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235)

뜻밖의 행운

흑점 분타 밀실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일월 이월을 포함한 명한의 일행 전부였다.

그리고 그 앞에 신투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감히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떠드는 거냐!?"

"당장 저 요망한 것을 내쫓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발끈하는 건 일월과 이월.

특히 이월은 눈매가 사나울 정도였다.

"나도 이건 반대야. 재주가 있는 건 맞지만,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결혼이라니. 감히 어디서."

"맞아요. 도련님의 성혼은 인륜지대사에요. 이렇게 불쑥 되고 말고 할 것이 아니죠."

향아와 은소소도 말투만 차분할 뿐, 내용은 비슷했다.

"아하하하. 이거 인기 많은 사내를 고른 모양인데?"

그런 반응에 신투는 자리에 앉아 신나게 웃었다.

얼굴은 사내의 그것인데, 목소리는 여자의 것이었다.

이 기괴함에 명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그 역용부터 풀어라. 본모습도 안 보이면서 결혼 운운하는 건 우습지 않나?"

"흐응. 얼굴을 따진다 이거지? 좋아. 사부님도 내 얼굴이 천하절색이라고 했어."

씩 웃으며 역용을 푸는 신투.

체형, 피부, 이목구비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투박하게 생긴 남자에서 귀여운 얼굴의 여자로 탈바꿈했다.

천하절색은 아니지만 제법 귀엽긴 했다.

"그게 본모습?"

"응. 어때? 이제 결혼할 마음이 서?"

"급하기는. 불쑥 결혼 운운하는 이유가 뭐야?"

"그야 뭐······사부님하고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천하는 넓지만, 진짜 사내는 얼마 없다. 그러니 시시하지 않은 놈을 찾거든 바로 잡으라고 했어."

"독특한 교육이네. 네 사부님이 누구인데?"

"전대 신투, 공공."

명한이 무릎을 탁, 쳤다.

전대 신투같은 건 없는 설정.

이런 식으로 후계를 이었다면, 다른 설정이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은 어디에 계시지?"

"죽었어. 일생일대의 도둑질을 한다고 신나서 떠들더니, 큰 부상만 입고 돌아왔지 뭐야."

"음. 미안하다. 몰랐어."

"아냐. 언젠가 죽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 사람인데 뭐. 신투라는 이름답게 죽었지. 괜히 소요파 능묘를 털어서······"

"소요파 능묘?"

"응. 내가 익힌 이 경공술도 그 안에서 훔쳐온 거야. 멸문당한 소요파의 절기들과 함께 묻혀 있었나 봐."

능파미보의 출처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랑 결혼하면 이 무공도 가르쳐 줄게. 사부님한테서 받은 장비와 이 무공이면 못 가는 곳이 없어. 앞으로 나랑 천하를 주유하면서 살자."

"매력적인 제안이기는 한데, 나는 할 일이 있어."

"무슨 할 일? 어차피 신교로 돌아가도 사십팔 궁밖에 안 되잖아. 널 죽이려는 사람도 널렸는데?"

"그러고 보니 아직 못 들었네. 내 정보는 어디에서 얻었어?"

"말해주면 결혼할 거야?"

"아니. 미안하지만, 결혼 쪽이 좀 더 중요한 문제라서."

"쳇, 냉정하긴. 그래도 말해줄게."

입술을 비죽이며 신투가 말을 이었다.

"신기자라고 알아?"

"신기자. 제갈 선생 말인가?"

"제갈? 응. 그 이름이었던 거 같아. 제갈 명이라고 했던가? 오래전에 제갈가를 떠난 사람이라고 하던데."

"알지. 파운 형님의 오른팔인데."

신기자, 제갈 명.

천마궁 이인자 파운의 오른팔이자, 신기묘산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점은 미래를 읽고 눈은 길흉화복을 예측한다.

오래전에 제갈가와 연 끊고 나온 것을 파운이 거둔 뒤로는 측근으로 머물고 있었다.

"그 사람이 네 정보를 모두 줬거든."

"줬다고? 훔친 게 아니라?"

"응. 원래는 내 미래의 낭군이 누굴까 싶어서 찾아간 건데, 내가 올 거라는 걸 이미 알았나 봐. 따로 부르더니 너에 대한 걸 줬어."

"······그냥 아무런 조건 없이 줬다는 거냐?"

"쓰고 싶은 대로 쓰라고 했어. 아, 그리고 보니 한마디 덧붙이긴 했네. 암운도래(暗雲到來). 흉(凶), 동. 길(吉), 서. 이렇게."

모호한 말.

단순한 말장난 같기도 하나, 이걸 전한 이가 신기자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그가 왜 내게?’

파운의 오른팔이 도와줄 이유는 없다.

"이제 됐어? 더 물어볼 건 없어?"

하지만 일단 지금은 눈앞의 신투가 먼저.

"자질구레하게 따지자면 산더미 같겠지만, 일단 이것부터 좀 물어보자."

"뭔데? 뭔데?"

"이름. 계속 신투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아. 응. 맞지. 이름."

살짝 고민하는 얼굴의 신투.

뒷머리를 긁고 발끝을 툭툭 치며, 잠시 고민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묘(苗). 사부님은 나를 묘아(苗兒)라고 불렀어."

"묘? 설마, 이 묘자를 쓰는 거냐?"

명한이 바닥에 묘(苗)자를 새겼다.

이를 확인한 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남만의 묘족을 의미하는 단어잖아?’

뒤에 붙은 단어를 풀어서 보자면 묘족 아이.

혹은, 묘족에서 찾은 아이 정도가 된다.

"네 고향이나 부모에 대한 건?"

"몰라. 사부님도 그런 건 몰라도 된다고 했어. 그래서 나도 신경 쓰지 않았어."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어!? 그걸 어떻게 알아? 사부님이 만날 입버릇처럼 말하던 건데."

그야, 신투에 잡아둔 유일한 인물 설정이니까.

‘이걸 바탕으로 2대 신투를 묘족으로 이었다는 건가. 독곡의 연결고리.’

그렇다면 굉장히 매끄러운 수였다.

"아무래도 넌 나와 함께 가야 할 거 같다."

"진짜? 그럼 결혼하는 거야?"

"결혼은 이르지. 대신 곁에 머무르면서 계속 유혹해 봐. 내가 반할 만큼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때는 생각해 볼 테니까."

"그건 내기야?"

"그래. 내가 반하면 네 승리. 실패하면······뭐, 될 때까지 해 보든가."

"히히히. 좋다, 좋아. 마음에 들어!"

묘아가 바람처럼 날아와 명한의 옆에 착 붙었다.

뒤쪽에서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신경도 안 쓰는 얼굴이었다.

눈치 없는 고양이.

같은 묘자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나 한가지 정보가 더 있어."

"응?"

"신기자가 네 정보를 줄 때 슬쩍한 물건이 있거든. 궁곡인가? 그 사람 정보야."

"호오."

명한의 눈이 반짝였다.

#

[천하상단 신투에게 털리다]

장안에 파다한 소문이었다.

숨기려고 해도 이미 명한이 손을 써 놨기에 소용없었다.

불붙은 짚마냥 순식간에 퍼졌다.

"거래는 무사히 마쳤어요, 태사님."

"수고했다. 그쪽 반응은 어때?"

"천하상단이 신투에게 털렸다고 하니까, 우리를 더 신용하는 눈치에요. 앞으로 거래는 문제가 없겠어요."

경쟁 상단이 타격을 입으면 반대가 수혜를 입는 법.

천하상단의 소문 덕에 오월상단은 확고한 거래처를 손에 넣었다.

‘이건 농간이다!’ 천하상단이 쉼 없이 떠들어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당한 사람이 바보인 세상이었다.

"태사님은 이제 아미파 방향으로 이동하시나요?"

"그쪽에 용건이 있으니까."

"가시면 또 언제나 볼 수 있을지······"

"그런 얼굴 할 필요 없다. 조만간 다시 볼 테니까. 그 전까지 네가 해 줄 일이 있어."

계획을 진행함에 있어서 중요한 건 정보.

명한은 묘아에게서 받은 ‘궁곡’의 정보를 이번 계획에 적용하여 수정을 가했다.

"남만 일대로 흘러드는 물자 흐름을 좀 살펴봐 줘. 민간용은 필요 없고, 독이나 약. 이걸 중심으로 보면 돼."

"남만이면······독곡을 염두에 두신 건가요?"

"지금 혈염마녀가 신교를 떠나서 독곡에 와 있다는 정보가 있어. 몇 가지 짐작 가는 부분은 있지만, 확신이 필요해. 해줄 수 있겠지?"

"네. 태사님께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야무지게 답하는 이월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부끄러운 듯 몸을 비틀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되레 한 걸음 다가와 볼을 가슴팍에 댔다.

"태사님. 남겨진 소녀가 추억할 수 있도록 작은 정표 하나만 남겨주세요."

촉촉한 목소리와 촉촉해진 입술.

살며시 밀어 올린 뒤꿈치에 거리가 가까워졌다.

"할 거면 나도 해 줘."

"꺄악!?"

하지만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산통이 깨졌다.

쪼그려 앉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묘아였다.

"뭐야, 안 하는 거야?"

"······능파미보로 염탐하는 건 그만두지 않을래?"

"하지만 궁금한걸. 주변에 있는 수많은 여자 중에 정실이 누구인지도 알아내야 하고."

"정실이라니. 그건 또 어디서 들었냐?"

"아니면 내가 정실이 될 수도 있어? 그건 또 혹하네."

실실 웃으며 물러나는 묘아.

짓궂음과 순진함의 중간 어디 즈음의 얼굴이었다.

명한이 한숨을 내쉬고, 멍하니 있는 이월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힘내라."

"네, 네."

다음 날, 명한은 장안성을 떠났다.

#

"끄응. 끄응."

장안성을 떠나고 하루 뒤.

묘아는 반나절 간 자취를 감추고 다시 돌아왔다.

커다란 보따리와 함께였다.

"이게 다 뭐야?"

"뭐긴 뭐야, 짐이지."

"이걸 이렇게 현물로 들고 다녔어?"

"필요 없는 건 다 나눠주고 남은 게 이 정도야."

낑낑거리며 보따리를 마차 위로 올려놓았다.

사람 두셋은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였다.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다. 이거 받아."

그 안에서 오래된 팔찌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옥으로 주조된 물건으로 표면에 상처가 많았다.

[이름 : 옥사(玉絲)]

[분류 : 장비]

[등급 : 지상급]

[설명 : 극지에 사는 거미의 실로 만든 팔찌. 실을 특수 용액에 적셔서 수백, 수천 가닥으로 꼬았다. 불에 타거나 잘리는 경우가 적고, 신축성이 뛰어나다]

"내가 예전에 작업하면서 사용한 물건이야. 팔에 차고 내공을 불어 넣으면 실이 풀려나와. 물건을 묶거나 외벽을 탈 때 쓰면 좋아."

"호오. 안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군."

"밤에는 더 안 보이지. 그거로 거미줄을 쳐 놓으면 고수라도 손발 쓰기가 힘들걸?"

"좋네. 잘 쓸게."

"기다려 봐. 하나가 아니야."

이번에는 커다란 목함이었다.

장식이나 재질 모두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이건 황실에서 훔쳐온 물건."

"황실? 황실에도 침입한 적이 있어?"

"응. 황실 내고에 굉장한 물건이 있다고 해서 몰래. 내궁 고수에게 걸려서 도망치기는 했지만, 이거 하나는 겨우 건졌지."

"허. 목이 안 잘린 게 다행이다. 황궁에는 괴물 같은 인간들이 살아. 조심해."

황궁에 거주하는 현경 이상의 고수는 전부 다섯.

묘아가 안 죽고 도망친 건 천운이었다.

"에잇, 그렇게 사소한 건 넘어가고. 봐봐. 대단하다고 다들 모여서 지키던 거야. 굉장하지?"

목함을 열자 금색 천으로 감싼 구체 하나가 나타났다.

[이름 : 여의주]

[분류 : 신물]

[등급 : 천상급]

[설명 : 용이 승천할 때 물고 올라간다고 알려진 구슬. 획득 시기와 방법이 비밀에 싸여 있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 찾아오고 모든 병에 면역이 생긴다]

"······어?"

"좋지, 좋지?"

신나서 뛰는 묘아에게 반응해 줄 수가 없었다.

그냥 고가의 구슬이나 약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

여의주는 상상 밖의 물건이었다.

"시이잇!?"

그리고 그때.

품 안에서 잠들어 있던 쌍각사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여의주로 달려들어서 그대로 삼켰다.

말릴 틈도 없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아악! 이 뱀 새끼야,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란 묘아가 소리쳤지만 이미 지나간 일.

목구멍부터 시작해서 배까지 쌍각사의 피부가 불룩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멈췄을 때.

[쌍각사의 진화 조건을 모두 만족했습니다]

"어?"

[쌍각사의 등급이 영물에서 신수(神獸)로 변합니다]

"어어?"

예상 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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