파의 장문인 백순순의 등장이었다.

#

사람을 피해 장소를 옮겼다.

마을 외곽, 아미산으로 이어지는 정자였다.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리죠. 선선이 과한 생각으로 손을 썼던 모양입니다."

"마교의 어두운 손이 무서웠던 모양이죠?"

"비꼰다 해도 변명할 말이 없군요. 선선은 과거 큰 싸움에서 많은 친구를 잃었습니다. 아직도 원망하고 있는 것이죠."

"뭐, 이번 일은 장문인 체면을 봐서 그냥 넘어가 드리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소 공자."

살짝 고개를 숙이는 백순순.

장문인이라는 입장에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그보다 소림사를 떠날 때는 바람과 같더니, 아미파까지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복마전이야 명줄 잡기 위해서 꼬리를 말고 도망쳤을 뿐이죠. 그때 못 맺은 인연은 계속해서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못 맺은 인연이라. 반대표를 던진 효과일까요?"

"급할 때 손 내밀어준 이가 진짜 친구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을 했죠."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설전이 이어졌다.

말은 바르고 어조는 평온하나, 속내는 쉬이 드러내지 않았다.

"소림사에서의 일은 무연 대사가 과했습니다. 아무리 원이 깊어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죠."

"듣기로는 사파 연합의 기습으로 돌아가셨다고······좋은 관계는 아니었으나, 조의를 표합니다."

"네.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알려졌죠."

"세상사 속까지 전부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죠. 곤륜의 원한은 갚았습니까?"

"적당히. 사파 연합은 크게 패하여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앞으로 몇 년은 준동하지 못하겠죠."

"이거 중원 무림을 위해 큰일을 하셨군요."

명한이 포권으로 깊이 인사했다.

속내가 있든 없든, 피할 수 없는 예의였다.

백순순이 웃음 비슷한 걸 만들어 맞 포권을 취했다.

"지나간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아미파로 오신 목적을 알 수 있을까요?"

"산수유람을 위해서라면 이유가 안 될까요?"

"후후. 소 공자님같이 공사다망하신 분이 유유자적 나들이를 다닐 수는 없지요."

"아쉽군요. 이유가 된다면 아미파의 절경을 구경해 볼까 했는데."

운을 떼고, 명한이 입술을 축였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회심곡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네?"

"아미파 3대 금지 중 하나인 회심곡. 그 안에서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백순순이 쉬이 답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일들을 가정했지만, 이건 없었다.

갑자기 회심곡이라니.

이해 못 할 제안이었다.

"조금 당황스럽군요. 아미파의 금지를 아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안에서 만날 사람이요?"

"네. 소선연. 금화사태를 만나고 싶습니다."

"······"

입술이 아예 닫혔다.

이건 회심곡보다 더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제안이 당황스럽다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대가라 했습니까?"

"아미파의 잃어버린 절학. 혜허검(慧許劍)을 복원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미파 조사께서 남긴 최후, 최강의 절학. 혜허검을 백 장문인께 돌려드린다는 얘기입니다."

백순순은 아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미파 조사의 혜허검은 전설로만 치부되는 무공이다.

구전으로 그런 무공이 있었다, 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 실체를 아는 사람은 없다.

‘허풍인가?’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했다.

"혜허검의 단초입니다. 자시에 운무곡 정상에 올라, 달빛을 바라보고 서 있으면 검의 형상이 떠오를 겁니다."

"······그걸 소 공자가 어떻게 알고 계시죠?"

"말하지 않았습니까. 혜허검의 단초라고. 아미파 조사께서 혜허검을 창안한 곳이 운무곡의 정상입니다. 그 흔적이 지형에 새겨져 자시만 되면 검의 형상이 떠오르는 겁니다."

아미파 장문인이 되는 사람이면 주기적으로 운무곡에 올라야 한다.

정확하게 명한이 말 한 자시부터.

검의 형상을 띈 달무리를 관찰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이건 장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야.’

입술이 바싹 말랐다.

"정말로. 정말로 조사께서 남기신 혜허검을 복원시킬 수 있다는 겁니까?"

"허언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어떻게 이걸 소 공자께서?"

"신교의 비밀 정도로 생각해 주시기를."

명한이 에둘러 답했다.

어차피 캔다고 알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으음. 너무 갑작스럽군요.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이해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며 제 남은 제안을 들어보시죠."

"남은 제안이요?"

"타 문파의 금지를 침범하는 일입니다. 저 역시 소홀히 응할 수는 없죠."

툭. 탁자 위에 손을 올리는 명한.

"회심곡의 출입을 허락해 주신다면 앞으로 아미파는 저, 소백의 도움을 얻게 될 겁니다."

"······공자님의 도움?"

"천마궁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천마의 후계자가 되는 건 이미 알고 계시겠죠."

"네. 그렇습니다만."

"그 승리자. 제가 될 겁니다. 그러니 아미파는 향후 신교와 우호적인 관계를 얻게 되는 것이죠."

터무니없는 말일수록 당당하게.

명한은 흔들림 없이 주장했다.

"이런 말이 실례일 수도 있지만······소 공자님은 후계와 거리가 먼 순위 아니신가요?"

"소궁의 순위는 겉치레에 불과합니다. 소궁주들끼리 겨루는 대전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역량을 드러내겠죠."

"그 안에서 소 공자께서 승리를 하신다?"

"의심스럽다면 증거를 보여드리죠."

명한이 잠시 말을 아끼고 숨을 골랐다.

이건 흐름에 관한 이야기.

필요한 건 적당한 시간이었다.

"문주님, 문주님."

그리고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교에서 오신 궁곡이란 분이 면담을 청하고 계십니다."

"신교에서?"

돌아보는 백순순을 보며 씩 웃는 명한.

"천마궁 서열 14위 궁곡. 그부터 무너뜨려 보죠."

모든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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